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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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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9년 일본 시리즈는 10월 21일부터 29일까지 7차전으로 진행되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긴테쓰 버펄로스를 4승 3패로 꺾고 우승했다. 1, 2차전을 긴테쓰가 승리했으나, 요미우리가 3, 4, 5차전을 연달아 승리하며 시리즈를 뒤집었다. 6차전을 요미우리가, 7차전을 요미우리가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MVP는 요미우리의 고마다 노리히로가, 감투상은 긴테쓰의 아라이 히로마사가 수상했다. 경기 중 가토 데쓰로의 발언 논란, 긴테쓰 선발 투수 기용 논란, 하라 다쓰노리의 만루 홈런 등이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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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 시리즈
경기 정보
국가일본
연도1989년
우승팀요미우리 자이언츠 (4회 우승)
우승팀 리그센트럴 리그
우승팀 감독후지타 모토시
우승팀 시즌 성적84승 44패 2무, 승률 .656, 2위와 9경기 차
준우승팀긴테쓰 버펄로스 (3회 준우승)
준우승팀 리그퍼시픽 리그
준우승팀 감독오기 아키라
준우승팀 시즌 성적71승 54패 5무, 2위와 승차 없음
경기 날짜10월 21일–29일
MVP고마다 노리히로 (요미우리)
감투상아라이 히로마사 (긴테쓰)
방송 정보
텔레비전 방송사ABC (1-2차전)
NTV (3-5차전)
MBS (6차전)
YTV (7차전)
NHK BS-1 (전 경기, 녹화)
NHK 종합 텔레비전 (4차전, 녹화)
라디오 방송망NHK 라디오 제1방송
TBS (JRN)
JOQR (NRN)
NBS (NRN)
라디오 닛폰
MBS 라디오

2. 경기 일정 및 결과

1989년 일본 시리즈는 10월 21일부터 10월 29일까지 7차전으로 진행되었다.

1989년 일본 시리즈
일시경기원정팀(선공)스코어홈팀(후공)개최 구장개시 시각경기 시간관중수
10월 21일(토)1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4긴테쓰 버펄로스후지이데라 구장13시 06분2시간 40분23,477명
10월 22일(일)2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6긴테쓰 버펄로스13시 05분3시간 40분24,207명
10월 23일(월)이동일
10월 24일(화)3차전긴테쓰 버펄로스3 - 0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13시 07분2시간 50분45,711명
10월 25일(수)4차전긴테쓰 버펄로스0 - 5요미우리 자이언츠13시 04분3시간 05분45,825명
10월 26일(목)5차전긴테쓰 버펄로스1 - 6요미우리 자이언츠13시 04분3시간 01분45,717명
10월 27일(금)이동일
10월 28일(토)6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1긴테쓰 버펄로스후지이데라 구장13시 05분3시간 31분23,030명
10월 29일(일)7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8 - 5긴테쓰 버펄로스13시 04분3시간 11분23,091명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8년 만에 17번째)


2. 1. 경기 결과 요약

1989년 일본 시리즈
일시경기원정팀(선공)스코어홈팀(후공)개최 구장개시 시각경기 시간관중수
10월 21일(토)1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4긴테쓰 버펄로스후지이데라 구장13시 06분2시간 40분23,477명
10월 22일(일)2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6긴테쓰 버펄로스13시 05분3시간 40분24,207명
10월 23일(월)이동일
10월 24일(화)3차전긴테쓰 버펄로스3 - 0요미우리 자이언츠도쿄 돔13시 07분2시간 50분45,711명
10월 25일(수)4차전긴테쓰 버펄로스0 - 5요미우리 자이언츠13시 04분3시간 05분45,825명
10월 26일(목)5차전긴테쓰 버펄로스1 - 6요미우리 자이언츠13시 04분3시간 01분45,717명
10월 27일(금)이동일
10월 28일(토)6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3 - 1긴테쓰 버펄로스후지이데라 구장13시 05분3시간 31분23,030명
10월 29일(일)7차전요미우리 자이언츠8 - 5긴테쓰 버펄로스13시 04분3시간 11분23,091명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8년 만에 17번째)


2. 2. 각 경기 상세 결과

10월 21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긴테쓰 버펄로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4-3으로 꺾고 승리했다.

123456789RHE
요미우리 자이언츠020100000372
긴테쓰 버펄로스10000210X470



긴테쓰는 1회말 오이시 다이지로의 선두 타자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이는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의 1차전 선두 타자 홈런이었다.[11] 요미우리는 2회초 오카자키 가오루의 2점 홈런으로 역전했고, 4회초에도 추가점을 얻었다. 그러나 긴테쓰는 6회말 스즈키 다카히사의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7회말 아라이 히로마사의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 승리했다. 긴테쓰 선발 아와노 히데유키는 완투승을 거두었다.[27]

양 팀의 선발 투수는 1988년 일본 시리즈 이후 리그 최다승 투수였다.[25]

경기 개시 시각은 13시 06분이었으며, 경기 시간은 2시간 40분, 입장 관객 수는 23,477명이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89_1.html 경기 결과 (제1전) - 일본 야구 기구

10월 22일 후지데라 구장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2차전에서 긴테쓰 버팔로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6-3으로 꺾고 2연승을 달렸다.

6회초 요미우리가 고마다 노리히로의 적시타로 2점을 선취했으나, 긴테쓰는 6회말 아와구치 겐지의 2점 적시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요미우리 1루수 고마다 노리히로의 본헤드 플레이[5]구와타 마스미의 불만 표출[28]이 일어났다. 이 이닝에서 긴테쓰는 R. 브라이언트의 고의사구 후, G. 리베라의 주자 일소 적시 2루타로 3점을 얻어 역전했고, 스즈키의 2루타로 1점을 추가했다.

9회초 요미우리가 나카오 다카요시의 홈런으로 추격했지만, 요시이가 막아내며 긴테쓰가 승리했다. 7회부터 9회 초까지 좋은 투구를 보인 사토 히데가 승리 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 요시이는 "맞을 것 같지 않다"는 등의 코멘트를 남겼다[29]. 스포츠 닛폰에 따르면, 경기 종료 후 라커룸에서 야마자키 신타로는 "오릭스나 세이부가 더 무섭다", 가토 테쓰로는 "한가운데를 노리고 힘껏 던지면 괜찮다", 요시이는 "김빠지는 타선"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30].

상세 기록
경기 시간3시간 40분
관중 수24,207명
승리 투수사토 히데아키 (1승)
패전 투수구와타 마스미 (1패)
홈런요미우리: 나카오 다카요시 (9회 1점)



10월 24일 도쿄 돔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 긴테쓰가 요미우리를 3-0으로 꺾고 3연승을 기록,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123456789득점안타에러
긴테쓰120000000350
요미우리000000000030


  • 승리 투수: 가토 데쓰로 (1승)
  • 패전 투수: 미야모토 가즈토모 (1패)
  • 세이브 투수: 요시이 마사토 (1세이브)
  • 홈런: 긴테쓰 - 미쓰야마 히데카즈 (2회 2점)


긴테쓰는 1회 브라이언트의 적시 2루타와 2회 미쓰야마 히데카즈의 2점 홈런으로 3점을 선취했다. 긴테쓰 선발 가토 데쓰로는 오른쪽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33] 7회 1사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무라타 다쓰미, 요시이 마사토가 이어 던지며 요미우리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로써 긴테쓰는 일본 시리즈에서 7번째로 계투에 의한 완봉승을 기록했다.[34]

요미우리는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마키하라 히로미를 등판시키는 등 분전했지만, 끝내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패했다.[22]

이날 경기는 13시 07분에 시작하여 2시간 50분 만에 종료되었으며, 45,711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시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맡았다.

1989년 10월 25일, 도쿄 돔에서 열린 4차전에서 요미우리고다 이사오의 완봉승에 힘입어 긴테쓰를 5-0으로 꺾고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다.[42]

긴테쓰는 3연승의 기세를 몰아 단숨에 시리즈를 제패하고자 했으나, 선발 오노 가즈요시가 팔꿈치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34] 6회까지 4실점하며 무너졌다. 반면 요미우리의 선발 고다는 일본 시리즈 첫 등판임에도 불구하고[34] 슬로우 커브를 섞어가며 긴테쓰 타선을 3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완벽투를 선보였다.[5]

1회말, 요미우리는 오가타 코이치를 대신해 1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한 미노다 코지의 2루타와 오카자키의 희생 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다. 6회말에는 3안타와 2개의 사사구를 묶어 3점을 추가하며 승기를 잡았다.

요미우리는 투수 나카무라 미노루 코치와 포수 나카오의 조언, 그리고 3차전에서 미즈노의 투구를 참고하여[5] 고다의 호투를 이끌어냈다.

이날 긴테쓰 숙소에서는 "시리즈 제패" 축하회가 준비되고 있었으나[41], 요미우리의 승리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긴테쓰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스포츠 닛폰의 도요타는 "오기 감독도 능숙하게 졌다"고 평가했다.[43][44]

1989년 10월 26일, 도쿄 돔에서 열린 5차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긴테쓰 버펄로스를 6대 1로 꺾고 시리즈 전적 2승 3패를 기록했다.

123456789RHE
긴테쓰000010000140
요미우리00002040X681



양 팀 선발 투수는 1차전과 동일하게 요미우리는 사이토 마사키, 긴테쓰는 아와노 히데유키였다. 5회 초 긴테쓰 랄프 브라이언트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으나, 5회 말 요미우리는 오카자키 가오루의 2타점 적시 2루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 말, 요미우리는 선두 타자 사이토 마사키의 안타와 오가타 고이치의 희생 번트, 볼넷과 내야 땅볼로 2사 1, 3루 기회를 만들었다. 긴테쓰는 4번 타자 워렌 크로마티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당시 18타석 무안타로 부진했던 5번 타자 하라 다쓰노리와의 승

10월 28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6차전은 긴테쓰의 야마사키 신타로, 요미우리구와타 마스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2차전과 같은 대결이 펼쳐졌다.

긴테쓰는 4회말 게르만 리베라의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5회초 시노즈카 토시오의 2타점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말 긴테쓰는 1사 2루에서 구와타 마스미를 공략했고, 구원 등판한 미야모토에게도 1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브라이언트의 1루 라인 드라이브로 1루 주자 아라이 히로아키가 귀루하지 못하고 병살타로 물러났다. 요미우리는 8회초 오카자키 카오루의 홈런으로 점수를 더 벌렸고, 그 이닝의 공격 시작부터 미즈노 카츠히토를 등판시켰다. 긴테쓰는 선두 타자 리베라가 1루에 출루했지만, 이어진 대타 무라카미 타카유키의 우전 안타 때 3루를 노리다 우익수 이노우에 신지의 송구에 아웃되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러한 긴테쓰의 공격을 "거친 공격", "초조함"이라고 평했고[61], 아사히 신문에서는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62]

이후 요미우리는 미즈노 카츠히토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3-1로 승리, 양 팀 모두 3승 3패가 되어 승부는 7차전으로 이어졌다.

한편, 오이시는 3회, 5회, 7회 타석에서 모두 희생 번트를 성공시켜 한 경기 3희생 번트로 시리즈 타이기록(3명째)을 세웠다[61]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89_6.html 경기 결과(6차전)(일본야구기구 페이지)

1989년 10월 29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요미우리'''가 긴테쓰를 8-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123456789RHE
요미우리0103031008100
긴테쓰000111002573



요미우리는 2회초 고마다 노리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고마다는 타격 후 양팔을 들고 뛰는 세레모니를 펼쳤으며, 이 홈런으로 승리를 확신했다고 회상했다.[12][33] 4회초에는 나카오 다카요시, 가와아이 마사히로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추가했다. 6회초에는 하라 다쓰노리의 2점 홈런과 나카하타 기요시의 대타 홈런(1981년 일본 시리즈마쓰바라 마코토 이후 18번째)으로 3점을 더 달아났다.[5] 7회초에는 워렌 크로마티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긴테쓰는 4회말 마키시 야스나가, 5회말 무라카미 다카유키, 6회말 오이시 다이지로의 홈런으로 추격했다. 특히 오이시의 홈런은 제1전 선두 타자 홈런 이후 26타석 만의 안타였다. (종전 일본 시리즈 기록은 1979년 히라노 미쓰야스의 21타석)[5] 9회말에는 2사 후 리베라와 스즈키 다카히사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따라붙었지만, 무라카미 다카유키가 아웃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경기 후 시상식에서 양 팀 감독은 서로의 선전을 칭찬하며 악수했다.[5] 곤도 사다오 요미우리 수석 코치와 나카니시 후토시 긴테쓰 수석 코치(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도 서로를 격려했는데, 이는 일본 시리즈에서 유례없는 광경이었다고 한다.[64]

한편, 고마다는 "여기까지 왔으니 요미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미디어와 팬들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12]고 회상했고, 가토는 "후지이데라는 홈이었는데, 레프트 스탠드 한쪽에 있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완전히 휩쓸렸다"[63]라고 회상했다.

2. 2. 1. 1차전

1989년 10월 21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긴테쓰 버펄로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4-3으로 꺾고 승리했다.

123456789RHE
요미우리 자이언츠020100000372
긴테쓰 버펄로스10000210X470



긴테쓰는 1회말 오이시 다이지로의 선두 타자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이는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의 1차전 선두 타자 홈런이었다.[11] 요미우리는 2회초 오카자키 가오루의 2점 홈런으로 역전했고, 4회초에도 추가점을 얻었다. 그러나 긴테쓰는 6회말 스즈키 다카히사의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7회말 아라이 히로마사의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 승리했다. 긴테쓰 선발 아와노 히데유키는 완투승을 거두었다.[27]

양 팀의 선발 투수는 1988년 일본 시리즈 이후 리그 최다승 투수였다.[25]

경기 개시 시각은 13시 06분이었으며, 경기 시간은 2시간 40분, 입장 관객 수는 23,477명이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89_1.html 경기 결과 (제1전) - 일본 야구 기구

2. 2. 2. 2차전

10월 22일 후지데라 구장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2차전에서 긴테쓰 버팔로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6-3으로 꺾고 2연승을 달렸다.

6회초 요미우리가 고마다 노리히로의 적시타로 2점을 선취했으나, 긴테쓰는 6회말 아와구치 겐지의 2점 적시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요미우리 1루수 고마다 노리히로의 본헤드 플레이[5]구와타 마스미의 불만 표출[28]이 일어났다. 이 이닝에서 긴테쓰는 R. 브라이언트의 고의사구 후, G. 리베라의 주자 일소 적시 2루타로 3점을 얻어 역전했고, 스즈키의 2루타로 1점을 추가했다.

9회초 요미우리가 나카오 다카요시의 홈런으로 추격했지만, 요시이가 막아내며 긴테쓰가 승리했다. 7회부터 9회 초까지 좋은 투구를 보인 사토 히데가 승리 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 요시이는 "맞을 것 같지 않다"는 등의 코멘트를 남겼다[29]. 스포츠 닛폰에 따르면, 경기 종료 후 라커룸에서 야마자키 신타로는 "오릭스나 세이부가 더 무섭다", 가토 테쓰로는 "한가운데를 노리고 힘껏 던지면 괜찮다", 요시이는 "김빠지는 타선"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30].

상세 기록
경기 시간3시간 40분
관중 수24,207명
승리 투수사토 히데아키 (1승)
패전 투수구와타 마스미 (1패)
홈런요미우리: 나카오 다카요시 (9회 1점)



2. 2. 3. 3차전

10월 24일 도쿄 돔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 긴테쓰가 요미우리를 3-0으로 꺾고 3연승을 기록,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123456789득점안타에러
긴테쓰120000000350
요미우리000000000030


  • 승리 투수: 가토 데쓰로 (1승)
  • 패전 투수: 미야모토 가즈토모 (1패)
  • 세이브 투수: 요시이 마사토 (1세이브)
  • 홈런: 긴테쓰 - 미쓰야마 히데카즈 (2회 2점)


긴테쓰는 1회 브라이언트의 적시 2루타와 2회 미쓰야마 히데카즈의 2점 홈런으로 3점을 선취했다. 긴테쓰 선발 가토 데쓰로는 오른쪽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33] 7회 1사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무라타 다쓰미, 요시이 마사토가 이어 던지며 요미우리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로써 긴테쓰는 일본 시리즈에서 7번째로 계투에 의한 완봉승을 기록했다.[34]

요미우리는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마키하라 히로미를 등판시키는 등 분전했지만, 끝내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패했다.[22]

이날 경기는 13시 07분에 시작하여 2시간 50분 만에 종료되었으며, 45,711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시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맡았다.

2. 2. 4. 4차전

1989년 10월 25일, 도쿄 돔에서 열린 4차전에서 요미우리고다 이사오의 완봉승에 힘입어 긴테쓰를 5-0으로 꺾고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다.[42]

긴테쓰는 3연승의 기세를 몰아 단숨에 시리즈를 제패하고자 했으나, 선발 오노 가즈요시가 팔꿈치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34] 6회까지 4실점하며 무너졌다. 반면 요미우리의 선발 고다는 일본 시리즈 첫 등판임에도 불구하고[34] 슬로우 커브를 섞어가며 긴테쓰 타선을 3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완벽투를 선보였다.[5]

1회말, 요미우리는 오가타 코이치를 대신해 1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한 미노다 코지의 2루타와 오카자키의 희생 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다. 6회말에는 3안타와 2개의 사사구를 묶어 3점을 추가하며 승기를 잡았다.

요미우리는 투수 나카무라 미노루 코치와 포수 나카오의 조언, 그리고 3차전에서 미즈노의 투구를 참고하여[5] 고다의 호투를 이끌어냈다.

이날 긴테쓰 숙소에서는 "시리즈 제패" 축하회가 준비되고 있었으나[41], 요미우리의 승리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긴테쓰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스포츠 닛폰의 도요타는 "오기 감독도 능숙하게 졌다"고 평가했다.[43][44]

2. 2. 5. 5차전

1989년 10월 26일, 도쿄 돔에서 열린 5차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긴테쓰 버펄로스를 6대 1로 꺾고 시리즈 전적 2승 3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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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테쓰000010000140
요미우리00002040X681



양 팀 선발 투수는 1차전과 동일하게 요미우리는 사이토 마사키, 긴테쓰는 아와노 히데유키였다. 5회 초 긴테쓰 랄프 브라이언트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으나, 5회 말 요미우리는 오카자키 가오루의 2타점 적시 2루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 말, 요미우리는 선두 타자 사이토 마사키의 안타와 오가타 고이치의 희생 번트, 볼넷과 내야 땅볼로 2사 1, 3루 기회를 만들었다. 긴테쓰는 4번 타자 워렌 크로마티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당시 18타석 무안타로 부진했던 5번 타자 하라 다쓰노리와의 승

2. 2. 6. 6차전

10월 28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6차전은 긴테쓰의 야마사키 신타로, 요미우리구와타 마스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2차전과 같은 대결이 펼쳐졌다.

긴테쓰는 4회말 게르만 리베라의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5회초 시노즈카 토시오의 2타점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말 긴테쓰는 1사 2루에서 구와타 마스미를 공략했고, 구원 등판한 미야모토에게도 1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브라이언트의 1루 라인 드라이브로 1루 주자 아라이 히로아키가 귀루하지 못하고 병살타로 물러났다. 요미우리는 8회초 오카자키 카오루의 홈런으로 점수를 더 벌렸고, 그 이닝의 공격 시작부터 미즈노 카츠히토를 등판시켰다. 긴테쓰는 선두 타자 리베라가 1루에 출루했지만, 이어진 대타 무라카미 타카유키의 우전 안타 때 3루를 노리다 우익수 이노우에 신지의 송구에 아웃되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러한 긴테쓰의 공격을 "거친 공격", "초조함"이라고 평했고[61], 아사히 신문에서는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62]

이후 요미우리는 미즈노 카츠히토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3-1로 승리, 양 팀 모두 3승 3패가 되어 승부는 7차전으로 이어졌다.

한편, 오이시는 3회, 5회, 7회 타석에서 모두 희생 번트를 성공시켜 한 경기 3희생 번트로 시리즈 타이기록(3명째)을 세웠다[61]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89_6.html 경기 결과(6차전)(일본야구기구 페이지)

2. 2. 7. 7차전

1989년 10월 29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1989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요미우리'''가 긴테쓰를 8-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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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0103031008100
긴테쓰000111002573



요미우리는 2회초 고마다 노리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고마다는 타격 후 양팔을 들고 뛰는 세레모니를 펼쳤으며, 이 홈런으로 승리를 확신했다고 회상했다.[12][33] 4회초에는 나카오 다카요시, 가와아이 마사히로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추가했다. 6회초에는 하라 다쓰노리의 2점 홈런과 나카하타 기요시의 대타 홈런(1981년 일본 시리즈마쓰바라 마코토 이후 18번째)으로 3점을 더 달아났다.[5] 7회초에는 워렌 크로마티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긴테쓰는 4회말 마키시 야스나가, 5회말 무라카미 다카유키, 6회말 오이시 다이지로의 홈런으로 추격했다. 특히 오이시의 홈런은 제1전 선두 타자 홈런 이후 26타석 만의 안타였다. (종전 일본 시리즈 기록은 1979년 히라노 미쓰야스의 21타석)[5] 9회말에는 2사 후 리베라와 스즈키 다카히사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따라붙었지만, 무라카미 다카유키가 아웃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경기 후 시상식에서 양 팀 감독은 서로의 선전을 칭찬하며 악수했다.[5] 곤도 사다오 요미우리 수석 코치와 나카니시 후토시 긴테쓰 수석 코치(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도 서로를 격려했는데, 이는 일본 시리즈에서 유례없는 광경이었다고 한다.[64]

한편, 고마다는 "여기까지 왔으니 요미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미디어와 팬들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12]고 회상했고, 가토는 "후지이데라는 홈이었는데, 레프트 스탠드 한쪽에 있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완전히 휩쓸렸다"[63]라고 회상했다.

3. 주요 논란 및 이슈

3. 1. 가토 데쓰로의 발언 논란

1989년 일본 시리즈 3차전 종료 후 긴테쓰의 가토 데쓰로 투수의 인터뷰가 논란이 되었다.[10][11] 가토는 인터뷰에서 "시즌이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상대도 강하고…"라고 발언했는데,[10][11] 이것이 "요미우리는 (이 해 퍼시픽 리그 최하위인) 롯데보다 약하다"라는 식으로 보도되면서 요미우리 선수들을 자극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10][11]

하지만 가토 본인은 "롯데보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33] 그는 "시즌 중이 상대도 강하고 힘들었다"고 말했을 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롯데보다 약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33] 벤치 뒤 인터뷰에서 "롯데 쪽이 더 무섭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네요"라고 맞장구를 쳤을 뿐이라고 한다.[33] 가토는 요미우리 선수들의 데이터를 특별히 보지 않고 등판했다고 공언하며, "무서움이 없는 팀"이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34]

당시 요미우리 헤드코치였던 곤도 아키히토는 "롯데보다 약하다고 들으니, 너희들 분하지 않느냐"라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이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회고했다.[16] 이러한 발언이 요미우리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역전 우승의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한편, 긴테쓰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토 발언"의 영향을 부정했다.[17] 긴테쓰 구단 역시 가토가 롯데와의 비교에 대한 언급을 부정하며, "한 선수의 발언이 시리즈를 좌우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상하다. (...)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될 정도로 단순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18]

가토 외에도 배터리를 이룬 미츠야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선은 정말 몰아치는 듯한 박력이 없네요"라고 말했으며,[35] 세이브를 올린 요시이는 퍼시픽 리그 공식전이 본 시리즈보다 확실히 힘들었다고 말했다.[36] 아와구치 켄지는 "카네무라(요시아키)도 스즈키(타카히사)도 야마시타(카즈히코)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별거 아니네요'라고 모두 말했다"고 회상했다.[38] 토요다 야스미츠는 스포츠 닛폰 칼럼에서 긴테쓰 투수진이 요미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있으며, 긴테쓰에게 무서운 것은 만심뿐이라고 지적했다.[39] 이처럼 긴테쓰 팀 내부에 "만만하게 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음이 후에 지적되기도 한다.[33][40]

3. 2. 긴테쓰의 선발 투수 기용 논란

긴테쓰의 선발 투수 기용을 둘러싼 논란은 오기 아키라 감독과 곤도 히로시 코치의 주장이 완전히 엇갈리면서 증폭되었다.[45][46][33] 자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양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오기 감독은 시리즈 전부터 1, 4, 7차전 선발 투수로 아와노 히데유키를 기용할 계획이었다.[45] 그러나 3차전 경기 전, 곤도 코치를 통해 아와노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자, 아와노가 선발 등판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곤도 코치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곤도 코치는 시리즈 전 오기 감독에게 1, 4, 7차전을 아와노로 기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46][33] 하지만 오기 감독은 3차전 종료 후 밤, 곤도 코치에게 전화하여 "선발은 내일 결정한다"고 말했고, 곤도 코치가 오노 가즈요시 기용 사실을 알게 된 것은 4차전 경기장에 도착한 이후였다고 반박했다.

곤도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긴테쓰 퇴단을 결심했다고 하며, 훗날 주니치 드래건스 코치 시절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과의 대립으로 이어진 2012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사건과 겹쳐 보이게 되었다고 언급했다.[47][48]

긴테쓰 구단 측은 구단 역사에서 오기 감독의 주장과 거의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18] 3차전 결과를 보도한 당시 닛칸 스포츠 기사에서도 4차전 선발 투수로 "고다-오노"가 언급되는 등,[34] 당시 정황상 1차전 선발 투수가 5차전에 등판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할 때 곤도 코치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오기 감독은 자신의 저서에서 결과적으로 누구를 선발로 기용했어도 고다 마사히로의 투구에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승부에 대한 집착심의 차이를 안타까워했다.[17] 한편, 후지타 모토시는 자신의 저서에서 "단 한 순간의 느슨함이 치명상이 된다"는 야구의 '마성'을 회고했다.[8]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아와노를 비롯한 긴테쓰 투수진의 어깨나 팔꿈치 등 신체적 불안감이 있었으며,[33] 오기 감독은 사이토 마사키구와타 마스미와 같은 투수들의 넘치는 체력이 부러웠다고 기술했다.[17]

3. 3. 하라 다쓰노리의 만루 홈런

1989년 일본 시리즈 5차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다쓰노리는 7회말 긴테쓰 버펄로스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시리즈 초반 부진했던 하라는 이 홈런으로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7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하라 다쓰노리는 2볼 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긴테쓰 투수 요시이 마사토의 6구째를 받아쳐 극적인 만루 홈런을 만들어냈다.[51][49] 이 홈런으로 하라 다쓰노리는 3루 베이스코치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51] 요시이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던지는 순간…", "아무리 부진한 씨라도 저 공으로는…", "(고의사구-만루 작전은) 다음 타자에 집중할 수 없어서 싫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56][53][60]

4. 수상 선수

1989년 일본 시리즈의 MVP는 고마다 노리히로(요미우리)가 차지했다.[65] 고마다 노리히로는 타율 .522(23타수 12안타), 5타점을 기록했으며,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은 7차전에서 가토 사토시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수의 MVP 수상은 1971년의 스에쓰구 민오 이후 18년 만이며, 좌타자 MVP 수상은 1967년의 모리 마사히코 이후 22년 만이다.

감투상은 아라이 히로마사(긴테쓰)에게 돌아갔다.[65] 아라이 히로마사는 타율 .333(27타수 9안타)을 기록했고, 1차전에서 사이토를 상대로 결승 적시타를 기록했다.

우수 선수상에는 고다 이사오오카자키 가오루(이상 요미우리), 아와노 히데유키(긴테쓰)가 선정되었다.[65] 고다 이사오는 2경기 선발 출장하여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93(투구 이닝 14이닝, 자책점 3)을 기록했다. 특히 4차전에서는 역전 일본 시리즈 우승의 계기가 되는 완봉승을 거두었다. 오카자키 가오루는 타율 .250(24타수 6안타)를 기록했지만, 1차전과 6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했고, 5차전에서는 아와노를 상대로 역전 2타점 2루타를 날리는 등 이번 시리즈 최다인 6타점을 기록했다. 아와노 히데유키는 2경기 선발 출장하여 1승 1패, 평균자책점 3.00(투구 이닝 15이닝, 자책점 5)을 기록했다. 1차전에서는 완투승을 거두었다.

5.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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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1958년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와 니시테쓰 소속으로 맞붙었던 후지타 모토시오기 아키라1989년 일본 시리즈에서 감독으로 다시 만나 화제가 되었다.[22] 오기 아키라는 저서 《불타올라 승리하다》에서 1958년 시리즈에 대해 "인과응보는 돌고 돈다"와 같은 표현으로 의식했음을 밝혔다.[22] 그러나 후지타는 이에 대해 과거의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23][24]

요미우리는 이 해 긴테쓰와 대결한 것으로 당시 존재했던 퍼시픽 리그의 6개 구단 모두와 시리즈에서 대결하여 승리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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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간행물 二宮清純「プロ野球伝説の検証」 『文藝春秋』2011年11月号 抄録 http://www.ninomiyas[...] 文藝春秋
[64]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1989年11月6日号、20頁 週刊ベースボール 1989-11-06
[65] 문서 原辰徳も6打点(内訳は第5戦での満塁本塁打と第7戦での2ラン。安打はこの2本のみ)で岡崎とタイ。
[66] 문서 ホテル芦谷竹園から中継録画。放送は21:00 - 21:30。このため『知ってるつもり?!』は30分遅れで放送。
[67] 문서 近鉄優勝の場合でも近鉄優勝祝勝会を日本テレビ系列で深夜24:30から放送予定だった。
[68] 뉴스 1989年10月21日~10月29日読売新聞ラジオ欄に掲載 読売新聞 1989-10-21
[69] 비디오 numberビデオ 熱闘!日本シリーズ1989 巨人対近鉄で確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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