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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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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삼랑은 소설 《수호전》에 등장하는 여성 등장인물로, 호가장 출신이며 갑옷을 입고 쌍검을 사용하며 말을 타는 무장이다. 축가장의 축표와 약혼했으나 양산박과의 전투에서 임충에게 생포되어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양산박 합류 후에는 왕영과 함께 마필 감독을 맡았으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108성 집결 후 삼군 내무 주관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고, 방랍 토벌전에서 남편 왕영의 죽음에 복수하려다 전사했다.

2. 생애

호삼랑은 호가장 출신의 여성으로, 갑옷을 입고 쌍검을 사용하며 회색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다. 축가장의 삼남 축표(祝彪)와 정혼한 사이였다.

제48회에 처음 등장하는데, 소주(薊州)에서 양산박으로 향하던 양웅, 석수, 시천이 축가장에서 소란을 일으켜 양산박과 축가장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호삼랑은 축표의 정혼자로서 원군으로 참전하여 왕영(王英)을 생포하고, 구붕(欧鵬)과 마린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 활약했다. 정찰 중이던 송강을 잡으려다 임충(林冲)과 싸워 생포되었고, 송강의 아버지 송대공에게 맡겨졌다.

오빠 호성은 양산박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호삼랑의 귀환과 축가장에 가담하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했다. 이후 축가장은 손립 군단에 의해 멸망했고, 호성은 도망 온 축표를 양산박에 인도하려 했으나 이규의 습격으로 호가장도 멸망했다. 가족과 약혼자를 잃은 호삼랑은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양산박 합류 후, 호삼랑은 남편 왕영과 함께 마필 감독을 맡았다. 호연작(呼延灼)과의 전투에서는 제4군을 이끌고 적장 팽기(彭玘)를 생포하고 호연작과 싸웠다. 제1차 북경성 공략전에서는 고대수(顧大嫂), 손이랑(孫二娘)과 함께 부대를 이끌고 관승(關勝)과의 전투에서 학사문(郝思文)을 생포했다.

108성 집결 후에는 삼군 내무 주관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초안 후, 요나라 장수 답리패, 방랍 군의 범주와 온극양, 장도원 등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목주 공략전에서 남편 왕영이 정표(鄭彪)에게 전사하자, 정표를 추격하다가 정표가 던진 구릿덩이에 얼굴을 맞고 낙마하여 사망했다.

2. 1. 배경

호삼랑은 고룡강(獨龍崗)에 위치한 호가장(扈家莊)을 소유한 호지주의 딸이자 호성의 여동생으로, 이응과 혼인 관계이다. 호가장은 이가장(李家莊) 및 축가장(祝家莊)과 함께 위치해 있었으며, 고룡강은 현재의 중국 산둥성 둥핑현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삼랑은 두 자루의 을 사용하여 싸우며, 한 번에 수십 명의 남자와 싸울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 또한 올가미 던지기에도 능숙하여 적을 잡는 데 사용하였다. 전투에 나설 때는 붉은색 옷 위에 갑옷을 입고, 비단 허리띠와 금색 투구를 착용하는 등 여성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쌍칼을 휘두르며, 갈기털의 말에 올라 전장을 누볐다.

독룡강 삼가 중 하나인 축가의 셋째 아들 축표의 약혼녀이기도 하다.

계주에서 양산박으로 향하는 양웅, 석수, 시천이 축가장에서 소란을 일으켜 양산박과 축가장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호삼랑은 축표의 약혼녀로서 원군으로 참전하였다. 그 무용으로 왕영을 생포하고, 오붕과 마린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아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그러나 임충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하고 붙잡혀 송강의 아버지 송태공에게 맡겨졌다.

가족, 약혼자, 돌아갈 집을 모두 잃은 호삼랑은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2. 2. 양산박과의 전투

호삼랑은 호가장 출신의 여자로, 갑옷을 입고 쌍검을 사용하며 회색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다. 축가장의 셋째 아들 축표(祝彪)의 정혼녀이기도 하다.

소주(薊州)에서 양산박으로 향하던 양웅, 석수, 시천이 축가장에서 소란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양산박과 축가장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축표의 정혼자인 호삼랑은 원군으로 참전하여 왕영(王英)을 생포하고, 구붕(欧鵬)과 마린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 활약하며 아군의 사기를 높였다. 정찰 중이던 송강을 잡으려다 임충(林冲)과 마주쳐 생포되었고, 송강의 아버지 송대공에게 맡겨졌다.

호삼랑이 생포되자 오빠 호성은 양산박과 비밀리에 협상하여 호삼랑의 귀환과 축가장에 가담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이후 축가장은 손립 군단에 의해 멸망했고, 호성은 호가장에 망명하러 온 축표를 잡아 양산박에 인도하려 했으나 이규의 습격으로 호가장도 멸망했다. 가족과 약혼자를 잃은 호삼랑은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양산박 합류 후 호삼랑은 남편 왕영과 함께 마필 감독을 맡았다. 호연작과의 전투에서는 제4군을 이끌고 적장 팽기를 생포하고 호연작과 싸웠으며, 제1차 북경성 공략전에서는 고대수, 손이랑과 함께 부대를 이끌고 관승과의 전투에서 학사문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2. 3. 양산박 합류

호삼랑은 호가장 출신의 여성으로, 갑옷을 입고 쌍검을 사용하며 회색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다. 축가장의 삼남 축표(祝彪)와 정혼한 사이였다.

제48회에 처음 등장하는데, 소주(薊州)에서 양산박으로 향하던 양웅, 석수, 시천이 축가장에서 소란을 일으켜 양산박과 축가장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호삼랑은 축표의 정혼자로서 원군으로 참전하여 왕영(王英)을 생포하고, 구붕(欧鵬)과 마린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 활약했다. 정찰 중이던 송강을 잡으려다 임충(林冲)과 싸워 생포되었고, 송강의 아버지 송대공에게 맡겨졌다.

오빠 호성은 양산박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호삼랑의 귀환과 축가장에 가담하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했다. 이후 축가장은 손립 군단에 의해 멸망했고, 호성은 도망 온 축표를 양산박에 인도하려 했으나 이규의 습격으로 호가장도 멸망했다. 가족과 약혼자를 잃은 호삼랑은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양산박 합류 후, 호삼랑은 남편 왕영과 함께 마필 감독을 맡았다. 호연작(呼延灼)과의 전투에서는 제4군을 이끌고 적장 팽기(彭玘)를 생포하고 호연작과 싸웠다. 제1차 북경성 공략전에서는 고대수(顧大嫂), 손이랑(孫二娘)과 함께 부대를 이끌고 관승(關勝)과의 전투에서 학사문(郝思文)을 생포했다.

108성 집결 후에는 삼군 내무 주관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초안 후, 요나라 장수 답리패, 방랍 군의 범주와 온극양, 장도원 등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목주 공략전에서 남편 왕영이 정표(鄭彪)에게 전사하자, 정표를 추격하다가 정표가 던진 구릿덩이에 얼굴을 맞고 낙마하여 사망했다.

2. 4. 양산박에서의 활약

호삼랑은 호가장 출신의 여자로, 갑옷을 입고 쌍검을 사용하며 회색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다. 축가장의 셋째 아들 축표(祝彪)의 정혼녀이기도 하다.

양산박과 축가장의 전쟁에서 호삼랑은 원군으로 참전하여 왕영(王英)을 생포하고, 구붕(欧鵬)과 마린(馬麟)을 상대로 선전하며 아군의 사기를 높였다. 송강(宋江)을 사로잡으려다 임충(林冲)에게 생포되었고, 송강의 아버지 송대공에게 맡겨졌다.

오빠 호성(扈成)은 양산박과 비밀 협상을 통해 호삼랑의 귀환과 축가장에 가담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이후 축가장은 손립 군단에 의해 멸망했고, 호성은 이규(李逵)의 습격으로 호가장마저 멸망하자 연안부로 도망쳐 남송의 공신이 되었다. 가족과 약혼자를 잃은 호삼랑은 송강의 설득으로 왕영과 결혼하여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양산박 합류 후, 호삼랑은 남편 왕영과 함께 마필 감독을 맡았다. 호연작(呼延灼)과의 전투에서는 제4군을 이끌고 적장 팽기(彭玘)를 생포하고 호연작과 호각으로 싸웠으며, 북경성 1차 공략전에서는 고대수(顧大嫂), 손이랑(孫二娘)과 함께 부대를 이끌고 관승(關勝)과의 전투에서 학사문(郝思文)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108성 수령 대집결 후, 호삼랑은 삼군의 내무를 주관하는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휘종 황제의 사면 이후, 요나라와 방랍군과의 전투에 종군하여 여러 장수를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목주 전투에서 정표의 요술에 의해 왕영이 전사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다 정표가 던진 구릿덩이에 맞아 낙마하여 사망했다.

2. 5. 방랍 토벌과 죽음

호삼랑은 방랍 토벌전에서 남편 왕영의 죽음에 복수하려다 전사했다. 호삼랑은 목주(睦州) 공격전에서 적장 정표(鄭彪)에게 도전한 왕영이 정표의 요술에 의해 목에 창을 맞고 전사하자, 그를 추격하다가 정표가 던진 구릿덩이에 얼굴을 맞고 낙마하여 사망했다.

3. 평가

4. 대중문화 속 호삼랑

5. 기타

5. 1. 별호 '일장청'의 의미

남송 초기에 일장청이라는 별호를 가진 도적 출신의 여장군이 실존했다.[1] 여기에 실존 인물인 호성의 아내와 금나라 말기의 반란 집단의 수령인 이전의 아내 양묘진의 전설을 결합하여 일장청·호삼랑의 인물상이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1]

별호인 일장청의 의미는 여러 설이 있어 분명하지 않다.

  • 미소녀 또는 미소년 (작중, 미남인 연청을 형용하는 단어로서도 사용되었으며, 수호전의 밑바탕이 된 대송선화유사에 '''일장청·이횡'''이라는 해적이 등장한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설 (여가석).
  • 그녀는 드물게 키가 큰 인물로, 이를 형용하는 것이라는 설 (왕리기).
  • "일장"은 신장, "청"은 문신이라는 설 (엄돈이).

5. 2. 역사적 배경

남송 초기에, 일장청이라는 별호를 가진 도적 출신의 여장군이 실존했다.[1] 여기에, 실존 인물인 호성의 아내와, 금나라 말기의 반란 집단의 수령인 이전의 아내 양묘진의 전설을 결합하여, 일장청·호삼랑의 인물상이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1]

별호인 일장청의 의미는 여러 설이 있어 분명하지 않다. 미소녀 또는 미소년 (작중, 미남인 연청을 형용하는 단어로서도 사용되었으며, 수호전의 밑바탕이 된 『대송선화유사』에 '''일장청·이횡'''이라는 해적이 등장한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설 (여가석)이 있다.[1] 그녀는 드물게 키가 큰 인물로, 이를 형용하는 것이라는 설 (왕리기)도 있는데, 이 경우 남편인 왕영의 상대인 정천수가 그랬던 것처럼, 키가 작고 못생긴 왕영과의 대비라는 의미를 가진다.[1] "일장"은 신장, "청"은 문신이라는 설 (엄돈이)에 따르면, 호삼랑은 사실 명문가의 영애와는 거리가 먼 여걸이었을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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