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더즈필드 타운 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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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더즈필드 타운 AFC는 1908년 창단된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1920년대 풋볼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최초의 클럽이다. 1921-22 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1923-24, 1924-25, 1925-26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우승했다. 1994년 커클리스 스타디움으로 홈 구장을 옮겼고, 2016-17 시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45년 만에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했으나, 2018-19 시즌 강등되었다. 주요 라이벌로는 브래드포드 시티 AFC와 리즈 유나이티드 FC가 있으며, 현재는 마이클 더프가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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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더즈필드 타운 A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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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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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명칭 | 허더즈필드 타운 어소시에이션 풋볼 클럽 |
별칭 | 더 테리어스 (테리어) |
창단 | 1908년 8월 15일 |
홈구장 | 존 스미스즈 스타디움 |
수용 인원 | 24,121명 |
구단주 | 케빈 M. 네이글 |
감독 | 마이클 더프 |
현재 시즌 정보 | |
리그 | EFL 리그 1 |
시즌 | 2024-25 시즌 |
지난 시즌 순위 | 23위 (2023-24) (강등) |
기타 정보 | |
웹사이트 | htafc.com |
2. 역사
허더즈필드 타운은 1908년 8월 15일에 창단되었다.[150] 1920년대 허버트 채프먼 감독 아래 황금기를 누렸으며, 1926년에는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1부 리그 3연속 우승(1923–24, 1924–25, 1925–26 시즌)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2024년 맨체스터 시티가 경신하기 전까지 유일했으며, 그 사이 아스널,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회)가 타이기록을 세웠다.[145] 또한 1922년 FA컵 우승을 포함하여 총 5번의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빌 샹클리 감독 아래 데니스 로, 레이 윌슨과 같은 유망주들이 활약했지만, 이후 클럽은 부침을 겪으며 여러 차례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2017년, 데이비드 와그너 감독의 지휘 아래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45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했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79][151] 이 승격으로 허더즈필드는 블랙풀에 이어 잉글랜드 1~3부 리그의 모든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한 두 번째 팀이 되었다.[79]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인 2017-18 시즌에는 잔류에 성공했으나, 다음 시즌인 2018-19 시즌에는 부진 끝에 강등되었다.[152] 이후 챔피언십에서도 어려움을 겪다가 2023-24 시즌에는 리그 1(3부 리그)로 다시 강등되었다.[155]
클럽의 주요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122][146]
'''리그'''
리그 | 구분 | 우승/승격 연도 | 준우승 연도 |
---|---|---|---|
1부 리그 (1부) | 우승 | 1923–24, 1924–25, 1925–26 | 1926–27, 1927–28, 1933–34 |
2부 리그 / 챔피언십 (2부) | 우승 | 1969–70 | - |
2위 승격 | 1919–20, 1952–53 | - | |
플레이오프 우승 | 2017 | - | |
3부 리그 / 2부 리그 / 리그 1 (3부) | 3위 승격 | 1982–83 | - |
플레이오프 우승 | 1995, 2012 | - | |
4부 리그 / 3부 리그 (4부) | 우승 | 1979–80 | - |
플레이오프 우승 | 2004 | - |
'''컵'''
대회 | 우승 연도 | 준우승 연도 |
---|---|---|
FA컵 | 1921–22 | 1919–20, 1927–28, 1929–30, 1937–38 |
FA 채리티 실드 | 1922 | - |
풋볼 리그 트로피 | - | 1993–94 |
2. 1. 초기 역사와 황금기 (1908–1945)
클럽은 1908년에 창단되었다.[2] 창립자들은 리즈 로드에 500GBP에 부지를 매입하고 노스 이스턴 리그에 참가했다. 다음 시즌에는 이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들랜드 풋볼 리그에 참가했다.[120] 풋볼 리그 진출을 위해, 클럽은 스코틀랜드 건축가 아치볼드 레이치를 초청하여 리즈 로드를 재건했다. 4,000석 규모의 스탠드와 34,000명 수용 규모를 위한 테라스 건설이 계획되었다. 계획 승인 후 허더즈필드 이사들은 1910년에 풋볼 리그 회원 자격을 성공적으로 신청했고, 리즈 로드 개발이 즉시 시작되었다.[3] 하지만 개발 비용 부담으로 관중 수가 7,000명 이하로 떨어졌고, 허더즈필드는 1912년에 청산되었다. 이후 클럽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새로운 유한 회사가 설립되었다.[120]1919년 허더즈필드 타운은 2.5만파운드의 부채를 안고 있었고, 관중 수는 약 3,000명으로 감소했다. 당시 회장 존 힐튼 크로더는 클럽을 신생 리즈 유나이티드와 합병하고 연고지를 리즈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120] 이 소식은 서포터들을 자극하여 이전을 막기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하게 했다. 1GBP짜리 주식이 발행되어 클럽은 공개 소유로 전환되었다. 한 달간의 자금 확보와 협상 끝에 클럽은 허더즈필드에 남게 되었다.[9] 그 후 팀은 1920 FA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승격하여 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로 올라섰다.[122]
최상위 리그에서의 첫 시즌인 1920-21 시즌 동안, 전 리즈 시티 감독이었던 허버트 채프먼이 엠브로스 랭리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허더즈필드는 그의 출전 금지 조치를 뒤집는 데 도움을 주었다).[4] 채프먼은 1921년 3월 랭리를 대신하여 감독이 되었고[5] 팀을 17위로 이끌었다.[6] 1921년 여름, 플레이메이커 클렘 스티븐슨과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는 조지 브라운을 영입했다.[9] 채프먼은 혁신적인 전술과 시스템을 도입했다.
- 강력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바탕으로 한 전술[7] (역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8])
- 빠르고 짧은 패스와 윙어들의 현란한 돌파 강조[7]
- 선수들을 위한 규율 있는 체력 관리[9]
- 리저브 팀과 유소년 팀이 시니어 팀과 동일한 스타일로 경기하는 시스템 구축[9]
- 전술 시스템에 맞는 선수를 찾기 위한 광범위한 스카우트 네트워크 활용[10]

이러한 혁신을 바탕으로 팀은 1922 FA컵 결승전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1-0으로 꺾고 클럽 역사상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122] 허더즈필드는 또한 1922 FA 채리티 실드에서 리버풀을 1-0으로 꺾고 우승했다.[11] 1922-23 시즌 3위를 기록한 후, 1923-24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첫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122] 카디프 시티와 승점 57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차에서 0.024의 근소한 차이로 극적인 우승을 확정했다. 허더즈필드는 마지막 경기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3-0으로 이겼고, 카디프는 버밍엄 시티와 0-0으로 비기며 페널티킥을 실축했다.[13]
팀은 1924-25 시즌에도 마지막 27번의 리그 경기에서 단 한 번만 패하며 1부 리그 타이틀을 방어했다.[14][15] 이 시즌 허더즈필드는 단 28골만 허용했으며, 경기당 2골 이상을 허용한 적이 없는 기록을 세웠다.[14][16] 1924년 10월에는 빌리 스미스가 코너킥에서 직접 골을 넣은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되는 기록도 세웠다.[17]
연이은 리그 우승 후, 채프먼은 더 많은 관중을 보유하고 급여를 두 배로 제안한 아스널로 떠났다.[18] 그의 후임으로 세실 포터가 영입되었다. 포터 감독 아래에서 타운은 1925-26 시즌에 3회 연속 잉글리시 리그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클럽이 되었다.[19] 팀은 다음 시즌 4연속 우승에 근접했지만 마지막 7경기 중 한 경기만 승리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우승을 내주고 준우승에 머물렀다.[20][21] 타운은 1927-28 시즌에 리그 준우승과 FA컵 결승전 패배를 기록하며 "잘못된 더블"을 달성했다.[122]
1928년 3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국제 경기에는 5명의 허더즈필드 타운 선수가 출전했다.
- '''잉글랜드 대표''': 톰 윌슨, 밥 켈리, 빌리 스미스, 로이 굿올
- '''스코틀랜드 대표''': 알렉스 잭슨
이 경기에서 잭슨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스코틀랜드의 5-1 승리를 이끌었고, 이 스코틀랜드 팀은 이후 "웸블리 위저즈"라는 별명을 얻었다.[22]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단이 노쇠화하면서 점차 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9] 리그 순위는 하락했지만, 1933-34 시즌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새로운 감독 클렘 스티븐슨 아래에서 FA컵 결승전에 두 번 더 진출했다.[5][122] 타운은 1930년에는 채프먼이 이끄는 아스널에 패했고,[23] 1938년에는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 연장전 끝에 패했다. 이 1938년 결승전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최초의 FA컵 결승전이었다.[24] 1932년 아스널과의 FA컵 6라운드 경기에서는 67,037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클럽 역사상 최다 홈 관중 기록을 세웠다.[25]
2. 2. 몰락과 재기 (1945–1992)

허더즈필드 타운은 1951-52 시즌에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에서 강등되었다.[122] 스톡포트 카운티의 감독이었던 앤디 비티가 1952년 4월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같은 달에 스톡포트와 허더즈필드를 동시에 지휘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비티는 행운의 상징으로 자신의 사무실 벽에 말굽 두 개를 걸어두었다고 한다.[26] 그의 지휘 아래 팀은 1952-53 시즌 세컨드 디비전에서 2위를 차지하며 한 시즌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했다.[27] 복귀 첫 시즌에는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28] 그러나 1955-56 시즌에 다시 강등되었고, 비티 감독은 1956년 11월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훗날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이 되는 빌 샹클리가 부임했다.[26] 샹클리 재임 중이던 1957년 12월, 찰턴 애슬레틱과의 원정 경기에서 경기 종료 30분을 남기고 5-1로 크게 앞서다가 7-6으로 역전패하는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29] 샹클리는 1959년 12월 리버풀 감독직을 맡기 위해 팀을 떠났다.[30]
1961년, 홈 구장인 리즈 로드에 조명탑이 설치되었다. 이는 팀의 유망주였던 데니스 로를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시키면서 받은 당시 영국 최고 이적료인 5.5만파운드로 비용을 마련했으며, 팬들은 이 조명탑을 "데니스 로 라이트(Denis Law Lights)"라고 불렀다.[31]
허더즈필드는 1960년대 내내 2부 리그에 머물렀다.[122] 1967-68 시즌에는 리그 컵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스널에게 합계 점수에서 밀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32] 1969년, 클럽은 공식적으로 "더 테리어스(The Terriers)"라는 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20] 이안 그리브스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은 1969-70 시즌에 세컨드 디비전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했다.[33]
1부 리그 복귀 첫 시즌에는 잔류에 성공했지만, 1971-72 시즌에 다시 강등되었다. 이어 다음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서드 디비전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122] 하락세는 멈추지 않아 1974-75 시즌에는 포스 디비전까지 떨어졌다.[122] 이 시즌 중인 1974년 2월 8일, 로이드 메이틀랜드가 헤리퍼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르며 허더즈필드 타운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다.[34]
1975년, 과거 팀을 이끌었던 톰 존스턴이 총지배인으로 클럽에 복귀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자신이 도입했던 파란색 유니폼을 다시 팀의 상징으로 삼았다. 존스턴은 1975년 12월 바비 콜린스를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1976-77 시즌 도중 존 해슬든으로 교체하고 자신은 총지배인 역할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고, 존스턴은 1977년 9월 해슬든을 경질하고 직접 감독직을 맡았다. 그가 이끈 1977-78 시즌에 팀은 4부 리그 1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클럽 역사상 가장 낮은 리그 순위였다.[122][35]
1978년 믹 벅스턴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36] 허더즈필드는 1979-80 시즌에 101골을 기록하는 막강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포스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37] 다음 시즌에는 아쉽게 승격권 바로 아래 순위를 기록했고,[38] 마침내 1982-83 시즌에 3위를 차지하며 세컨드 디비전으로 승격했다.[39] 그러나 이후 리그 하위권에 머물고 관중 수가 감소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었고, 결국 벅스턴 감독은 1986년 12월 해고되었다.[40] 그의 후임으로는 허더즈필드 출신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정식 감독인 스티브 스미스가 임명되었다.[41] 스미스 감독 체제에서 팀은 첫 시즌 잔류에 성공했지만,[42] 1987-88 시즌에는 단 6승만을 거두고 100골을 실점하며 다시 서드 디비전으로 강등되었다. 특히 이 시즌에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10-1이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43][44]
팀은 1991-92 시즌 서드 디비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승격의 희망을 보았지만, 준결승에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게 합계 점수 4-3으로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45]
2. 3. 새 경기장, 파산 위기,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로의 복귀 (1992–2019)
1992-93 시즌 강등 위기를 넘긴 후, 1993년 닐 워녹 감독이 부임했다. 1994년에는 오랜 홈 구장이었던 리즈 로드를 떠나 새로운 커클리스 스타디움 (현재의 존 스미스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워녹 감독의 지휘 아래 1994-95 시즌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1부 리그(현재의 챔피언십)로 승격했다.[122][146] 이후 브라이언 호튼, 피터 잭슨, 스티브 브루스 등이 감독직을 맡았다. 1999년에는 사업가 배리 루베리가 클럽을 인수하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목표로 삼았으나, 2000-01 시즌 2부 리그(현재의 리그 1)로 강등되었다.2000년대 초반, ITV 디지털의 파산 여파로 클럽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 2003년 켄 데이비가 구단주로 나서 클럽을 행정 관리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고, 피터 잭슨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여 2003-04 시즌 플레이오프를 통해 3부 리그(현재의 리그 1)로 다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122][146]
2009년, 지역 팬 출신인 딘 호일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리 클라크 감독 시절인 2011년에는 리그 43경기 무패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2년에는 사이먼 그레이슨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 1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챔피언십(2부 리그)으로 승격했다.[122][146]
2015년 11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II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와그너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특유의 게겐프레싱 전술을 팀에 이식하며 변화를 이끌었다. 2016-17 시즌 챔피언십에서 5위를 차지한 허더즈필드는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레딩을 꺾고 45년 만에 1부 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으며, 이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승격이었다.[79][151]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첫 시즌인 2017-18 시즌,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16위를 기록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8-19 시즌에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2019년 1월 와그너 감독이 사임하고 얀 지베르트가 후임으로 왔으나 반전은 없었다. 결국 2019년 3월 30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32라운드 경기에서 0-2로 패배하고, 같은 날 사우샘프턴과 번리가 승리하면서 남은 6경기에 상관없이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더비 카운티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강등 기록이었다.[152] 시즌 최종 순위는 20위였다. 이어진 2019-20 시즌 초반에도 부진이 계속되자 2019년 8월 얀 지베르트 감독이 해임되었다.[153]
2. 4. 챔피언십 시절과 두 번의 구단주 교체 (2019–현재)
2019년 5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딘 호일 회장이 사임하고 사업가 필 호지킨슨에게 구단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84] 얀 지베르트 감독은 그 해 9월 링컨 시티의 대니 코울리 감독으로 교체되었고,[85] 코울리 감독은 팀을 챔피언십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시즌 후 해고되었다.[86] 이후 리즈 유나이티드의 수석 코치였던 카를로스 코르베란이 2020년 7월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87]2021-22 시즌, 허더즈필드는 챔피언십에서 3위를 기록하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웸블리에서 열린 2022 EFL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노팅엄 포레스트에 1-0으로 패배하며 승격에는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는 은퇴를 앞둔 조나단 모스 주심이 허더즈필드에게 유리할 수 있었던 두 차례의 페널티킥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특히 잭 콜백과 해리 토폴로 사이의 명백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VAR이 원심을 번복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88]
코르베란 감독은 2022–23 시즌 개막 직전인 2022년 7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며 팀을 떠났다. 같은 달, 가시와 레이솔 출신의 일본 대표팀 수비수 나카야마 유타가 팀에 합류했다. 코르베란의 후임으로는 전 허더즈필드 선수였던 대니 스코필드가 임명되었으나,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10주 만에 경질되었다. 이후 헤르타 BSC 수석 코치 출신 마크 포더링엄이 감독직을 이어받았다.[89] 그러나 포더링엄 역시 4개월 만인 2023년 2월 8일에 해임되었고,[90] 5일 뒤 닐 워녹이 감독으로 선임되며 팀에 복귀했다.[91] 워녹 감독은 존 스미스 스타디움 복귀전이었던 2023년 2월 18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이끌었고, 경기 후 팬들의 환대에 감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92]
2023년 3월 23일, 구단은 2020년에 다시 돌아왔던 딘 호일이 지분 100%를 재확보한 뒤, 신원 미상의 북미 그룹에게 구단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팀은 챔피언십 22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이 거래에는 구단이 행정 처분(법정 관리)을 피할 수 있도록 호일이 약 4000만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하는 조건이 포함되었다.[93] 3월 28일, 인수 주체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도라도 힐스의 투자자이자 USL 챔피언십 팀 새크라멘토 공화국의 구단주인 케빈 M. 네이글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고,[94] 구단 인수는 2023년 6월에 최종 완료되었다.[95]
워녹 감독 체제 하에서 허더즈필드는 2023년 5월 4일, 이미 승격이 확정된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홈에서 1-0으로 꺾고 극적으로 챔피언십 잔류를 확정했다.[96]
하지만 2023–24 시즌에도 팀의 부진은 계속되었다. 2023년 9월, 워녹 감독과 결별하고 대런 무어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으나, 23경기에서 단 3승을 거두는 데 그치며 팀이 강등권 바로 위인 21위에 머무르자 2024년 1월 그를 해고했다.[97] 후임으로는 2024년 2월 15일 안드레 브라이텐라이터가 임명되었다.[98]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반등에 실패하여 시즌을 23위로 마감했고, 결국 리그 원(3부 리그)으로 강등되었다.[99] 시즌 종료 후 브라이텐라이터 감독은 상호 합의 하에 팀을 떠났으며, 마이클 더프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100]
3. 엠블럼 및 유니폼
허더즈필드 타운의 유니폼은 초기에 연어 핑크, 순백색 등 다양한 색상이 고려되었으나, 191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디자인을 채택했다.[120][108] 클럽의 엠블럼은 허더즈필드의 문장을 기반으로 하며,[101] 1920년 FA컵 결승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여러 차례 디자인 변경을 거쳤다.[120] 엠블럼에는 클럽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지역 상징인 요크셔 로즈와 캐슬 힐, 그리고 클럽의 별명인 테리어 등이 시대에 따라 반영되었다.[101][120] 특히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에 디자인 변화가 있었으며, 2019년에 현재 사용되는 형태로 업데이트되었다.[120][107] 같은 해, 스폰서 패디 파워와 관련된 유니폼 디자인 해프닝도 있었다.[105][106]
3. 1. 엠블럼
클럽 배지는 허더즈필드의 문장을 기반으로 한다.[101] 허더즈필드 타운은 1920년 FA컵 결승전에서 허더즈필드 문장을 기반으로 한 배지를 처음 사용했다.[120] 이 배지는 1922년 FA컵 결승전에서 요크셔 로즈와 함께 다시 나타났으며, 1928년, 1930년, 1938년 결승전에서도 사용되었다.[102][103] 클럽의 주요 색상인 파란색과 흰색은 만토와 방패 모두에서 줄무늬 형태로 배지 전체에 나타난다. 두 개의 요크셔 로즈와 캐슬 힐은 클럽과 이 지역의 역사의 일부를 형성한다.[101]타운은 1966년까지 동일한 기본 디자인(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을 유지했으며, 당시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톰 존스턴이 파란색 유니폼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배지도 채택되었는데, 수직 모노그램 "HTFC"가 파란색 유니폼을 장식했다. 1969-70 시즌에 클럽이 "테리어스"라는 별명을 채택했을 때,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가 다시 등장했고, "The Terriers"라는 문구와 함께 빨간색 테리어가 등장하는 배지가 사용되었다.[120]
4부 리그로 강등된 후, 허더즈필드는 1975년 톰 존스턴의 복귀와 함께 파란색 유니폼과 수직 모노그램 문장을 다시 사용했다. 1977-78 시즌에 줄무늬가 다시 등장했으며, 그 이후로 클럽의 홈 유니폼이 되었다. 1980년에 타운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배지로 남아있는 것을 채택했다. 이 배지는 이전 타운 문장의 요소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축구공을 든 테리어와 같은 현대적인 모티프를 결합했다.[120]
2000년에 허더즈필드는 원형 디자인으로 배지를 변경했지만, 이는 팬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곧 문장 스타일의 배지로 돌아갔다.[120] 이 배지는 2005년에 약간의 수정을 통해 더욱 발전했다. 클럽은 텍스트에서 "A.F.C."를 제거하고 "Huddersfield Town"만 남기기로 결정했다. 이는 유니폼과 클럽 상품에 자수를 넣는 문제를 완화하고 인쇄물에 표준적인 모습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104]
클럽은 2018년에 테리어스 로고를 채택했다. 이 로고는 유니폼에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공식 매체와 문서에 계속 나타나는 문장 배지를 대체하지는 않았다.[120]
허더즈필드는 2019년에 문장 스타일의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돌아왔다. 세 개의 별(1920년대의 리그 3연패를 나타냄)은 방패 안으로 이동했으며, 세 개의 별 위에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의 맨 위에 하나의 요크셔 로즈가 배치되었다. 방패는 또한 더 둥근 버전에서 벗어나 현대화되었다. 테리어는 방패 상단에 문장에 통합되었고, 클럽의 창립 날짜는 캐슬 힐 양쪽에 표시되었다.[107]
3. 2. 유니폼
클럽은 수년간 유니폼 색상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거쳤다. 초기에는 연어 핑크, 순백색, 파란색 단색, 파란색 요크가 있는 흰색 유니폼 등 여러 제안이 있었다.[120][108] 결국 1913년, 클럽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을 채택했다.[120]클럽 배지는 허더즈필드의 문장을 기반으로 한다.[101] 허더즈필드 타운은 1920년 FA컵 결승전에서 허더즈필드 문장을 바탕으로 한 배지를 처음 사용했다.[120] 이 배지는 1922년 FA컵 결승전에서 요크셔 로즈와 함께 다시 등장했으며, 1928년, 1930년, 1938년 결승전에서도 사용되었다.[102][103] 클럽의 주 색상인 파란색과 흰색은 배지 전체의 줄무늬 형태로 나타난다. 두 개의 요크셔 로즈와 캐슬 힐은 클럽과 지역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상징한다.[101]
허더즈필드 타운은 1966년까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의 기본 디자인을 유지했다.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톰 존스턴은 파란색 유니폼을 도입했다. 같은 해, 수직 모노그램 "HTFC"가 새겨진 새로운 배지도 채택되었다. 1969-70 시즌, 클럽이 "테리어스(The Terriers)"라는 별명을 채택하면서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이 다시 등장했고, 배지에는 "The Terriers" 문구와 함께 빨간색 테리어가 추가되었다.[120]
4부 리그로 강등된 후, 1975년 톰 존스턴 감독이 복귀하면서 다시 파란색 유니폼과 수직 모노그램 문장을 사용했다. 그러나 1977-78 시즌에 줄무늬 유니폼이 다시 도입되었고, 이후 클럽의 홈 유니폼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에는 현재까지 사용되는 배지의 기본 형태가 채택되었다. 이 배지는 이전 문장의 요소와 파란색 및 흰색 줄무늬, 축구공을 든 테리어와 같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결합했다.[120]
2000년, 허더즈필드는 원형 디자인의 배지를 도입했지만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곧 문장 스타일의 배지로 복귀했다.[120] 2005년에는 배지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유니폼과 상품에 자수를 넣기 용이하게 하고 인쇄물에서 표준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배지 텍스트에서 "A.F.C."를 제거하고 "Huddersfield Town"만 남겼다.[104]
2018년, 클럽은 '테리어스 로고'를 채택했다. 이 로고는 유니폼에만 사용되었으며, 공식 매체나 문서에서는 기존의 문장 배지가 계속 사용되었다.[120] 2019년, 허더즈필드 타운은 패디 파워와 셔츠 후원 계약을 맺고, 미인 선발대회 띠 스타일의 파격적인 대각선 디자인 유니폼을 공개했다. 며칠 후,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클럽에 유니폼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105]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유니폼은 패디 파워가 기획한 장난이었음이 밝혀졌고, 클럽은 "셔츠를 구하자(Save Our Shirt)" 캠페인의 일환으로 스폰서 로고 없이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106]
2019년, 허더즈필드는 문장 스타일 배지의 업데이트된 버전을 공개했다. 1920년대 리그 3연패를 상징하는 세 개의 별이 방패 안으로 이동했고, 그 위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상단에는 하나의 요크셔 로즈가 배치되었다. 방패 모양 역시 기존의 둥근 형태에서 벗어나 현대적으로 다듬어졌다. 테리어는 방패 상단 문장에 통합되었고, 클럽 창립 연도는 캐슬 힐 양쪽에 표시되었다.[107]
기간 | 키트 제조사 | 셔츠 스폰서 (가슴) | 셔츠 스폰서 (소매) |
---|---|---|---|
1975–1979 | 벅타 | 없음 | 없음 |
1979–1982 | Barralan | ||
1982–1984 | 벅타 | Central 미어필드 | |
1984–1986 | 다이하츠 | ||
1986–1987 | Eagle | 드 베르 그룹 | |
1987–1990 | Matchwinner | ||
1990–1991 | Beaver | ||
1991–1993 | 골라 | 골라 | |
1993–1994 | Super League | 웨스트 요크셔의 맥박 (홈) 비레다 (원정) | |
1994–1995 | 웨스트 요크셔의 맥박 | ||
1995–1997 | 파나소닉 | ||
1997–1999 | 포니 인터내셔널 | ||
1999–2001 | 미트르 스포츠 인터내셔널 | ||
2001–2002 | Bloggs | Prime Time Recruitment | |
2002–2003 | VOI | ||
2003–2005 | 애드미럴 스포츠웨어 | ||
2005–2007 | 요크셔 빌딩 소사이어티 | ||
2007–2009 | 미트르 스포츠 인터내셔널 | CasinoRed | |
2009–2010 | 요크셔 에어 앰뷸런스 (홈) Radian B (원정) | ||
2010–2011 | 커크리스 칼리지 (홈) Radian B (원정) | ||
2011–2012 | 엄브로 | ||
2012–2013 | 레코델릭 (홈) Radian B (원정) | ||
2013–2015 | 푸마 | 레코델릭 (홈) Radian B (원정) Covonia (세 번째) | |
2015–2017 | PURE Legal Limited (홈) Radian B (원정) Covonia (세 번째) | ||
2017–2018 | OPE Sports | PURE Legal Limited | |
2018–2019 | 엄브로 | Leisu Sports | |
2019–2020 | 패디 파워 (브랜드 없음) | 없음 | |
2020–2021 | Various local companies/charities | ||
2021–현재 | 유틸리타 에너지 | Jetcoin (FA컵만) |
4. 경기장
허더즈필드 타운은 창단 이후 두 곳의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 리즈 로드 (Leeds Road) (1908–1994)
- 커클리스 스타디움 (Kirklees Stadium) (1994–현재)
앨프리드 맥알파인 스타디움** (Alfred McAlpine Stadium) (1994–2004)
갈팜 스타디움** (Galpharm Stadium) (2004–2012)
존 스미스 스타디움** (John Smith's Stadium) (2012–현재)[121][156]
허더즈필드는 리즈 로드와 커클리스 스타디움 두 곳에서 잉글랜드 축구의 4개 프로 리그 경기를 모두 치른 최초의 팀이다.[122]
5. 서포터 및 라이벌
허더즈필드 타운은 1920년부터 사용된 전통적인 응원가 "Smile A While"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인기곡을 개사한 것이다.[123] 서포터들은 "카우셰드 로열"과 같은 조직적인 그룹을 통해 응원 문화를 이끌고 있다.[124][125][126] 또한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 다양한 국가에 해외 서포터 그룹도 존재한다.[127]
주요 라이벌로는 같은 웨스트 요크셔 지역의 브래드포드 시티와 리즈 유나이티드 FC가 꼽힌다.[131][132] 이들 팀과의 경기는 웨스트 요크셔 더비로 불리며 치열하게 진행된다. 그 외에도 반즐리 FC, 셰필드 웬즈데이 FC, 올덤 애슬레틱 AFC,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등과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132][136]
5. 1. 서포터
1920년부터 허더스필드의 응원가는 "Smile A While"이다. 이 응원가는 허더즈필드 롱우드의 G. W. 채플이 1920년 애스턴 빌라와의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만들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인기곡인 "Till We Meet Again"을 개작한 버전이었다. 채플의 작품은 원래 "타운 응원가"라고 불렸으며, 결승전을 앞두고 타운 서포터들이 불렀다. 이 응원가는 허더스필드 서포터들이 홈 경기에서 여전히 부르고 있다.[123]''응원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팀이 있고,''
''그들의 색깔은 밝은 파란색과 흰색입니다,''
''그들은 명성이 자자한 팀이며, 도시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축구 경기는 그들의 기쁨입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수천 명이 큰 소리로 그들을 응원합니다.''
''종종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누가 타운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러면 종이 즐겁게 울릴 것입니다,''
''모든 골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타운은 경기를 하고, 컵을 가져오세요,''
''허더스필드로 돌아가세요!''
''우리는 요크셔입니다! 우리는 요크셔입니다! 우리는 요크셔입니다!''
("Smile A While" 가사[123])
2014년, 타운 팬들의 모임은 "노스 스탠드 로열"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 목적은 "경기 당일 경기장 주변의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이었으며, 회원들은 "유럽 대륙 및 세계 다른 지역의 팬 그룹에서 영감을 받았다".[124] 2017년에 이 그룹은 "카우셰드 로열"로 이름을 변경했다.[125] 이 그룹은 원정 팬들과 공유하는 사우스 스탠드에 위치해 있다.[126]
클럽에는 또한 호주, 캐나다, 북아일랜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공화국, 싱가포르, 슬로바키아, 미국에 클럽이 있는 다양한 해외 서포터 그룹이 있다.[127] 지난 몇 년 동안 주목할 만한 팬으로는 허더스필드에서 태어난 전 영국 총리 해럴드 윌슨,[128] 2010년 허더즈필드 타운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 경 등이 있다.[129][130]
5. 2. 라이벌
허더스필드 타운의 주요 라이벌은 웨스트 요크셔의 브래드포드 시티와 리즈 유나이티드 FC이다.[131][132] 허더스필드는 브래드포드 시티를 상대로 21승 17무 14패로 더 나은 상대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133]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리즈 시티와의 경기를 포함하면, 허더스필드는 총 90번의 더비 경기에서 36승 20무 34패를 기록했다.[134][135]또한 사우스 요크셔의 반즐리 FC 및 셰필드 웬즈데이 FC와 작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올덤 애슬레틱 AFC와는 장미 전쟁 라이벌 관계에 있다.[132] 1992년과 2011년의 플레이오프 경기, 그리고 2022 EFL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의 논란이 있었던 패배로 인해 케임브리지셔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와도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136]
6. 선수
허더즈필드 타운은 역사적으로 여러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는 허버트 채프먼, 피터 도허티, 데니스 로, 빌 샹클리, 클렘 스테판슨, 레이 윌슨 등이 헌액되었다. 또한 풋볼 리그 100 전설에는 클렘 스테판슨, 피터 도허티, 데니스 로가 선정되었다.
특히 데니스 로는 허더즈필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61년 그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때 발생한 당시 영국 최고 이적료 5.5만파운드는 홈 구장인 리즈 로드의 조명탑 설치 자금으로 사용되어 "데니스 로 라이트"로 불리기도 했다.[31] 빌 샹클리 역시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이후 감독으로서도 클럽에 기여했다.[26][30]
1974-75 시즌에는 로이드 메이틀랜드가 헤리퍼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르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다.[34] 비교적 최근인 2022년에는 가시와 레이솔 출신의 일본 대표팀 수비수 나카야마 유타가 입단하기도 했다.
6. 1. 선수 명단 (2024-25 시즌)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2024년 9월 10일 기준 선수명단.[137][138]번호 | 국적 | 포지션 | 이름 | 비고 |
---|---|---|---|---|
1 | 잉글랜드 | 골키퍼 | 리 니콜스 | |
2 | 덴마크 | 미드필더 | 라세 소렌센 | |
3 | 잉글랜드 | 수비수 | 조쉬 러펄스 | |
4 | 잉글랜드 | 수비수 | 매티 피어슨 | |
5 | 폴란드 | 수비수 | 미할 헬리크 | 부주장 |
6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조나단 호그 | 주장 |
7 | 북아일랜드 | 공격수 | 칼럼 마샬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임대 |
8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벤 와일스 | |
9 | 세르비아 | 공격수 | 보얀 라둘로비치 | |
10 | 시에라리온 | 미드필더 | 조쉬 코로마 | |
11 | 잉글랜드 | 공격수 | 리스 힐리 | |
12 | 웨일스 | 골키퍼 | 크리스 맥스웰 | |
13 | 오스트레일리아 | 골키퍼 | 제이콥 채프먼 | |
14 | 잉글랜드 | 수비수 | 미켈 밀러 | |
15 | 잉글랜드 | 수비수 | 자헤임 헤들리 | |
16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허비 케인 | |
17 | 북아일랜드 | 수비수 | 브로디 스펜서 | |
18 | 나이지리아 | 미드필더 | 데이비드 카수무 | |
19 | 잉글랜드 | 공격수 | 프레디 라다포 | |
20 | 잉글랜드 | 수비수 | 올리 터턴 | |
21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안토니 에반스 | |
23 | 네덜란드 | 수비수 | 나이젤 론윅 |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임대 |
24 | 수리남 | 수비수 | 라디니오 발커 | |
25 | 잉글랜드 | 공격수 | 대니 워드 | |
28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톰 이오르펜다 | |
32 | 잉글랜드 | 수비수 | 톰 리스 | |
41 | 아일랜드 | 미드필더 | 조 호지 |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임대 |
=== 임대 선수 명단 ===
번호 | 국적 | 포지션 | 이름 | 임대 구단 | 임대 기간 |
---|---|---|---|---|---|
22 | 잉글랜드 | 공격수 | 키안 해럿 | 플리트우드 타운 | 2025년 6월 30일까지 |
-- | 잉글랜드 | 수비수 | 네오 에클스턴 | 배로우 | 2025년 6월 30일까지 |
-- | 잉글랜드 | 공격수 | 키어런 필립스 | 새크라멘토 리퍼블릭 | 2024년 11월 1일까지 |
-- | 웨일스 | 미드필더 | 소르바 토마스 | FC 낭트 | 2025년 6월 30일까지 |
=== B팀 선수 명단 ===
2024년 9월 8일 기준[139]
번호 | 국적 | 포지션 | 이름 |
---|---|---|---|
35 | 잉글랜드 | 골키퍼 | 프랜시스 헐 |
잉글랜드 | 수비수 | 루크 데일리 | |
잉글랜드 | 수비수 | 찰리 놀스 | |
33 | 잉글랜드 | 수비수 | 오마리 미리쇼 |
아일랜드 | 수비수 | 아론 오레일리 | |
네덜란드 | 수비수 | 에코 솔로몬 | |
34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카메론 아시아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스콧 하이 |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시안 필포트 |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마이클 스톤 | |
36 | 잉글랜드 | 미드필더 | 다니엘 보스트 |
폴란드 | 공격수 | 자크 애보트 | |
잉글랜드 | 공격수 | 포페폴루와 데루 | |
북아일랜드 | 공격수 | 코너 폴스 | |
37 | 잉글랜드 | 공격수 | 피터 토마스 |
7. 클럽 운영진
허더즈필드 타운은 여러 차례 소유주 변경을 겪었다. 1999년 지역 사업가 배리 루베리가 클럽을 인수했으나,[55] 재정난을 겪으며 2003년 관리 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켄 데이비가 클럽을 인수하며 청산 위기에서 구했다.[62] 2009년에는 딘 호일이 회장이자 최대 주주가 되었다.[68]
딘 호일은 2019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필 호지킨슨에게 클럽 매각을 발표했으나,[84] 이후 2023년 다시 클럽 지분 100%를 확보한 뒤 북미 투자 그룹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호일은 클럽의 부채 약 4000만파운드를 탕감했다.[93] 새로운 구단주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투자자이자 USL 챔피언십 새크라멘토 공화국의 소유주인 케빈 M. 네이글로 밝혀졌으며,[94] 인수는 2023년 6월에 완료되었다.[95] 현재 클럽의 주요 임원 및 코칭 스태프 구성은 다음 하위 섹션에 기술되어 있다.
7. 1. 클럽 임원
직책 | 이름 |
---|---|
회장 | 케빈 M. 네이글 |
이사 | 마이클 토마스 |
최고 경영자 | 제이크 에드워즈 |
최고 운영 책임자 | 데이비드 스레팔-사이크스 |
7. 2. 1군 코칭 스태프
크레이그 세지윅비키 스티븐스
매튜 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