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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제철련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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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제철에 의해 겸이포제철소로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1946년 북한 정권에 의해 국유화된 제철소이다. 한국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재건되었고, 1960년대 설비 증설을 통해 일관 제철소 체제를 갖추었다. 1970년대 이후 생산 능력 확장을 거듭했으나, 1990년대 후반 경제난으로 생산량이 감소했다. 이후 자력갱생을 위한 노력을 통해 산소열법 용광로를 개발, 2016년에 재가동에 성공했다. 현재는 주체철 생산을 통해 군수공업 및 건설 현장에 강재를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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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제철련합기업소
기본 정보
명칭황해제철소
로마자 표기Hwanghae Jecheolso
한자 표기黃海製鐵所
가나 표기ファンヘ チェチョルソ
조선어 표기황해제철소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명칭황해제철련합기업소
로마자 표기해당 정보 없음
한자 표기黃海製鐵聯合企業所
가나 표기ファンヘチェチョル ヨンハプキオプ소
조선어 표기황해제철련합기업소

2. 역사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선철, 제강, 압연강재, 레일 등 20여 종 및 내화물, 비료, 콘크리트관, 솜 등을 생산한다. 1990년대 말 기준 생산 능력은 선철 110만 톤, 제강 110만 톤, 압연강재 60만 톤으로 추정된다.[4]

1973년 북한은 황해제철련합기업소를 자동화 생산 단위로 선정하여 자동화를 추진하였으나, 그 수준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5] 1980년대에는 조강 직장 개건 확장, 연속주조기 및 강관 연속 주조기 건설 등을 통해 철강재 생산 규모를 확장했다. 또한 솜 보온공장을 가동하고 콘크리트관 생산 공정을 갖추어 콘크리트관도 생산하기 시작했다.[6]

1990년대 초부터 경제난으로 연료난이 심화되면서 자체 무연탄을 이용하는 제철법, 즉 주체철 생산 기지 건설 사업을 추진했으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중단되었다.[7]

주요 설비로는 제철 분야에 중대형 용광로 1 - 2호기, 소형 용광로 4 - 8호, 회전로 2기가 있으며, 제강 분야에는 1 - 6호 평로와 1 - 2호 전로, 그리고 전기로 1기를 보유하고 있다. 철광석 원료는 주로 송림, 은률, 재령, 덕현, 태탄 광산 등에서 공급받았으나, 2000년대 이후 주체철 생산 등을 추진하면서 재령, 문무리, 청계 광산, 령대탄광, 2.8직동청년탄광 등에서 연-원료를 공급받고 있다.

북한에서 설비 자동화 및 원격 조종화가 실현된 공장으로 선전하며, 외국 대표단의 평양 방문 시 견학 코스로 활용되어 왔다.

2. 1. 일제강점기 (겸이포제철소)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겸이포제철소이다. 미쓰비시 계열의 미쓰비시제철이 1918년에 겸이포제철소를 건설하여 조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일본제철이 운영하였다. 겸이포제철소는 선철 설비와 제강 설비를 갖추어 연간 약 25만 톤의 선철과 약 5.9만 톤의 강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2. 2. 해방 이후 (황해제철소)

1946년 2월 "황해제철소"로 개칭되었다.[1]

한국 전쟁 당시 폭격으로 용광로가 모두 파괴되었으나, 1954년 6월 평로 복구를 시작으로 1950년대 후반 천리마 운동 기간에 재건되었다. 1960년대에는 설비 증설로 제선, 제강, 압연의 3요소를 갖춘 일관 제철소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소규모 용광로를 확장, 신설하여 선철 생산 능력을 약 270000ton 증대하고, 철선, 로프 등을 생산하는 선재 압연 설비도 건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생산 공정의 자동 원격 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연간 약 10000ton의 스테인리스강판 설비, 연속 조괴기 등이 건설되었다. 황해제철소의 연간 강철 생산량은 약 1450000ton으로, 북한 전체 연간 강철 생산량 약 600만ton의 24%에 해당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전력 사정 악화, 식량난 및 원료 공급 부족 등 경제 위기와 설비 노후화로 철강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1998년에는 제철소 노동자들이 식량 배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북한 당국의 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2][3]

황해제철소는 철강 생산 효율을 높이고 원료 공급 및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관련 기업들을 통합하여 "황해제철연합기업소"를 구성하고 있다.

2. 3. 전후 복구 및 확장

한국 전쟁으로 용광로가 모두 파괴되었지만, 1954년 6월 평로 복구를 시작으로 1950년대 후반 5개년 계획 기간에 재건되었다.[1] 1960년대 설비 증설로 제선, 제강, 압연의 일관 제철소 체제를 갖추었다.

1970년대에는 소규모 용광로를 확장 및 신설하여 선철 생산 능력을 약 270000ton 증대하고, 철선, 로프 등을 생산하는 선재 압연 설비도 건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생산 공정의 자동 원격 조정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연간 약 10000ton의 스테인리스강판 설비와 연속 조괴기 등이 건설되었다.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연간 강철 생산량은 약 1450000ton으로, 북한 전체 연간 강철 생산량 약 600만ton의 24%에 해당한다.[5]

2. 4. 경제난과 자력갱생 노력

1990년대 후반 이후 전력 사정 악화, 식량난 및 원료 공급 부족 등의 경제 위기와 설비 노후화로 철강 생산량이 감소하였다.[2] 1990년대 초부터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경제난으로 연료난과 원료난이 심화되면서 북한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자체 무연탄을 이용하는 제철법(주체철)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우리식 철 생산기지’ 건설사업을 추진하였으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단되었다.[8]

1998년에는 제철소 노동자들이 식량 배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북한 당국의 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2][3]

이후 산소열법에 의한 제철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추진되어 1998년 4월 이 공법을 완성하고 1999년 김정일의 생일에 맞춰 산소열법 용광로 조업식을 개최하였다. 3년 여의 기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면서 연간 생산 목표를 18만 톤이라고 밝혔으며, 이에 앞서 무연탄과 갈탄을 섞어 만드는 산화알탄직장을 전년도 중반에 신설하였다. 2005년까지 산소열법 용광로 가동 소식이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9]

2006년 들어서면서 산소열법에 의한 용광로 생산준비를 다그친다고 하면서 중형용광로직장의 7호 용광로 개건 현대화와 산화배소구단광공정 도입, 열풍로 개조사업에 착수하게 된다.[10] 이때부터는 산소열법이라는 용어 대신 주체철 생산공정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2008년에는 새로운 주체철 생산공정을 건설하고 부분별 시운전을 진행하였으며, 100t 초고전력전기로에 주체철을 넉넉히 공급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하였다.[11]

하지만 산소열법용광로의 가동이 전면 중지되자 김정일이 2010년 현지지도를 가서 문제점을 보고받고 투자를 통해 복구를 완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2]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노동자들은 액체 산소분리기의 용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15,000m2 용적의 산소분리기를 보고하였다. 이에 김정일은 즉시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 주문하여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 공급하도록 지시했다.[13]

이후 산소분리기를 용적에 맞게 재설계하고 건설에 착수하여 2015년 12월 31일 황해제철련합기업소 산소열법용광로가 가동되었으며, 2016년 1월 1일 품질 좋은 용선이 출선되었다.[14] 박봉주 총리가 현지지도를 오고 김정은의 명령으로 치하하며,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순천화학련합기업소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도 보완을 거쳐 적용되어 잘 활용되고 있다.[15]

2. 5. 개건 현대화 과정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1990년대 초부터 경제난과 연료난 심화로 자체 무연탄을 이용하는 제철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체철' 생산 기지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중단되었다.[7][8]

이후 '산소열법에 의한 제철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추진되어 1998년 4월 이 공법을 완성하고, 1999년 김정일의 생일에 맞춰 산소열법 용광로 조업식을 개최하였다. 연간 생산 목표는 18만 톤으로 설정되었고, 2005년까지 산소열법 용광로 가동 소식이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9]

2006년에는 중형용광로직장의 7호 용광로 개건 현대화, 산화배소구단광공정 도입, 열풍로 개조사업에 착수하였다.[10] 이때부터 '산소열법' 대신 '주체철 생산공정'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2008년에는 새로운 주체철 생산공정을 건설하고 부분별 시운전을 진행하였다.[11]

그러나 산소열법용광로 가동이 전면 중지되자, 2010년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통해 문제점을 보고받고 설비 투자 및 복구를 지시하였다.[12]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노동자들은 액체 산소분리기의 용적 문제를 제기했고, 김정일은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 15,000m2 산소분리기 제작을 지시하여 공급받았다.[13]

산소분리기를 재설계하고 건설에 착수하여 2015년 12월 31일 산소열법용광로가 재가동되었으며, 2016년 1월 1일 용선 출선에 성공하였다.[14] 박봉주 총리가 현지지도를 왔고, 김정은은 이를 치하하며 투자를 약속했다. 이후 주체철 생산 방식은 순천화학련합기업소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도 확대 적용되었다.[15]

3. 생산 설비 및 능력

주요 설비로는 제철 분야에 중대형 용광로 1 - 2호기, 소형 용광로 4 - 8호, 회전로 2기가 있으며, 제강 분야에는 1 - 6호 평로와 1 - 2호 전로, 그리고 전기로 1기를 보유하고 있다.[4] 1990년대 말 기준 선철 110여만 톤, 제강 110여만 톤, 압연강재 60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4]

1980년대 들어 조강 직장 개건 확장, 연속 주조기 건설,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강관 연속 주조기도 건설하여 현재의 철강재 생산 규모를 갖추었다.

2000년대 이후 주체철 생산 등을 추진하면서 연 - 원료를 재령광산, 문무리광산, 청계광산, 령대탄광, 2.8직동청년탄광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4. 평가

북한은 경제난으로 연료와 원료 부족 문제를 겪으면서 자체적인 무연탄을 활용하는 제철 기술인 '주체철' 생산에 힘을 쏟았다.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있었으며,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 개발과 설비 개선을 통해 주체철 생산 공정을 확립하고 발전시켜왔다고 평가받는다.

4. 1. 제철 공업의 국산화 (주체철 생산)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경제난으로 연료와 원료난이 심화되자 자체 무연탄을 이용하는 제철법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우리식 철 생산기지' 건설 사업을 추진하다가 고난의 행군으로 중단하였으나,[8] 1998년 4월 산소열법에 의한 제철 기술을 완성하고 1999년 김정일 생일에 맞춰 산소열법 용광로 조업식을 개최하였다.[9]

3년여에 걸쳐 완성된 산소열법 용광로는 연간 18만 톤의 생산 목표를 가졌으며, 2005년까지 가동 소식이 보도되었다.[9] 2006년에는 중형용광로직장의 7호 용광로 개건 현대화, 산화배소구단광공정 도입, 열풍로 개조사업에 착수하였다.[10] 이때부터 산소열법 대신 주체철 생산공정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2008년에는 새로운 주체철 생산공정을 건설하고 부분별 시운전을 진행하였다.[11]

그러나 산소열법 용광로 가동이 전면 중지되자, 2010년 김정일의 현지지도에서 문제점이 보고되었고, 투자를 통해 복구를 완료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12]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노동자들은 액체 산소분리기의 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서 제작한 15,000m2 산소분리기를 공급받았다.[13] 이후 산소분리기를 재설계하고 건설하여 2015년 12월 31일 산소열법 용광로가 재가동되었으며, 2016년 1월 1일 품질 좋은 용선이 출선되었다.[14]

박봉주 총리가 현지지도를 오고 김정은의 명령으로 치하를 받았으며, 이 기술을 바탕으로 순천화학련합기업소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도 보완하여 적용되었다.[15] 순천에는 18만 톤, 김책에는 30만 톤의 연산 단위를 제작하여 총 66만 톤의 산소열법 용광로를 출선하며 제철을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고철 부족으로 주체철을 통한 제강 과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성공은 다른 제철소에도 영향을 주었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2009년 코렉스 공법의 회전로 제철 방식을 성공시켜 72만 톤 규모의 용선을 출선하고 있다.[16] 국산화된 제철 방식으로 생산한 강재는 군수공업이나 건설 현장에 우선 공급되고, 부족분은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고철로 충당한다.

참조

[1] 간행물 うまれかわる朝鮮――「北朝鮮紀行」より / 徐光霽 日本共産党出版局事業部 1949-07-01
[2] 뉴스 抗議する労働者を戦車で轢殺…北朝鮮「黄海製鉄所の虐殺」 http://dailynkjp.com[...] デイリーNKジャパン 2016-12-27
[3] 뉴스 【秘録金正日(60)】黄長ヨプ亡命の衝撃 デモにおびえ、摘発責任者を処刑 https://www.sankei.c[...] 産経新聞社 2016-12-27
[4] 문서
[5] 뉴스 로동신문 1993-01-23
[6] 문서
[7] 뉴스 로동신문 2007-09-14
[8] 뉴스 로동신문 2007-09-14
[9] 뉴스 민주조선 1999-03-04
[10] 뉴스 로동신문 2006-02-04, 2006-02-21
[11] 뉴스 로동신문 2008-07-28
[12] 뉴스 조선중앙통신 2010-02-20
[13] 뉴스 로동신문 2015-12-19
[14] 뉴스 로동신문 2016-01-03
[15] 뉴스 조선중앙통신 2016-01-13
[16] 논문 북한 산업혁신체제 연구 : 철강 및 공작기계산업 중심으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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