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8년 알레포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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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38년 알레포 지진은 1138년 10월 11일에 발생한 강력한 지진으로, 현재의 시리아 알레포 지역을 포함한 근동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지역은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라시아 판의 삼중 접합부에 위치하여 지진 활동이 활발하며, 사해 단층과 주변 수렴 경계의 활동으로 인해 잦은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의 규모는 모멘트 규모 7.2로 추정되며, 하렘, 아타레브, 자르다나 등 여러 도시와 요새가 파괴되었다. 알레포는 전진을 감지한 주민들의 대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도시의 경제적, 정치적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지진으로 인한 무역로의 변화는 이탈리아 상업 도시 국가의 부상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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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세기 지진 - 분지 지진
분지 지진은 1185년 단노우라 전투 이후 발생하여 교토를 중심으로 건물 파손, 산사태, 쓰나미 등 광범위한 피해를 입힌 지진이다.
1138년 알레포 지진 | |
---|---|
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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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정보 | |
이름 | 1138년 알레포 지진 |
현지 날짜 | 1138년 10월 11일 |
위치 | 시리아 알레포 근방 |
규모 종류 | 모멘트 규모 |
규모 | 7.1 |
피해 정보 | |
사망자 | 230,000명 사망 |
2. 지질학적 배경
근동 지역은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라시아 판의 삼중 접합부에 위치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지각 활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이다.[9] 아라비아 판은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여 코카서스 산맥과 아나톨리아 고원의 조산을 유발한다. 북쪽의 섭입대와 함께 발산 경계는 홍해와 아라비아 해 부근에, 변환 단층은 시나이반도에서 시리아-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에 위치해 있다.[10]
사해 단층과 그 북쪽의 수렴 경계는 알레포 지진 전후로 수많은 주목할 만한 지진을 발생시켰다. 이 중 일부는 매우 큰 충격을 주어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발생한 지진과 같은 고대 민족의 신화와 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11] 기원전 1500년 경 발생하여 예리코 도시를 파괴하고 이후 버려지게 만든 지진도 그 예이다.[12] 1927년에는 예리코 지진으로 약 500명이 사망하고 성지 전역의 성지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13]
2. 1. 근동 지역의 지진 활동
알레포는 사해 단층 시스템의 북쪽을 따라 위치해 있으며, 이는 아라비아 판과 아프리카 판을 분리하는 판 경계인 지질 단층이다. 이 지진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강렬한 지진 연쇄의 시작이었다. 1138년 10월부터 1139년 6월까지, 그리고 1156년 9월부터 1159년 5월까지 훨씬 더 강렬했던 후기 지진 연쇄가 있었다. 첫 번째 연쇄는 알레포 주변 지역과 에데사 (현대 샨르우르파, 터키) 지역의 서부에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지진 연쇄 동안에는 북서부 시리아, 북부 레바논 및 안티오크 (현대 안타키아, 터키 남부) 지역이 파괴적인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7]근동 지역은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라시아 판의 삼중 접합부에 위치해 있다. 이로 인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지각 활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이다.[9] 아라비아 판은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여 코카서스 산맥과 아나톨리아 고원의 조산을 유발한다. 북쪽의 섭입대와 함께 발산 경계는 홍해와 아라비아해 부근에, 변환 단층은 시나이 반도에서 시리아-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에 위치해 있다.[10]
사해 단층과 그 북쪽의 수렴 경계는 알레포 지진 전후로 수많은 주목할 만한 지진을 발생시켰다. 이 중 일부는 매우 큰 충격을 주어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발생한 지진과 같은 고대 민족의 신화와 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11] 기원전 1500년 경 발생하여 예리코 도시를 파괴하고 이후 버려지게 만든 지진도 그 예이다.[12] 1927년에는 예리코 지진으로 약 500명이 사망하고 성지 전역의 성지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13]
2. 2. 사해 단층과 주요 지진
알레포는 아라비아 판과 아프리카 판을 분리하는 판 경계인 사해 단층 시스템의 북쪽에 있다. 이 지진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강렬한 지진 연쇄의 시작이었다. 1138년 10월부터 1139년 6월까지, 그리고 1156년 9월부터 1159년 5월까지 훨씬 더 강렬했던 후기 지진 연쇄가 있었다. 첫 번째 연쇄는 알레포 주변 지역과 에데사(현재 샨르우르파) 지역의 서부에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지진 연쇄 동안에는 북서부 시리아, 북부 레바논 및 안티오크(현재 안타키아) 지역이 파괴적인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7]근동 지역은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라시아 판의 삼중 접합부에 위치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지각 활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이다.[9] 아라비아 판은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여 코카서스 산맥과 아나톨리아 고원의 조산을 유발한다. 북쪽의 섭입대와 함께 발산 경계는 홍해와 아라비아 해 부근에, 변환 단층은 시나이반도에서 시리아-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에 위치해 있다.[10]
사해 단층과 그 북쪽의 수렴 경계는 알레포 지진 전후로 수많은 주목할 만한 지진을 발생시켰다. 이 중 일부는 매우 큰 충격을 주어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발생한 지진과 같은 고대 민족의 신화와 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11] 기원전 1500년 경 발생하여 예리코 도시를 파괴하고 이후 버려지게 만든 지진도 그 예이다.[12] 1927년에는 예리코 지진으로 약 500명이 사망하고 성지 전역의 성지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13]
3. 지진의 특성
Carena 외 (2023)는 세인트 시미온 단층 북쪽 구간에서 약 50km 길이로 파열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해당 단층은 남북 방향으로 80km 뻗어 있으며, 남쪽 끝은 아타리브 바로 북쪽에 있다. Guidoboni와 Comastri (2005)는 지진 규모를 6.0으로 추정했으나, 광범위한 피해 지역을 고려할 때 이는 너무 작은 추정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탈리아 국립 지구물리학 및 화산학 연구소는 지진 규모를 7.5로 추정했다.[14]
3. 1. 규모 추정 논란
Carena 외 (2023)는 세인트 시미온 단층의 더 길고 선형적인 북부 구간을 따라 약 50km의 파열이 규모 7.2 지진에 해당한다고 추정했다. 이 단층은 북-남 방향으로 80km 뻗어 있으며, 남쪽 종단은 아타리브 바로 북쪽에 위치한다. Guidoboni와 Comastri (2005)는 규모를 6.0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광범위한 피해 지역을 고려할 때 너무 작은 추정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탈리아 국립 지구물리학 및 화산학 연구소는 규모를 7.5로 추정했다.[14]4. 지진 발생 및 피해 상황
다마스쿠스의 연대기 작가 이븐 알-칼라니시는 1138년 10월 11일 수요일에 주요 지진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10월 10일에 첫 번째 지진이 있었고 이후 여러 차례 여진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훗날 케말 알-딘은 10월 19-20일에 지진이 한 번만 발생했다고 주장하여 알-칼라니시의 기록과 차이를 보였다. 알-칼라니시가 지진 당시에 기록을 남겼고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과도 일치하므로, 10월 11일 발생한 지진이 주 지진으로 여겨진다. 오늘날의 자료는 최초 지진의 강도가 7 이상이었고, 쓰나미가 동반되었다고 본다.[15]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1138년 알레포 지진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지진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하렘으로, 십자군이 건설한 큰 요새가 있던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성과 교회가 무너졌다고 한다. 무슬림이 점령하고 있던 아타레브 요새도 파괴되었다. 성채가 무너져 성을 지키던 병사 600명이 사망했지만, 총독과 일부 부하들은 살아남아 모술로 피신했다. 전쟁으로 이미 약탈당한 자르다나 마을과 시흐의 작은 요새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당시 수만 명의 인구가 살던 대도시 알레포 주민들은 전진을 느끼고 본 지진 전에 시골로 피난했다. 그러나, 전진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한 많은 사람들은 다음 날(10월 11일) 주요 지진으로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면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성채의 벽과 동쪽, 서쪽 벽이 무너졌다. 수많은 집이 파괴되었고, 건축 자재로 쓰인 돌들이 길거리에 쏟아졌다. 벽과 건물 기초에 생긴 균열과 구멍을 통해 십자군과 무슬림 파벌의 사람들이 도시에 침입하기도 했다.[16] 당시 기록에는 알레포가 파괴되었다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다른 보고서와 비교해 보면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보고에 따르면 알레포 북쪽에 있는 아즈라브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땅이 갈라지면서 마을 전체가 땅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이는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였을 가능성이 높다.[6]
4. 1. 여진
이븐 알-칼라니시는 10월 10일에 첫 번째 지진이 있었고, 10월 20일 저녁, 10월 25일, 10월 30일에서 11월 1일 밤, 그리고 11월 3일 새벽에 여진이 있었다고 기록했다.[15] 그러나 케말 알-딘은 10월 19-20일에 지진이 한 번만 발생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알-칼라니시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15] 알-칼라니시는 지진 발생 당시에 글을 썼고,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에서도 10월 10일 또는 11일 날짜를 지지하고 있으므로, 그의 10월 11일 기록이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15] 주요 지진과 여진이 다마스쿠스에서는 감지되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다.[6] 라카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사람들이 삼켜졌다는 이야기는 1138년 알레포 지진과 관련하여 잘못 언급되었으며, 이는 12세기 후반 미카엘 시리아인의 혼란스러운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6]4. 2. 주요 피해 지역
다마스쿠스의 연대기 작가 이븐 알-칼라니시는 1138년 10월 11일에 주요 지진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15]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하렘으로, 십자군이 건설한 대규모 요새가 있던 곳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성과 교회가 무너졌다고 한다. 무슬림이 점령하고 있던 아타레브 요새도 파괴되었다. 성채가 붕괴되어 성 경비병 600명이 사망했지만, 총독과 일부 하인은 살아남아 모술로 피신했다. 전쟁으로 이미 약탈당했던 자르다나 마을과 시흐의 작은 요새도 완전히 파괴되었다.알레포는 당시 수만 명의 인구가 살던 대도시였는데, 주민들은 전진(Foreshock)을 느끼고 본 지진 전에 시골로 피난했다. 그러나 전진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시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은 다음 날(10월 11일) 발생한 본 지진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건물들이 붕괴되면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성채의 벽과 동쪽, 서쪽 벽이 붕괴되었다. 수많은 가옥이 파괴되었고, 건축 자재로 쓰인 돌들이 길거리에 쏟아졌다. 벽과 건물 기초에 생긴 균열과 구멍은 십자군과 무슬림 파벌의 사람들이 도시에 침입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16] 당시 기록에는 알레포가 파괴되었다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다른 보고서와 비교해 보면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보고에 따르면 알레포 북쪽에 있는 아즈라브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땅이 갈라지면서 마을 전체가 땅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이는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였을 가능성이 높다.[6] 주요 지진과 여진은 다마스쿠스에서는 감지되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다. 라카에서 사람들이 땅이 갈라지면서 땅속으로 삼켜졌다는 이야기는 12세기 후반 미카엘 시리아인의 혼란스러운 기록에 근거하여 알레포 지진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6]
5. 경제적, 정치적 영향
1138년 알레포 지진은 경제 및 정부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지진으로 대부분의 주택과 물건이 파괴되었고, 많은 생존자가 사막으로 피신했다.[17]
알레포의 시타델은 버려지고 손상되었으며, 도시 구조의 약 60%가 파괴되었다. 재건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수입 부족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도시 사람들의 직업과 삶은 영구적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건물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18]
알레포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잇는 주요 육상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무역 중단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과 맞물려 해상 무역의 중요성을 높였고, 베네치아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등 이탈리아 상업 도시 국가(해양 공화국)의 부상을 가속화했다.[19]
5. 1. 경제적 피해
지진의 영향은 직접적인 충격으로 인한 파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충격과 파괴로 인해 경제 및 정부 활동이 광범위하게 중단되었다. 대부분의 주택과 그 내부의 모든 물건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많은 생존자들이 사막으로 도망쳤다.[17]알레포의 시타델은 버려지고 손상되었으며, 도시 구조의 약 60%가 파괴되었다. 이러한 대량 파괴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으며, 수입 부족으로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도시 사람들의 직업과 삶은 영구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사람들을 다시 도시로 유치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건물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과거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18]
알레포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사이의 주요 육상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이 무역의 중단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과 함께 해상 무역으로의 전환과 해양 공화국인 베네치아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등 이탈리아 상업 도시 국가의 부상을 촉진했다.[19]
5. 2. 정치적 영향
지진의 영향은 직접적인 충격으로 인한 파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충격과 파괴로 인해 경제 및 정부 활동이 광범위하게 중단되었다. 대부분의 주택과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많은 생존자는 사막으로 도망쳤다.[17]알레포의 시타델은 버려지고 손상되었으며, 도시 구조의 약 60%가 파괴되었다. 이러한 대량 파괴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으며, 수입이 부족하여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도시 사람들의 직업과 삶은 영구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건물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는 사람들을 다시 도시로 유치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시도였지만, 과거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18]
알레포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사이의 주요 육상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이 무역의 중단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함께 해상 무역으로의 전환과 해양 공화국과 같은 베네치아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과 같은 이탈리아 상업 도시 국가의 부상을 촉진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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