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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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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다리로, 돈강을 가로지르며 블루어 스트리트를 연결한다. 1918년 완공 당시 웨일스 공, 즉 에드워드 8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다리는 대중교통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상단 데크는 노면 전차, 하단 데크는 철도 수송을 위해 사용되었다. 특히 하단 데크는 1966년 블로어-댄포스 지하철 개통에 활용되어 비용 절감에 기여했다. 설계는 에드먼드 버크가 맡았으며, 5개의 아치형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과거 자살 다리로 악명이 높았으나, 2003년 자살 방지 시설인 '빛의 베일'이 설치되었다. 또한 영화,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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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공식 명칭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별칭블루어 스트리트 고가교
위치토론토, 온타리오, 캐나다
구조 및 기능
통과 시설윗층: 블루어 스트리트 이스트 / 댄포스 애비뉴 왕복 5차선, 자전거 도로 2개
아랫층: 토론토 지하철 2호선 블루어-댄포스 복선 선로
횡단돈강
설계토마스 테일러
구조 형식복층 아치교
길이494 미터 (1,620 피트)
하단 여유 높이40 미터 (131 피트)
관리 및 유지 보수
관리토론토 교통 서비스, 토론토 교통국
역사
개통1918년 10월 18일
건설 시작1915년 6월 16일
완공1919년 8월 23일

2. 역사

1897년 토론토는 6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도시였다. 189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토론토의 인구는 18만 1216명이었고, 인구 대부분은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돈강 서쪽의 토론토 중심부에 살고 있었다.[24] 1901년과 1911년 사이에는 캐나다에 이민자들이 임시직 근로자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인구가 늘었다 줄곤 하였다.

토론토에서 강 동쪽으로 이어지는 기존 다리들은 강 유역의 고도 차이가 가장 적은 온타리오호 근처에 지어졌다. 하지만 아이스 잼과 해빙에 따른 홍수로 돈강을 잇던 다리 여럿이 무너졌고, 이를 다시 짓기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1850년 봄 홍수로 토론토의 두 다리가 무너져 동서를 잇는 모든 지상 교통이 마비되었다.[25] 1878년 9월 1일, 토론토에서 역대 최대의 홍수가 일어나면서 토론토에서 30km 떨어져 있는 손힐 이남에 있는 다리 20개와 돈강을 잇는 다섯 개의 다리가 모두 붕괴하였다.

돈강 개선 공사의 일환으로 돈강은 1890년에 수로화되었고, 이에 따라 강 하류의 꼬불꼬불한 부분은 파괴되었다. 돈 계곡이 이 지역에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불규칙한 주요 변수였지만, 로즈데일 협곡 또한 토론토 시내와 그 북쪽의 부유한 동네인 로즈데일의 경계를 이루었다. 블루어 고가교가 지어지지 않는 이상 돈강 동쪽으로 가는 방법은 계곡 북쪽이나 남쪽의 제럴드가로 가거나, 아니면 계곡 밑으로 내려가서 돈과 댄포스 다리를 건너 계곡 동쪽의 돈밀스 로드 (오늘날의 브로드뷰 애비뉴)를 따라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는 봄에 홍수가 일어나면 위험한 경로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돈 계곡은 토론토를 동서로 구분하는 자연 경계로 자리 잡았다. 토론토의 전신이었던 요크 정착지는 온타리오호 돈강 서쪽에 자리 잡았지만, 동쪽은 여전히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데이비나 플레이터와 같은 주요 가문의 별장이 강 동쪽에 자리 잡았다. 인구 밀도는 강 서쪽의 시내는 높은 편이었지만 동쪽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강 동쪽에 있던 마을인 체스터와 토드모든은 인구가 천 명이 채 안 되었고 댄포스 애비뉴는 "질퍽거리고 한적한 시골 도로"였다.

1915년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건설 현장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건설에 대한 주민 투표는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토론토에서 실시되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연도찬성반대비고
1910년77% 반대
1912년59표 차이로 반대
1913년9236표 차이로 찬성



1910년 759000CAD였던 건설 예상 비용은 1913년 2500000CAD으로 증가했으며, 최종 비용은 2480349.05CAD였다.[5] 1918년 완공 당시 고가교는 웨일스 공(나중에 에드워드 8세가 됨)인 프린스 에드워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고가교는 대중교통을 용이하게 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상단 데크는 노면 전차를 수용하고, 돈 밸리 구간과 로즈데일 밸리 구간 모두 철도 수송을 위한 하단 데크를 포함했다. 다리 설계자이자 공공 사업 위원인 R.C. 해리스는 하단 데크 설치를 관철시켰으며, 이는 1966년 토론토 교통 위원회의 블로어-댄포스 지하철 개통 시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로즈데일 밸리 구간은 각 구간 사이의 곡선과 파라먼트 스트리트 서쪽의 급격한 곡선으로 인해 지하철 운행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캐슬 프랭크 역 바로 서쪽에 로즈데일 밸리 다리라는 별도의 콘크리트 다리가 건설되었다.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돈 밸리 동쪽에 있는 토론토 지역의 보다 빠른 개발을 가져왔다.

2. 1. 초기 역사 (1897년 ~ 1909년)

1897년, 토론토는 6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도시였다. 189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토론토의 인구는 18만 1216명이었고, 인구 대부분은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돈강 서쪽의 토론토 중심부에 살고 있었다.[24] 1901년과 1911년 사이에는 캐나다에 이민자들이 임시직 근로자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인구가 늘었다 줄곤 하였다.

토론토에서 강 동쪽으로 이어지는 기존 다리들은 강 유역의 고도 차이가 가장 적은 온타리오호 근처에 지어졌다. 하지만 아이스 잼과 해빙에 따른 홍수로 돈강을 잇던 다리 여럿이 무너졌고, 이를 다시 짓기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1850년 봄 홍수로 토론토의 두 다리가 무너져 동서를 잇는 모든 지상 교통이 마비되었다.[25] 1878년 9월 1일, 토론토에서 역대 최대의 홍수가 일어나면서 토론토에서 30km 떨어져 있는 손힐 이남에 있는 다리 20개와 돈강을 잇는 다섯 개의 다리가 모두 붕괴하였다.

돈강 개선 공사의 일환으로 돈강은 1890년에 수로화되었고, 이에 따라 강 하류의 꼬불꼬불한 부분은 파괴되었다. 돈 계곡이 이 지역에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불규칙한 주요 변수였지만, 로즈데일 협곡 또한 토론토 시내와 그 북쪽의 부유한 동네인 로즈데일의 경계를 이루었다. 블루어 고가교가 지어지지 않는 이상 돈강 동쪽으로 가는 방법은 계곡 북쪽이나 남쪽의 제럴드가로 가거나, 아니면 계곡 밑으로 내려가서 돈과 댄포스 다리를 건너 계곡 동쪽의 돈밀스 로드 (오늘날의 브로드뷰 애비뉴)를 따라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는 봄에 홍수가 일어나면 위험한 경로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돈 계곡은 토론토를 동서로 구분하는 자연 경계로 자리 잡았다. 토론토의 전신이었던 요크 정착지는 온타리오호 돈강 서쪽에 자리 잡았지만, 동쪽은 여전히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데이비나 플레이터와 같은 주요 가문의 별장이 강 동쪽에 자리 잡았다. 인구 밀도는 강 서쪽의 시내는 높은 편이었지만 동쪽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강 동쪽에 있던 마을인 체스터와 토드모든은 인구가 천 명이 채 안 되었고 댄포스 애비뉴는 "질퍽거리고 한적한 시골 도로"였다.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의 역사는 1897년, 돈 계곡 바로 서쪽 지역구를 대표하던 시의원인 앨더맨 토마스 포스터가 블루어가를 동쪽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안건이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진 시점은 1906년 시의회 회의로, 이 당시 토론토와 요크 타운십에서 공사비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으로 이어졌다. 돈강 동쪽 지역구를 대표하던 치스홈 시의원은 토론토시가 요크 타운십보다 더 많은 돈을 내는데 토론토 시내로 바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기면서 토론토와 인접한 요크 카운티가 더 수혜를 많이 볼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돈강을 두고 서쪽은 도시, 동쪽은 시골로 나뉘었는데 여기에 다리를 놓으면 "시골" 사람들만 좋은 게 아니겠냐는 주장이었다.

1909년에 조지프 올리버 시장이 당선된 뒤 돈강 다리는 주요 문제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임기 도중에 토론토는 댄포스 북쪽의 브로드뷰와 던랜즈까지 걸쳐있는 체스터를 토론토시에 흡수하였고, 이후 영국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강 동쪽에도 인구가 늘어났다. 1910년 1월 1일, 블루어가 고가교 조례는 국민투표에서 77%가 반대하였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1910년에 당선된 조지 기어리 시장은 뉴욕의 건설 회사였던 제이콥스 앤 데이비스 (Jacobs and Davies, Inc.)에 지하철에 대한 타당성 연구 용역을 맡겼다.

이후 《토론토시의 지상 철도 교통》 (Street Railway Transportation in the City of Toronto)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보고서는 런던, 파리, 글래스고,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몬트리올 등지의 예를 들어 면적, 인구 및 대중교통 활용 및 자금 조달 방안을 언급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되었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안에는 인구가 성장하는 도시에 지하철 건설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두 방안 모두 다 강철 고가교를 대중교통 노선의 주요 부분으로 포함하였고, 이 다리에 장기적으로 지하철이 다닐 수 있도록 복층 설계를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1910년 말에 들어서서 다리 건설을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였다. 서민층을 대변했던 《월드》 (The World) 지는 블루어 고가교 건설을 반대했던 《글로브》 (The Globe)와 《스타》 (The Star)지 구독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정 그렇다면 국민투표에 부결하자고 주장하였다. 한편 강 동쪽 로즈데일의 시빅 길드 (Civic Guild) 단체에서는 고가교가 "인근 지역의 자연의 미를 훼손하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며 도시와 타운십을 잇는 부실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다리는 1910년은 물론 이듬해에도 로즈데일의 강한 반대로 예산 승인을 받지 못했다. 1912년 국민투표는 총 유권자 20,061명 중 1,319표의 간소한 차이로 178만 3333달러 규모의 고가교 건설 및 노면전차 선로 건설이 가결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는 재개표 뒤에 반대표가 더 많아져 다리 건설 논의는 이듬해로 넘어갔다.

1912년 6월, 도시 현대화의 꿈을 키웠던 롤런드 해리스가 토론토의 수석 설계가 및 공공사업 총괄부장으로 취임하였다. 1912년 10월, 기어리 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하면서 시장직은 1910년 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던 호레이쇼 호켄에게 넘어갔다. 호켄 시장이 취임하면서 해리스는 새로운 고가교 설계도를 선보였는데, 미래에 들어설 지하철을 위해 이층 다리를 선보였다. 또한 100% 콘크리트를 쓰는 대신 철강을 도입해 콘크리트에 반대했던 호켄 시장과 동네 외관에 민감해하던 로즈데일 주민들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양자 간의 합의를 도출해 1913년 새해 첫날에 고가교 건설은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였지만, 경기 침체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1915년 1월 16일에 삽을 본격적으로 들었다.

1913년 계획에는 토론토의 건축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맡았다. 이 계획에는 다섯 개의 보자르 스타일 아치형 구조와 넓은 인도, 두 개 차선, 노면전차 선로 두 쌍, 전망대는 물론 지하철을 위한 아래층 공간까지 포함되어있었다.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건설에 대한 주민 투표는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토론토에서 실시되었으며, 자세한 투표 결과는 아래와 같다.[5]

년도찬성반대비고
1910년77% 반대
1912년59표 차이로 반대
1913년9236표 차이로 찬성



건설 예상 비용은 1910년 759000CAD에서 1913년 2500000CAD으로 증가했으며, 최종 비용은 2480349.05CAD였다.

2. 2. 설계와 공사 (1910년 ~ 1918년)

1910년 1월 1일, 블루어가 고가교 건설 조례는 국민투표에서 77%가 반대하였다. 이 결과에 따라 조지 기어리 시장은 뉴욕의 건설 회사인 제이콥스 앤 데이비스에 지하철 타당성 연구 용역을 맡겼다.[5] 이 보고서는 런던, 파리, 글래스고, 뉴욕 등 여러 도시의 예를 들어 면적, 인구, 대중교통 활용 및 자금 조달 방안을 제시하였다. 세 가지 방안 중 두 가지는 장기적으로 지하철이 다닐 수 있도록 복층 설계를 제안했다.[5]

1910년 말, 다리 건설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1912년 국민투표에서는 1783333USD 규모의 고가교 건설 및 노면전차 선로 건설이 근소한 차이로 가결되는 듯했으나, 재개표 결과 반대표가 더 많아 다음 해로 논의가 넘어갔다.[5]

1912년 6월, 롤런드 해리스가 토론토의 수석 설계가 및 공공사업 총괄부장으로 취임하였다. 해리스는 미래에 들어설 지하철을 위한 이층 다리 설계안을 제시하고, 콘크리트 대신 철강을 도입하여 시장과 주민들을 설득했다.[5] 1913년 새해 첫날, 고가교 건설은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되었지만, 경기 침체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15년 1월 16일에 착공하였다.[5]

1913년 계획은 토론토의 건축가 에드먼드 버크가 맡았다. 다섯 개의 보자르 스타일 아치형 구조, 넓은 인도, 두 개 차선, 노면전차 선로 두 쌍, 전망대, 그리고 지하철을 위한 아래층 공간을 포함했다.[5]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1912년에는 근소한 차이로 건설 반대가, 1913년에는 9236표 차이로 찬성이 나왔다.[5] 건설 예상 비용은 1910년 759000CAD에서 1913년 2500000CAD으로 증가했으며, 최종 비용은 2480349.05CAD였다.[5] 1918년 완공 당시 웨일스 공(이후 에드워드 8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고가교는 대중교통을 용이하게 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상단 데크는 노면 전차를 수용하고, 돈 밸리 구간과 로즈데일 밸리 구간 모두 철도 수송을 위한 하단 데크를 포함했다.[5] 다리 설계자인 R.C. 해리스는 하단 데크가 결국 토론토 교통 위원회의 블로어-댄포스 지하철이 1966년에 개통되면서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 로즈데일 밸리 구간은 지하철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급한 곡선으로 인해 로즈데일 밸리 다리라는 별도의 콘크리트 다리가 캐슬 프랭크 역 바로 서쪽에 건설되었다.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돈 밸리 동쪽 토론토 지역의 빠른 개발을 이끌었다.

2. 3. 개통 (1918년 ~ 1919년)

1917년 10월 29일, 로즈데일 구간이 개통되었고, 1918년 10월 18일에는 돈강 구간이 개통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전시 상황과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개통식은 간소하게 진행되었다.[5] 노면전차는 1918년 12월 12일부터 고가교를 지나다녔고, 1919년 8월 23일에 셔본 구간이 완공되면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5]

1919년, 에드워드 왕자의 온타리오주 방문을 기념하여 시 당국은 다리 이름을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로 명명하였다.[5] 그러나 이 이름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고, 실제로는 개통 당시부터 '블루어 고가교'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5]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건설에 대한 주민 투표는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토론토에서 실시되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연도결과
1912년건설 반대 (59표 차이)
1913년건설 찬성 (9236표 차이)



건설 예상 비용은 1910년 759000CAD에서 1913년 2500000CAD으로 증가했으며, 최종 비용은 2480349.05CAD였다.[5]

2. 4. 개통 이후 (1920년 ~ 현재)

1920년대 이후로 돈강 일대로 별다른 개발의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리적으로는 두 계곡에 걸쳐있고 부유한 로즈데일과 가까워 인구 밀도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개발의 바람이 불어온 건 1950년대, 돈밸리 파크웨이 공사는 물론 베이뷰 애비뉴 연장이 이루어지면서 블루어-댄포스 지하철 공사 논의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26]

고가교 아래층 갑판에 지하철이 지나갈 여분의 공간이 있었지만 선형 때문에 아래층 갑판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지하철 노선은 부동산 매입 비용을 줄이고 공사 도중에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블루어 북쪽으로 지어졌지만 아래층 갑판은 도로 바로 밑을 지나갔고 다리 갑판은 남서쪽으로 향해있었기 때문에 선로 방향과 어긋났다.[26]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역 동쪽으로 터널 굴착 기계로 굴착하였고 셔본역을 블루어 남쪽에 짓게 되었다. 또한 로즈데일 협곡을 건너기 위해 별도의 다리를 설치하고 이후 아래층 갑판과 연결하였다.[26] 지하철은 1966년 2월 26일에 개통하였다.[26]

R.C. 해리스는 자신의 방식을 따르게 할 수 있었으며, 하단 데크는 결국 토론토 교통 위원회의 블로어-댄포스 지하철이 1966년에 개통되면서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 로즈데일 밸리 구간은 지하철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는 각 구간 사이의 곡선, 그리고 파라먼트 스트리트 서쪽의 곡선이 지하철에 너무 급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로즈데일 밸리 다리라는 별도의 콘크리트 다리가 캐슬 프랭크 역 바로 서쪽에 있는 로즈데일 밸리 위에 건설되었다.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돈 밸리 동쪽에 있는 토론토 지역의 보다 빠른 개발을 가져왔다.

3. 설계

에드먼드 버크가 설계한 이 다리는 세 개의 콘크리트 철강 경첩으로 이루어진 아치교로 총 길이 494m, 높이는 돈 계곡 40m 상공에 있다. 이 다리는 횡단 빔과 아이형 거더로 기둥의 무게를 이동한다. 기둥은 이후 그 무게를 아치에 있는 트러스로 이동한다. 트러스의 무게는 아치로 이동한 뒤 아치는 커다란 경첩을 통해 콘크리트 교각과 지면으로 무게를 분산하는 구조이다. 철은 도미니언 브리지 회사에서 제공하였다.[23]

다리 밑으로는 돈강, 돈밸리 파크웨이, 베이뷰 애비뉴와 더불어 두 철도, 송전선과 자전거 산책로가 모두 지나간다.

4. 빛의 베일

시간이 지나면서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자살다리로 악명을 떨쳤으며, 떨어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밑에 있는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위험했다. 2003년에는 500명 가까이 이 다리에서 자살하였으며, 이에 따라 캐나다에서 가장 자살 시도 수가 높은 다리이자 북미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다음으로 높은 다리이기도 했다.[27][28]

1998년부터 이 다리의 안전 문제가 토론토 시의회에서 계속 거론되었지만, 예산 문제로 방지턱 설치는 2003년까지 미루어졌다. 이 사이에 고가교에서는 48명에서 60명이 숨을 거둔 것으로 집계되었다.[29][30] 시의회는 처음에 250만달러 규모의 방지턱 설치를 승인했지만, 최저 입찰가가 550만달러였다.[29] 시의회는 결국 나머지 300만달러를 모금하기로 하였고, 공사는 2003년에 완공되었다.[31]

방지턱 이름은 《빛의 베일》 (Luminous Veil)로 지어졌다. 건축가 데렉 레빙턴과 홀크로우 욜스의 공학자들이 설계한 이 방지턱은 9천 개가 넘는 5m 높이의 강철봉이 12.7cm 간격으로 외팔보 거더로 연결하였다.[32] 장력 구조는 분석하기가 힘들고 토론토 대학교에서 여러 차례 장력 검사를 거쳐야 했다. 처음에는 비용 문제로 다리 상부에 조명을 설치하지 못했고, 이는 2015년 7월에 설치되었다.[33] 《빛의 베일》은 1999년에 캐나다 건축가 우수상을 수상하였다.[34]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가교에 설치된 자살 방지턱으로 고가교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방지했지만, 토론토 내 자살률은 이 구조물이 지어진 이후 바뀌지 않았다.[30] 하지만 2017년에 발표된 같은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방지턱이 설치되면서 토론토 내 투신 자살이 줄었고, 이와 동시에 다른 수단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발표했다.[35]

5. 대중 문화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여러 영화, 문학, 음악 작품에 등장했다. 특히 이 다리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 2 (2004) 촬영을 위해 사흘 동안 폐쇄되었으며, 영화 속에서 라쿤 시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묘사되었다.[20]

5. 1. 영화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다음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였다.

이 다리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 2 (2004) 촬영을 위해 사흘 동안 폐쇄되었으며, 영화 속에서 이 다리는 라쿤 시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묘사되었다.[20]

5. 2. 문학, 희극, 출판작

다음은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가 나오는 작품이다.

  • 론 셰피, 《가브리엘의 주방에서》 (2006)
  • 마이클 온다체, 《사자의 가죽 속에서》 (1987)
  • 로버트 J. 소여, 《플래시포워드》 (1999)

5. 3. 음악

베어네이키드 레이디스의 〈War on Drugs〉 (2003), 브루스 콕번의 〈Anything Can Happen〉 (1988), 콘스탄틴스의 〈National Hum〉 (2003)에서 이 다리가 언급되었다.[27]

5. 4. TV

Dog Days|도그 데이즈|영어

참조

[1] 웹사이트 Historic Bridges: Toronto City, Ontario https://historicbrid[...]
[2] 웹사이트 Historic Bridges: Toronto City, Ontario https://historicbrid[...]
[3] 논문 Into the twentieth century — Two Toronto bridges
[4] Flickr Photo of westbound traffic https://www.flickr.c[...]
[5] 뉴스 Toronto Prepares For A Million People, Carries All Bylaws, Bloor Street Viaduct Will Be Built Toronto World 1913-01-02
[6] 문서 Building Storeys — The Canada Linseed Oil Mills buildings & Sorauren Park http://spacing.ca/to[...] Spacing Toronto
[7] 뉴스 Suicides tarnish the Golden Gate http://usatoday30.us[...] Gannett 2014-03-16
[8] 뉴스 A barrier to hopeless souls https://www.baltimor[...] Tribune Company 2014-03-16
[9] 뉴스 Tumbles From Viaduct, Boy Hits Mud, Unhurt 1957-06-03
[10] 웹사이트 The other side of suicide https://www.onsceneb[...] 2024-01-26
[11] 문서 Mental Health Promotion: Overcoming the challenges to 'focusing upstream' http://www.ohpe.ca/i[...] Ontario Health Promotion E-Bulletin
[12] 뉴스 Do barriers around bridges prevent suicides? https://www.ctvnews.[...] CTV News
[13] 웹사이트 NOW: Where spirits live, May 8 - 14, 2003 http://www.nowtor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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