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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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는 1970년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총칭한다. 은제도금여래입상, 수정사리병, 청동사리외합 등을 포함한 9종 12점의 유물은 10~11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건립 시 함께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 금속공예, 불교 사상, 대외 교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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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신라 시대 창건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로, 팔각 구층 석탑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 전나무 숲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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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
원어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舍利莊嚴具 |
지정 종류 | 보물 |
지정 번호 | 1375 |
지정일 | 2003년 6월 26일 |
시대 | 고려 시대 |
수량 | 9종 12점 |
소유자 | 월정사 |
관리자 | 월정사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월정사 성보박물관 (동산리) |
2. 발견 경위
1970년 팔각구층석탑 해체 과정에서 은제도금여래입상, 수정사리병 등 총 9종 12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대체로 10~11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건립 당시 함께 넣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유물들은 고려 초기 금속공예사, 불교사상, 교류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1970년 팔각구층석탑 해체 과정에서 은제도금여래입상, 수정사리병 등 총 9종 12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대체로 10~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건립 당시 함께 넣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려 초기 금속공예, 불교사상, 교류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3. 주요 유물
하위 섹션에서 각 유물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유물 종류와 간략한 설명을 표로 정리한다.유물 종류 간략 설명 -- 은제도금여래입상 나발, 육계 등 불교 용어를 사용하여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 청동사리외합 및 은제내합 사리를 담는 용기. 청동사리외합은 숙련된 솜씨가 엿보이며, 은제내합은 나무망치 흔적이 남아있음. 수정사리병 표주박 모양 병으로, 안성 장명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병과 같은 형태. 금동방형향갑 사천왕상, 보살상, 꽃무늬(화문)가 선각된 향갑. 동경 (4점) 쌍용문경, 광류소월 서수문경, 파문경, 무문경. 전신사리경 닥종이(저지)로 만든 두루마리 경전. 직물류 수라향갑낭, 명주보자기.
3. 1. 은제도금여래입상
은제도금여래입상은 대좌와 함께 등에는 별도로 조성된 광배를 지녔다. 신체에 비해 다소 커 보이는 머리는 나발(螺髮)이 굵고 육계(肉髻)의 구분이 분명하며,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둥글고 뺨에 살이 올라 풍만한 모습을 보여 원만상이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크고 긴데 비해 목은 짧아 삼도(三道)의 표현이 불분명하며 손모습(手印)은 왼손을 허리 부분으로 내리고 오른손은 어깨로 들어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짓고 있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대의 안쪽에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가 보이고 약간 벌린 채 가지런히 앞으로 내민 발은 발가락을 복부 아래로 펼쳐지는 옷주름선과 같이 적당히 처리하여 형식적인 느낌이 든다.
광배는 별도로 만들어 등의 광배꽂이에 끼워 부착한 전신광배(全身光背)로, 내부에는 연주문(連珠紋)을 사용하여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나타내었으며 테두리는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대좌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으로만 이루어진 연화좌(蓮華座)로, 위에는 연자방이 솟아 있으며 꽃잎은 세선으로 테두리지어 세심함이 돋보인다.
3. 2. 청동사리외합 및 은제내합
청동사리외합(靑銅舍利外盒)은 금속을 두드려 만든 합으로, 납작한 형태에 뚜껑과 아래 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맞물리는 경사면을 가지고 있어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황룡사 구층목탑지(皇龍寺 九層木塔址)에서 출토된 금ㆍ은제사리합이나 은제 당초문원합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이다. 중국 항저우(杭州) 뇌봉탑지궁(雷峰塔地宮) 출토 도금은합과 유사하지만, 위아래 면이 다소 평평한 편이다. 하북성(河北 省) 고안(固安) 보엄사탑(寶嚴寺塔, 金, 1127) 지궁(地宮) 출토 은제봉문합보다는 경사면이 곡선적이어서 10세기 말에서 11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은제내합(銀製內盒)은 두드려서 타원형에 가깝게 높이 부풀린 합으로, 표면에 나무망치 흔적이 은은하게 남아 있다. 맞물리는 부분은 따로 판을 대지 않고 본체를 늘여서 얕은 턱을 만들었다. 뚜껑과 아랫부분은 안팎에서 다듬고 벼름질하여 선명하고 평평한 원형 면을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유물로는 10세기 중엽에 조성된 중국 절강성(浙江省) 진화(金華) 만불탑(萬佛塔) 탑기(塔基)에서 금동아육왕탑과 함께 출토된 동합(銅盒)이 있다. 월정사의 것은 은(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있지만, 외형이 훨씬 부풀려져 있어 더욱 발전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3. 3. 수정사리병
수정사리병은 표주박(瓢形ㆍ葫蘆形) 모양으로, 가운데를 수직으로 뚫어 사리를 모신 다음 향나무(香木)로 막았다. 안성 장명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구(997년) 중 비단주머니에 넣은 표형유리사리병과 같은 형태이다. 이러한 표형수정사리병은 흔치 않은 것으로, 중국에서는 오대(五代) 이후 11세기에 유행하였다. 특히 『전신사리경(全身舍利經)』과 관련있는 몇몇 탑에서 출토되어 앞으로 의미 분석이 필요하다. 이 사리병 및 전신사리경과 광류소월(光流素月) 서수문경(瑞獸文鏡), 무문경(無文鏡)이 함께 출토된 월정사 사리장엄구는 오월(吳越)의 전숙(錢叔)이 조성한 항주(杭州) 뇌봉사(雷峰寺) 팔각오층전탑 출토 유물들과 거의 유사한 구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1]
3. 4. 금동방형향갑
금동방형향갑(金銅方形香匣)은 촘촘하게 어자문(魚子文)이 새겨진 향갑(香匣)이다. 향갑 윗면과 아랫면에는 각각 2구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양 측면과 상자 위·아래 측면에는 두 면이 합쳐져야 하나가 되는 보살상과 꽃무늬(花文)가 선각되어 있다. 보살상은 가늘고 긴 신체에 영락과 천의(天衣)를 걸치고 손을 가슴께로 올린 채 삼굴(三掘) 자세로 연화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상은 9~10세기 조성된 선산 도리사 금동육각당형사리기(金銅六角堂形舍利器) 사천왕상과 같은 도상이지만, 그보다는 간략화되었다.[1]
향갑 윗면과 아랫면의 모서리는 약간 사면(斜面) 처리한 후 그 위에 연주문(連珠文)처럼 바탕보다 두드러지게 어자문을 새겼다. 이처럼 모서리에 조금 큰 어자문을 새겨 바탕보다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방식은 내몽고 야율우(耶律羽) 묘에서 출토된 오변화구금배(五瓣花口金杯, 941년)를 비롯한 10세기 유물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1]
3. 5. 동경
동경(銅鏡)은 4점으로, 직경 11.4~19.4cm, 외연(테두리) 두께 0.3~1.3cm이다.3. 6. 전신사리경
全身舍利經중국어은 닥종이(楮紙중국어)로 만들어진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으로, 폭 0.8cm 정도의 삼베 끈이 둘러져 있다. 실은 굵기의 차이가 많아 밀도가 균일하지 않다. 평균 밀도는 19.4×8.7/cm이며, 평균 굵기는 0.314×0.443/mm 정도이다. 경사에 비해 위사 실은 비교적 굵기가 비슷하며 평직으로 직조되었다.
3. 7. 직물류
수라향갑낭(繡羅香匣囊)은 앞뒤 겉이 사경문경(四經文經)으로 직조된 나직물(羅織物)이다. 실 굵기는 0.019×0.253/mm이고 밀도는 67.56×19.53/cm이다. 10세기 이후 나직물로는 1302년 불복장직물과 수덕사 직물이 고려 능직물(綾織物)로 알려져 있다. 이 직물은 우리나라 능직물 변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수제품으로는 가장 오래된 귀중한 유물이다.[1]
명주보자기(잔편 일괄)는 손상이 심해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자색 명주 보자기는 평직 견직물로서 꼬임이 없는 실로 짜여졌으며, 방위로 보아 원래는 홍색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변색되어 현재는 자색을 띠고 있다. 오방색 보자기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진 상태로, 현미경 조사 결과 조직과 색상이 다른 5종의 직물이 섞여 있는데 대체로 고운 평직 견직물로 보인다.[1]
4. 역사적 의의
1970년 팔각구층석탑 해체 과정에서 은제도 금여래입상, 수정사리병 등 총 9종 12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1] 이 유물들은 대체로 10~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건립 시 함께 내장된 것으로 보인다.[1] 따라서 이 유물들은 고려 초기 금속공예사, 불교 사상 및 교류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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