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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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어 사용 작가로,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바나트 지역에서 태어나 루마니아 공산 정권의 억압과 감시를 경험했으며, 작품을 통해 독재 체제의 폭력, 개인의 소외, 기억과 언어의 문제를 다루었다. 1987년 서독으로 망명하여 작가 활동을 이어갔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푸른 자두의 땅』, 『굶주린 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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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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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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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헤르타 뮐러 |
원어 이름 | Herta Müller |
로마자 표기 | Hereuta Myulleo |
출생일 | 1953년 8월 17일 |
출생지 | 니츠키도르프, 티미슈 주,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
국적 | 루마니아, 독일 |
직업 | 소설가, 시인 |
경력 | |
활동 기간 | 1982년–현재 |
모교 | 티미쇼아라 서부 대학교 |
작품 | |
주요 작품 | 나디르 여권 녹색 자두의 땅 약속 배고픈 천사 |
수상 | |
수상 내역 | 클라이스트 상 (1994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1998년) 프란츠 베르펠 인권상 (2009년) 노벨 문학상 (2009년) |
기타 | |
웹사이트 | 헤르타 뮐러 공식 웹사이트 |
2. 생애
티미쇼아라 대학교에서 독일어학과 루마니아 문학을 전공하고 금속 공장에서 기술 번역가로 일했다.[7] 그러나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비밀경찰 세쿠리타테의 협조를 거부하여 직장을 잃었다.[14] 이후 유치원 임시 교사와 독일어 개인 교사를 하며 생활하다가 1982년 단편집 『침묵』으로 작가로 데뷔했다.[14] 『침묵』은 검열을 받았지만, 후에 서독에서 미검열본이 발표되어 높이 평가받았다.
1984년 체제 비판으로 출판 활동이 금지되었고, 1987년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서독으로 망명하여 대학 강사를 하며 작가 활동을 계속했다.[14] 유럽 문학상(1995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1998년), 베를린 문학상(2005년), 노벨 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46]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모옌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모옌은 (중국 정부의) 검열을 칭찬하고 있으며, 수상 결정은 파멸적이다”라고 비판했다.[44][45]
2. 1. 성장 배경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족인 바나트 슈바벤인으로, 바나트 지방에서 태어났다.[3] 그녀의 할아버지는 부유한 농부이자 상인이었지만, 루마니아 공산 정권 하에서 재산을 몰수당했다.[2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수년간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4][5] 무장친위대(Waffen-SS)의 제10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10. SS-Panzer-Division Frundsberg) 군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 후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20]2. 2. 청년기와 비밀정보기관과의 갈등
1960년부터 1968년까지 니치도르프(Nițchidorf)에 있는 독일어 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루마니아어를 배웠다. 티미쇼아라에 위치한 니콜라우스-레나우-뤼체움(고등학교)을 다니면서 루마니아어를 완전히 익혔다.[3] 아비투어 이후 1973년부터 1976년까지 티미쇼아라 서부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 루마니아어문학을 전공했다.[7]1976년부터 기계공장에서 번역가로 일했다. 당시 세쿠리타테(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 요원이 비밀 스파이 직책을 수행하라고 세 번이나 찾아왔지만, 뮐러는 이를 거절했다. 협력하지 않은 후 해고되었고, 이후 니콜라우스-레나우-뤼체움에서 교사로 일하거나 유치원에서 일했고, 사적인 독일어 과외수업도 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뮐러가 비밀정보기관을 위해 일한다는 이야기가 퍼졌는데, 뮐러는 “동료들은 내가 거부한 바를 완전히 (반대로) 내가 수행했다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한다.
2. 3. 독일 망명과 작가 활동
1985년 서독으로의 이민 허가가 거부된 후, 뮐러는 1987년 당시 남편이었던 소설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마침내 출국을 허가받아 서베를린에 정착했으며, 두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14]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는 독일과 해외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다. 1995년 독일 언어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다른 명예직을 역임했다. 1997년 그녀는 독일 펜 센터가 전 동독 지부와의 합병에 항의하여 탈퇴했다.[15] 2008년 7월 뮐러는 루마니아-독일 여름학교에 참가한 두 명의 전 세쿠리타테 정보원에게 루마니아 문화원이 도덕적 및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호리아-로만 파타피에비치 루마니아 문화원 원장에게 비판적인 공개 서한을 보냈다.[15]2008년에 뮐러는 어느 담화에서 자신이 여전히 독일에서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 측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바나터 슈바벤 지역에 있는 반대자들로부터 받는 익명의 편지들로 고통받는다고 밝혔다. 같은 해에 공개편지를 통해 2008년 7월 25일에 베를린에 있는 루마니아 문화원에서 열린 학회로의 초대를 비판했다. 이 초대는 역사학자 소린 안토히와 독어독문학자 안드라이 코르베아 호이시가 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 당시에 모두 공산주의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의 정보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2014년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의 경험을 언급한 헤르타 뮐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책을 여러 번 비판했는데, 그를 ‘러시아 정보기관(KGB)에서 사회화된, 개인숭배의 경향을 가진 독재자’라고 묘사했고, 그의 정치가 그녀를 ‘병들게 했다’고 하며 비판했다. '병들다'라는 표현에 대해 그녀는 개인적인 굴욕감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나의 이성을 모욕한다. 그는 심지어 항상 같은 건방진 언행으로 매일 우리 모두의 이성을 모욕한다. 그는 이미 수없이 거짓말을 하는 자리에서 붙잡혔으며, 거짓말을 할 때마다 폭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그는 그렇게 나를 화나게 한다."
3. 작품 세계
헬타 뮐러는 20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응축된 시적 언어와 사실에 입각한 산문으로 '고향 상실의 풍경'을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46]
뮐러가 태어난 바나트 지방은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으나, 현재는 루마니아, 헝가리, 세르비아로 분할되었다. 뮐러는 바나트 슈바벤인으로, 이들은 루마니아 통치하에서도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고 독자적인 독일 방언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루마니아가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독일계 주민들은 소비에트 연방 침략에 동원되었다. 전쟁 말기에는 소련군에 의해 많은 젊은이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뮐러의 아버지도 독일군 무장친위대에 동원되었고, 어머니도 강제 수용소 경험자였다.
전후, 뮐러를 비롯한 독일계 주민들은 나치의 영향으로 독일계 민족 정체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고향 상실의 풍경"이란 독재로 고향을 빼앗긴 것과, 역사적 사실 때문에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
전후 루마니아는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서구 기술 도입으로 대외 채무가 늘었다. 채무 상환을 위해 생활필수품까지 수출했고, 일반 시민들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특권 계급은 사치품을 누렸고, 비판은 비밀경찰의 감시로 억압되었다.
뮐러는 비밀경찰 협조를 거부해 직장에서 쫓겨났고, 대리 교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처녀작 「침묵」은 검열되었지만, 베를린에서 재출판되어 서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뮐러는 위험 인물이면서도 제거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심문, 협박, 집필 금지가 이어졌고 결국 서독으로 망명했다.
3. 1. 주요 주제와 특징
뮐러의 문학은 독재 체제의 폭력성, 개인의 억압과 소외, 기억과 언어의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특히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삶과 그로 인한 상처를 생생하게 묘사한다.[10][11] 뮐러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뮐러의 작품은 시적이고 은유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그녀는 언어의 유희와 상징을 통해 현실의 폭력성과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어와 독일어의 차이를 통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언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루마니아어로 "lăcrămioare|러크러미오아레ro"는 '작은 눈물'을 뜻하지만, 독일어 "Schneeglöckchen|슈네글뢰켄de"은 '작은 눈 종'을 의미한다.[25] 이는 단순한 단어 차이를 넘어, 서로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뮐러의 작품은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서사 구조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기 어려운 개인의 경험을 반영한다. 뮐러는 신문에서 오려낸 글자들을 조합하여 글을 쓰는 방식을 통해, "진정한 시인의 작업실"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16][17] 이러한 콜라주 기법은 뮐러 문학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다.
3. 2. 주요 작품 소개
뮐러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Niederungen''' (1982): 뮐러의 첫 작품으로, 루마니아 공산주의 청년 동맹 중앙위원회로부터 상을 받았다.[8] 독일 문화권 바나트 지방의 어린이의 시각을 다룬 단편 소설이다.[8] 하지만 바나트슈바벤 공동체의 일부는 뮐러가 마을 생활을 비관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9] 검열된 버전이 부쿠레슈티에서 출판되었고, 검열되지 않은 버전은 1984년 독일에서 출판되었다.[32]
- '''''Drückender Tango''''' (Drückender Tango|억압적인 탱고de, 1984): 단편 소설로, 부쿠레슈티에서 출판되었다.
- '''''Der Mensch ist ein großer Fasan auf der Welt''''' (1986): The Passport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는 이 작품이 억압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상한 코드로 표현되어 있다고 평가했다.[18]
- '''''Barfüßiger Februar''''' (Barfüßiger Februar|맨발의 2월de, 1987)
- '''''Reisende auf einem Bein''''' (1989): ''Traveling on One Leg''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33]
- '''''Der Teufel sitzt im Spiegel''''' (Der Teufel sitzt im Spiegel|악마는 거울 속에 앉아 있다de, 1991)
- '''''Der Fuchs war damals schon der Jäger''''' (1992): 필립 보엠에 의해 ''The Fox Was Ever the Hunter''로 번역되었다. (2016)
- '''''Eine warme Kartoffel ist ein warmes Bett''''' (Eine warme Kartoffel ist ein warmes Bett|따뜻한 감자는 따뜻한 침대다de, 1992)
- '''''Der Wächter nimmt seinen Kamm''''' (Der Wächter nimmt seinen Kamm|경비원은 빗을 든다de, 1993)
- '''''Angekommen wie nicht da''''' (Angekommen wie nicht da|마치 없었던 것처럼 도착하여de, 1994)
- '''''Herztier''''' (1994): 마이클 호프만에 의해 ''The Land of Green Plums''로 번역되었다. (1996). 뉴욕 타임스지에 서평이 게재되었다.[34]
- '''''Hunger und Seide''''' (Hunger und Seide|굶주림과 비단de, 1995): 에세이.
- '''''In der Falle''''' (In der Falle|덫에 걸려de, 1996)
- '''''Heute wär ich mir lieber nicht begegnet''''' (1997): 마이클 헐스와 필립 보엠에 의해 ''The Appointment''로 번역되었다. (2001)
- '''''Der fremde Blick oder Das Leben ist ein Furz in der Laterne''''' (Der fremde Blick oder Das Leben ist ein Furz in der Laterne|낯선 시선, 혹은 삶은 등불 속 방귀다de, 1999)
- '''''Heimat ist das, was gesprochen wird''''' (Heimat ist das, was gesprochen wird|고향은 말해지는 곳이다de, 2001)
- '''''A Good Person Is Worth as Much as a Piece of Bread''''' (2001): 켄트 클리치의 ''Children of Ceausescu'' 서문.
- '''''Der König verneigt sich und tötet''''' (Der König verneigt sich und tötet|왕은 절하고 죽인다de, 2003): 에세이.
- '''''Atemschaukel''''' (2009): 필립 보엠에 의해 ''The Hunger Angel''로 번역되었다. (2012)[35]
- '''''Immer derselbe Schnee und immer derselbe Onkel''''' (Immer derselbe Schnee und immer derselbe Onkel|언제나 같은 눈과 언제나 같은 삼촌de, 2011)
일본어로 번역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원제 | 일본어 번역 제목 | 번역가 | 출판사 | 출판년도 |
---|---|---|---|---|
Niederungen | 침묵 | 야마모토 코우지(山本浩司) | 산슈샤(三修社) | 2010년 |
Der Fuchs war damals schon der Jäger | 겨냥당한 여우 | 야마모토 코우지 | 산슈샤 | 1997년 |
Herztier | 마음짐승 | 오구로 야스마사(小黒康正) | 산슈샤 | 2014년 |
Heute wär ich mir lieber nicht begegnet | 호출 | 오구로 야스마사, 타카무라 토시노리(髙村俊典) | 산슈샤 | 2022년 |
Atemschaukel | 숨의 그네 | 야마모토 코우지 | 산슈샤 | 2011년 |
4.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헤르타 뮐러의 작품과 삶은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위 섹션에서 권력 감시와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역사와의 화해와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요약만 제시한다.
- 권력 감시와 민주주의: 뮐러의 경험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권력 감시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뮐러는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 역사와의 화해와 기억의 중요성: 뮐러의 작품은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역사와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4. 1. 권력 감시와 민주주의
뮐러는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며, 익명의 편지들로 고통받았다고 밝혔다.[8]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은 뮐러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고립시키려' 했으며, 그녀를 요원으로 모함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8] 뮐러에 대한 비밀정보기관의 기록은 파기되었지만, 뮐러는 그 기록이 '핵심이 완전히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8]뮐러는 차우셰스쿠 정권 하의 경험을 바탕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며, 그를 '개인숭배 경향을 가진 독재자'로 묘사했다.[8] 뮐러는 푸틴의 정치가 그녀를 '병들게 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개인적인 굴욕감과 이성에 대한 모욕을 의미한다.[8]
뮐러의 작품은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개인의 삶과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첫 작품인 『절망의 시대』는 루마니아에서 출판되어 상을 받았지만, 바나트슈바벤 공동체는 뮐러가 마을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9] 뮐러는 악치온스그루페 바나트의 일원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으며, 『녹색 자두의 땅』 등의 작품을 통해 검열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10][11]
4. 2.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뮐러는 비밀경찰의 협력 제안을 거부하고, 작품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다.[8]\[9]\[10]\[11] 이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뮐러는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고립시키려' 했다고 묘사했다.[12]\[13] 비밀정보기관은 뮐러를 신용 훼손하여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만들려 했고, 그녀를 요원이라고 고발하는 편지를 독일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기도 했다.뮐러는 악치온스그루페 바나트의 일원으로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 검열보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다.[10]\[11] 그녀의 작품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비밀경찰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4. 3. 역사와의 화해와 기억의 중요성
뮐러의 작품은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역사와의 화해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뮐러는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며, 익명의 편지들로 고통받았다고 밝혔다.[8] 그녀는 비밀정보기관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고립시키려 했다고 묘사했다.[9]뮐러의 첫 작품인 『절망의 시대』는 루마니아에서 출판되어 상을 받았지만, 일부 바나트슈바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녀가 마을 생활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9] 뮐러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으며, 그녀의 작품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 하의 억압적인 현실을 다루었다.[10][11]
뮐러는 1987년 서독으로 망명하여 서베를린에 정착했다.[14] 1997년에는 독일 펜 센터가 전 동독 지부와의 합병에 항의하여 탈퇴하기도 했다.[15]
뮐러는 20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가 "응축된 시적 언어와 사실에 입각한 산문"으로 "고향 상실의 풍경"을 그려냈다고 평가했다.[46] 뮐러가 태어난 바나트 지방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으나, 현재는 루마니아, 헝가리, 세르비아로 분할되어 있다. 뮐러는 독일계 루마니아인으로, 전쟁 후 나치의 영향으로 인해 독일계 민족 정체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고향 상실의 풍경"은 독재로 인해 고향을 빼앗긴 것과 역사적 사실로 인해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뮐러는 비밀경찰의 협조를 거부하여 직장에서 쫓겨났고, 실업은 범죄로 간주되었기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뮐러는 처녀작 『침묵』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검열로 왜곡되었지만, 베를린에서 재출판되어 서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5.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내역 |
---|---|
1981 | 티미쇼아라 문학 서클의 아담 뮐러-구텐브룬 상[36] |
1984 | 아스펙트 문학상 |
1985 | 라우리스 문학상 |
1985 | 브레멘 문학상 격려상 |
1987 | 다름슈타트 리카르다 후흐 상 |
1989 | 잉골슈타트 마리엘루이제 플라이서 상 |
1989 | 게르하르트 체이카, 헬무트 프라우엔도르퍼, 클라우스 헨젤, 요한 리펫, 베르너 졸러, 윌리엄 토톡, 리차드 바그너와 함께 독일어 상 수상 |
1990 | 바트 간더스하임 로스비타 지식 훈장 |
1991 | 크라니히슈타이너 문학상 |
1993 | 문학 비평상 |
1994 | 클라이스트 상 |
1995 | 아리스테이온 상 |
1995/96 | 베르겐 시 작가 |
1997 | 그라츠 문학상 |
1998 | 이다 데멜 문학상 및 《자두나무 푸른 땅》(Der fremde Blick oder Das Leben ist ein Furz in der Laternede)으로 더블린 국제 문학상 수상 |
1999 | 카프카 상 (오스트리아) |
2001 | 키케로 연설상 |
2002 | 라인란트-팔츠 카를 추크마이어 메달 |
2003 | 요제프 브라이트바흐 상(크리스토프 메켈과 하랄트 바인리히와 공동 수상) |
2004 |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문학상 |
2005 | 베를린 문학상 |
2006 | 유럽 문학 뷔르트 상 및 발터 하젠클레버 문학상 |
2009 | 노벨 문학상 |
2009 | 소설 《굶주린 천사》(Atemschaukelde)로 프란츠 베르펠 인권상 수상[37] |
2010 |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 상 |
2013 | 《굶주린 천사》 최고 번역 도서상 후보[38] |
2014 | 한넬로레 그레베 문학상[39] |
2021 | 과학예술 공로훈장[40] |
2022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이해와 관용상[41] |
2022 | 브뤼케 상[42] |
6. 주요 작품 목록
(1984년, 검열되지 않은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