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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비료연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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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남비료연합기업소는 1927년 설립된 북한의 비료 생산 시설로, 일제강점기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시작되었다. 6.25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중국의 지원으로 복구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시설 현대화를 시도했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하여, 남한의 비료 지원 중단,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 등 비료 생산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특히 석탄 가스화 공정은 북한의 식량 생산 증대를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으며,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과 함께 생산 증산이 독려되었다.

2. 연표


  • 1927년: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이 설립되었다.[1]
  • 1930년: 일제가 흥남 질소비료 공장을 준공하여 황산암모늄을 연간 48만ton 생산하였다.[2]
  • 6.25 전쟁: 시설이 파괴되었으나,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구하였다.[1]
  • 1980년대 중반: 노후화된 유산 공정 개건 공사와 메탄올 생산 공정 건설을 통해 가동률 제고를 모색하였다.[1]
  • 1989년~1993년: 무연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법 도입. 물전해 대비 전력 소비를 1/4로 줄이고, 탄산가스 발생으로 요소 생산의 기본 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1]
  •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생산이 크게 부진하였다. 물전해 공정 현대화와 갈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다시 추진된 것으로 보아, 앞서 언급한 공정들이 실제로 완공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1]
  • 2000년 8월: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자살하였다. 흥남비료공장 노동자들은 그의 죽음에 슬퍼했다고 알려졌다.
  •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대북 지원이 중단되었다. 남한의 쌀 40만ton과 비료 30만ton 지원 보류는 북한 식량 부족분 100만ton~150만ton에 해당하는 효과를 지닌다.[1]
  • 2008년 8월 1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남한의 연간 비료 지원(35만ton) 중단이 북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였다.[2]
  • 2009년 2월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방문하여, 신공법인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을 통한 비료 증산을 독려하였다.[3]
  • 2009년 8월 12일: 조선신보2012년까지 북한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석탄가스화시설을 전면 가동하여 비료 100만ton과 쌀 1000만ton 생산을 목표한다고 보도하였다.[4]
  • 2010년 6월 16일: 조선신보는 함경북도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갈탄 가스화 공정이 건설 중이라고 보도하였다.[5]

2. 1. 일제강점기

1927년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이 설립되었다.[1] 1930년 일제는 흥남 질소비료 공장을 준공하여 황산암모늄을 연간 48만 톤 생산하였다.[2]

2. 2. 해방 이후

6.25 전쟁으로 시설이 파괴되었으나,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구하였다.[1]

1980년대 중반, 노후화된 유산 공정 개건 공사와 메탄올 생산 공정 건설을 통해 가동률 제고를 모색하였다. 특히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진행된 공사로 무연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법이 도입되어, 물전해 대비 전력 소비를 1/4로 줄이고, 탄산가스 발생으로 요소 생산의 기본 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1]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생산이 크게 부진하였다. 물전해 공정 현대화와 갈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다시 추진된 것으로 보아, 앞서 언급한 공정들이 실제로 완공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1]

2000년 8월, 1992년 북조선 경제팀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김달현 북조선 부총리가 자살했다. 흥남비료공장 노동자들은 그의 죽음에 슬퍼했다고 알려졌다. 김달현 부총리는 김일성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경제 전문가였으나, 북조선 식량난의 핵심 원인으로 흥남비료공장을 지목하고 정상화를 시도하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나 결국 자살했다.

2008년 2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10년간 북조선에 매년 1조 상당의 지원을 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중단되었다. 남한의 쌀 40만ton과 비료 30만ton 지원 보류는 북조선 식량 부족분 100만ton~150만ton에 해당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로 인해 북조선은 최대 비료공장인 흥남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2008년 8월 1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남한의 연간 비료 지원(35만ton) 중단이 북조선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북조선은 퇴비 등 유기질비료로 대응하려 하지만, 화학비료보다 성분이 10%도 되지 않아 곡물 생산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2009년 2월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방문하여, 신공법인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을 통한 비료 증산을 독려했다.

2009년 8월 12일,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2012년까지 북조선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석탄가스화시설을 전면 가동하여 비료 100만ton과 쌀 1000만ton 생산을 목표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질소비료 1톤 사용 시 쌀 10톤 생산"이라는 1:10 원칙에 따른 전망이었다.

2010년 6월 16일,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함경북도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갈탄가스화공정이 건설 중이라고 보도했다.

2. 3. 1980년대 ~ 1990년대

1980년대 중반, 흥남비료연합기업소는 노후화된 유산 공정을 개건하고 메탄올 생산 공정을 건설하는 등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무연탄 가스화를 통한 암모니아 합성법을 도입하여 물전해 방식보다 전력 소비를 1/4로 줄이고, 탄산가스를 활용하여 요소 생산의 기본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생산이 매우 부진해졌다. 물전해 공정 현대화와 갈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다시 추진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언급된 공정들이 실제로 제대로 완공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4. 2000년대 이후

2000년 8월, 1992년 북한 경제팀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자살했다. 김일성의 신임을 받았던 김달현 부총리는 흥남비료공장 정상화를 시도하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나 결국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매년 1조 원 상당의 대북 지원이 중단되었다. 지원이 보류된 비료 30만 톤은 북한의 비료 생산에 큰 타격을 주었다.[1] 같은 해 8월 1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남한의 비료 지원 중단으로 북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은 퇴비 등을 이용한 유기질비료 사용을 시도했지만, 화학비료보다 효과가 미미했다.[2]

2009년 2월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방문하여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을 통한 비료 증산을 독려했다.[3] 같은 해 8월 12일, 조선신보는 북한이 2012년까지 비료 100만 톤, 쌀 1000만 톤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4]

2010년 6월 16일, 조선신보는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서 갈탄 가스화 공정이 건설 중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석유 수입이 어려워 자체적으로 풍부한 갈탄을 이용해 비료를 생산하는 공법을 개발 중이다.[5]

3. 남북경협과 흥남비료

1992년 북한 경제팀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김달현 부총리는 북한 식량난의 핵심 원인이 흥남비료공장에 있다고 보고 정상화를 시도했으나, 김정일의 눈 밖에 나 2000년 8월에 자살했다.

북한은 매년 155만 톤의 화학비료가 필요했지만, 사용량은 절반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70%를 남한 지원에 의존했다. 북한 내 비료공장들은 1960년대 이전에 건설되어 시설이 낡고 전력난까지 겹쳐 가동률이 10~20%에 불과했다.

2010년 6월 16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 갈탄가스화공정이 건설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반도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석유를 이용한 화학비료를 사용해야 대규모 쌀 생산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석유 수입이 어려워 자체적으로 풍부한 갈탄(석탄)을 가스화하여 비료를 생산하는 공법을 개발 중이다.

3. 1.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10년간 북한에 매년 1조 상당의 쌀과 비료 등을 지원해왔다. 지원된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은 북한의 식량 부족분 100만 톤에서 150만 톤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었다.[1] 그러나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한 내 여론이 악화되었고, 이듬해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북 지원이 중단되었다.[1]

2008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남한이 매년 지원하던 비료 35만 톤이 중단되면 북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은 화학비료 대신 퇴비 등을 이용한 유기질비료로 대응하려 했지만, 화학비료보다 성분이 10%도 되지 않아 곡물 생산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2]

3. 2.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지원이 중단되었다.[1]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10년간 북조선에 매년 1조 상당의 지원을 해왔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중단했다.[1] 지원이 보류된 남한의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은 북조선의 식량 부족분 100만 톤에서 150만 톤의 효과가 있어, 북조선은 최대 비료공장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1]

남한이 매년 지원하던 비료 35만 톤이 중단되면서 북조선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다.[2] 북조선은 퇴비 등을 이용한 유기질 비료로 임시방편을 하려 했지만, 이는 화학 비료보다 성분이 10%도 되지 않아 곡물 생산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2] 북조선에 매년 필요한 화학 비료는 155만 톤인데 사용량은 필요량의 절반이며, 이마저 사용량의 70%를 남한 비료에 의존해 왔다.(북조선 비료 15만 톤, 남한 비료 35만 톤)[2]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방문하여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을 통한 비료 증산을 독려했다.[3] 남한의 비료공장 관계자는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석탄 가스화 공정을 도입해 암모니아를 생산, 요소비료를 생산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추정했다.[3]

조선신보는 2012년까지 북조선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석탄 가스화 시설을 전면 가동하여 비료 100만 톤, 쌀 1000만 톤을 생산할 목표를 세웠다고 보도했다.[4]

4. 비료 생산 기술

1930년 일제는 흥남비료공장을 준공하여 황산암모늄을 매년 48만 톤 생산했다.[1]

2008년 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남한이 매년 지원하던 비료 35만 톤이 중단되어 북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은 퇴비 등을 이용한 유기질비료로 임시 대응하려 하지만, 이는 화학비료보다 성분이 10%도 되지 않아 곡물 생산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보았다. 북한에 매년 필요한 화학비료는 155만 톤인데 사용량은 필요량의 절반이며, 이마저 사용량의 70%를 남한 비료에 의존해 왔다.(북조선 자체 비료 15만 톤, 남한 지원 비료 35만 톤) 북한의 비료공장들은 1960년대 이전에 건설되어 시설이 낡은데다 전력난까지 겹쳐 가동률이 10-20%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1]

2009년 8월 12일,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012년까지 북한이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석탄 가스화 시설을 전면 가동하여 비료 100만 톤과 쌀 1000만 톤을 생산할 목표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전망은 "질소비료 1톤을 쓰면 쌀이 10톤 나온다."는 1:10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북한은 인구 2500만 명이 매년 500만 톤 정도의 곡물을 소비하며, 생산량은 400만 톤이었다. 부족분 100만 톤(1조 원어치)은 매년 남한에서 지원했다.[1]

2010년 한반도의 토양은 매우 척박하여 석유를 이용한 화학비료를 사용해야 대규모 쌀 생산이 가능하다. 화학비료가 고기라면 유기질비료는 채소라고 비유할 수 있다.[1]

4. 1. 석탄 가스화 공정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무연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법 도입 공사가 진행되어, 물전해 방식보다 전력 소비를 1/4로 줄이고, 탄산가스를 활용하여 요소 비료 생산의 기본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려졌다.[1]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생산이 부진했고, 물전해 공정 현대화와 갈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다시 추진된 것으로 보아, 앞서 언급된 공정들이 제대로 완공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방문하여 석탄 가스화 공정 도입을 통한 비료 증산을 독려했다.[1] 남한의 비료공장 관계자는 북한의 석탄 가스화 공법에 대해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석탄 가스화 공정을 도입해 암모니아를 생산, 요소비료를 생산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추정했다.

2010년 6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서 갈탄 가스화 공정이 건설 중이라고 보도했다.[1] 북한은 석유 수입이 어려워, 풍부한 갈탄(석탄)을 가스화하여 비료를 생산하는 공법을 개발 중이다.

5. 평가 및 전망

흥남비료연합기업소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공장으로, 6.25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을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구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노후화된 유산 공정에 대한 개건 공사를 비롯하여 메탄올 생산 공정 건설 등을 통해 가동률을 높이려 노력하였다. 특히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진행된 공사를 통해 무연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법이 도입되어, 물전해에 비해 전력을 1/4밖에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탄산가스가 다량으로 발생하여 요소 생산의 기본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1]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 기간을 거치면서 생산이 매우 부진하였고, 물전해 공정 현대화와 갈탄 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다시 추진된 것으로 보아 위에 언급한 공정들이 실제로는 제대로 완공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참조

[1] 뉴스 로동신문 1989-02-20
[2] 서적 북한의 기업 KIET 산업 연구원
[3] 뉴스 로동신문 2002-05-11
[4] 뉴스 로동신문 2005-03-19
[5] 문서 1계열 가스화 공정 건설장 방문 2009-11
[6] 뉴스 로동신문 2011-08-23
[7] 뉴스 로동신문 2009-09-15
[8] 뉴스 로동신문 2011-10-28
[9] 뉴스 로동신문 2012-12-31
[10] 뉴스 로동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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