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코티나는 1962년부터 1982년까지 생산된 영국의 중형차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중 하나였다. 1968년 현대자동차가 기술 제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조립 생산을 시작하여, 1971년까지 2세대 모델을 판매했다. 코티나는 총 5세대에 걸쳐 다양한 변형 모델과 해외 생산을 거쳤으며, 모터스포츠에서도 활약했다. 1982년 단종 이후에도 영국에서 높은 인기를 유지하며,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1962년 도입된 자동차 - 페라리 250 GTO 페라리 250 GTO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페라리에서 제작한 그룹 3 GT 레이싱 스포츠카로, 셸비 코브라, 재규어 E-타입 등과 경쟁하기 위해 페라리 250 GT SWB의 섀시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2953cc V12 엔진을 탑재하여 약 300마력의 출력을 내는 수작업 차체와 뛰어난 성능을 가진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중 하나로, 총 36대가 생산되어 시리즈 I과 II로 나뉜다.
1962년 도입된 자동차 - 로터스 엘란 로터스 엘란은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된 경량 로드스터로, 기술적으로 진보된 1세대 모델과 전륜구동 방식의 2세대 모델이 있었으며, 뛰어난 핸들링으로 호평을 받았다.
포드의 차종 - 포드 머스탱 포드 머스탱은 포드 모터 컴퍼니가 생산하는 스포츠카로, 1964년 출시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디자인과 성능 변화를 거듭하며 모터스포츠와 대중문화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포드의 차종 - 포드 모델 T 포드 모델 T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1908년부터 1927년까지 생산한 자동차로, 신뢰성, 유지보수 용이성, 저렴한 가격, 대량 생산을 통해 미국 중산층에게 보급되었으나, 경쟁 심화와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에 따라 생산이 중단되며 자동차 산업의 혁신과 변화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픽업 - 픽업 트럭 픽업 트럭은 자동차 섀시에 적재함을 추가한 형태에서 유래하여 1913년 스터드베이커가 처음 명칭을 사용한 트럭으로, 전용 플랫폼을 통해 발전하고 디자인과 편의 기능이 개선되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픽업 - 현대 포니 현대 포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로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되었으며, 독창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모델 출시로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현대자동차 디자인 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포드 코티나 - [자동차]에 관한 문서
2. 1세대 (MK1, 1962-1966)
1962년9월에 컨설 클래식의 후속 차종으로 선보였다. 출시 당시에는 컨설 코티나라는 차명으로 판매되었으며, 저렴한 가격과 넓은 적재 공간(스테이션 왜건) 등으로 인해 출시 3개월에 6만 대를 판매한 히트작이 되었다.[7]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 1959년에 출시한 미니의 호평을 목격한 영국 포드는 복잡한 설계로 인해 생산 비용과 판매 가격이 크기에 비해 비싼 미니에 대항하기 위해 더 크고 상식적인 설계를 가진 소형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초대 "포드 컨설 코티나"였다.[65] 크기 면에서는 모리스 옥스포드나 복스홀 빅터에 필적하며, 이들의 수요층을 흡수하려 했다.
포드 코티나(전기형) 정측면
초기 스탠다드 모델은 차체 색상과 동일한 단순한 전면 그릴을 특징으로 하여 '아이언바'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버전은 장비가 더 잘 갖춰진 디럭스와 거의 같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판매가 부진했고 오늘날에는 매우 희귀하다. 옵션에는 히터와 칼럼 기어 변속기가 있는 벤치 시트가 포함되었다.
1963년에는 로터스제 1,558cc 엔진을 얹은 로터스 코티나도 등장해 로터스 공장에서 1966년까지 3년 동안 2,800여 대가 생산되어 모터 스포츠에서도 활약했다.[65]
1964년 9월에 페이스 리프트를 거쳐 코티나로 차명이 변경되었다. 프론트 그릴의 디자인과 대시보드가 변경되었으며, "에어 플로우 벤틸레이션"이 채용되어 실내 공기 배출용 그릴이 C필러에 추가되었다.[10] 이 방식은 효과적이었으며, 이후 대부분의 승용차 설계에 채용되었다.
Mark 1에는 두 가지 주요 변형이 생산되었다. Mark 1a는 타원형 전면 측면 조명을 가지고 있었고, Mark 1b는 더 사각형의 측면 조명 및 지시등 장치를 통합한 재설계된 전면 그릴을 가지고 있었다.
2. 1. 디자인 및 기술적 특징
2. 2. 주요 모델
1962년 9월에 포드 클래식의 후속 차종으로 선보였다. 출시 당시에는 컨설 코티나라는 차명으로 판매되었으며, 저렴한 가격과 넓은 적재 공간(스테이션 왜건) 등으로 인해 출시 3개월에 6만 대를 판매한 히트작이 되었다. 1963년에는 로터스제 1,558cc 엔진을 얹은 로터스 코티나도 등장해 로터스 공장에서 1966년까지 3년 동안 2,800여 대가 생산되어 모터 스포츠에서도 활약했다. 1964년 9월에 페이스 리프트를 거쳐 코티나로 차명이 변경되었다.
3. 2세대 (MK2, 1966-1970)
1966년10월에 선보였다. 전폭이 60mm 넓어져 실내 공간이 확대되었다. 엔진을 포함한 메커니즘은 1세대와 거의 같았으나, 전륜에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표준화되었다. 1967년에 코티나는 영국의 판매대수 2위의 자리에 올랐다.[72]대한민국에서는 현대자동차가 1968년 창립하여 처음 생산한 차량으로서 당시 포드의 영국법인과 기술제휴 하여 CKD(Complete Knock Down)방식으로 공장개시 6개월 만에 조립 생산되었다. 코티나는 4,348평의 조립공장에 위치한 총 5개의 조립라인에서 각 80분의 조립 시간을 소요하였다. 코티나는 직렬 4기통의 포드 1.6L OHV(Over Head Valve)켄트엔진을 기본으로 채택하였다. 최고 출력 75마력에 최고 속도 160km/h를 발휘하였다. 변속기는 전진4단, 후진1단 수동으로 칼럼식 시프트 방식이며 연료탱크 최대용량은 45.5L에 달한다. 당시 경쟁자였던 신진자동차의 코로나에 비하여 배기량이 크며 시트가 넓으며 안전장치와 최대속도면 에서는 흠잡을 대가 없다고 판단되어 채택된 차량이기도 하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기술제휴 계약이전 생산할 차량을 채택하여야 했는대 당시 포드는 미국에서 생산하던 모델과 영국과 유럽에서 부품은 공유하나 실정에 맞도록 설계한 유럽형 모델이 있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던 차량들은 대부분 스포츠카나 대형 고급차였으나 유럽에서 생산하던 차량들은 내구성 좋고 실용적인 차량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코티나는 국내실정에 가장 적합한 차량으로 판단되어 현대자동차가 생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코티나의 차량외형은 Roy D. Haynes가 디자인하여 우아하고 견고한 느낌을 주며 차체가 넓고 창유리가 곡면으로 되어 6명이 탑승하여도 여유가 있었다 다만 영업용은 5명 자가용은 6명으로 규제하기로 하였다. 1968년 대뷔 첫해에 566대를 판매하였고 1969년에는 5,547대를 판매하였다. 당시 국내승용차 보유대수가 3만3,000대에 불과했기에 코티나는 곧 국내자동차 시장의 베스트셀러카중 하나로서 코로나와 경쟁하였다. 전륜에는 디스크브레이크가 표준화되었으며 후륜은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제동력을 항상 시켰다. 당시 신차가격은 110만원 정도였는데, 고장이 잦아 “코티나는 미는 차”, “고치나”, “코피나”, “골치나”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차량은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주 고객이던 택시회사 등에서 품질에 대한 항의가 빈번해짐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하여 정부에서 품질 조사단이 파견되었으며 최종결론에서는 코티나가 고른 아스팔트노면을 기준으로 설계된 차량이며 정비사들의 정비미숙과 더불어 1969년7월 몰아 닥친 대홍수로 보유하고 있던 모든 부품이 침수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나 현대자동차는 그 침수부품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퓨즈나 재너레이터와 같은 물에 약한 부품의 고장이 잦아들게 되었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시내를 운행하던 218대의 코티나 택시들 중 100대의 기사들이 부산사업소로 몰려와 차를 반납하겠다는 소동을 벌였다. 또한 1970년대 정부는 각종 수요억제정책을 내놓게됨에 따라 코티나의 판매는 급속하게 떨어저 1970년에는 1,853대로 판매율이 떨어졌다. 이로 인하여 현대자동차는 곤욕을 제대로 치르게 되고 코티나는 이로 인해 평판이 떨어저 1971년9월에 단종되었다. 단종 이전까지 국내에선 총 8,320대가 생산되었다. 2014년 현재 알려진 바로는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 1대를 소장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가 박물관 전시를 위해 영국에서 각각 부품차와 전시용차 1대를 수입해 소장 중에 있다.[73]
포드 코티나 마크 II 정측면
1969년식 포드 코티나 마크 II
현대 코티나
구분
1.6L 켄트 OHV
전장 (mm)
4,267
전폭 (mm)
1,648
전고 (mm)
1,389
축거 (mm)
2,489
윤거 (전, mm)
1,330
윤거 (후, mm)
1,295
승차 정원
5명
변속기
수동 4단 칼럼식
서스펜션 (전/후)
더블 위시본/4링크
구동 형식
후륜 구동
연료
가솔린
배기량 (cc)
1,591
최고 출력 (ps/rpm)
75/5,000
최대 토크 (kg*m/rpm)
12.25/2,500
최고 속도 (km/h)
160
연비 (km/L)
3. 1. 대한민국에서의 생산 및 판매 (현대 코티나)
현대자동차는 1968년 창립하여 처음 생산한 차량으로 포드 코티나를 선택했다.[72] 당시 포드의 영국법인과 기술제휴를 통해 CKD(Complete Knock Down) 방식으로 조립 생산되었다. 코티나는 직렬 4기통 포드 1.6L OHV 켄트 엔진을 장착, 최고 출력 75마력, 최고 속도 160km/h를 냈다. 변속기는 전진 4단, 후진 1단 수동 칼럼식 시프트 방식이었고, 연료탱크 용량은 45.5L였다.
코티나는 당시 경쟁 차종인 신진자동차의 코로나보다 배기량이 크고 시트가 넓으며 안전장치와 최고속도 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았다. 현대자동차는 포드와의 기술 제휴 이전 생산 차종을 선정할 때, 미국 생산 모델보다 영국 및 유럽형 모델이 한국 실정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코티나는 Roy D. Haynes가 디자인하여 우아하고 견고한 느낌을 주었으며, 차체가 넓고 곡면 창유리를 사용하여 6명이 탑승해도 여유가 있었다.
1968년 첫해 566대, 1969년 5,547대가 판매되어 국내 자동차 시장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72] 전륜에는 디스크 브레이크, 후륜에는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그러나 잦은 고장으로 인해 "코티나는 미는 차", "고치나", "코피나", "골치나"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택시 회사 등에서 품질에 대한 항의가 잦아 정부 조사단이 파견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코티나는 아스팔트 노면을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정비사들의 정비 미숙, 1969년 7월 대홍수로 인한 침수 부품 사용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72] 부산에서는 코티나 택시 기사 100여 명이 차를 반납하겠다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1970년대 정부의 수요 억제 정책으로 판매량이 급감, 1970년에는 1,853대로 떨어졌다. 결국 코티나는 1971년 9월 단종되었으며, 총 8,320대가 생산되었다. 2014년 현재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에 1대, 현대자동차가 영국에서 수입한 부품차와 전시용차 1대를 소장하고 있다.[73]
이후 현대 포니와 현대 스텔라는 코티나/타우누스를 직접 기반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공통 부품, 특히 포드 자동차와 호환 가능한 리어 서스펜션과 액슬을 사용했다.
3. 2. 디자인 및 기술적 특징
(mm)
4,267
전폭 (mm)
1,648
전고 (mm)
1,389
축거 (mm)
2,489
윤거 (전, mm)
1,330
윤거 (후, mm)
1,295
승차 정원
5명
변속기
수동 4단 칼럼식
서스펜션 (전/후)
더블 위시본/4링크
구동 형식
후륜 구동
연료
가솔린
배기량 (cc)
1,591
최고 출력 (ps/rpm)
75/5,000
최대 토크 (kg*m/rpm)
12.25/2,500
최고 속도 (km/h)
160
연비 (km/L)
3. 3. 주요 모델
4. 3세대 (MK3, 1970-1976)
wikitext
1970년10월에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뉴 코티나는 디자인은 당시 미국차에도 많이 사용된 코카콜라 보틀 라인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1년11월부터 현대자동차가 조립 생산하여 뉴 코티나라는 차명이 붙여졌다. 초기 국산화율은 41%였고, 새롭게 사용된 OHC(Over Head Cam) 엔진은 캠축을 실린더에 직접 연결하여 개폐하는 방식으로 연료 효율과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시켰다. 엔진 성능은 최고 마력 78마력, 최고 속도 160km/h를 발휘하였다. 변속기는 전단 동시치합식으로 전진 4단과 후진 1단 방식이었으며, 기존의 칼럼 방식에서 플로어 시프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조향 장치는 기존 로드&링키지 방식을 개선한 랙&피니언 방식을 채택하였다. 클러치는 유압식에서 기계식(건조 단판식)으로 변경되었다. 브레이크는 기존의 단일 계통이던 것을 2중 유압 장치로 개선하여 전 모델보다 안정성을 높였다. 2중 유압 장치란 마스터 실린더가 전후 2계통으로 나누어 작동하여 파이프 하나가 파열되어도 나머지 다른 1계통이 작용하여 제동력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74]
포드 뉴 코티나(전기형) 정측면
현대자동차는 이전 모델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뉴 코티나 생산 이전에 국내에 3대의 샘플카를 1971년 5월에 들여와 이 중 한 대는 주행 테스트에 사용하였다. 제품 설계 담당자와 개발 설계 담당자를 영국에 직접 보내어 보완 작업 및 지역 특성을 사전에 합의하도록 하여 국내 실정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하였다. 시험 주행로는 울산에서 방어진까지 비포장 도로와 공장 매립지 등이었으며, 주행 거리는 6개월 만에 3만 2,000km에 달했다. 내구력 시험에서 크랙이 생기는 등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보강하였으며, 전국적으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운행하는 오너와 계약을 체결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차량을 개선시켜 나갔다.[74] 1974년에 페이스 리프트를 하여 기존의 사각형 헤드라이트를 둥근 쌍 헤드라이트로 변경하였으며, 범퍼 등의 안전 장치도 개선하였다.
1971년7월에는 고급형인 프레지던트 모델이 출시되었고, 1974년 페이스 리프트를 거쳤으며, 이후 마크 IV가 출시되면서 1976년 2월에 단종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알려진 바로는 4대 정도 존재하며, 그 중 도로에서 정식으로 허가된 차량은 단 1대로 1972년 출고되어 58만km를 달린 뉴 코티나 프레지던트 모델이다. 이 차량은 1999년부터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연합의 대표인 임기상 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5][76]
4. 1. 대한민국에서의 생산 및 판매 (뉴 코티나)
1970년10월에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뉴 코티나는 디자인은 당시 미국차에도 많이 사용된 코카콜라 보틀 라인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1년11월부터 현대자동차가 조립 생산하여 뉴 코티나라는 차명이 붙여졌다. 초기 국산화율은 41%였고, 새롭게 사용된 OHC(Over Head Cam) 엔진은 캠축을 실린더에 직접 연결하여 개폐하는 방식으로 연료 효율과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시켰다. 엔진 성능은 최고 마력 78마력, 최고 속도 160km/h를 발휘하였다. 변속기는 전단 동시치합식으로 전진 4단과 후진 1단 방식이었으며, 기존의 칼럼 방식에서 플로어 시프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조향 장치는 기존 로드&링키지 방식을 개선한 랙&피니언 방식을 채택하였다. 클러치는 유압식에서 기계식(건조 단판식)으로 변경되었다. 브레이크는 기존의 단일 계통이던 것을 2중 유압 장치로 개선하여 전 모델보다 안정성을 높였다. 2중 유압 장치란 마스터 실린더가 전후 2계통으로 나누어 작동하여 파이프 하나가 파열되어도 나머지 다른 1계통이 작용하여 제동력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74]
현대자동차는 이전 모델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뉴 코티나 생산 이전에 국내에 3대의 샘플카를 1971년 5월에 들여와 이 중 한 대는 주행 테스트에 사용하였다. 제품 설계 담당자와 개발 설계 담당자를 영국에 직접 보내어 보완 작업 및 지역 특성을 사전에 합의하도록 하여 국내 실정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하였다. 시험 주행로는 울산에서 방어진까지 비포장 도로와 공장 매립지 등이었으며, 주행 거리는 6개월 만에 3만 2,000km에 달했다. 내구력 시험에서 크랙이 생기는 등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보강하였으며, 전국적으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운행하는 오너와 계약을 체결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차량을 개선시켜 나갔다.[74] 1974년에 페이스 리프트를 하여 기존의 사각형 헤드라이트를 둥근 쌍 헤드라이트로 변경하였으며, 범퍼 등의 안전 장치도 개선하였다.
1971년7월에는 고급형인 프레지던트 모델이 출시되었고, 1974년 페이스 리프트를 거쳤으며, 이후 마크 IV가 출시되면서 1976년 2월에 단종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알려진 바로는 4대 정도 존재하며, 그 중 도로에서 정식으로 허가된 차량은 단 1대로 1972년 출고되어 58만km를 달린 뉴 코티나 프레지던트 모델이다. 이 차량은 1999년부터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연합의 대표인 임기상 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5][76]
4. 2. 디자인 및 기술적 특징
(mm)
4,267
전폭 (mm)
1,702
전고 (mm)
1,321
축거 (mm)
2,578
윤거 (전, mm)
1,422
윤거 (후, mm)
1,422
승차 정원
5명
변속기
수동 4단 (플로어 시프트)
서스펜션 (전/후)
더블 위시본/4링크
엔진 형식
TL16
구동 형식
후륜 구동
연료
가솔린
배기량 (cc)
1,593
최고 출력 (ps/rpm)
78/5,700
최대 토크 (kg*m/rpm)
11.4/3,600
최고 속도 (km/h)
160
연비 (km/L)
4. 3. 주요 모델
5. 4/5세대 (MK4/5, 1976-1982)
1976년10월에 선보인 포드 코티나 마크 Ⅳ는 대한민국에서 1977년3월부터 1980년12월까지 총 14,287대가 생산되었다. 4도어 세단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찰차, 5도어 스테이션 왜건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구급차가 있었다. 당시 신사풍의 점잖은 스타일, 안락한 승차감, 안전성 등으로 중산층의 자가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차는 1978년과 1979년에 홍콩의 쉘 이코노미 런 상을 2회 수상하여 뛰어난 경제성을 인정받았다. 엔진의 배기량과 최대 출력은 뉴 코티나와 같았고, 최대 토크는 12.0kgm(3,000rpm)으로 향상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금호상사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1대를 소장하고 있다.
포드 코티나 마크 Ⅳ
1979년9월에 선보인 마지막 코티나인 코티나 마크 Ⅴ는 더 커진 헤드라이트, 라디에이터 그릴, 방향지시등, C-필러, 루프 등이 변경되었다. 파워트레인을 개선하여 연비와 성능을 마크 Ⅳ보다 향상시켰고, 범퍼 개선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9월부터 1983년 4월까지 포드와 기술 제휴로 판매되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제 새턴 엔진이 달린 이코노미 트림을 출시하기도 했다. 코티나 마크 Ⅳ와 마찬가지로 경찰차로도 활용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금호상사가 2대,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이 이코노미 1대, 개인 소유자들이 3대를 소유하고 있다.
포드 코티나 마크 Ⅴ
현대 포드 코티나 마크 Ⅴ 정면
5. 1. 대한민국에서의 생산 및 판매 (코티나 마크 IV/V)
1976년 10월에 선보인 포드 코티나 마크 Ⅳ는 대한민국에서 1977년 3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총 14,287대가 생산되었다. 4도어 세단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찰차, 5도어 스테이션 왜건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구급차가 있었다. 당시 신사풍의 점잖은 스타일, 안락한 승차감, 안전성 등으로 중산층의 자가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차는 1978년과 1979년에 홍콩의 쉘 이코노미 런 상을 2회 수상하여 뛰어난 경제성을 인정받았다. 엔진의 배기량과 최대 출력은 뉴 코티나와 같았고, 최대 토크는 12.0kgm(3,000rpm)으로 향상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금호상사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1대를 소장하고 있다.
1979년 9월에 선보인 마지막 코티나인 코티나 마크 Ⅴ는 더 커진 헤드라이트, 라디에이터 그릴, 방향지시등, C-필러, 루프 등이 변경되었다. 파워트레인을 개선하여 연비와 성능을 마크 Ⅳ보다 향상시켰고, 범퍼 개선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 9월부터 1983년 4월까지 포드와 기술 제휴로 판매되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제 새턴 엔진이 달린 이코노미 트림을 출시하기도 했다. 코티나 마크 Ⅳ와 마찬가지로 경찰차로도 활용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금호상사가 2대,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이 이코노미 1대, 개인 소유자들이 3대를 소유하고 있다.
새롭게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1967년 울산 공장에서 Mk2 코티나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현대 포니와 현대 스텔라는 코티나/타우누스를 직접 기반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공통 부품, 특히 포드 자동차와 호환 가능한 리어 서스펜션과 액슬을 사용했다.
코티나는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몰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이 우측 운전대를 필요로 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현지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좌측 운전대 모델도 필리핀, 대한민국(현대자동차에서 생산, 현대 포드 코티나 항목 참조), 대만에서 생산되었다.
도로 및 교통 상황이 영국과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서는 일찍부터 V6 엔진 탑재 차량이나 픽업 트럭 등 독자적인 모델이 생산되었다.
5. 2. 디자인 및 기술적 특징
(mm)
4,340
전폭 (mm)
1,699
전고 (mm)
1,363
축거 (mm)
2,575
윤거 (전, mm)
1,445
윤거 (후, mm)
1,442
엔진형식
TL16
승차 정원
5명
변속기
수동 4단 (플로어 시프트)
서스펜션 (전/후)
더블 위시본/4링크
구동 형식
후륜 구동
연료
가솔린
배기량 (cc)
1,593
최고 출력 (ps/rpm)
78/5,700
최대 토크 (kg*m/rpm)
12/3,000
최고 속도 (km/h)
160
연비 (km/L)
6. 해외 시장
포드 뉴질랜드는 GT와 로터스 코티나가 현지에서 조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GTE라는 자체 모델을 개발했다.[21] 4도어 전용 GTE는 나무 대시보드, 비닐 지붕, 검정색 테일 패널, 세미 하이백 앞좌석, 플로어 시프터와 시계가 있는 센터 콘솔, 오스트레일리아 카프리 풀 휠 트림, 특별한 스트라이프와 배지를 갖추고 있었다.[2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3.0L V6 엔진을 장착한 변형 모델이 바질 그린 모터스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그로스브너 포드 딜러 네트워크를 통해 코티나 페라나로 판매되었다.[22] 영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두 모델(각각 3.0L 및 2.5L 에섹스 엔진 장착)이 등장하여 코티나 새비지와 코티나 치타로 알려졌으며, 세 가지 차체 스타일 모두 1600E 트림으로 제공되었다.[22]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생산된 모델은 초기에는 GT 트림, 나중에는 E 트림의 4도어 세단으로만 제공되었다.[22]
코티나는 1960년대 캐나다에서 폭스바겐 비틀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수입 자동차였다.[23] 캐나다에서는 2도어 및 4도어 세단, 고성능 GT 세단, 딜럭스 왜건이 판매되었으며, 로터스 코티나도 제한된 수량으로 판매되었다.[23] 마크 III는 1973년까지 캐나다에서 판매되었다.
미국 내 포드는 마크 I 및 마크 II 코티나 모델을 모두 수입했다. 마크 II는 1967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었으며, 첫 해에 16,193대가 판매되었다.[24] 1968년 마크 II의 판매량은 22,983대, 1969년에는 21,496대였다.[24] 1970년에는 판매량이 급감하여 1969년 최고치의 거의 절반인 10,216대로 감소했다.[24] 포드 USA는 1970년에 이 모델을 단종했으며, 1971년 미국에서 생산된 포드 핀토 소형차의 도입으로 사실상 대체되었다.[24] 포드는 1971년 모델에 대해 352,402대의 포드 핀토를 판매했으며, 그 이후 미국에서 더 이상 영국산 포드를 판매하지 않았다.[24]
포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 4기통 엔진(1.6 및 2.0)과 현지 제작 직렬 6기통 엔진(3.3 및 4.1리터)을 팔콘 라인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버전을 사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된 코티나는 팔콘 라인에서 가져온 많은 페인트 색상을 사용했다.
포드 뉴질랜드는 Mk3를 4도어 세단으로 출시했으며, Mk2 생산 기간 동안 조립되지 않았던 왜건 버전을 다시 도입했다. 처음에는 1.3 OHV 엔진이 기본 트림, 1.6이 코티나 L, 2.0 OHC가 GT(세단 전용)로 제공되었다. 나중에 기본 모델은 1.6 OHV로 업그레이드되었고 2.0 L 사양이 추가되어 1984년 코티나가 뉴질랜드에서 단종될 때까지 기본 "영업사원 사양"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차량이 일본에 도착했을 때 외형 치수에 따라 결정되는 더 낮은 세금 등급에 맞추기 위해 몇 밀리미터 줄여 1695mm의 최대 폭을 적용했다.[35]코티나는 포드 카프리와 함께 일본에 출시되었으며, 포드 제품의 독점 소매업체인 킨테츠 모터스에서 수입했다.
코티나는 파키스탄,[63]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1961~76년 앵글로-태국 모터 회사(Ford의 수입 유통업체)와의 합작으로 현지 생산), 몰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다른 우측 운전 시장에서도 판매되었다. 마크 III 코티나 에스테이트는 홍콩에서 경찰차로 채택되었다. 코티나는 1980년대 초까지 필리핀, 대한민국(현대가 최초로 제작한 모델), 타이완(포드 리오 호에서)에서도 좌측 운전으로 조립되었다.
코티나는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일부 유럽 대륙 시장에서 타우누스와 함께[57], 포르투갈에서도 판매되었으며,[58] 1962년 출시부터 1975년까지 포드의 암스테르담 공장에서 조립되었다.
포드 오스트레일리아는 브로드메도우스 조립 공장에서 팔콘, 그 파생 모델 및 에스코트와 함께 약간 수정된 코티나를 제작했다.
호주산 코티나는 1970년 TC 코티나가 출시될 때까지 영국 모델과 상당히 유사했으며, 팔콘의 더 큰 모델에서 일부 부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호주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얻었다. 추가된 사항으로는 200 및 250 입방 인치 직렬 6기통 엔진과 다양한 호주산 보그워너 변속기가 포함되었다.
많은 호주 코티나가 스트리트 머신으로 개조되었으며, 직접 제작한 '레드탑' 바라 터보 엔진이 일반적인 엔진 교체 부품으로 사용되었고, 302 윈저 엔진도 사용되었다.
호주 코티나 마크 III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최고 사양인 XLe 모델은 버킷 시트, 비닐 루프, 250 입방 인치 직렬 6기통 엔진, 3단 자동 보그워너 변속기, 풀 계기판, 부트 가니쉬 및 기타 많은 고급 스타일의 추가 기능이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뉴질랜드 코티나 모델은 일반적으로 영국 모델을 따랐다. 전체적인 완전 분해 조립은 1962년부터 1983년 6월까지 포드의 로어 허트(시뷰) 공장에서 이루어졌다.[21]
마크 IV 코티나 모델은 1977년 초에 현지 조립으로 도입되었으며, 영국에서 제공되는 모델과 매우 유사했다. 주요 사양 차이점은 미터법 계측 장치를 사용했으며 2도어 세단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엔진 크기는 1.6리터와 2.0리터가 제공되었다.
마크 V 모델은 1980년 초에 도입되었으며, 1.6 기본형, 2.0 L, 2.0 GL, 2.0 Ghia, 2.3 V6 Ghia 및 1.6 기본형과 2.0 L의 왜건 모델이 특징이었다.
코티나는 뉴질랜드에서 인기 있는 자동차였으며, 7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차였고 총 10만 대 이상 조립되었다.[39] 1983년 6월 생산이 중단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코티나 모델은 마침내 1983년 포드 텔스타 모델과 1984년 포드 시에라 왜건으로 대체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코티나 라인업은 2.5리터 및 3.0리터 형태로 V6 에섹스(Essex) 엔진 변형 모델을 포함했다.
1971년 7월부터 현지에서 설계된 픽업트럭 버전도 제공되었으며, 코티나가 시에라로 대체된 후에도 생산이 계속되었다. 마크 V 기반의 코티나 픽업은 포드 P100으로 휠베이스가 늘어난 형태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1980년 남아프리카 시장에 출시된 마크 V 모델 라인업에는 1.3리터 L (1980–1982), 1.6리터 L, GL (1980–1983), 2.0리터 GL, Ghia (1980–1984), 3.0리터 XR6 (1980–1983), 1.6리터 L Estate (1980–1983), 2.0리터 GL Estate (1980–1983), 3.0리터 GLS (1980–1984), 1.6리터 One-Tonner (1980–1985) 및 3.0리터 One-Tonner (1980–1985)가 포함되었다.
XR6는 에섹스 V6를 사용하고 차체 에어로포일과 스포츠 시트가 특징인 스포츠 버전이었다.
1981년에는 생산차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제작된 XR6 인터셉터(Interceptor)라는 버전이 출시되었다. 250대가 생산되었다.
이후에는 XR6로 '팀 포드'의 레이싱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판 XR6 TF가 출시되었다.
1983년에는 심슨 포드(Simpson Ford)가 인터셉터와 유사한 코티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별 버전을 제작하여 전국 포드 대리점을 통해 판매했다. 이 차는 XR6 X-ocet이라고 불렸으며, 홀리(Holley) 기화기, 공격적인 캠축 및 튜닝된 배기를 특징으로 했다.
남아프리카 마크 V 모델은 다른 휠, 범퍼 및 실내 트림으로 인해 영국 모델과 약간 달랐다.
마지막 신차 코티나는 1984년 중반에 남아프리카에서 판매되었다. 이 차는 종종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다.
기타 수출국에서는 타우누스가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스칸디나비아 각국과 일본에서는 코티나와 타우누스가 병매되었다. 일본에는 긴테츠 모터스, 뉴 엠파이어 모터, 포드 자동차(일본) 등에 의해 수입되었다.
6. 1. 주요 수출 시장
포드 뉴질랜드는 GT와 로터스 코티나가 현지에서 조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GTE라는 자체 모델을 개발했다.[21] 4도어 전용 GTE는 나무 대시보드, 비닐 지붕, 검정색 테일 패널, 세미 하이백 앞좌석, 플로어 시프터와 시계가 있는 센터 콘솔, 오스트레일리아 카프리 풀 휠 트림, 특별한 스트라이프와 배지를 갖추고 있었다.[2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3.0L V6 엔진을 장착한 변형 모델이 바질 그린 모터스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그로스브너 포드 딜러 네트워크를 통해 코티나 페라나로 판매되었다.[22] 영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두 모델(각각 3.0L 및 2.5L 에섹스 엔진 장착)이 등장하여 코티나 새비지와 코티나 치타로 알려졌으며, 세 가지 차체 스타일 모두 1600E 트림으로 제공되었다.[22]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생산된 모델은 초기에는 GT 트림, 나중에는 E 트림의 4도어 세단으로만 제공되었다.[22]
코티나는 1960년대 캐나다에서 폭스바겐 비틀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수입 자동차였다.[23] 캐나다에서는 2도어 및 4도어 세단, 고성능 GT 세단, 딜럭스 왜건이 판매되었으며, 로터스 코티나도 제한된 수량으로 판매되었다.[23] 마크 III는 1973년까지 캐나다에서 판매되었다.
미국 내 포드는 마크 I 및 마크 II 코티나 모델을 모두 수입했다. 마크 II는 1967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었으며, 첫 해에 16,193대가 판매되었다.[24] 1968년 마크 II의 판매량은 22,983대, 1969년에는 21,496대였다.[24] 1970년에는 판매량이 급감하여 1969년 최고치의 거의 절반인 10,216대로 감소했다.[24] 포드 USA는 1970년에 이 모델을 단종했으며, 1971년 미국에서 생산된 포드 핀토 소형차의 도입으로 사실상 대체되었다.[24] 포드는 1971년 모델에 대해 352,402대의 포드 핀토를 판매했으며, 그 이후 미국에서 더 이상 영국산 포드를 판매하지 않았다.[24]
포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 4기통 엔진(1.6 및 2.0)과 현지 제작 직렬 6기통 엔진(3.3 및 4.1리터)을 팔콘 라인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버전을 사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된 코티나는 팔콘 라인에서 가져온 많은 페인트 색상을 사용했다.
포드 뉴질랜드는 Mk3를 4도어 세단으로 출시했으며, Mk2 생산 기간 동안 조립되지 않았던 왜건 버전을 다시 도입했다. 처음에는 1.3 OHV 엔진이 기본 트림, 1.6이 코티나 L, 2.0 OHC가 GT(세단 전용)로 제공되었다. 나중에 기본 모델은 1.6 OHV로 업그레이드되었고 2.0 L 사양이 추가되어 1984년 코티나가 뉴질랜드에서 단종될 때까지 기본 "영업사원 사양"이 되었다.
포드 리오 호는 1973년 3월 대만에서 코티나의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34]
일본에서는 차량이 일본에 도착했을 때 외형 치수에 따라 결정되는 더 낮은 세금 등급에 맞추기 위해 몇 밀리미터 줄여 1695mm의 최대 폭을 적용했다.[35] 코티나는 포드 카프리와 함께 일본에 출시되었으며, 포드 제품의 독점 소매업체인 킨테츠 모터스에서 수입했다.
코티나는 파키스탄,[63]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1961~76년 앵글로-태국 모터 회사(Ford의 수입 유통업체)와의 합작으로 현지 생산), 몰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다른 우측 운전 시장에서도 판매되었다. 마크 III 코티나 에스테이트는 홍콩에서 경찰차로 채택되었다. 코티나는 1980년대 초까지 필리핀, 대한민국(현대가 최초로 제작한 모델), 타이완(포드 리오 호에서)에서도 좌측 운전으로 조립되었다.
코티나는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일부 유럽 대륙 시장에서 타우누스와 함께[57], 포르투갈에서도 판매되었으며,[58] 1962년 출시부터 1975년까지 포드의 암스테르담 공장에서 조립되었다.
포드 오스트레일리아는 브로드메도우스 조립 공장에서 팔콘, 그 파생 모델 및 에스코트와 함께 약간 수정된 코티나를 제작했다.
호주산 코티나는 1970년 TC 코티나가 출시될 때까지 영국 모델과 상당히 유사했으며, 팔콘의 더 큰 모델에서 일부 부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호주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얻었다. 추가된 사항으로는 200 및 250 입방 인치 직렬 6기통 엔진과 다양한 호주산 보그워너 변속기가 포함되었다.
많은 호주 코티나가 스트리트 머신으로 개조되었으며, 직접 제작한 '레드탑' 바라 터보 엔진이 일반적인 엔진 교체 부품으로 사용되었고, 302 윈저 엔진도 사용되었다.
호주 코티나 마크 III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최고 사양인 XLe 모델은 버킷 시트, 비닐 루프, 250 입방 인치 직렬 6기통 엔진, 3단 자동 보그워너 변속기, 풀 계기판, 부트 가니쉬 및 기타 많은 고급 스타일의 추가 기능이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코티나는 1982년에 생산이 종료되었으며, 텔스타가 그 뒤를 이었다.
뉴질랜드 코티나 모델은 일반적으로 영국 모델을 따랐다. 전체적인 완전 분해 조립은 1962년부터 1983년 6월까지 포드의 로어 허트(시뷰) 공장에서 이루어졌다.[21]
마크 IV 코티나 모델은 1977년 초에 현지 조립으로 도입되었으며, 영국에서 제공되는 모델과 매우 유사했다. 주요 사양 차이점은 미터법 계측 장치를 사용했으며 2도어 세단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엔진 크기는 1.6리터와 2.0리터가 제공되었다.
마크 V 모델은 1980년 초에 도입되었으며, 1.6 기본형, 2.0 L, 2.0 GL, 2.0 Ghia, 2.3 V6 Ghia 및 1.6 기본형과 2.0 L의 왜건 모델이 특징이었다.
코티나는 뉴질랜드에서 인기 있는 자동차였으며, 7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차였고 총 10만 대 이상 조립되었다.[39] 1983년 6월 생산이 중단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코티나 모델은 마침내 1983년 포드 텔스타 모델과 1984년 포드 시에라 왜건으로 대체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코티나(Cortina) 라인업은 2.5리터 및 3.0리터 형태로 V6 에섹스(Essex) 엔진 변형 모델을 포함했다.
1971년 7월부터 현지에서 설계된 픽업트럭 버전도 제공되었으며, 코티나가 시에라로 대체된 후에도 생산이 계속되었다. 마크 V 기반의 코티나 픽업은 포드 P100으로 휠베이스가 늘어난 형태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1980년 남아프리카 시장에 출시된 마크 V 모델 라인업에는 1.3리터 L (1980–1982), 1.6리터 L, GL (1980–1983), 2.0리터 GL, Ghia (1980–1984), 3.0리터 XR6 (1980–1983), 1.6리터 L Estate (1980–1983), 2.0리터 GL Estate (1980–1983), 3.0리터 GLS (1980–1984), 1.6리터 One-Tonner (1980–1985) 및 3.0리터 One-Tonner (1980–1985)가 포함되었다.
XR6는 에섹스 V6를 사용하고 차체 에어로포일과 스포츠 시트가 특징인 스포츠 버전이었다.
1981년에는 생산차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제작된 XR6 인터셉터(Interceptor)라는 버전이 출시되었다. 250대가 생산되었다.
이후에는 XR6로 '팀 포드'의 레이싱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판 XR6 TF가 출시되었다.
1983년에는 심슨 포드(Simpson Ford)가 인터셉터와 유사한 코티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별 버전을 제작하여 전국 포드 대리점을 통해 판매했다. 이 차는 XR6 X-ocet이라고 불렸으며, 홀리(Holley) 기화기, 공격적인 캠축 및 튜닝된 배기를 특징으로 했다.
남아프리카 마크 V 모델은 다른 휠, 범퍼 및 실내 트림으로 인해 영국 모델과 약간 달랐다.
마지막 신차 코티나는 1984년 중반에 남아프리카에서 판매되었다. 이 차는 종종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다.
1960년대 초, 포드 코티나는 파키스탄 카라치에 위치한 알리 자동차에서 조립되었다.[63]
기타 수출국에서는 타우누스가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스칸디나비아 각국과 일본에서는 코티나와 타우누스가 병매되었다. 일본에는 긴테츠 모터스, 뉴 엠파이어 모터, 포드 자동차(일본) 등에 의해 수입되었다.
7. 코티나와 모터스포츠
헨리 테일러가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의 올림픽 봅슬레이 트랙에서 포드 코티나를 운전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포드 코티나 로터스는 유럽과 북미 전역의 다양한 대회에서 성공적인 랠리 및 레이싱 차량이었다. 일반 코티나는 어떤 종류의 대회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로터스 버전에서 발생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수명이 다한 많은 코티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영국에서 타원형 레이싱 서킷에서 활동했는데, 견고함과 손쉬운 이용성 때문에 뱅거 레이싱에 인기 있는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티나는 현재 상대적으로 희귀하지만, 뱅거 레이싱 동호인들에게 여전히 탐나는 대상이며, 모든 코티나 경주가 여전히 레이싱 캘린더에 가끔씩 열리고 있다.
이안 지오헤건은 포드 코티나 GT를 운전하여 1964년 호주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8. 유산
1967년, 포드 코티나는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의 자리를 오스틴/모리스 1100/1300에게서 빼앗았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10년 중 9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으며, 1976년에는 포드 에스코트에 근소하게 뒤쳐졌다.
코티나의 마지막 모델은 1980년과 1981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으며, 4세대 모델에서 5세대로 전환되던 1979년에도 판매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그 해에는 193,000대 이상 판매되는 영국 기록을 세웠다. 심지어 생산 마지막 해인 1982년에도 포드 에스코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코티나는 또한 생산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차였으며, 1984년까지 신차로 판매되었다.
시에라가 1982년 10월에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시점에도 수천 대의 코티나가 팔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1983년에는 11,000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시에라 사파이어가 마침내 출시된 1987년에도 5대가 판매되었다.
코티나의 단종으로 인해 포드는 이 크기의 전통적인 4도어 세단을 잃게 되었는데, 시에라는 초기에 해치백 또는 왜건 형태로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나중에 1987년 초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시에라의 세단 버전(시에라 사파이어)을 출시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1983년에는 에스코트를 기반으로 한 4도어 세단인 오리온을 라인업에 추가하여 이전 코티나 구매자들을 많이 유치했다.
코티나는 20년 동안 5세대에 걸쳐 영국에서 280만 대 이상 판매되었으며, 2009년 3월에도 생산 중단된 지 거의 30년이 지났음에도 역대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차였다. 코티나는 1980년대에 단 3년 동안만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0만 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그 시대 영국에서 7번째로 많이 팔린 차였다. 1990년대까지 중고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영국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2019년 12월 현재, 3,826대의 코티나가 도로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추가로 3,480대가 SORN(Off-Road Notification) 상태이다. 양호한 유럽 생산 모델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매니아들은 점점 더 남아프리카 및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코티나를 영국으로 수입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는 부식에 덜 취약하게 만들었고, 또한 우핸들(Right-Hand Drive)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수입이 증가하여 2023년 12월에는 4,658대의 코티나가 도로에 등록되었는데, 이는 인기가 높아져 보존된 사례의 수가 증가한 몇 안 되는 영국의 비스포츠카 중 하나이다.
BBC Two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아레나''는 1982년 1월, 생산 종료 6개월 전에 차와 그 매니아에 대한 부분을 방영했는데, 당시 포드는 코티나라는 이름을 시에라로 바꾸기로 확정했고, 코미디언 알렉시 세일로부터 주목할 만한 반발을 샀다. 이 에피소드는 Mk1 코티나가 자동차 파쇄기에서 의례적으로 큐브 형태로 파쇄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영국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는 "Janie Jones"라는 곡에서 "He's just like everyone, he's got a Ford Cortina that just won't run without fuel."라고 노래하며 이 차를 언급했다.
영국 인디 밴드 아틱 몽키즈는 2013년에 존 쿠퍼 클라크의 시 "I Wanna Be Yours"를 음악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I want to be your Ford Cortina, I will never rust."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아일랜드 록 밴드 더 소우 닥터스는 1991년에 "Red Cortina"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그들은 "Your father used to drop you off, You'd step out of a Red Cortina."라고 노래한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은 그의 노래 "Made In England"에서 파란색 포드 코티나를 언급한다.
참조
[1]
Youtube
Cortina Auto-Bobbing
https://www.youtube.[...]
2010-06-06
[2]
뉴스
Aussie Ford now adds Cortinas to Falcon line
http://eresources.nl[...]
2016-02-25
[3]
뉴스
Ford's big new venture
http://eresources.nl[...]
2016-02-25
[4]
뉴스
First motor assembly plant in Singapore is 38 years old
http://eresources.nl[...]
2016-02-25
[5]
서적
Complete Catalogue of British Cars
Macmillan
[6]
웹사이트
Obituaries: Roy Brown
https://www.telegrap[...]
2014-03-23
[7]
뉴스
A Cortina drops £40 in one day
https://news.google.[...]
1962-09-26
[8]
웹사이트
Ford Cortina Mk1 UK Domain
http://www.fordcorti[...]
Fordcortina.co.uk
2011-07-22
[9]
뉴스
A More Zestful Cortina
The Times
1963-01-18
[10]
간행물
The Fourth Cortina
1976-10-02
[11]
간행물
Used Car Test: 1962 Ford Cortina
1969-01-09
[12]
웹사이트
The Glasgow Herald – Google News Archive Search
https://news.google.[...] [13]
간행물
Cortina – new right through
1968-10-22
[14]
간행물
Cortina – new right through
1966-10-22
[15]
간행물
Die Taunus-Cortina-Story
Verlag Internationale Automobil-Parade AG
1971
[16]
웹사이트
Ford Cortina celebrates 50th on BBC's One Show
http://www.ford.co.u[...]
Ford UK
2015-03-02
[17]
문서
Driving & Leisure
1970
[18]
간행물
Ford Cortina Estate Car
1967-02-15
[19]
간행물
54th Paris Show
1967-10-12
[20]
뉴스
In this case the 'E' is for Executive
http://sortedcorty.c[...]
2016-11-05
[21]
저널
Classic Cars
Accent Publishing Cnr
1993-03
[22]
웹사이트
Cortina Perana Mk 2
http://www.africanmu[...]
2012-09-04
[23]
웹사이트
Collector Classics: 1969 Ford Cortina GT an ultra rare sight
https://driving.ca/f[...] [24]
간행물
MK I and MK II Ford Cortina (1963–'70)
https://www.hemmings[...]
2020-07-11
[25]
문서
Auto-Universum 1971
[26]
간행물
Know your car: Ford Cortina
1967-11-16
[27]
뉴스
Strike may put brake on Cortinas
https://news.google.[...]
The Glasgow Herald
1970-10-23
[28]
간행물
World wide: Ford and their market gap
1971-07-08
[29]
간행물
Road test: Ford Cortina 1300XL
1972-02-12
[30]
웹사이트
UK 1972–1973: Ford Cortina best seller – Best Selling Cars Blog
http://bestsellingca[...]
1974-01-26
[31]
간행물
Autotest Ford Cortina 1600 XL
1973-02-22
[32]
간행물
Ford Cortina 2000 V4 station wagon
Ramsay, Son & Parker (Pty) Ltd.
1972-12
[33]
간행물
Ford Cortina V4 2000 L sedan
Ramsay, Son & Parker (Pty) Ltd.
1972-11
[34]
서적
Distribution in Asia/Pacific's Developing Markets
https://books.google[...]
Business International Asia/Pacific Limited
1978
[35]
서적
Ford at Dagenham: The Rise and Fall of Detroit in Europe
https://books.google[...]
Breedon Books Publishing Company Ltd
2001-10
[36]
뉴스
New Cortina steps into sports car class
https://news.google.[...]
The Glasgow Herald
1976-09-29
[37]
간행물
Qual der Wahl: Taunus Kaufberatung
1976-08-18
[38]
뉴스
David-sized car with Goliath motor
https://news.google.[...]
The Age
1977-09-13
[39]
문서
Anderson
[40]
뉴스
Renault Aust to assemble Ford waggons
https://news.google.[...]
The Sydney Morning Herald
1977-02-15
[41]
잡지
Ford Cortina 2000 GL Station Wagon
Ramsay, Son & Parker (Pty) ltd.
1978-08
[42]
웹사이트
Africa
http://members.casem[...]
2015-03-09
[43]
뉴스
It's a £50 million new look
https://news.google.[...]
1979-08-24
[44]
웹사이트
FORD Cortina '80 | Car Specs | Octane
http://www.classican[...]
Classicandperformancecar.com
2011-07-22
[45]
뉴스
Driver beware – 40 new car models ahead
https://news.google.[...]
The Sydney Morning Herald
1980-01-06
[46]
뉴스
The right blend at the right time
https://news.google.[...]
The Sydney Morning Herald
1982-05-25
[47]
웹사이트
Owners' Photos
http://homepage.ntlw[...]
2015-06-16
[48]
웹사이트
Hammond's trip down memory lane
http://www.edp24.co.[...]
Norfolk Motoring News
2010-09-10
[49]
웹사이트
icLiverpool – Recession-proof wise-buys revealed
http://icliverpool.i[...]
Icliverpool.icnetwork.co.uk
2010-07-27
[50]
웹사이트
Top 10 Selling Cars of the 1980s
http://classics.hone[...]
2014-01-20
[51]
웹사이트
Ford Cortina – How Many Survived? Honest John
https://classics.hon[...] [52]
웹사이트
Arena: The Private Life of the Ford Cortina (1982)
http://ftvdb.bfi.org[...]
British Film Institute
2012-11-07
[53]
서적
Clash
https://books.google[...]
Giunti Editore
1998
[54]
뉴스
Arctic Monkeys bring punk poetry to Glastonbury 2013
https://www.telegrap[...]
Daily Telegraph
2013-06-25
[55]
Youtube
YouTube
https://www.youtube.[...]
2021-02-09
[56]
웹사이트
Elton John – Made in England
https://www.youtube.[...] [57]
서적
Ford at Dagenham: The Rise and Fall of Detroit in Europe
https://books.google[...]
Breedon
2001
[58]
웹사이트
Especial Ford Cortina – 50 anos a vencer
https://www.razaoaut[...] [59]
문서
Anderson
[60]
서적
Assembly: New Zealand Car Production 1921–98
Reed
[61]
웹사이트
Historic Pickups: Ford P100 • Professional Pickup
https://pickupand4x4[...]
2016-11-07
[62]
웹사이트
Cortina XR6 Interceptor
http://www.africanmu[...]
2012-09-04
[63]
서적
Seventy years in a shaky subcontinent
https://books.google[...]
Janus
2016-04-09
[64]
문서
現地生産が行われていた[[東南アジア]]各国や[[オーストラリア]]では、日本の[[マツダ・カペラ]]をベースとした[[フォード・テルスター|テルスター]]が後継車種となった。
[65]
문서
ロータス・コーティナのリアサスペンションは当初コイルスプリングの専用設計であったが、耐久性に難があることが判明し、ノーマルと同じリーフのリジッドアクスルに戻された。
[66]
문서
Mk2ロータス・コーティナはフォード工場で生産された。車体が重くなり、Mk1ほど俊足ではなかった。また、最終年の[[1970年]]のみ、「[[ロータス・カーズ|ロータス]]」の名が落とされて、「コーティナ・ツインカム」に改名された。
[67]
문서
タウヌス12M・15Mは1960年代前半からコンパクトなV型4気筒エンジンや前輪駆動を採用し、技術的にはコーティナより遥かに進歩的であった。このためドイツのタウヌス・ファン達は技術的に退歩した新しいタウヌスを「バロック・タウヌス」と綽名した。
[68]
문서
ダッシュボードはMk3後期型のままであり、ワゴンのスカットル以降の車体後半部もMk3をそのまま継承した。
[69]
문서
ヨーロッパ大陸においては、[[フォルクスワーゲン・パサート|VWパサート]]や[[ルノー・18]]などの最新鋭のライバルと勝負しなければならない[[フォード・タウヌス|タウヌス]]の旧態化は、保守的な英国市場以上に一層深刻な問題であった。
[70]
문서
生産中止時には大量のコーティナの在庫が残っていた。1983年になっても11,000台のコーティナが英国で新車登録され、最後の6台が登録されたのは1987年のことであった。
[71]
서적
沖縄アーカイブス写真集
㈱生活情報センター
[72]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tour.hyundai.[...]
2014-09-06
[73]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carlnc.com/db[...]
2013-02-24
[74]
웹사이트
http://www.kumhoclas[...] [75]
뉴스
가족같은 애마 오래가네~
http://jjlife.joins.[...]
중앙일보
2009-02-23
[76]
웹사이트
1972 현대 뉴 코티나
http://www.bobaedrea[...]
2019-06-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