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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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7년 신앙고백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아 미국 연합 장로교회(UPCUSA) 내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서이다. 이 문서는 사회 변화에 대한 교회의 적절성을 유지하고 신학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존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현대 언어로 개정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1967년 신앙고백은 화해를 주제로 하며, 하나님의 화해 사역, 교회의 화해 사역, 그리고 화해의 완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은 칼뱅주의 신학, 교회의 정치적 개입, 성경의 권위 문제 등과 관련하여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결국 약 90%의 지지로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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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신앙고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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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1967년 신앙고백 |
다른 이름 | The Confession of 1967 (영어) Presbyterian Creed (장로교 신조) |
종류 | 신앙고백 |
교단 | 미국 장로교회 (PCUSA) |
채택 연도 | 1967년 |
중요 주제 | 화해 사회 정의 평화 |
신학적 입장 | 개혁주의 신학 사회복음주의 |
작성 배경 | 1960년대 사회적 격변기에 교회의 역할 재정립 필요 인종 차별, 빈곤, 전쟁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 모색 |
특징 |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사회 정의 실현 강조 성서의 권위와 해석에 대한 개방적 태도 세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책임 강조 |
영향 | 미국 장로교회의 사회 참여 확대 다른 교단 신학에 영향 |
논쟁 |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성서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사회복음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 |
관련 인물 | 에드워드 다우이 (주요 작성자) |
관련 문서 |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2. 역사적 문맥
1967년 신앙고백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여러 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은 배경 속에서 미국 연합 장로교단(UPCUSA) 내에서 작성되고 논의되었다.[1] 성 혁명, 여성 해방, 시민권 운동, 반전 운동 등은 기존의 제도화된 교회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1] 젊은 세대들은 군대, 정부, 자본주의와 결탁된 주류 종교를 거부하기도 했다.[1]
하지만, 미국의 교회는 완전히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 연합 장로교회는 1965년에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2] 1946년부터 1967년까지 교단에 대한 재정적 헌금은 61% 증가했다.[2]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회 변화의 시기에 적절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과 수정을 모색했다.[3]
이러한 배경에서 1958년 미국 장로교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현대 언어로 개정하라는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현대 신앙에 대한 간략한 성명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1967년 신앙고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4] 위원회는 프린스턴 신학 대학교의 교수인 에드워드 도위 주니어(Edward Dowey Jr.)가 의장을 맡았고, 위원회의 유일한 평신도는 몬마우스 대학교 (일리노이주)의 미국 철학자 새뮤얼 마틴 톰슨(Samuel Martin Thompson)이었다.[7] 위원회의 보고서는 1965년 UPCUSA 총회에 처음 제출되었다.[5]
2. 1. 사회 운동과 종교의 변화
1967년 신앙고백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났던 여러 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아 작성되었다.[1] 성 혁명, 여성 해방, 시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은 기존 교회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1] 이 시기에는 영성이 유행하고 동방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일부 젊은이들은 군대, 정부, 자본주의와 더불어 주류 종교를 거부하기도 했다.[1] 많은 성인들이 이전의 종교적 가치를 고수했으나, 베이비붐 세대의 일부는 이러한 가치를 거부하였다.[1] 반문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문화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 되었고, 베이비붐 세대의 초기 출생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1]하지만, 이 시기 미국의 교회가 완전히 쇠퇴한 것은 아니었다. 1967년 신앙고백서 작성이 논의되던 1965년은 미국 연합 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1946년부터 1967년까지 교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61% 증가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간의 사회적 격변은 교회와 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회 변화의 시기에 적절성을 유지하고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개혁과 수정을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위원회는 1848년 혁명 이전의 논쟁을 언급하며, 1844년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위에 있다고 주장한 독일 신학자 페터 샤프(Peter Schaff)를 인용했다.[3] 미국 연합 장로교(UPCUSA) 내에서 현대 사회 문제에 대처하려는 이러한 열망은 1950년대 후반까지 자유주의 기독교와 근본주의 기독교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장로교회의 신학적 합의로 확립된 신정통주의의 신학적 함의와 맞물려 있었다.[4]
현대 신앙에 대한 간략한 성명 특별 위원회는 1958년 미국 장로교 총회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현대 언어로 개정하라는 아마릴로 노회의 1957년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1967년 신앙고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총회는 소요리 문답의 개정을 고려한 후, 대신 북미 연합 장로교회와의 1958년 연합 이후 교회의 헌법에 포함될 새로운 현대 신앙 선언문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4] 특별 위원회의 보고서는 1965년 UPCUSA 총회에 처음 제출되었다.[5] 위원회는 프린스턴 신학 대학교의 교수인 에드워드 도위 주니어(Edward Dowey Jr.)가 의장을 맡았고, 위원회의 유일한 평신도는 몬마우스 대학교 (일리노이주)의 미국 철학자 새뮤얼 마틴 톰슨(Samuel Martin Thompson)이었다.[7]
2. 2. 미국 교회의 성장과 변화
1967년 신앙고백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어났던 성혁명, 여성 해방 운동, 인권운동과 반전 운동등의 사회운동에 의해 형성된 한 시대에서 한 교단 내에서의 논쟁의 배경이 있다.[1]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기존의 설립된 교회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였다. 영성이 유행이었고, 동방종교의 인기가 늘어났다. 젊은 미국인들은 군사, 정부, 자본주의와 결탁된 조직화된 종교 시스템을 거부하였다.[1] 많은 성인들은 그들의 젊을 때의 종교적 가치를 지켰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거부하였다. 반문화는 미국 문화에서 강력한 힘이었다.[1]하지만, 미국내의 교회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1965년에 쓰여진 문서는 미국에서 주요 교단이 연합장로교의 엄청난 성장을 보여준다. 1946년에서 1967년까지 교회의 재정은 61% 성장했다.[2] 연합장로교에서는 신정통주의의 신학과 사회적 이슈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었고, 자유주의 기독교와 근본주의 기독교의 대체물로 관심을 모았다.[4]
현대 신앙에 대한 간략한 성명 특별 위원회는 1958년에 미국 장로교 총회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현대 언어로 개정하라는 아마릴로 노회의 1957년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1967년 신앙고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총회는 소요리 문답의 개정을 고려한 후, 대신 북미 연합 장로교회와의 1958년 연합 이후 교회의 헌법에 포함될 새로운 현대 신앙 선언문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4] 특별 위원회의 보고서는 1965년 UPCUSA 총회에 처음 제출되었다.[5] 위원회는 프린스턴 신학 대학교의 교수인 에드워드 도위 주니어(Edward Dowey Jr.)가 의장을 맡았고, 위원회의 유일한 평신도는 몬마우스 대학교 (일리노이주)의 미국 철학자 새뮤얼 마틴 톰슨(Samuel Martin Thompson)이었다.[7]
2. 3. 신앙고백서 작성 배경
1967년 신앙고백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여러 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은 배경 속에서 미국 연합 장로교단(UPCUSA) 내에서 작성되고 논의되었다.[1] 성 혁명, 여성 해방, 시민권 운동, 반전 운동 등은 기존의 제도화된 교회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1] 젊은 세대들은 군대, 정부, 자본주의와 결탁된 주류 종교를 거부하기도 했다.[1]하지만, 미국의 교회는 완전히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 연합 장로교회는 1965년에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2] 1946년부터 1967년까지 교단에 대한 재정적 헌금은 61% 증가했다.[2]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회 변화의 시기에 적절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과 수정을 모색했다.[3]
이러한 배경에서 1958년 미국 장로교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현대 언어로 개정하라는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현대 신앙에 대한 간략한 성명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1967년 신앙고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4] 위원회는 프린스턴 신학 대학교의 교수인 에드워드 도위 주니어(Edward Dowey Jr.)가 의장을 맡았고, 위원회의 유일한 평신도는 몬마우스 대학교 (일리노이주)의 미국 철학자 새뮤얼 마틴 톰슨(Samuel Martin Thompson)이었다.[7] 위원회의 보고서는 1965년 UPCUSA 총회에 처음 제출되었다.[5]
3. 신학
이 신앙고백의 글은 화해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기독교 전통인 믿음, 소망,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신앙고백의 많은 부분은 화해의 주제에 할애되어 있다. 위원회 의장이 기독교 전통의 신앙, 사랑, 소망을 대표한다고 지정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5]
'''하나님의 화해 사역'''
제1부는 교회의 신앙에 대한 설명이다. 먼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확립한 다음, 인간의 죄로의 타락을 묘사하고, 하나님의 희생을 묘사한 다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인류에게 믿음을 촉구한다. 이것은 화해의 이야기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은혜로 "홀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신다. 이 화해는 성경의 궁극적인 진리 중 하나이자 타락 이후 인간과 자신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치유할 방법을 하나님이 제공하셨다는 영원한 약속으로 불린다. 제1부의 메시지는 기독교 교리의 중심으로 여겨지며 본질적으로 신앙의 재확인이다. 이 신앙고백은 교회가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화해 사역'''
제2항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개괄하며, 주로 인간 간의 화해를 다룬다. 도위는 이 부분을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으로 언급한다.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화해 공동체로서 세상에 파견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화해의 메시지를 위임받았으며, 또한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서로로부터 분리시키는 적대감을 치유하는 그의 사역에 동참한다.[9] 이 부분은 행동을 촉구하는 위대한 외침으로 쓰였으며, 심각한 인간 고통에 대한 위원회의 응답이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장로교 기독교인들에게 행동할 것을 간청하지만,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악에 순응하기 때문에 겸손하게 행동할 것을 주의시킨다. 또한, 이 신앙고백은 교회가 현대 시대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특별히 부름받았다고 믿는 네 가지 영역을 지적한다.
'''인종 차별'''
이 신앙고백은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인종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확언하며, 서로를 지배하거나 우월감을 가지는 자들을 규탄한다. "하나님의 화해의 사랑은 인종적 또는 민족적 차별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무너뜨린다"고 명시하고 있다.[9] 또한, 이 신앙고백은 사회에서 그러한 차별을 철폐하고 증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9]
'''국제적 갈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화해는 모든 정부 권력이 섬기고 옹호해야 할 국가 간의 평화, 정의, 자유의 근거이다. 교회는 그 자체의 삶 속에서 원수를 용서하고 협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정치로서 국가에 권고하도록 부름받았다. 이는 핵무기, 화학 무기, 그리고 생물학 무기 시대에 특히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예화하는 가난'''
신앙고백은 풍요로운 세상에서 빈곤에 갇힌 사람들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침해"라고 주장한다.[9] 교회는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
'''성적 무정부 상태'''
신앙고백은 현대 사회가 성(性)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했다고 주장한다. 성을 결혼 생활과 출산이라는 신성한 경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를 타락시켰다고 본다. 이는 피임의 보급, 성병 감염의 치료, 도시화의 압력, 미디어에서 성적 상징의 착취, 그리고 인구 과잉을 "인간의 영원한 성의 의미에 대한 혼란"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열거한다.[5] 교회는 "인생의 완전한 의미로 남녀를 이끌지 못하거나, 시대의 도덕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연민을 베풀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인간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5]
'''화해의 완성'''
제3장에서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희망을 선포한다. 세상의 깨어짐을 인정하면서도, 신앙고백은 세상에서의 하늘나라의 갱신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한다.[9] 교회는 인간의 갈등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에 신뢰를 둔다.[9] "교회는 굳건한 희망으로 모든 부분적인 성취를 넘어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본다."[9] 이 내용은 바울의 에베소서에서 인용한 구절로 마무리된다.[9]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든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이루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세대에 걸쳐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9]
3. 1. 하나님의 화해 사역
제1부는 교회의 신앙에 대한 설명이다. 먼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확립한 다음, 인간의 죄로의 타락을 묘사하고, 하나님의 희생을 묘사한 다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인류에게 믿음을 촉구한다. 이것은 화해의 이야기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은혜로 "홀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신다. 이 화해는 성경의 궁극적인 진리 중 하나이자 타락 이후 인간과 자신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치유할 방법을 하나님이 제공하셨다는 영원한 약속으로 불린다. 제1부의 메시지는 기독교 교리의 중심으로 여겨지며 본질적으로 신앙의 재확인이다. 이 신앙고백은 교회가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주장한다.3. 2. 교회의 화해 사역
제2항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개괄하며, 주로 인간 간의 화해를 다룬다. 도위는 이 부분을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으로 언급한다.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화해 공동체로서 세상에 파견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화해의 메시지를 위임받았으며, 또한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서로로부터 분리시키는 적대감을 치유하는 그의 사역에 동참한다.[9] 이 부분은 행동을 촉구하는 위대한 외침으로 쓰였으며, 심각한 인간 고통에 대한 위원회의 응답이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장로교 기독교인들에게 행동할 것을 간청하지만,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악에 순응하기 때문에 겸손하게 행동할 것을 주의시킨다. 또한, 이 신앙고백은 교회가 현대 시대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특별히 부름받았다고 믿는 네 가지 영역을 지적한다.인종 차별이 신앙고백은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인종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확언하며, 서로를 지배하거나 우월감을 가지는 자들을 규탄한다. "하나님의 화해의 사랑은 인종적 또는 민족적 차별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무너뜨린다"고 명시하고 있다.[9] 또한, 이 신앙고백은 사회에서 그러한 차별을 철폐하고 증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9]
국제적 갈등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화해는 모든 정부 권력이 섬기고 옹호해야 할 국가 간의 평화, 정의, 자유의 근거이다. 교회는 그 자체의 삶 속에서 원수를 용서하고 협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정치로서 국가에 권고하도록 부름받았다. 이는 핵무기, 화학 무기, 그리고 생물학 무기 시대에 특히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예화하는 가난신앙고백은 풍요로운 세상에서 빈곤에 갇힌 사람들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침해"라고 주장한다.[9] 교회는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
성적 무정부 상태신앙고백은 현대 사회가 성(性)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했다고 주장한다. 성을 결혼 생활과 출산이라는 신성한 경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를 타락시켰다고 본다. 이는 피임의 보급, 성병 감염의 치료, 도시화의 압력, 미디어에서 성적 상징의 착취, 그리고 인구 과잉을 "인간의 영원한 성의 의미에 대한 혼란"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열거한다.[5] 교회는 "인생의 완전한 의미로 남녀를 이끌지 못하거나, 시대의 도덕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연민을 베풀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인간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5]
3. 2. 1. 인종 차별
이 신앙고백은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인종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확언하며, 서로를 지배하거나 우월감을 가지는 자들을 규탄한다. "하나님의 화해의 사랑은 인종적 또는 민족적 차별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무너뜨린다"고 명시하고 있다.[9] 또한, 이 신앙고백은 사회에서 그러한 차별을 철폐하고 증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9]3. 2. 2. 국제적 갈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화해는 모든 정부 권력이 섬기고 옹호해야 할 국가 간의 평화, 정의, 자유의 근거이다. 교회는 그 자체의 삶 속에서 원수를 용서하고 협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정치로서 국가에 권고하도록 부름받았다. 이는 핵무기, 화학 무기, 그리고 생물학 무기 시대에 특히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3. 2. 3. 노예화하는 가난
신앙고백은 풍요로운 세상에서 빈곤에 갇힌 사람들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침해"라고 주장한다.[9] 교회는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3. 2. 4. 성적 무정부 상태
신앙고백은 현대 사회가 성(性)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했다고 주장한다. 성을 결혼 생활과 출산이라는 신성한 경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를 타락시켰다고 본다. 이는 피임의 보급, 성병 감염의 치료, 도시화의 압력, 미디어에서 성적 상징의 착취, 그리고 인구 과잉을 "인간의 영원한 성의 의미에 대한 혼란"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열거한다.[5] 교회는 "인생의 완전한 의미로 남녀를 이끌지 못하거나, 시대의 도덕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연민을 베풀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인간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5]3. 3. 화해의 완성
제3장에서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희망을 선포한다. 세상의 깨어짐을 인정하면서도, 신앙고백은 세상에서의 하늘나라의 갱신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한다.[9] 교회는 인간의 갈등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에 신뢰를 둔다.[9] "교회는 굳건한 희망으로 모든 부분적인 성취를 넘어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본다."[9] 이 내용은 바울의 에베소서에서 인용한 구절로 마무리된다.[9]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든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이루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세대에 걸쳐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9]4. 신학적 충돌
보수주의자들은 이 신앙고백이 예정을 포함한 칼뱅주의의 많은 전통적 요소에 반대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칼뱅주의 신학은 역사적으로 장로교 신앙고백의 토대를 제공해 왔다. 교단 내 많은 파벌들은 교단을 칼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위원회의 시도를 거부했다.[10]
많은 반대자들은 이 문서의 저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이 아닌 선택된 자의 죄만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부인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원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는 반대되는 내용이다. 보수주의자들은 1967년 수정안이 보편주의를 지지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들은 더 인본주의적인 신학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간의 "자력 구원" 능력을 더 강조하고, 개인과 사회 전체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중심성을 경시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일부 문구가 인간이 자기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개신교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의 주권, 성경과 자유 사이의 논쟁은 오래 지속되어 왔으며, 각 공동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과 하나님의 역할을 다르게 평가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이 신앙고백이 인간과 인간의 화해에서 하나님의 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1]
또한 교회의 정치적 영역 개입과 관련된 반발도 있었다. 장로교 평신도 위원회는 영적 단체가 세속적 문제에 관여하라는 역사적 소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12] 미국 국방장관이자 장로교 장로인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 신앙고백이 시사하는 "군축적 사고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4] 위원회는 또한 이 문서에 제안된 신학적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특히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말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신앙고백 통과에 강력히 반대하며, 항의를 표명하는 전면 광고를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했다. 이 운동은 또한 오늘날까지 발행되는 ''더 레이맨''이라는 뉴스레터를 창간했다. 이 신문은 PCUSA의 총회 선교 협의회가 통제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무제한 교회 기부금의 "급격한 감소"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13]
이 신앙고백은 결국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으며, 노회에서 약 90%의 찬성률로 승인되었다.[14]
4. 1. 계시의 문제
코닐리어스 반틸과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이 신앙고백문이 성경의 본질을 심각하게 바꾸었다고 지적하였다.4. 2. 예정과 결정론
보수주의자들은 1967년 신앙고백문이 칼뱅주의의 예정론을 포함한 여러 요소와 상반된다고 주장하였다.[10] 역사적으로 장로교 신앙고백의 토대가 되어온 칼뱅주의 신학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교단 내 반발이 있었다.[10]반대자들은 이 문서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이 아닌 선택된 자의 죄만을 위해 죽었다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부정한다고 주장하며, 1967년 수정안이 보편주의를 지지한다고 비판했다.[11] 또한, 인간의 "자력 구원" 능력을 강조하고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중심성을 경시하는 인본주의적 신학에 문제를 제기했다.[11] 일부는 이 신앙고백의 일부 문구가 인간의 자기 초월 능력을 암시한다고 믿었다.[11]
보수주의자들은 이 신앙고백이 인간과 인간의 화해에서 하나님의 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11] 성경과 자유 사이의 논쟁은 개신교 공동체 내에서 오래 지속되어 왔지만, 이들은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주권을 경시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신학적 변화 외에도 교회의 정치적 영역 개입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장로교 평신도 위원회는 영적 단체가 세속적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우려를 표명했고,[12]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 신앙고백이 시사하는 "군축적 사고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4] 위원회는 또한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말이다"라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에 항의 광고를 게재하고 ''더 레이맨''이라는 뉴스레터를 창간하여 반대 운동을 펼쳤다.[13]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7년 신앙고백은 노회에서 약 90%의 찬성률로 승인되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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