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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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는 프로 선수 경력 없이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1967년 상 크리스토방에서 피지컬 코치를 시작으로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플루미넨세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FIFA 월드컵에서 5개의 국가대표팀을 이끈 두 명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아라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도했다. 특히 1994년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고 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0년 은퇴를 발표했다. 클럽팀 감독으로서 플루미넨시, 페네르바흐체, 코린치안스 등에서 우승을 기록했으며,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IFFHS 올해의 국대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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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코파 아메리카 참가 감독 - 카를로스 빌라르도
카를로스 빌라르도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선수 시절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및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 1990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하며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결과 지상주의 축구 철학인 '빌라르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1980년 AFC 아시안컵 참가 감독 - 김정남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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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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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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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고메스 파헤이라 |
출생일 | 1943년 2월 27일 |
출생지 | 히우데자네이루, 브라질 |
선수 경력 | |
포지션 | (선수 경력 없음) |
감독 경력 | |
1967–1968 | 가나 |
1974 | 플루미넨시 |
1975 | 플루미넨시 |
1978–1982 | 쿠웨이트 |
1983 | 브라질 |
1984 | 플루미넨시 |
1985–1988 | 아랍에미리트 |
1988–1990 | 사우디아라비아 |
1990–1991 | 아랍에미리트 |
1991 | 브라간치누 |
1991–1994 | 브라질 |
1994–1995 | 발렌시아 |
1995–1996 | 페네르바흐체 |
1996 | 상파울루 |
1997 | 메트로스타즈 |
1998 | 사우디아라비아 |
1999–2000 | 플루미넨시 |
2000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2000 | 산투스 |
2001 | 인테르나시오나우 |
2002 | 코린치앙스 |
2003–2006 | 브라질 |
2007–2008 | 남아프리카 공화국 |
2009 | 플루미넨시 |
2009–2010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수상 | |
FIFA 월드컵 | 우승 (1994년 미국) |
코파 아메리카 | 우승 (2004년 페루)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우승 (2005년 독일) |
설날컵 | 우승 (2005년 홍콩) |
AFC 아시안컵 | 우승 (1980년 쿠웨이트, 1988년 카타르) |
아라비안 걸프컵 | 우승 (1982년 UAE) |
COSAFA컵 | 우승 (200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
2. 초기 경력 및 배경
파헤이라는 프로 선수 경력 없이 브라질의 체육대학을 졸업한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지도자 경력은 1967년 상 크리스토방에서 시작되었으며, 1968년에는 가나의 아산테 코토코와 가나 대표팀의 코치직을 맡아 1975년까지 활동했다. 그는 1970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 대표팀에도 관여했으며, 이 경험이 훗날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파헤이라는 보라 밀루티노비치와 함께 서로 다른 5개의 국가대표팀을 FIFA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유이한 감독이다. 그는 1982년 쿠웨이트, 1990년 아랍에미리트, 1994년과 2006년 브라질, 1998년 사우디아라비아,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을 지휘하여 총 6번(브라질 2회 포함)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으며, 이는 역대 최다 참가 기록이다.
1975년에는 브라질 클럽 플루미넨세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플루미넨세의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4년 팀의 1부 리그 우승과 1999년 3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9년의 3부 리그 우승은 당시 파산 직전이었던 클럽을 구해낸 의미 있는 성과였기에, 개인적으로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보다 더 중요한 트로피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쿠웨이트 대표팀을 이끌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이는 그가 월드컵 무대에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참가한 대회이다.
3.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
특히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모국 브라질을 이끌고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감독을 맡았으나 조별리그 2경기 만에 경질되었고,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다시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8강에서 탈락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휘했으나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1][3]
파헤이라의 FIFA 월드컵 본선 통산 감독 기록은 23경기 10승 4무 9패, 28득점 32실점이다. 그는 2010년 FIFA 월드컵 이후 축구 감독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5]
3. 1. 쿠웨이트 (1978-1982)
1978년부터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8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쿠웨이트를 결승까지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을 3-0으로 대파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82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1981년 쿠웨이트에서 열린 예선 경기에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2-0으로 꺾었으며, 최종 예선을 거쳐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는 쿠웨이트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같은 해 아라비아 걸프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쿠웨이트는 체코슬로바키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잉글랜드를 상대로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나 0-1로 아쉽게 패배했다. 이어진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1-3으로 뒤지던 후반 35분, 프랑스의 네 번째 골이 들어갔다. 하지만 쿠웨이트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들린 피리 소리를 주심의 휘슬 소리로 착각해 플레이를 멈췄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 출신 주심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경기는 약 7분간 중단되었다. 이때 쿠웨이트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던 셰이크 파하드 왕자가 직접 경기장에 난입하여 선수단에게 철수를 명령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주심은 프랑스의 득점을 무효로 번복했으나, 경기 종료 직전 프랑스가 다시 한 골을 추가하여 쿠웨이트는 1-4로 패배했다. 최종적으로 쿠웨이트는 1무 2패를 기록하며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8]
이 사건의 여파로 해당 주심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셰이크 파하드 왕자는 엄중 경고를 받았다. 쿠웨이트 축구협회 역시 2.5만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파헤이라는 월드컵 이후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8]
3. 2. 아랍에미리트 (1985-1988, 1990-1991)
1989년에 마리우 자갈루의 후임으로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수단을 이끌고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에서는 독일에 1-5, 콜롬비아에 0-2, 유고슬라비아에 1-4로 대패하며 3전 전패, 2득점 11실점으로 조 최하위에 그쳤다. 월드컵 종료 후 아랍에미리트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 3. 사우디아라비아 (1988-1990, 1998)
파헤이라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8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여러 팀을 거쳐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과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하며 2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1994년 FIFA 월드컵 16강 진출 경험은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덴마크에 0-1로 패배했고, 이어진 개최국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0-4로 크게 패하며 2연패로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는 2-2로 비겼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연맹은 프랑스전 대패 직후 파헤이라를 경질하였고, 수석 코치였던 모하메드 알 카라시가 감독 대행을 맡아 남은 경기를 치렀다.
3. 4. 브라질 (1983-1984, 1991-1994, 2003-2006)
쿠웨이트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인 1983년, 처음으로 모국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8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을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몬테비데오 원정에서 우루과이에 0-2로 패하고 홈에서 1-1로 비기면서 준우승에 그쳤고, 결국 해임되었다.
1991년 다시 브라질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1994년 FIFA 월드컵에 나섰다. 실리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남미 예선을 무난히 통과했다.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러시아(2-0 승), 카메룬(3-0 승)을 연파하고 스웨덴과 1-1로 비겨 조 1위(2승 1무)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토너먼트 단계부터는 지나치게 수비적인 전술 운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6강전에서는 당시 축구 변방으로 여겨지던 미국을 상대로 고전 끝에 베베투의 결승골로 1-0으로 힘겹게 승리했다. 8강에서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를 만나 난타전 끝에 3-2로 승리했고, 준결승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만났던 스웨덴을 호마리우의 결승골로 1-0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많은 팬들이 브라질 특유의 공격 축구를 기대했지만, 파헤이라의 브라질은 이탈리아와 지루한 공방 끝에 연장전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 로베르토 바조가 실축하면서 브라질은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승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파헤이라는 브라질 축구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브라질 고유의 '삼바 축구' 대신 재미없는 수비 전술, 이른바 '행군 축구'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결국 그는 월드컵 우승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대회 종료 후 즉시 해임되었다.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후임으로 세 번째 브라질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했다. 부임 초기 참가한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조별 예선 탈락했으나, 이후 공격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팀을 재정비하여 2004년 코파 아메리카와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2006년 FIFA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브라질은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1-0 승), 거스 히딩크 감독의 호주(2-0 승), 지쿠 감독의 일본(4-1 승)을 차례로 꺾고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도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3-0으로 완파하며 순항했다.
그러나 8강에서 만난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조직력 앞에 브라질 선수들의 개인기는 힘을 쓰지 못했고, 결국 티에리 앙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배했다. 지다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더 큰 점수 차로 패할 수도 있었던 경기 내용에, 지나치게 개인기에 의존한 전술 운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월드컵 종료 후 파헤이라는 브라질 축구 협회로부터 다시 한번 해임 통보를 받았다.
3. 5. 남아프리카 공화국 (2006-2008, 2009-2010)
2006년 7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8년 2월, 암 투병 중인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조엘 산타나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2009년 10월,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조엘 산타나의 후임으로 다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여, 개최국으로서 2010년 FIFA 월드컵을 지휘했다.
월드컵 본선 A조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첫 경기인 멕시코와의 개막전에서 시피웨 차발랄라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라파엘 마르케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어진 우루과이와의 2차전에서는 디에고 포를란에게 페널티킥을 포함해 2골, 알바로 페레이라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0-3으로 크게 패배하여 16강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마지막 프랑스와의 3차전에서는 멤버를 일신하여 봉가니 쿠말로와 카틀레고 음펠라의 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멕시코에 골득실에서 뒤져 조 3위로 탈락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개최국이 되었다.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A조 경기 결과'''
날짜 | 상대팀 | 결과 | 남아공 득점자 | 경기장 | 관중 |
---|---|---|---|---|---|
2010년 6월 11일 | 멕시코 | 1–1 (무) | 차발랄라 (55') | 사커 시티, 요하네스버그 | 84,490 |
2010년 6월 16일 | 우루과이 | 0–3 (패) | - | 로프터스 버스펠드 경기장, 프리토리아 | 42,658 |
2010년 6월 22일 | 프랑스 | 2–1 (승) | 쿠말로 (20), 음펠라 (37) | 프리 스테이트 스타디움, 블룸폰테인 | 39,415 |
월드컵 종료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 감독 시절인 2007년에는 COSAFA컵 우승을 이끌었다.
4. 클럽팀 감독 경력
파헤이라는 1967년 상크리스토방 FR에서 클럽팀 감독 경력을 시작했으며, 1968년에는 가나의 아산테 코토코 SC를 잠시 맡았다. 이후 1975년 자신이 팬이라고 밝힌 브라질 클럽 플루미넨세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그는 여러 차례 플루미넨세의 지휘봉을 잡았는데(1975-1976, 1984, 1999-2000, 2009), 특히 1984년에는 팀을 브라질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었고, 1999년에는 세리에 C 우승을 달성했다. 파헤이라는 1999년의 3부 리그 우승에 대해, 당시 거의 파산 직전에 놓여 소멸 위기에 처했던 클럽을 구해낸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보다 더 중요한 트로피였다고 회고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는 CA 브라간치노를 지도했으며, 1994년 월드컵 이후 스페인의 발렌시아 CF (1994-1995) 감독직을 맡았다. 1995년에는 터키의 페네르바흐체로 옮겨 1995-96 시즌 쉬페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브라질로 돌아와 상파울루 FC (1996-1997)를 거쳐, 1997년에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의 메트로스타스 (현 뉴욕 레드불스)를 지도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00-2001),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01)를 잠시 맡았고, 2002년에는 코린치안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코파 두 브라질과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같은 해 브라질 리그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주요 클럽팀 우승 경력'''
클럽 | 대회 | 시즌 |
---|---|---|
플루미넨세 FC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 1984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C | 1999 | |
페네르바흐체 SK | 쉬페르리그 | 1995–96 |
SC 코린치안스 | 코파 두 브라질 | 2002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 2002 |
5. 감독 스타일 및 평가
파헤이라는 실리적인 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수비 조직력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스타일은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 명확히 드러났다. 예선은 무난히 통과했지만, 본선 토너먼트 단계부터는 수비적인 전술로 일관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미국과의 16강전(1-0 승), 딕 아드보카트가 이끌던 네덜란드와의 8강전(3-2 승), 스웨덴과의 준결승전(1-0 승) 등에서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브라질 특유의 공격적인 '삼바 축구'를 버리고 재미없는 수비 축구를 펼쳤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현지 팬들과 언론은 파헤이라가 '삼바가 아닌 행군'을 선택하여 브라질 축구의 매력을 떨어뜨렸다고 평가했으며, 결국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회 종료 후 즉시 해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헤이라는 여러 국가대표팀을 FIFA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경험 많은 감독이다. 쿠웨이트(1982), 아랍에미리트(1990), 브라질(1994, 2006), 사우디아라비아(1998),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까지 총 5개의 다른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았는데, 이는 보라 밀루티노비치와 함께 유이한 기록이다. 클럽 감독으로서도 터키 리그(페네르바흐체) 우승, 코파 두 브라질 및 토르네이오 리우-상파울루(코린치안스)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98 FIFA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조별리그 2경기 만에 경질되었다. 2006 FIFA 월드컵에서는 다시 브라질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으나, 8강에서 프랑스에 0-1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이때 역시 보유한 선수들의 기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낡은 전술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회 후 사임했다.[1] 2010 FIFA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이끌었으나, 개최국 역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후에는 상대 감독 레몽 도메네크가 악수를 거부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4] 파헤이라는 2010년 월드컵 이후 감독직 은퇴를 선언했다.[5]
6. 수상 경력
(내용 없음)
6. 1.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 재임 기간 |
---|---|
가나 | 1968–1975 |
브라질 (올림픽팀) | 1972 |
쿠웨이트 | 1978–1982 |
브라질 | 1983–1984 |
아랍에미리트 | 1984–1988 |
사우디아라비아 | 1988–1990 |
아랍에미리트 | 1990 |
브라질 | 1991–1994 |
사우디아라비아 | 1998 |
브라질 | 2003–2006 |
남아프리카 공화국 | 2006–2008 |
남아프리카 공화국 | 2009–2010 |
국가대표팀 | 대회 | 우승 연도 |
---|---|---|
쿠웨이트 | AFC 아시안컵 | 1980 |
쿠웨이트 | 아라비안 걸프컵 | 1982 |
사우디아라비아 | AFC 아시안컵 | 1988 |
브라질 | FIFA 월드컵 | 1994 |
브라질 | 코파 아메리카 | 2004 |
브라질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5 |
남아프리카 공화국 | COSAFA컵 | 2007 |
6. 2. 클럽팀
'''플루미넨시 FC'''-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1984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C: 1999
'''페네르바흐체 SK'''
- 쉬페르리그: 1995-96
'''SC 코린치앙스 파울리스타'''
- 코파 두 브라질: 2002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2002
6. 3. 개인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1994
- IFFHS 올해의 국가대표팀 감독: 2005[6][7]
- 1994년 FIFA 월드컵 우승
- 2004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7. 기타
파헤이라는 플루미넨세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플루미넨세 감독으로 1984년 1부 리그 브라질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99년 3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9년 3부 리그 우승에 대해 파헤이라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트로피였다고 회고했는데, 당시 클럽이 거의 파산 직전에 놓여 소멸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199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킨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한다.
파헤이라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 6번이나 팀을 이끌고 참가하여 최다 참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5개의 국가대표팀(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브라질, 사우디 아라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유이한 감독이다. 이는 보라 밀루티노비치와 같은 기록이다. 그가 월드컵 본선에서 지휘한 대회는 다음과 같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조별 예선 두 경기 만에 경질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는 해당 대회에서 중도 경질된 세 명의 감독 중 한 명이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는 개최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비록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프랑스를 2-1로 꺾는 성과를 거두었다. 경기 후 프랑스 감독 레이몽 도메네크가 악수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4] 파헤이라는 이 대회를 끝으로 감독직 은퇴를 선언했다.[5]
파헤이라는 프로 선수 경력이 없으며, 모국 체육대학을 졸업한 후 1975년 플루미넨세에서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조
[1]
웹사이트
"Carlos Alberto Parreira new coach South Africa for Fifa 2010"
http://www.capetownm[...]
2006-07-29
[2]
웹사이트
Parreira quits as SA coach
http://news.bbc.co.u[...]
BBC Sport
2008-04-21
[3]
웹사이트
South Africa reappoint Parreira
http://news.bbc.co.u[...]
BBC Sport
2009-10-23
[4]
뉴스
World Cup 2010: Domenech snubs Parreira handshake
http://news.bbc.co.u[...]
BBC Sport
2012-12-12
[5]
웹사이트
Parreiras Nachfolger: Mosimane ist Favorit
http://www.kicker.de[...]
2010-06-25
[6]
웹사이트
FORMER RESULTS
http://www.iffhs.de/[...]
IFFHS.de
2015-11-10
[7]
웹사이트
FORMER RESULTS
http://www.iffhs.de/[...]
IFFHS.de
2015-11-10
[8]
서적
월드컵 이야기 - 인류 최대의 드라마
문학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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