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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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시타노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살레르노현에 위치한 코무네로, 아말피 해안에 있는 마을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고대 로마 시대에는 호화로운 빌라가 건설된 휴양지였다. 중세 시대에는 아말피 공화국의 항구였으며, 16~17세기에는 번성했지만 19세기 중반 쇠퇴했다. 20세기 중반, 존 스타인벡의 기고를 계기로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고급 리조트 지역으로 발전했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 마리나 그란데 해변, MAR 포지타노가 있으며, 슬로 시티에 가입되어 있다.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었으며, 관광 산업이 주요 경제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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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타노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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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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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공식 명칭 | 코무네 디 포시타노 |
현지어 명칭 | 파시타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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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913명 (2017년 12월 31일 기준) |
면적 | 8.65 제곱킬로미터 |
인구 밀도 | 452.3명/제곱킬로미터 |
시간대 | CET (UTC+1) |
서머 타임 | CEST (UTC+2) |
행정 | |
국가 | 이탈리아 |
주 | 캄파니아주 |
도 | 살레르노도 |
시장 | 주세페 귀다 |
지역 번호 | 089 |
우편 번호 | 84017 |
ISTAT 코드 | 065100 |
지진 구역 | 3 |
지리 | |
고도 | 0미터 |
종교 및 문화 | |
수호 성인 | 성 비투스 |
축일 | 6월 15일 |
주민 | 포시타네시 |
자매 도시 | |
기타 정보 | |
공식 웹사이트 | 포시타노 공식 웹사이트 |
추가 정보 | |
프라치오니 | 몬테페르투소, 노첼레, 피우메 발레 포초 |
2. 역사
포시타노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라 포르타 동굴"에 수렵 채집인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에는 소렌토 반도 해안을 따라 호화로운 빌라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1]
중세 시대에 포시타노는 아말피 공화국의 주요 항구 중 하나였으며,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생선과 같은 상품을 거래하는 부유한 시장 항구로 번성했다.[3]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도시는 쇠퇴기를 맞았고, 많은 주민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
20세기 전반까지 포시타노는 비교적 가난한 어촌이었으나, 1950년대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53년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방문하여 ''하퍼스 바자''에 포시타노에 관한 글을 발표한[4] 이후,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며 유명한 고급 휴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2. 1. 고대
포시타노는 아말피 공화국의 항구 중 하나였다.포시타노 지역에서 인간이 처음 정착한 흔적은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 포르타 동굴"은 수렵 채집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 동굴은 해발 120m, 고속도로에서 10m 높이에 위치한다. 1955년, 피사 대학교의 안토니오 M. 라드밀리(Antonio M. Radmilliit)는 선사 시대의 방문 증거를 찾기 위해 동굴 표면과 내부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발굴 과정에서 조개껍질과 같은 연체동물 화석과 함께 멧돼지, 아이벡스, 사슴, 노루 등 포유류, 조류, 양서류, 어류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동굴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주로 연체동물을 채집하며 생활했고, 조류나 포유류 사냥은 부차적인 활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세기에 소렌토 반도 해안을 따라 호화로운 로마 시대 빌라들이 건설되면서 포시타노 지역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가 나타난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100년경부터 포시타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1] 포시타노에는 만(灣)에 하나, 갈로 룽고 섬(Gallo Lungoit)에 하나, 총 두 개의 빌라가 있었다. 이는 당시 로마인들이 해안의 숨겨진 공간까지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 빌라들은 여러 건물이 정원으로 구분되어 흩어져 있는 "분산형" 구조를 가졌다. 빌라 소유주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류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시타노의 로마 빌라는 1758년 카를 베버(Karl Weber)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는데, 그는 이후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발굴을 감독한 인물이다. 1900년대 초, 민가치니(Mingazziniit)와 프리스터(Pfisterit)가 포시타노 만과 갈로 룽고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시도했다. 고고학자 마이우리(Maiuriit)는 1960년대까지 남아있던 스투코(stucco)로 덮인 벽돌 기둥 주랑 등 일부 유적을 묘사했다. 이 빌라 유적 단지는 2003년부터 체계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의 기도실 아래 지역이 집중적으로 조사되었다. 발굴된 유적지는 2018년 7월 18일 'MAR(로마 고고학 박물관) 산타 마리아 아순타 포지타노'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2]
2. 2. 중세
포시타노는 아말피 공화국의 항구 중 하나였다.2. 3. 근대

포시타노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부유한 시장 항구로 번성하며 생선과 같은 음식 및 기타 자원을 거래했다.[3] 그러나 19세기 중반에는 도시가 어려움에 처하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로 미국으로 이주했다.
20세기 전반까지 포시타노는 비교적 가난한 어촌이었으나, 1950년대부터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1953년 5월,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존 스타인벡이 ''하퍼스 바자''에 포시타노에 관한 에세이 "포시타노는 깊이 물어뜯는다"를 게재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스타인벡은 "그곳에 있을 때는 그리 현실적이지 않은 꿈의 장소이며, 떠나고 나면 매혹적으로 현실이 된다."라고 썼다.[4] 이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의 유명 인사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문하면서 포시타노는 고급 리조트 지역으로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2. 4. 현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포지타노는 어려움을 겪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까지 포지타노는 비교적 가난한 어촌으로 남아 있었다.상황이 바뀐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특히 1953년 미국의 유명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존 스타인벡이 이곳을 방문하여 그해 5월 ''하퍼스 바자''에 포지타노에 관한 에세이 "포지타노는 깊이 물어뜯는다"를 발표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4] 스타인벡은 에세이에서 "그곳에 있을 때는 그리 현실적이지 않은 꿈의 장소이며, 떠나고 나면 매혹적으로 현실이 된다."라고 포지타노의 매력을 묘사했다.[4] 이 글이 발표된 후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관광객과 유명 인사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포지타노를 찾기 시작했고, 점차 고급 휴양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3. 지리
포시타노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살레르노현 북서부에 위치한 코무네이다. 아말피 해안의 서쪽 끝에 해당하며, 소렌토 반도의 남쪽 해안으로 살레르노 만에 면해 있다. 아말피 해안은 포시타노보다 동쪽으로, 아말피를 거쳐 비에트리 술 마레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마을은 가파른 절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마을 꼭대기에서 계곡 지역으로 연결되는 많은 계단이 특징적이다.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로마 제국 시대부터 휴양지로 이용되었으며, 이는 만에서 발견된 빌라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포시타노에는 여러 해변이 있으며, 주요 해변은 다음과 같다. 일부 해변은 배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해변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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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아자 그란데 {{lang|ita|Spiaggia Grand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