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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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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87년 설립된 여성 권익 신장을 목표로 하는 단체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전두환 군사 정권에 반대하며 여성의 권익과 사회 구조 변혁을 위해 노력했다. 성폭력 특별법 제정, 여성 후보 발굴 및 지원, 양성평등 사회 실현 등을 위해 활동했으며, 7개 지부와 28개 회원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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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기본 정보
이름한국여성단체연합
원어 명칭한국여성단체연합
설립일1987년
위치서울특별시
유형비정부 기구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조직
활동 지역대한민국
회원여성 단체
기타
약칭여연

2. 연혁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했다.[3][4] 1987년 2월, 좌파 성향의 노동계열 여성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설립하였다. 여기에는 블루칼라 노동자, 사무직원, 전문직 여성, 주부, 대학생, 농촌 여성, 도시 빈민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했다.[5]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민중 운동 및 국가 민주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었다.[6]

초창기에는 평생 동안의 동등한 일자리, 모성 보호, 성폭력을 인권 침해로 간주, 여성 평화주의 등 불평등에 맞선 몇 가지 중요한 영역에 집중하며 여성 권익 신장에 힘썼다.[12] 처음에는 여성민주사회,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신문(현 여성뉴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천주교농민여성회 등 21개 단체가 모여 결성했다.[7][8]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전두환 군사 정권에 직접적으로 반대했고,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판단한 이 세력에 맞서 싸웠다.[9] 당시 한국의 다른 여성 단체들과 달리, 전두환 정권의 억압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7] 민중 운동은 결국 직선제를 이끌어냈고 전두환 대통령의 사퇴로 이어졌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참여하여 성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9] 또한, 산하 단체들이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단체를 대신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지도자 훈련을 조직했다.[10]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 노력했다.[5] 출산휴가, 보육 문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6] 모성 보호의 재평가를 요구하고, 모성 보호가 노동 문제임을 대중에게 설득하여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다.[12] 1992년 4월에는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여,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포함한 성폭력 대책에 대한 실질적인 제안"을 발표하도록 이끌었다.[11]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이 기간 대통령 선거에 맞춰 우려하는 여성들의 연합체를 구성하여 대통령 후보들이 성폭력 방지법 제정을 공약에 포함하도록 촉구했다.[12] "성차별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개정, "영유아보육법" 제정, 생리휴가 폐지 반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 반대 등을 옹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2]

1990년대 중반에는 여성 운동이 사회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통해 의제를 추진하는 데 주력했다. 1994년에는 목표를 약간 수정하여 여성 단체 간의 협력을 증진하고 연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이 시기에는 여성 복지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목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여성의 권익과 이익을 증진하는 법률 및 제도의 통과 및 개선을 위한 로비, 여성 복지 및 여성 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 시행, 국가 통일을 증진하는 특정 프로그램 옹호 등의 전략을 사용했다.[12]

1995년까지 여성 후보를 발굴하고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정치 참여를 크게 증진시켰으며, 이 해에 여성 후보 17명 중 14명이 당선되었다.[3] 1996년 법인허가(보건복지부 등록)를 받았다.[5]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 역량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새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에는 "양성평등 사회 실현"과 "호주제 폐지"가 포함되었다.[13] 노무현 정부는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주목했고, 중요한 정부 직책에 임명할 후보자를 물색할 때 주요 지원 단체들로부터 자주 인재를 영입했다.[13]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이었던 지은희는 정부에 합류하기 위해 사퇴하고 결국 여성부 장관이 되었다.[13] 이 임명을 통해 지은희는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적극적인 회원들과 긴밀히 협의하여 여성주의적 어젠다를 실행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회장인 한명숙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것을 들 수 있다.[13]

2. 1. 창립 이전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했다.[4] 1987년 2월, 권인숙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성폭행 혐의를 계기로, 좌파 성향의 노동계열 여성 운동가들이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3][4] 여기에는 블루칼라 노동자, 사무직원, 전문직 여성, 주부, 대학생, 농촌 여성, 도시 빈민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했다.[5]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민중 운동과 국가 민주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었다.[6]

초창기에는 여성민주사회,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신문,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천주교농민여성회 등 21개 단체가 모여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7][8] 이들은 여성 권익 신장에 중점을 두었으며, 평생 동안의 동등한 일자리, 모성 보호, 성폭력을 인권 침해로 간주, 여성 평화주의 등 불평등에 맞선 몇 가지 중요한 영역에 집중했다.[12]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전두환 군사 정권에 직접적으로 반대했고,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판단한 이 세력에 맞서 싸웠다.[9] 당시 한국의 다른 여성 단체들과 달리, 전두환 정권의 억압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7] 민중 운동은 결국 직선제를 이끌어냈고 전두환 대통령의 사퇴로 이어졌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참여하여 성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9]

2. 2. 창립 이후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했다.[3][4] 1987년 2월, 좌파 성향의 노동계열 여성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설립하였다. 여기에는 블루칼라 노동자, 사무직원, 전문직 여성, 주부, 대학생, 농촌 여성, 도시 빈민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했다.[5]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민중 운동 및 국가 민주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었다.[6]

초창기에는 평생 동안의 동등한 일자리, 모성 보호, 성폭력을 인권 침해로 간주, 여성 평화주의 등 불평등에 맞선 몇 가지 중요한 영역에 집중하며 여성 권익 신장에 힘썼다.[12] 처음에는 여성민주사회,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신문(현 여성뉴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천주교농민여성회 등 21개 단체가 모여 결성했다.[7][8]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전두환 군사 정권에 직접적으로 반대했고,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판단한 이 세력에 맞서 싸웠다.[9] 당시 한국의 다른 여성 단체들과 달리, 전두환 정권의 억압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7] 민중 운동은 결국 직선제를 이끌어냈고 전두환 대통령의 사퇴로 이어졌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참여하여 성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9] 또한, 산하 단체들이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단체를 대신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지도자 훈련을 조직했다.[10]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 노력했다.[5] 출산휴가, 보육 문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6] 모성 보호의 재평가를 요구하고, 모성 보호가 노동 문제임을 대중에게 설득하여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다.[12] 1992년 4월에는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여,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포함한 성폭력 대책에 대한 실질적인 제안"을 발표하도록 이끌었다.[11]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이 기간 대통령 선거에 맞춰 우려하는 여성들의 연합체를 구성하여 대통령 후보들이 성폭력 방지법 제정을 공약에 포함하도록 촉구했다.[12] "성차별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개정, "영유아보육법" 제정, 생리휴가 폐지 반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 반대 등을 옹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2]

1990년대 중반에는 여성 운동이 사회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통해 의제를 추진하는 데 주력했다. 1994년에는 목표를 약간 수정하여 여성 단체 간의 협력을 증진하고 연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이 시기에는 여성 복지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목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여성의 권익과 이익을 증진하는 법률 및 제도의 통과 및 개선을 위한 로비, 여성 복지 및 여성 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 시행, 국가 통일을 증진하는 특정 프로그램 옹호 등의 전략을 사용했다.[12]

1995년까지 여성 후보를 발굴하고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정치 참여를 크게 증진시켰으며, 이 해에 여성 후보 17명 중 14명이 당선되었다.[3] 1996년 법인허가(보건복지부 등록)를 받았다.[5]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 역량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새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에는 "양성평등 사회 실현"과 "호주제 폐지"가 포함되었다.[13] 노무현 정부는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주목했고, 중요한 정부 직책에 임명할 후보자를 물색할 때 주요 지원 단체들로부터 자주 인재를 영입했다.[13]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이었던 지은희는 정부에 합류하기 위해 사퇴하고 결국 여성부 장관이 되었다.[13] 이 임명을 통해 지은희는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적극적인 회원들과 긴밀히 협의하여 여성주의적 어젠다를 실행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회장인 한명숙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것을 들 수 있다.[13]

3. 주요 사업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가부장적 의식과 관행을 개혁하는 활동을 한다. 또한 여성의 인권 증진, 여성 고용 촉진 및 평등 고용, 일과 생활 양립을 위한 제도와 의식 개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성 복지 및 여성 건강권 확충, 보육과 교육의 공공성 확대 요구, 풀뿌리 여성운동 확산을 위한 지원 활동도 주요 사업이다. 더불어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통일을 위한 여성의 역할 증진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4. 조직

한국여성단체연합은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되어 있는 연합조직이다.(2012년 3월 기준) 주요 의사결정은 이사회와 임원회의를 통해 이뤄지며 이사회는 전국 7개 지부 28개 단체의 대표자들로, 임원 회의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대 대표는 다음과 같다.


  • 제1대 이우정
  • 제2대 이이효재
  • 제3대 조화순
  • 제4대 한명숙, 이영순, 이미경
  • 제5대 지하은희, 한명희
  • 제6대 지하은희, 신혜수, 이오경숙
  • 제7대 정현백, 남윤인순, 이강실
  • 제8대 남윤인순, 박영미, 정현백
  • 제9대 남윤인순, 박영미
  • 제10대 권미혁, 김경희, 김금옥
  • 제11대 김금옥, 정문자: 2014년 1월에 취임하였으며 임기는 3년이다.
  • 제12대 백미순, 김영순, 최은순
  • 제13대 김민문정

4. 1. 역대 대표

역대 대표는 다음과 같다.

  • 제1대 이우정
  • 제2대 이이효재
  • 제3대 조화순
  • 제4대 한명숙, 이영순, 이미경
  • 제5대 지하은희, 한명희
  • 제6대 지하은희, 신혜수, 이오경숙
  • 제7대 정현백, 남윤인순, 이강실
  • 제8대 남윤인순, 박영미, 정현백
  • 제9대 남윤인순, 박영미
  • 제10대 권미혁, 김경희, 김금옥
  • 제11대 김금옥, 정문자: 2014년 1월에 취임하였으며 임기는 3년이다.
  • 제12대 백미순, 김영순, 최은순
  • 제13대 김민문정

5. 관련 행사

5. 1. 3.8 세계 여성의 날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펼쳤다.[18] 그 이후 매년 3월 8일, 각 국에서 이를 기념하며 행사를 개최하였다.[18] 대한민국에서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1985년부터 매년 개최하였고,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 이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였다.[18]

6. 사건 및 논란

6. 1. 군 복무 학점제 반대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군 복무를 마친 대학생들에게 학점을 인정해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대표 백미순)은 군 복무 학점제가 여성이나 장애인 등 제대군인이 아닌 사람을 차별하는 정책이며,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대학을 다니지 않는 제대군인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여져야 한다며 반대했다.[19]

6. 2.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논란

7. 같이 보기

참조

[1] 논문 Minjung feminism: Korean women's movement for gender and class liberation 1995-07-01
[2] 서적 Women's Movements in Asia: Feminisms and Transnational Activism Routledge
[3] 서적 Korea's Democratization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4] 서적 Routledg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Women: Global Women's Issues and Knowledge Routledge
[5] 서적 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Duke University Press
[6] 논문 Gender Politics in Transition to Democracy https://web.archive.[...] 2015-11-04
[7] 서적 Korean Society: Civil Society, Democracy and the State Routledge
[8] 서적 Women of Japan & Korea: Continuity and Change Temple University Press
[9] 서적 East Asian Social Movements: Power, Protest, and Change in a Dynamic Region https://books.google[...] Springer 2019-10-18
[10] 서적 Gender Division of Labor in Korea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11] 논문 Women's Organizations Taking Action Against Sexual Violence http://search.ebscoh[...] 2015-11-02
[12] 웹사이트 A Frame Analysis of Women's Policies of Korean Government and Women's Movements in the 1980s and 1990s https://www.ekoreajo[...] 2019-10-18
[13] 서적 Women's Movements in Asia: Feminisms and Transnational Activism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9-10-25
[14] 뉴스 女聯, 5공청산 촉구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0-01-19
[15] 뉴스 “여성정치교육 지속·체계화하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해야” https://news.naver.c[...] 서울신문 2014-07-10
[16] 뉴스 이대, 아시아-아프리카 여성인재 양성 'EGEP' 오픈포럼 개막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4-07-03
[17] 뉴스 여성미래센터 개관 4주년 기념 행사 개최 https://news.naver.c[...] 여성신문 2014-06-07
[18] 뉴스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0-03-08
[19] 뉴스 [인터뷰] 백미순 "군복무 학점제는 여성 차별, 보상 책임 떠넘겨" http://www.cpbc.co.k[...] 가톨릭평화방송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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