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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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은 조선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의 삶과 관련된 서산서원, 채미정, 원동재를 포함하는 유적이다. 서산서원은 조려를 비롯한 생육신 6인을 제향하기 위해 1703년에 창립되었으며, 1713년 사액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81년 복원되었다. 채미정은 조려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로 전해진다. 원동재는 서산서원의 원래 터로 추정되며, 현재의 서원은 원래 터와 가까운 곳에 복원되었다. 함안군은 생육신 조려의 삶을 기리고자 서산서원, 채미정, 원동재를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으로 지정하여 문화재자료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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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이름 |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 |
| 한자 표기 | 咸安 生六臣 趙旅 遺蹟 |
| 유형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 590 |
| 지정일 | 2015년 3월 19일 |
|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37-1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353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345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자 | 함안조씨 정절공 종중 외 (사단법인 서산서원) |
| 면적 | 7,279m² |
| 문화재청 ID | 31,05900000,38 |
2. 서산서원
1703년(숙종 29년)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 등이 생육신인 조려, 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를 제향하기 위해 창립한 서원이다.[2] 단종 선위에 즈음하여 절의를 지킨 조려가 은둔하였던 백이산 아래에 영남 유림들이 생육신들의 충절을 기리고 덕을 숭모하고자 세웠다. 서원 동쪽에 백이산이 있고 여섯 선생의 절의가 백이, 숙제에 비견된다는 의미에서 서산서원으로 이름 지어졌다.[3]
2. 1. 사액과 훼철, 복원
1713년(숙종 39년) 국가에서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1871년(고종 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2] 그 후 조려의 후손들이 1981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2]2. 2. 향례
조려를 포함한 생육신의 충절과 절개를 기리고 덕을 숭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산서원에서는 생육신 모두를 배향하고 있다.[2] 현재까지 매년 음력 9월 9일 국천제 향례를 지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2]3. 채미정
조선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가 세조의 왕위 찬탈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라고 전하며, 채미정 현판 오른편에 '백세'(百世), 왼편에 '청풍'(淸風)이란 현판이 있다.
4. 원동재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의 서산서원 원래 터는 지금의 쌍절각 좌측 뒤편 대나무 밭을 포함한 군북 원북길 12의 원동재로 추정되며, 현재의 규모보다는 작았고 부속 공간으로 채미정을 추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2]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된 원래 터에는 이후 민가가 들어서고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981년 원래 터와 가까운 현재의 위치에 서원을 이전, 복원했다.[2]
5. 문화재 지정 사유
함안 출신 생육신인 조려의 삶과 관련이 있고, 조려를 포함한 생육신에 대한 제사(祭祀)가 지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는 건물이므로, 조려와 관련된 서산서원, 채미정, 원래 서산서원 터인 원동재를 포함하여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으로 지정, 보존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후세들에게 생육신의 역사적 삶이 교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존하고자 한다.[1]
참조
[1]
간행물
경상남도 문화재 지정 고시
경상남도지사
2015-03-19
[2]
뉴스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 경남도 문화재 지정
https://web.archive.[...]
2014-12-02
[3]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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