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알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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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리알라 문제는 1939년 겨울 전쟁에서 핀란드가 소련에 영토를 할양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핀란드 카리알라 지역 출신들이 대거 대피하면서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정치인들이 영토 반환을 시도했으나 대중적 논의는 미미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반환 문제가 다시 논의되었지만, 러시아와 핀란드는 현재 영토 분쟁이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핀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환에 대한 여론이 엇갈리고 있으며, 경제적 부담과 러시아계 주민 문제 등이 쟁점으로 남아있다. 관련 단체로는 카렐리얀 리이토, ProKarelia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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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알라 문제 | |
---|---|
개요 | |
명칭 | 카리알라 문제 |
다른 명칭 | 카리알라 반환 문제 카리알라 회복 문제 카리알라 반환 논쟁 |
주요 내용 | 핀란드와 러시아 간의 카리알라 지역의 귀속 문제에 대한 논쟁 |
역사적 배경 | |
기원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모스크바 평화 조약에 따라 핀란드가 소련에 카리알라 지역을 할양하면서 시작됨. |
주요 분쟁 지역 | 카리알라 지협 라도가 카리알라 페차모 살라 지역의 일부 핀란드 만의 섬들 (고글란드, 라반사리, 튀타르사리, 세이스카리) |
관련국 입장 | |
핀란드 | 공식적으로 영토 반환 요구는 없음. 그러나 카리알라 지역 출신 핀란드인들의 고향에 대한 감정과 역사적 정의에 대한 요구가 존재함. |
러시아 | 영토 문제는 해결되었으며 재검토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 |
논쟁의 주요 쟁점 | |
법적 측면 | 국제법상 영토 할양의 정당성, 조약의 유효성 등에 대한 해석 차이 |
윤리적 측면 | 카리알라 지역 주민들의 이주와 재산권 문제, 역사적 정의 실현의 필요성 |
정치적 측면 |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 안보 문제, 국내 정치적 고려 사항 |
현재 상황 | |
핀란드 정부 | 공식적인 영토 반환 요구는 하지 않지만, 카리알라 지역과의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지원하고 있음. |
러시아 정부 | 카리알라 지역 개발 및 투자에 주력하며, 핀란드와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음. |
관련 단체 | |
주요 단체 | 카리알라 연맹 (Karjalan Liitto): 카리알라 지역 출신 핀란드인들의 권익 보호 단체 |
참고 자료 | |
관련 문서 | 모스크바 평화 조약 계속 전쟁 |
2. 역사적 배경
1940년 겨울 전쟁 이후 모스크바 평화 조약에 따라 핀란드는 소련에 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이로 인해 카리알라 지역 주민 대부분이 핀란드로 대피하는 카리알라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은 계속 전쟁 기간에 일시 귀환했다가 1944년에 다시 대피해야 했다. 소련은 10일 이내에 할양 지역을 완전히 비우도록 요구했다.[1]
대피민들은 제한적인 보상을 받았다. 농부들은 이전 소유 토지에 비례해 토지를 받았으나, 대개 원래 농지의 3분의 1 정도였다. 동산에 대한 보상은 더욱 적었다. 모든 대피 가구는 소규모 농지, 단독 주택 부지, 또는 아파트를 받을 권리가 주어졌다.[1] 토지 지원에는 지방 자치 단체와 사유지 소유자로부터 몰수한 토지가 사용되었고, 재정 보상은 수년에 걸쳐 10~30%의 재산세로 충당되었다.[1][2]
thumb 서핀란드로 이동하는 무올라 출신 대피자들.]]
대피민 대다수가 핀란드 카리알라 출신이었기에 이 문제는 "카리알라 문제"로 불리게 되었다. 겨울 전쟁 이후, 카리알라 지역 자치 단체와 교구는 핀란드 카리알라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카리알라 연합을 결성했다.
2. 1.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고, 핀란드는 카렐리야, 핀란드령 라플란드 일부, 핀란드 만의 섬들 (코틀린섬, 수리사르섬, 헬렌지섬 등)을 소련에 빼앗겼다.[1] 1년 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가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계속 전쟁이 발발했다. 핀란드는 무르만스크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카렐리야를 일시적으로 되찾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91년 소련 붕괴 전까지 소련의 영토로 남았다.
겨울 전쟁 이후 모스크바 평화 조약에 따라 핀란드는 소련에 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대부분의 핀란드 시민들은 할양된 지역에서 대피했다.[1] 이들 중 상당수는 계속 전쟁 기간 동안 돌아왔다가 1944년에 다시 대피해야 했다. 소련은 10일 안에 할양된 지역을 완전히 비울 것을 요구했다.[1]
피난민들은 손실에 대해 부분적인 보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농부들은 이전 소유 토지에 비례하여 토지를 받았는데, 보통 원래 농지의 약 3분의 1 수준이었다.[1] 동산에 대한 보상은 훨씬 적었다. 그러나 모든 피난민 가족은 작은 농지, 단독 주택 부지, 또는 아파트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1] 이러한 토지 지원에 사용된 토지는 지방 자치 단체와 사유 재산 소유주로부터 국가가 몰수했다. 금전적 보상은 여러 해에 걸쳐 부과된 10~30%의 일반 재산세로 충당되었다.[1][2] 피난민 대다수가 할양된 카리알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카리알라 문제"로 불리게 되었다. 겨울 전쟁 이후, 카리알리아 지방 자치 단체와 교구는 핀란드 카리알라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카리알라 연합을 결성했다.
2. 2. 냉전 시기
냉전 시기, 핀란드 정치인 요한네스 비롤라이넨은 카리알라 반환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도 소련이 1956년에 포르칼라 반도를 핀란드에 반환했을 때 이 영토를 되찾으려 했다.[3] 그러나 케코넨이 이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상당한 대중적 논란은 없었다.[4] 케코넨이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려 한 것은 1972년이었지만 그는 성공하지 못했고, 1970년대에 대중적 논의는 사라졌다.[5]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은 강대국으로써의 세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핀란드를 노리게 되었다. 소련은 1945년 승전국으로 핀란드의 포르칼라를 빼앗았다. 이 곳은 핀란드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포르칼라는 1956년 흐루시초프의 친선정책으로 핀란드령으로 되돌아왔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로도 그 외 지도의 지역들은 러시아의 영토로 남았다.
2. 3. 소련 붕괴 이후
소련 붕괴 이후, 핀란드에서 카리알라 반환 문제가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핀란드 신문 ''헬싱긴 사노맛'' 기사에 따르면,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할양된 카리알리아를 핀란드에 판매하는 것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6] 그러나 당시 러시아 부총리와 많은 핀란드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한 제안은 없었고, 단지 아이디어에 대한 비공식적인 탐색만 있었다고 말했다.[7][8][9][10] 옐친의 고문 안드레이 표도로프는 ''헬싱긴 사노맛''에 1991~1992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카리알리아를 핀란드에 반환하는 가격을 계산하는 임무를 받은 그룹의 일원이었다고 말했다. 이 가격은 150억달러로 책정되었다. 표도로프에 따르면 마우노 코이비스토 핀란드 대통령과 파아보 뷔뤼넨 핀란드 외무부 장관은 이러한 비공식적 논의를 알고 있었다.[11]러시아와 핀란드는 양국 간에 열린 영토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 핀란드의 공식 입장은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국경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현재 러시아가 반환 의사를 보이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으므로 공개적인 회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1994년 보리스 옐친은 "핀란드 카렐리아의 점령"이 스탈린의 전체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정치의 한 예라고 언급했다.[14] 이후 1997년에는 이 문제가 종결되었다고 밝혔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러한 논의가 핀란드-러시아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2001년에는 "국경 변경은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가능한 해결책은 "통합과 협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15]
1998년 마르티 아흐티사리 핀란드 대통령은 "핀란드의 공식 입장은 러시아에 대한 영토 요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반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면 핀란드는 이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16] 에르키 투오미오야 전 외무 장관과 마티 반하넨 전 총리 등 정부 요직에 있던 다른 여러 정치인들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표명했다.[17][18]
2005년 1월 18일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 논평하면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은 러시아가 양도된 지역을 반환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답변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19]
3. 21세기 카렐리야 문제
카리알란 리토는 카리알라 피난민들의 이익 단체로, 카렐리야가 언젠가는 다시 핀란드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1] ProKarelia와 같은 일부 소규모 단체는 카렐리야의 평화로운 반환을 위해 계속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2] 그러나 이 목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주요 정당은 없으며, 핀란드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와의 평화 조약을 언급하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유럽 의회 의원 아리 바타넨과 2006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티모 소이니, 아르토 라흐티 등은 카렐리야 반환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12] 다른 후보들은 핀란드가 평화 조약에 서명했으며 현재 러시아가 개발한 영토의 반환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전 토론에서 티모 소이니는 당선될 경우 이 문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13]
3. 1. 여론 동향
핀란드 국민들 사이에서 카렐리야 반환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카렐리야 반환 지지율은 26%에서 38%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반대 여론은 51%에서 62%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20][21] 특히, 카렐리야 출신 피난민들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환 지지 여론이 높은 편이다.| 조사 기관 | 조사 시기 | 찬성 (%) | 반대 (%) |
| ------------------------------------------- | -------- | -------- | -------- |
| 카리알라, MC-Info Oy | 2005년 10월 13일 | 36 | 51 |
| 헬싱긴 사노맛, 수오멘 갤럽 | 2005년 8월 | 30 | 62 |
| 탈루스투투키무스, 카르잘란 리이토 | 2005년 5월 | 26 | 58 |
탈루스투키무스의 여론조사는 ProKarelia로부터 "러시아와의 긴장된 관계나 전쟁까지도 의미할 수 있음에도 카렐리아의 반환을 지지하십니까?"와 같은 유도 질문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22]
카렐리아에서 태어나 피난한 많은 사람들은 카렐리아가 핀란드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년층(65세 이상)과 젊은층(15-25세)이 부모 세대(25–65세)보다 이 아이디어를 더 강하게 지지하는데, 부모 세대는 냉전 시대에 성장했다.[20] 전 대통령 마우노 코이비스토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반대했다.[24]
3. 2. 쟁점
카리알라 반환 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은 주요 반대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 러시아 측 지역의 낮은 생활 수준을 핀란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핀란드의 1인당 GDP(PPP)는 러시아의 약 두 배이다. 헬싱긴 사노맛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반환에 반대하는 핀란드인 중 42%가 경제적 부담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25]반환 지지 단체인 ProKarelia는 카렐리야가 핀란드 통치하에 러시아와의 무역 및 산업 중심지로 성장하여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roKarelia와 아르토 라티는 반환 비용을 약 300억유로로 추산했다.[25][26][27]
카렐리야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문제 또한 중요한 쟁점이다. 이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2004년 기준, 카렐리야 지역에는 약 37만 명의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었다.[28] 헬싱긴 사노맛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반환 반대론자들의 14%는 러시아어 사용 소수 민족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을 우려했다.
핀란드가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자국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과 핀란드 사회 경험이 없는 러시아어 사용자의 유입 문제가 제기된다. ProKarelia는 카렐리야 러시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러시아로 이주할 것으로 추정하며,[29] 핀란드가 이주 비용을 지불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다.[25] 그러나 카렐리야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 대부분은 그 지역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3. 3. 관련 단체
http://www.karjalanliitto.fi/ 카리알란 리이토는 카렐리야 피난민들의 이익 단체로, 카렐리야가 언젠가 다시 핀란드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한다.[1] http://www.prokarelia.net/ 프로카렐리아는 카렐리야의 평화로운 반환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2] 그 외 단체로는 https://web.archive.org/web/20051001180352/http://aluepalautus.net/ 알루에팔라우투스[3], http://www.tartonrauha.net/ 타르톤 라우하[4], http://kareliaklubi.com/ 카렐리아클루비[5] 등이 있다.참조
[1]
웹사이트
Karjalan suomalaistilojen korvaukset Sodan jälkeeen.
http://aluepalautus.[...]
2008-04-0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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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kesta voimaa – maanhankintalaki
http://www.uta.f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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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kkonen nosti Karjala-kysymyksen esiin 1968
http://www.verkkouut[...]
200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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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Kekkonen kehottaa karjalaisia vaitiol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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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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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maa Canal links two Karel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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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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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Report: Unofficial offers by Russia in 1991 to return ceded Karelia to Finland
http://www.hs.fi/eng[...]
Helsingin Sanomat
200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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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Koiviston Karjala-selvitys outo asia ulkopolitiikan sisäpiirille STT 15.08.2007
https://archive.t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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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sko Aho: Karjalan palautus ei kuulosta uskottavalta. YLE Uutiset 16.08.2007
http://www.yle.fi/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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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Venäläispoliitikko uhkaa haastaa Kainuun Sanomat oikeuteen YLE Uutiset 21.08.2007
http://www.yle.fi/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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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Koivisto: Venäjä ei tarjonnut Karjalaa Suomelle Helsingin Sanomat 23.8.2007
http://www.hs.fi/kot[...]
[11]
뉴스
Fyodorov: Koivisto ja Väyrynen tiesivät Karjala-tunnustelu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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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
200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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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Diplomatic Diary. Presidential candidates meet the internationa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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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Soini keskustelisi Karjalan palauttamisesta Venäjän kanssa - MTV3.fi - Uutiset - Kotim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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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14]
웹사이트
Valtiosihteeri Jukka Valtasaaren puhe Karjalan Liitto ry:n seminaarissa 19.5.1998 Helsingiss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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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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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der Regions and the Politics of EU-Russi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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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Prozor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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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jalan Liitto and Taloustutkimus, p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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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Karelia's Reform
http://www.prokar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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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jalan palauttamisen lasketaan kannattavan
http://www.verkkou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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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repis20[...]
200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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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Karelia
http://prokareli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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