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 (음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Boston》은 1976년 발매된 미국의 록 밴드 보스턴의 데뷔 앨범이다. 톰 숄츠가 작곡, 프로듀싱, 대부분의 악기 연주를 담당했으며, 앨범은 하드 록과 팝적인 멜로디를 결합한 사운드로 특징지어진다. "More Than a Feeling", "Peace of Mind" 등의 싱글 히트곡을 포함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미국에서 1,700만 장 이상,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 앨범은 "올타임 최고의 데뷔 앨범 100"에서 41위에 랭크되었으며, 클래식 록 음악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보스턴의 음반 - Corporate America
《Corporate America》는 록 밴드 보스턴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발매 후 빌보드 200 차트 42위에 올랐으며, 환경 보존 웹사이트 링크가 포함되었고, 사회 비판적인 타이틀곡은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 보스턴의 음반 - Don't Look Back (보스턴의 음반)
1978년에 발매된 보스턴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Don't Look Back은 하드 록 스타일과 팝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사회적 메시지와 개인의 내면 갈등을 담은 여러 곡들을 수록했다. - 1976년 데뷔 음반 - Air Supply
Air Supply는 1975년 호주에서 결성된 화음 보컬 그룹으로, 크리시 해먼드, 러셀 히치콕, 그레이엄 러셀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공연에서 만나 결성되었으며, 데뷔 앨범 ''Air Supply''는 호주 앨범 차트 17위에 오르고 골드 레코드를 달성했다. - 1976년 데뷔 음반 - Olias of Sunhillow
Olias of Sunhillow는 1975년 존 앤더슨이 발표한 솔로 앨범으로, 선힐로우 행성의 네 부족이 화산 폭발을 피해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이야기를 담은 개념 앨범이다. - 에픽 레코드 음반 - Supreme Clientele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데뷔 음반인 《Supreme Clientele》는 RZA의 주도 하에 녹음 중단과 스튜디오 피해를 극복하고 아프리카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가사와 독특한 사운드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롤링 스톤지의 "역대 최고 앨범 500장"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피프티 센트 조롱과 작사권 논란도 있었다. - 에픽 레코드 음반 - Celine Dion
셀린 디온의 1992년 앨범 "Celine Dion"은 "미녀와 야수"의 성공과 유명 작곡가들의 참여, 그리고 그래미상과 주노상 수상으로 평론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셀린 디온을 북미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Boston (음반) - [음악]에 관한 문서 | |
---|---|
음반 정보 | |
![]() | |
유형 | 정규 음반 |
장르 | 하드 록 아레나 록 |
길이 | 37분 37초 |
레이블 | 에픽 |
프로듀서 | 존 보일런 톰 숄츠 |
발매 정보 | |
발매일 | 1976년 8월 25일 |
녹음 기간 | 1975년 10월 ~ 1976년 4월 |
녹음 장소 | Foxglove (워터타운) 캐피틀 (할리우드) 레코드 플랜트 (로스앤젤레스) |
싱글 | |
싱글 1 | More Than a Feeling (1976년 9월) |
싱글 2 | Long Time (1977년 1월) |
싱글 3 | Peace of Mind (1977년 4월) |
2. 배경
1960년대 후반, 톰 숄츠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작곡을 시작했다.[10]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폴라로이드사(Polaroid Corporation)에서 제품 개발 부서에서 일했다.[7] 밤에는 보스턴의 바와 클럽에서 밴드의 키보드를 연주하며 드러머 짐 마스데아와 협력했다.[18] 두 사람은 "맑고 깨끗한 보컬과 뼈를 부수는 듯한 기타"를 갖춘 완벽한 록 밴드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며, 자신들을 시간제 음악가로 여겼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이디어를 녹음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근처에 작은 스튜디오를 지었다. 숄츠는 종종 재녹음하고, 지우고, 테이프를 버리면서 "완벽한 노래"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녹음했다.[7]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톰 숄츠는 폴라로이드사에서 제품 개발자로 일하면서 밤에는 짐 마스데아와 함께 보스턴 지역 클럽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18] 이들은 "맑고 깨끗한 보컬과 뼈를 부수는 듯한 기타"를 갖춘 록 밴드를 꿈꿨지만, 시간제 음악가로 활동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근처에 작은 스튜디오를 짓고 아이디어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숄츠는 "완벽한 노래"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녹음하고, 재녹음하고, 지우고, 테이프를 버리는 과정을 반복했다.[7]
Boston영어의 음악은 하드 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팝적이고 듣기 쉬운 멜로디, 그리고 상쾌한 코러스가 조화를 이루어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러한 음악 스타일은 캔자스나 저니와 함께 아메리칸 프로그레시브 하드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보스턴의 곡은 클래식 록이라는 용어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숄츠와 마스데아는 나중에 기타리스트 배리 구드로를 포함한 밴드 마더스 밀크에 합류하여 보스턴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했다. 숄츠는 빠르게 키보디스트에서 리드 작곡가로 변모했고, 밴드는 브래드 델프가 오디션을 보기 전에 수십 명의 리드 보컬리스트를 거쳤다.[7] 델프는 매사추세츠주 댄버스의 한 전기 코일 회사에서 전직 공장 노동자였으며, 주말 대부분을 커버 밴드에서 보냈다. 그는 3인조 밴드가 조조스라는 클럽에서 공연하는 리비어 비치로 운전해 갔다.[7] 델프는 밴드가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고, 여전히 녹음 중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조 월시의 "Rocky Mountain Way" 노래 오디션을 거쳐 밴드에 합류했다. 마더스 밀크는 리드 기타에 구드로를 두고, 보스턴의 초기 버전이 되었다.[7]
1973년까지 밴드는 여섯 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낼 준비가 되었고, 숄츠와 그의 아내 신디는 찾을 수 있는 모든 음반 회사에 사본을 보냈다. 데모에 수록된 곡들은 "More Than a Feeling", "Peace of Mind", "Rock & Roll Band", "Something About You", "San Francisco Day"(나중에 "Hitch a Ride"로 변경) 및 "Love"(나중에 "Don't Be Afraid"로 변경)였다.[8] 그룹은 여러 레이블, RCA 레코드(RCA), 캐피틀 레코드(Capitol), 애틀랜틱 레코드(Atlantic) 및 일렉트라 레코드(Elektra)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았으며, Epic Records는 밴드가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회사 대표 레니 페체(Lennie Petze)가 서명한 "매우 모욕적인 편지"와 함께 테이프를 완전히 거부했다.[7][9]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테이프는 보스턴의 데뷔 앨범에 수록될 곡들의 초기 버전이 담겨 있었다. 델프는 "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그 직후 밴드를 떠났다.[7]
1975년까지 톰 숄츠는 클럽 활동을 마치고, 지하실에서 녹음한 데모 테이프에만 전념했다. 숄츠는 집을 임대하고 있었고, 녹음 장비에 많은 자금을 소비했다. 그는 한때 미래의 집 계약금을 위해 모아둔 돈을 Scully Recording Instruments에서 제작한 중고 전문 멀티트랙 녹음 테이프 레코더에 썼다.[7] 그는 델프에게 보컬을 제공하도록 요청하며, "밴드에 합류할 여유가 없거나 밴드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스튜디오에 와서 이 테이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말했다.
숄츠는 마더스 밀크 데모를 숄츠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James Gang과 계약했던 ABC 레코드에서 일하는 사촌을 둔 폴라로이드 동료에게 주었다. 그 직원은 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잊었고,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가 숄츠에게 연락하기 시작할 때까지 몇 달 동안 책상에 놓여 있었고, 그 후 그는 테이프를 ABC에 보냈다.[7][18] ABC 레코드의 뉴잉글랜드 지역 대표인 찰스 맥켄지는 동료의 사무실에서 처음 테이프를 우연히 들었다.[7][30] 그는 캘리포니아의 독립 음반 프로모터인 폴 아헌에게 전화를 걸어, 둘 중 한 명이 흥미로운 것을 들으면 서로 알려주기로 한 신사 협정을 맺었다.[18] 아헌은 원래 마더스 밀크 데모를 넘겼지만, Epic의 페체와 연결하여 그에게 알렸다.
Epic은 숄츠에게 연락하여 밴드가 실제로 "지하실에서 작업하는 미친 천재"인지 의심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CBS 대표를 위한 쇼케이스에서 그룹이 공연해야 한다는 계약을 제안했다.[7][30] 마스데아는 이 시점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라인업을 완성하기 위해 숄츠는 구드로와 초기 데모에 녹음했던 다른 두 명의 연주자, 베이시스트 프란 시한과 드러머 데이브 커리어를 불렀다. 1975년 11월, 그룹은 에어로스미스의 연습 시설로 사용되던 보스턴의 창고에서 임원들을 위해 공연했다.[7][18] 한 달 후, CBS 레코드는 6년에 걸쳐 10개의 앨범을 계약하는 마더스 밀크와 계약을 맺었다. 커리어는 밴드가 오디션을 통과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 탈퇴했고, 숄츠는 그 자리에 드러머 십 하시안을 영입했다.
Epic은 전기 및 방송 엔지니어를 대표하는 노조인 NABET과 계약을 체결하여, 컬럼비아 소유 스튜디오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경우, 해당 스튜디오에서 250마일 이내에 유급 노조 엔지니어가 참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30] 따라서, 레이블은 밴드가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 노래를 재녹음하기를 원했다. 숄츠는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고, 아헌의 지인인 존 보일란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30] 보일란의 임무는 "레이블을 위해 간섭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는 밴드가 이름을 보스턴으로 변경하라는 중요한 제안을 했다.[7][18]
3. 녹음 및 제작
이후 숄츠와 마스데아는 기타리스트 배리 구드로가 포함된 밴드 마더스 밀크에 합류했고, 브래드 델프가 보컬로 합류하면서 보스턴의 초기 형태가 만들어졌다.[7] 1973년, 이들은 "More Than a Feeling", "Peace of Mind", "Rock & Roll Band" 등 여섯 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여러 음반 회사에 보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8] Epic Records는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들의 테이프를 거부했다.[7][9]
1975년, 숄츠는 클럽 활동을 중단하고 자신의 지하실에서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중고 멀티트랙 녹음 테이프 레코더를 구매하는 등 녹음 장비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7] 그는 델프에게 보컬을 요청했고, 폴라로이드 동료를 통해 이 데모 테이프를 ABC 레코드에 전달했다.[7][18] ABC 레코드의 찰스 맥켄지는 이 테이프를 듣고 캘리포니아의 음반 프로모터 폴 아헌에게 알렸고, 아헌은 Epic의 레니 페체에게 연락했다.[18]
Epic은 숄츠에게 밴드가 실제로 "지하실에서 작업하는 미친 천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쇼케이스 공연을 요구하는 계약을 제안했다.[7][30] 숄츠는 구드로, 프란 시한, 데이브 커리어와 함께 에어로스미스의 연습실에서 공연했고,[7][18] 한 달 후 CBS 레코드와 6년 동안 10개 앨범을 발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커리어는 탈퇴하고 십 하시안이 드러머로 합류했다.
Epic은 NABET과의 계약 때문에 밴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 노래를 재녹음하기를 원했다.[30] 숄츠는 이에 불만을 품었고, 존 보일란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밴드가 이름을 보스턴으로 변경하도록 제안했다.[30][7][18]
''보스턴''은 주로 숄츠의 워터타운 폭스글러브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7] Epic은 데모 테이프와 같은 사운드를 원했고, 숄츠는 홈 레코딩에 익숙했기 때문에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9] 숄츠는 폴라로이드에서 휴가를 내고 지하실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그는 데모와 같은 부분을 재현하고 같은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9]
보이런은 숄츠의 기타 소리는 훌륭하지만 어쿠스틱 악기 녹음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하여 엔지니어 폴 그럽을 불러 마이크 기술을 가르치게 했다.[30] 보이런은 주로 보컬 녹음과 믹싱에 참여했고,[30] 밴드를 웨스트 코스트로 데려가 "Let Me Take You Home Tonight"를 녹음했다.[11] 숄츠는 CBS 몰래 워터타운 집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녹음했다. 보이런은 앨범 예산으로 델프에게 테일러 어쿠스틱 기타를 선물했지만, 숄츠는 "More Than a Feeling" 등을 100달러짜리 야마하 기타로 자신의 지하실에서 녹음했다.[10][7][11]
보이런은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서 원격 트럭을 고용하여 숄츠의 집 지하실에서 녹음된 트랙을 24트랙 데크로 전송했다.[30] 델프의 보컬을 제외한 모든 녹음은 지하실에서 완료되었고, 델프의 보컬은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워렌 듀이의 엔지니어링으로 오버더빙되었다.[9][30] 숄츠는 믹싱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전문 엔지니어들이 자신을 "시골뜨기"로 볼까 봐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접근 방식이 뒤떨어져 있다고 느꼈다.[9] 믹싱 단계에서 숄츠는 기타 트랙, 보이런은 드럼, 듀이는 보컬에 집중했다.[30]
이 앨범은 "음악 사업 역사상 가장 복잡한 기업 사기극 중 하나"로 묘사되었다.[30] "Let Me Take You Home Tonight"을 제외하면, 이 앨범은 사실상 데모 테이프의 복사본이었다.[7] 앨범은 당시 업계 기준으로는 매우 적은 금액인 몇천 달러에 녹음되었다.[10]
당시 보스턴은 기타 사운드를 강조한 하드 록 사운드에 팝적이고 듣기 쉬운 멜로디, 그리고 상쾌한 코러스를 결합하여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음악성은 캔자스, 저니 등과 함께 아메리칸 프로그레시브 하드로 불렸으며, 클래식 록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숄츠는 주로 자작 또는 개조된 앰프와 이펙터를 사용했다. 특히 마에스트로사의 에코플렉스 EP-2를 개조한 이펙터가 유명하며, "더블러", "Hyper Space Pedal" 등을 제작했다. 또한 마샬 앰프를 개조하고, MXR사의 6밴드 이퀄라이저를 사용했다. 어테뉴에이터, 컴프레서, Boss 페이저, 와우 페달 등도 사용했다.
기타는 깁슨 레스 폴 골드탑의 픽업을 교체하여 사용했고, 프론트에는 P-90, 리어에는 디마지오 DP-100 Super Distortion 등을 장착했다. 어쿠스틱 기타는 Guild 제품을 사용했고, 오르간은 해먼드 오르간을 사용했다.
4. 음악
톰 숄츠는 1960년대 후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처음 작곡을 시작했으며,[10]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폴라로이드사(Polaroid Corporation)에서 제품 개발 부서에서 일하면서[7] 밤에는 보스턴 지역의 바와 클럽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짐 마스데아와 함께 완벽한 록 밴드에 대한 구상을 하였다.[18] 이들은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근처에 작은 스튜디오를 짓고, 숄츠는 "완벽한 노래"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녹음하고, 재녹음하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했다.[7]
숄츠와 마스데아는 기타리스트 배리 구드로와 함께 마더스 밀크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숄츠는 키보디스트에서 리드 작곡가로 변모했고, 밴드는 브래드 델프를 영입하기 전까지 수십 명의 리드 보컬리스트를 거쳤다.[7] 델프는 리비어 비치에 있는 조조스라는 클럽에서 밴드의 공연을 보고 합류하게 되었다.[7]
1973년, 밴드는 데모 테이프를 여러 음반 회사에 보냈으나, RCA 레코드(RCA), 캐피틀 레코드(Capitol), 애틀랜틱 레코드(Atlantic), 일렉트라 레코드(Elektra) 등으로부터 거절당했다.[8] Epic Records는 밴드가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7][9]
숄츠는 클럽 활동을 마치고 지하실에서 데모 테이프 작업에 전념하며, 녹음 장비에 많은 투자를 했다.[7] 그는 델프에게 보컬을 요청했고, 결국 이 데모 테이프는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와 ABC 레코드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7][18] Epic Records는 숄츠와 계약을 제안하며 밴드가 실제로 "지하실에서 작업하는 미친 천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쇼케이스 공연을 요구했다.[7][30]
밴드는 에어로스미스의 연습 시설에서 임원들 앞에서 공연했고,[7][18] 한 달 후, CBS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숄츠는 십 하시안을 드러머로 영입하고, 존 보일란의 제안으로 밴드 이름을 보스턴으로 변경했다.[7][18]
''보스턴''은 앨범에 수록되기 여러 해 전에 쓰여진 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18] 숄츠는 델프가 작곡한 "Let Me Take You Home Tonight"을 제외한 모든 곡을 직접 쓰거나 공동 작곡하고,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했으며, 모든 트랙을 녹음하고 엔지니어링했다.[10] "보스턴 사운드"는 "크고 거대한 멜로디 후크"와 "매우 헤비하고, 고전적인 영감을 받은 기타 파트"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11] 숄츠는 더 레프트 뱅크에서 보컬 하모니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기타는 더 킨크스, 더 야드버즈, 블루 치어의 영향을 받았다.[11] 또한,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바로크 멜로디 장치인 모덴트를 사용했다.[11]
당시 숄츠는 자작 또는 개조된 앰프와 이펙터를 주로 사용했다. 특히 마에스트로사의 에코플렉스 EP-2를 개조하여 만든 이펙터가 유명하며, "더블러", "Hyper Space Pedal"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마샬 앰프를 개조하여 게인과 고역을 강조하고, MXR사의 6밴드 이퀄라이저로 중역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자작 어테뉴에이터, 컴프레서, Boss의 페이저 등과 와우 페달 등을 사용했다. 기타는 깁슨의 레스 폴 골드탑의 픽업을 교체하여 사용했으며, 어쿠스틱 기타는 Guild 제품을, 오르간은 해먼드 오르간을 사용했다.
보스턴의 곡은 대부분 톰 숄츠 혼자 작곡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으로 인해 레코드 회사와 멤버들 간의 다양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다음 앨범인 『돈트 룩 백』(1978년) 이후 앨범 발표 간격이 길어지게 되었다.
4. 1. 주요 곡 해설
5. 반응
이 음반은 크게 성공하여 3개의 싱글이 Top 40 히트곡이 되었다. 앨범에 수록된 8곡 모두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클래식 록 라디오에서 정기적으로 방송되었다. 1976년에 단 3주 만에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 골드 레코드상(50만 장 판매)을, 3개월 만인 1976년 11월 11일에 플래티넘상(100만 장 판매)을 받으며, 미국 그룹의 데뷔 앨범으로는 가장 빠르게 판매된 앨범이 되었다.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여 1986년 10주년에는 900만 장, 1990년에는 다이아몬드 앨범을 달성했으며, 2003년에는 17× 플래티넘을 기록했다.[21]
전미 빌보드 차트에서는 최고 3위를 기록했고, 142주간 차트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700만 장, 전 세계적으로는 2,000만 장을 판매했다. 데뷔작으로서는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했다.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올타임 최고의 데뷔 앨범 100"에서 41위[41]에 랭크되었다.
6. 영향 및 유산
''보스턴''은 주류 미국 록 음악이 블루스 기반의 프로토 메탈에서 파워 팝으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앨범은 "록 시대 초기의 활력과 그 이후 록 레코드 제작의 특징이 될 정밀함과 기술을 결합했다."[30] 앨범의 A면을 포함한 8곡 모두 클래식 록 라디오에서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7]
보스턴의 성공은 이후 "프로듀서" 록 사운드의 시대를 열었으며, 앨범의 사운드는 당시 다른 여러 주요 록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었다.[9] 이 앨범은 수년간 유지될 제작 가치와 스튜디오 기술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했다.[30]
''보스턴''은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며, ''죽기 전에 들어야 할 1001개의 앨범''에 포함되었다.[31] 또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결정적인 200" 목록에서 43위에 올랐다.[32]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올타임 최고의 데뷔 앨범 100"에서는 41위[41]를 차지했다.
두꺼운 기타 사운드와 팝적이고 듣기 쉬운 멜로디, 상쾌한 코러스가 어우러진 이 앨범은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 음악성은 캔자스, 저니 등과 함께 아메리칸 프로그레시브 하드로 불리며, 보스턴의 곡은 클래식 록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용된 장비는 대부분 자작 또는 개조된 앰프나 이펙터였다. 특히 마에스트로사의 에코플렉스 EP-2를 개조한 이펙터가 유명하다. 라이브나 레코딩에서 기타를 이중으로 들려주는 "더블러", 테이프 에코, 독특한 딜레이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Hyper Space Pedal"은 모두 에코플렉스 개조의 산물이다. 마샬 앰프를 개조하여 게인과 고역을 강조하고, MXR사의 6밴드 이퀄라이저로 중역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타는 깁슨 레스 폴 골드탑의 픽업을 교체하여 사용했다. 프론트에는 소프바 타입의 P-90, 리어에는 디마지오 DP-100 Super Distortion 등을 사용했다. 어쿠스틱 기타는 Guild 제품을, 오르간은 해먼드 오르간을 사용했다.
밴드의 대표곡인 「우주의 저편으로」, 「롱 타임」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보스턴의 곡 대부분은 톰 숄츠가 혼자 작곡했다. 그러나 앨범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레코드 회사나 멤버들과 다양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다음 앨범 『돈트 룩 백』(1978년) 이후 앨범 발표 간격이 길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앨범은 전미 빌보드 차트에서 최고 3위를 기록했고, 142주간 차트에 머물렀다. 미국에서만 , 전 세계적으로 이상 판매되며 데뷔 앨범으로는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했다.
7. 곡 목록
다음은 보스턴의 데뷔 음반 《Boston》의 곡 목록이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모든 곡은 톰 숄츠가 작사/작곡했다.
번호 | 제목 | 작사/작곡 | 재생 시간 |
---|---|---|---|
1 | More Than a Feeling | 톰 숄츠 | 4:46 |
2 | Peace of Mind | 톰 숄츠 | 5:02 |
3 | Foreplay/Long Time | 톰 숄츠 | 7:47 |
4 | Rock & Roll Band | 톰 숄츠 | 3:00 |
5 | Smokin Smokin'|스모킨영어 | 브래드 델프, 톰 숄츠 | 4:20 |
6 | Hitch a Ride | 톰 숄츠 | 4:12 |
7 | Something About You | 톰 숄츠 | 3:48 |
8 | Let Me Take You Home Tonight Let Me Take You Home Tonight|렛 미 테이크 유 홈 투나잇영어 | 브래드 델프 | 4:44 |
〈More Than a Feeling〉과 〈Peace of Mind〉의 싱글 음반은 앨범 수록 버전보다 짧게 편집되었다.
7. 1. Side one
번호 | 제목 | 재생 시간 | 작사/작곡 |
---|---|---|---|
1 | More Than a Feeling | 4:46 | 톰 숄츠 |
2 | Peace of Mind | 5:02 | 톰 숄츠 |
3 | Foreplay/Long Time | 7:47 | 톰 숄츠 |
7. 2. Side two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모든 곡들은 톰 숄츠에 의해 작사/작곡되었다.번호 | 제목 | 작사/작곡 | 재생 시간 |
---|---|---|---|
4 | Rock & Roll Band | 톰 숄츠 | 3:00 |
5 | Smokin Smokin'|스모킨영어 | 브래드 델프, 톰 숄츠 | 4:20 |
6 | Hitch a Ride | 톰 숄츠 | 4:12 |
7 | Something About You | 톰 숄츠 | 3:48 |
8 | Let Me Take You Home Tonight Let Me Take You Home Tonight|렛 미 테이크 유 홈 투나잇영어 | 브래드 델프 | 4:44 |
8. 참여
참여자 | 역할 |
---|---|
톰 숄츠 | 리드 및 리듬 기타, 어쿠스틱 기타, 특수 효과 기타, 베이스, 오르간, 클라비넷, 타악기, 프로듀서, 엔지니어[33][34] |
브래드 델프 | 리드 및 하모니 보컬, 12현 어쿠스틱 기타, 리듬 기타, 타악기[33][34] |
배리 구드로 | 리드 및 리듬 기타, "Long Time" 및 "Let Me Take You Home Tonight"의 기타 솔로[33][34] |
프랜 시언 | "Foreplay"와 "Let Me Take You Home Tonight"의 베이스[33][34] |
십 해시안 | 드럼, 타악기[33][34] |
짐 마스데아 | "Rock & Roll Band" 드럼[33][34] |
존 보일란 | 프로듀서[33][34] |
워렌 듀이 | 엔지니어[33][34] |
데니 킹, 브루스 헨젤, 더그 라이더 | 보조 엔지니어[33][34] |
스티브 호지 | 믹싱 보조[33][34] |
왈리 트라우고트 | LP 마스터링[33][34] |
토비 마운틴, 빌 라이언 | 리마스터링[33][34] |
톰 "컬리" 러프 | 디지털 전송[33][34] |
폴 아헌(Paul Ahern), 찰스 맥켄지(Charles McKenzie) | 아트 디렉션[33][34] |
킴 하트(Kim Hart) | 디자인 컨설팅[33][34] |
제프 앨버트슨(Jeff Albertson), 론 파우넬(Ron Pownall) | 사진[33][34] |
파울라 셔 | 커버 디자이너[33][34] |
로저 하이슨(Roger Huyssen) | 커버 일러스트레이션[33][34] |
조엘 짐머만(Joel Zimmerman) | 재발매 디자인[33][34] |
9. 차트
《Boston》은 1977년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차트 순위에 올랐다. 캐나다 톱 앨범/CD 차트에서는 8위[38], 독일 앨범 차트에서는 14위[39],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는 5위[40]를 기록했다.
차트 (1977년) | 순위 |
---|---|
캐나다 톱 앨범/CD (RPM)[38] | 8 |
독일 앨범 (오피셜 Top 100)[39] | 14 |
미국 빌보드 200[40] | 5 |
전미 빌보드 차트에서는 최고 3위를 기록했고, 142주간 차트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700만 장, 전 세계적으로는 2,000만 장을 판매했다. 데뷔작으로서는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했다.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올타임 최고의 데뷔 앨범 100"에서 41위[41]에 랭크되었다.
10. 인증
참조
[1]
서적
Rolling Stone Album Guide
Random House
1992
[2]
웹사이트
RIAA
https://www.riaa.com[...]
[3]
CD liner
Boston
http://www.thirdstag[...]
Epic Records
2017-04-25
[4]
웹사이트
http://www.ra17.com/[...]
[5]
잡지
100 Best Debut Albums of All Time
https://www.rollings[...]
2022-04-07
[6]
웹사이트
The Best Debut Albums Ever - Top40Weekly.com
https://top40weekly.[...]
2022-04-07
[7]
뉴스
Heaven Is a Reel-to-Reel Tape
Goldmine
1998-05-22
[8]
뉴스
The Rock Man
http://www.gonnahitc[...]
1997-09
[9]
잡지
Boston: Feelin' Satisfied
http://www.guitarwor[...]
2013-08-14
[10]
잡지
Boston's Scholz Engineers a Rock Dynasty
[11]
뉴스
The Rock Man
Maximum Guitar
[12]
웹사이트
Watch Boston Perform 'Hitch A Ride' Back In 1988
https://societyofroc[...]
Society of Rock
2022-05-23
[13]
웹사이트
More Than an Album Cover
https://www.theatlan[...]
2015-03-26
[14]
뉴스
Boston Group and How It Grew
1976-12-13
[15]
웹사이트
Boston Blast Off with Blockbuster Debut
https://calendar.son[...]
2022-08-23
[16]
웹사이트
Boston by Boston
https://music.apple.[...]
2022-08-24
[17]
웹사이트
Boston by Boston
https://genius.com/a[...]
2022-08-24
[18]
잡지
The Band from the Platinum Basement
1978-08-10
[19]
잡지
Boston
https://www.rollings[...]
Straight Arrow
1976-10-07
[20]
잡지
Overnight Success
1977-08
[21]
album
Boston
[22]
잡지
THE TUBES THE TUBES
http://archive.class[...]
2012-06-27
[23]
잡지
Ask Billboard: Best Selling Debut Album, Dido, Australian Acts Trying To Crack The U.S. Market
http://www.billboard[...]
[24]
웹사이트
Top 100 Albums
https://www.riaa.com[...]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2012-03-20
[25]
웹사이트
2016-03-28
[26]
서적
Christgau's Record Guide: Rock Albums of the Seventies
Ticknor & Fields
2019-11-24
[27]
서적
The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Omnibus Press
[28]
웹사이트
Boston: Boston / Don't Look Back, PopMatters
http://www.popmatter[...]
2006-07-25
[29]
서적
The Rolling Stone Record Guide
Random House
1979
[30]
뉴스
Boston's "More Than a Feeling"
Mix
2000-09-01
[31]
서적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Revised and Updated Edition
Universe
2006-02-07
[32]
웹사이트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s "Definitive 200" on Lists of Bests
http://www.listsofbe[...]
2022-01-12
[33]
웹사이트
Feelin' Satisfied: An Interview with Tom Scholz of Boston
http://www.thirdstag[...]
[34]
CD liner
Boston
Epic Records
[35]
서적
Australian Chart Book 1970–1992
Australian Chart Book
[36]
서적
Sisältää hitin – levyt ja esittäjät Suomen musiikkilistoilla vuodesta 1972
Kustannusosakeyhtiö Otava
[37]
서적
Oricon Album Chart Book: Complete Edition 1970–2005
Oricon Entertainment
[38]
웹사이트
RPM Top 100 Albums of '77
https://www.bac-lac.[...]
2024-11-09
[39]
웹사이트
Top 100 Album-Jahrescharts
https://www.offiziel[...]
GfK Entertainment Charts
1977
[40]
웹사이트
Billboard 200 Albums – Year-End
https://www.billboar[...]
Billboard
1977
[41]
Rolling Stone
The 100 Best Debut Albums of All Time:'Boston'
http://www.rollingst[...]
[42]
CD liner
Boston
http://www.thirdstag[...]
Epic Records/Legacy Recordings
[43]
링크
http://www.ra17.com/[...]
[44]
올뮤직
[45]
서적
Christgau's Record Guide: Rock Albums of the Seventies
Ticknor & Fields
[46]
서적
The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Omnibus Press
[47]
링크
http://www.popmatte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