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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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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된 대회로, 8개국이 참가했다. 프랑스가 일본을 꺾고 우승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가 3위를 차지했다. 대회 MVP는 로베르 피레스, 페어 플레이상은 일본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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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국제 축구 대회 정보]에 관한 문서
대회 개요
대회 명칭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연도2001년
다른 이름대한민국/일본 2001년
개최국대한민국, 일본
기간5월 30일 ~ 6월 10일
참가 팀 수8
참가 연맹 수6
경기장 수6
도시 수6
결과
우승프랑스
우승 횟수1회
준우승일본
3위오스트레일리아
4위브라질
통계
총 경기 수16
총 득점 수31
총 관중 수557191
경기당 평균 관중 수34824
최다 득점 선수숀 머피 (2골)
에리크 카리에르 (2골)
로베르 피레스 (2골)
파트리크 비에라 (2골)
실뱅 윌토르 (2골)
스즈키 다카유키 (2골)
황선홍 (2골)
최우수 선수로베르 피레스
페어플레이상일본
대회 정보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로고
이전 대회1999년
다음 대회2003년

2. 참가팀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팀

3. 개최 도시 및 경기장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6개 도시에서 치러졌다. 이 경기장들은 모두 2002년 FIFA 월드컵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도시경기장 이름수용 인원
대구대구월드컵경기장66,422명
울산울산 문수 축구경기장44,466명
수원수원월드컵경기장43,288명
요코하마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72,327명
니가타니가타 스타디움42,300명
가시마가시마 사커 스타디움40,728명


4. 시드 배정

같은 대륙별 축구 연맹에 속한 팀끼리는 같은 조에 넣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아시아 축구 연맹(AFC),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CONCACAF)에 속한 팀들은 서로 다른 조에 배정되었다. 대한민국이 A조 2번째 자리(A2), 일본이 B조 3번째 자리(B3)에 각각 자동으로 배정되었으며 멕시코는 A조, 캐나다는 B조에 각각 배정되었다.

포트 A포트 B포트 C포트 D


5. 선수 명단

FIFA가 주관하게 된 이후 컨페더레이션스컵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축구 실력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세계 선수권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결승까지 진출하는 팀은 10일에서 12일 동안 5경기를 치러야 했고, 경기 간격은 하루 쉬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는 A대표팀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로서는 이례적인 빡빡한 일정이었다. 당시에는 국제 A매치 데이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2003년부터 정해짐), 대회 개최 기간이 유럽 리그 경기 일정과 겹쳤다. 이 때문에 출전국들의 동기 부여가 높지 않았고, 뛰어난 선수들이 출전을 미루는 경우도 흔해 대회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각 나라마다 진지함의 차이가 있었다.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 우승국으로서 유럽 예선이 면제된 프랑스는 이번 대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력 선수들 대부분이 리그 앙 (프랑스 국내 리그) 외에서 뛰고 있었고, 이번 대회와 일정이 겹치는 유럽 각국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지단과 바르테즈를 제외하고는 소집에 성공했다. 또한 리그 앙은 개막 전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주력 선수들도 부를 수 있었다.[5] 그 외, FIFA 월드컵 한일 대회 개최국으로서 아시아 예선이 면제된 일본과 대한민국, 당시 주력 선수들 대부분이 뛰고 있던 리그 앙이 개막 전이라 주력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었던 카메룬, 이미 북중미카리브해 예선 탈락이 결정되었던 캐나다까지 총 5개국이 이번 대회를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나머지 3개국은 그렇지 않았다. 브라질은 유럽 클럽 소속의 주력 선수를 소집하지 않고, 유럽에서는 리그 앙의 선수나 당시 대표팀 주전이 아니었던 선수, 그리고 국내파를 소집했다.[6] 당시 주전이 확실했던 선수는 반페타 정도였고, 2.5군이라고 불렸다. 그 결과, 브라질은 같은 조의 일본에게 조별 리그 1위를 내주고, 대회 자체도 4위에 그쳤다. 호주도 해외파의 당시 대표팀 주력 선수들 대부분이 불참했고, 멕시코는 주력 선수들이 부상당했으며, 북중미카리브해 예선에서 고전 중(준결승 라운드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이은 2위로 통과)이었다. 또한 이번 대회 직후에도 최종 예선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어 이번 대회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4]

일본 대표팀에서도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의 소집을 두고 소속 클럽인 AS 로마와 마찰이 있었다. 로마는 세리에 A에서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카타의 대표팀 소집에 부정적이었다. 협상 결과, "조별 리그 3경기만"이라는 조건으로 일본으로의 귀국이 허용되었지만, 일본 대표팀이 조별 리그를 통과하자 트루시에 감독은 나카타에게 준결승 이후에도 출전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 축구 협회와 AS 로마의 협의 결과, 준결승까지 참가를 연장하고, 그 후 이탈리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준결승에서는 폭우 속에서 나카타 자신이 결승골을 넣어[7] 일본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최 A대표팀 세계 대회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결승전에도 나카타와 함께하기를 원했고, 준결승 경기 종료 직후, 폭우가 쏟아지는 경기장 위에서 나카타 본인을 직접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로마가 이 기간에 우승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았고, 나카타 자신이 "세리에 A 우승"의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했기 때문에[8] 고민 끝에[9]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결정했다. (실제로 AS 로마는 직후 경기에서 우승을 결정했고, 나카타는 일본인 최초의 세리에 A 우승 멤버가 되었다. 또한 자신도 그 경기에 교체 출전하여 우승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팀 이탈 선택에 대해 트루시에 감독은 격노했고, 나카타와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되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결승전 직전 및 직후 공식 기자 회견에서는 비판하지 않았지만,[10][11] 그 후 공식 기자 회견 등에서도 공개적으로 나카타를 비판하게 되었다.[4] 또한 실제로는 일본 대표팀 내에서 준결승 직후 트루시에 감독은 신랄한 발언을 직접 나카타에게 쏟아냈고, 로마로 돌아가기 전에 나카타가 인사를 하러 왔을 때에도 다른 일본 대표팀 선수들을 모두 모아놓고 그 앞에서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2] 결승전을 앞두고 일본의 에이스 나카타 히데토시가 일본 대표팀을 떠나는 것에 대해, 결승 상대인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 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팀을 떠나다니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고, 대회를 취재하러 온 각국의 언론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나카타 히데토시를 붙잡아두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6. 조별 리그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 리그는 A조와 B조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A조는 대한민국에서, B조는 일본에서 경기가 열렸다.

승점경기
A조프랑스6320191+8
오스트레일리아6320131+2
대한민국6320136-3
멕시코0300318-7
B조일본7321050+5
브라질5312020+2
카메룬3310224-2
캐나다1301205-5

6. 1. A조

A조는 대한민국에서 개최되었다.

승점경기
프랑스6320191+8
오스트레일리아6320131+2
대한민국6320136−3
멕시코0300318−7




6. 2. B조

B조는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승점경기수득점실점골득실
일본7321050+5
브라질5312020+2
카메룬3310224−2
캐나다1301205−5


  • ---

일시팀 1결과팀 2경기장관중 수
2001년 5월 31일 17:00브라질2 - 0카메룬가시마 사커 스타디움(가시마)10,519명
2001년 5월 31일 19:30일본3 - 0캐나다니가타 스타디움(니가타)39,006명
2001년 6월 2일 17:00캐나다0 - 0브라질가시마 사커 스타디움(가시마)12,095명
2001년 6월 2일 19:30카메룬0 - 2일본니가타 스타디움(니가타)39,430명
2001년 6월 4일 19:30브라질0 - 0일본가시마 사커 스타디움(가시마)37,740명
2001년 6월 4일 19:30카메룬2 - 0캐나다니가타 스타디움(니가타)15,822명

[4]

경기 결과:

7. 결선 토너먼트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선 토너먼트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경기날짜 및 장소결과
준결승전6월 7일 요코하마 일본 1 - 0 호주
준결승전6월 7일 수원 프랑스 2 - 1 브라질
3·4위전6월 9일 울산 호주 1 - 0 브라질
결승전6월 10일 요코하마 일본 0 - 1 프랑스



준결승전, 3·4위전, 결승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하위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1. 준결승전

2001년 6월 7일에 열린 준결승전은 두 경기였다.

첫 번째 경기는 일본과 호주의 경기로,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에서 열렸다. 나카타의 결승골로 일본이 1-0으로 승리했다.[4] 이날 경기는 집중 호우로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으나,[4]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의 피치 상태는 양호하여 FIFA로부터 "최고 수준의 국제적 경기에 걸맞은 경기장"이라는 칭찬을 받았다.[13]

경기 정보 (일본 vs 호주)



두 번째 경기는 프랑스브라질의 경기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피레스드사이의 득점으로 프랑스가 2-1로 승리했다. 브라질은 하몬이 득점했다.

경기 정보 (프랑스 vs 브라질)


7. 2. 3·4위전

2001년 6월 9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3·4위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을 1-0으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숀 머피가 후반 84분에 결승골을 기록했다.[4] 관중 수는 28,520명이었으며, 주심은 독일의 헬무트 크루크가 맡았다.

7. 3. 결승전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2001년 6월 10일 일본 요코하마의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의 결승전이다. 프랑스일본을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4]

경기는 JST로 19시에 시작되었으며, 아랍에미리트의 알리 부지사임 심판이 주심을 맡았다. 관중 수는 65,533명이었다. 프랑스의 비에라가 전반 30분에 결승골을 기록했다.[4]

결승전 이틀 전인 6월 8일에는 이케다 초등학교 부속 학교 사건이 발생하여, 경기 시작 전에 1분간 묵념이 거행되었다.

준결승전에서 일본이 호주를 상대로 경기할 당시, 경기장은 비로 인해 시야가 가려질 정도의 집중 호우가 내렸다.[13] 일본 대표팀의 주력 미드필더 이나모토 준이치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의 피치는 물이 고이지 않아 양호한 상태를 유지했고, FIFA를 포함한 전 세계로부터 "최고 수준의 국제적 경기에 걸맞은 경기장"이라는 칭찬을 받았다.[13]

8. 우승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바르테즈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에이라, 윌토르, 드사이 등이 활약했다. 조별 리그에서는 호주에 패했지만, 대한민국과 멕시코에 큰 점수 차로 승리하여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브라질을 다시 꺾고, 결승에서 일본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3].

9. 수상

수상 선수·팀비고
골든 볼 (대회 MVP) 로베르 피레스우승
실버 볼 파트리크 비에라우승
브론즈 볼 나카타 히데토시준우승
골든 슈 (득점왕) 로베르 피레스2득점
실버 슈 (득점왕) 에리크 카리에르2득점
브론즈 슈 (득점왕) 황선홍2득점
페어 플레이상 일본1회


10. 최다 득점자



총 24명의 선수들이 총 31골을 기록했으며, 자책골은 없었다.

11. 팀 득점 기록


12. 최종 순위

순위경기수득실차승점
1프랑스5401122+1012
2일본531161+510
3오스트레일리아530242+29
4브라질51223305
5대한민국320136-36
6카메룬310224-23
7캐나다301205-51
8멕시코300318-70


  • 4강 진출 팀은 결승전 및 3, 4위전으로 순위를 가린다. 이전 단계에서 탈락한 팀들의 순위는 조별 리그와 동일하게 승점-골득실차-다득점순으로 가리며 모두 같을 경우 공동 순위로 한다.
  •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팀은 최고 5위에서 최하 8위까지이다.
  • 승부차기에서 결정된 경기는 무승부로 간주한다.[2]

13. 기타

이 대회 이전 해인 1997년에는 투르노와 드 프랑스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 브라질 4개국이 참가하는 국제 친선 대회였다. 일본은 2002 FIFA 월드컵을 앞두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프레 대회로 개최할 것을 요청받았다. 처음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한일 양국 모두 승낙하여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월드컵 프레 대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관례는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공식화되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지단바르테즈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에이라, 윌토르, 드사이 등이 활약하며 조별 리그에서 대한민국멕시코를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준결승에서는 브라질을, 결승에서는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3]

한편, 약체로 평가받던 호주일본의 선전이 돋보였다.[3] 프랭크 파리나 감독이 이끄는 호주는 조별 리그에서 프랑스를 꺾고, 3위 결정전에서 브라질을 꺾으며 3위를 차지했다.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의 공격 축구에서 공수 밸런스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4] 결승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준우승을 차지했다.[3] 일본의 결승 진출은 FIFA 주최 A대표팀 세계 대회에서 남녀를 통틀어 최초의 쾌거였다.

그러나 대회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과 국제 A매치 데이 미정착, 유럽 리그와의 일정 겹침 등으로 인해 선수들의 동기 부여가 낮았고, 일부 선수들은 출전을 보류하는 등 대회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각국의 진지함에는 차이가 있었다.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국인 프랑스는 유럽 예선이 면제되어 이번 대회를 중요하게 여겼고,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국인 일본대한민국, 카메룬, 캐나다는 대회를 중시했다. 반면, 브라질은 유럽 클럽 소속 주전 선수들을 소집하지 않았고,[6] 호주는 해외파 주력 선수들이 불참했으며, 멕시코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월드컵 예선 부진으로 대회에 집중하기 어려웠다.[4]

일본나카타 히데토시는 소속팀 AS 로마와의 마찰로 조별 리그 3경기만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이 조별 리그를 통과하자 트루시에 감독은 나카타에게 준결승 이후에도 출전할 것을 요청했다. 협상 끝에 준결승까지 참가 연장이 결정되었고, 나카타는 폭우 속에서 결승골을 넣으며[7] 일본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트루시에는 결승전에도 나카타의 동행을 원했지만, 나카타는 세리에 A 우승을 위해[8]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결정했다.[9] 이 선택은 트루시에 감독의 분노를 샀고,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되었다. 트루시에는 공식 기자 회견 등에서 나카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4]

참조

[1] 웹사이트 FIFA Confederations Cup Korea/Japan 2001 {{!}} Awards https://web.archive.[...]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FIFA) 2017-10-20
[2] 웹사이트 Statistical Kit: FIFA Confederations Cup (FCC 2017 post-event edition) – Ranking by tournament https://digitalhub.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7-07-10
[3] 웹사이트 FIFA.com - Korea/Japan 2001: French masterclass in the East http://www.fifa.com/[...] 2010-12-21
[4] 서적 日本サッカー史 日本代表の90年 1917→2006 2007
[5] 웹사이트 日韓コンフェデ杯フランス登録メンバー http://archive.sport[...]
[6] 웹사이트 日韓コンフェデ杯ブラジル登録メンバー http://archive.sport[...]
[7] 웹사이트 https://www.asahi-ne[...]
[8] 간행물 週刊サッカーマガジン 2008-05-20
[9] 웹사이트 日韓コンフェデ杯準決勝豪州戦終了後トルシエ監督&日本代表選手コメント http://archive.sport[...]
[10] 웹사이트 日韓コンフェデ杯決勝戦前日トルシエ監督会見全文3/4 http://archive.sport[...]
[11] 웹사이트 日韓コンフェデ杯決勝戦終了後トルシエ監督&日本代表選手コメント http://archive.sport[...]
[12] 서적 山本昌邦備忘録 講談社 2004
[13] 웹사이트 横浜とサッカーの歴史 https://megalodon.jp[...]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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