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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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리푸나는 가리푸나어를 사용하는 중앙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으로, 가리푸나족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고 개인, 문화, 언어를 가리키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카리브인, 흑인 카리브인 등으로 불렸으며, 1797년 영국에 의해 세인트빈센트 섬에서 온두라스 로아탄 섬으로 강제 이주된 후 중앙아메리카 각지로 퍼져나갔다. 가리푸나는 춤과 항해술에 능숙했으며, 현재는 중앙아메리카, 미국 등지에 거주하며, 가리푸나어와 빈센트 크리올어를 사용한다. 가리푸나 문화는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카사바를 주재료로 하는 에레바를 주식으로 한다. 가리푸나인의 유전적 기원은 아프리카계, 아라와크/카리브계, 유럽계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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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푸나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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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명칭 | 가리푸나족 |
인구 | 약 400,000명 (2011년) |
주요 거주 지역 | 온두라스 미국 벨리즈 과테말라 니카라과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세인트 빈센트) |
종교 | 주로 로마 가톨릭교, 라스타파리교, 소수의 다른 기독교 교파 |
사용 언어 | 가리푸나어 빈센트 크리올 중앙아메리카 스페인어 벨리즈 크리올 북미 영어 |
관련 민족 | 파르도 칼리나고 아프리카계 카리브인 아프리카계 라틴 아메리카인 타이노 |
역사 및 문화 | |
별칭 | 중앙 아메리카 섬 카리브족 (이전에는 카리브족, 검은 카리브족, 섬 카리브족으로 불림) |
신앙 | 전통적인 영성 신앙 (두구)과 가톨릭 및 가리푸나 민간 신앙 혼합 |
인구 분포 | |
온두라스 | 200,000명 (2003년) |
미국 | 약 200,000명 (2011년) |
벨리즈 | 15,000명 (2003년) |
과테말라 | 5,000명 (2003년) |
니카라과 | 2,000명 (2003년) |
세인트 빈센트 | 1,100–2,000명 (1984년) |
2. 이름
가리푸나어에서 고유 명칭인 ''Garínagu''는 가리푸나족 전체를 가리키고, ''Garífuna''는 개인, 문화, 언어를 가리킨다.[6][10][9] ''Garífuna''와 ''Garínagu''라는 용어는 칼리나고어의 ''Karifuna''와 ''Kalinago''를 아프리카인들이 변형한 것이다.[10][11] 이 용어들은 17세기 중반부터 가리푸나족 스스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1]
소앤틸레스 제도 주민들은 식민지화에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1797년 세인트빈센트 섬 주민들이 영국에 패배하면서 영국은 섬 주민들을 온두라스 북쪽의 로아탄 섬으로 이주시켰다.[54] 이후 가리푸나인들은 중앙아메리카 각지로 이주했다. 이들은 무용과 항해술에 능숙했기 때문에 당시 중앙아메리카를 지배하던 스페인인들은 가리푸나인들을 환영했다.[54] 19세기에는 아이티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과 통혼하면서 가리푸나인들의 아프리카계 혈통이 더욱 짙어졌다.[54]
가리푸나족은 역사적으로 카리브인, 흑인 카리브인, 섬 카리브인 등의 외래어로 알려져 왔다.[1][6] 유럽 탐험가들은 17세기부터 ''흑인 카리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10][12] 18세기에는 영국의 기록에서 피부색에 따라 유사한 문화를 가진 두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 다소 모호하게 ''흑인 카리브인''과 ''황인'' 또는 ''적색 카리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9] 특히 윌리엄 영(Sir William Young, 2nd Baronet)의 ''Account of the Black Charaibs'' (1795)에서 영국 식민지 시대에 사용된 ''흑인 카리브인''이라는 용어는 현대 역사학에서 세인트빈센트 원주민 대다수를 "아프리카에서 온 단순한 침입자"로 규정하여 세인트빈센트에서의 토지 소유권 주장을 부정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13][14]
3.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전후에 가리푸나인들은 뉴욕, 뉴올리언스, 모빌 등을 목적지로 하는 미국의 배에서 일했고, 그 결과 미국에도 가리푸나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54] 현재 가리푸나인들은 중앙아메리카 여러 국가와 미국의 도시들에 거주하고 있다. 과테말라 이사발 주에 거주하는 가리푸나인들은 검은 피부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지만,[55] 온두라스나 벨리즈에서는 그렇지 않다.[54]
3. 1. 카리브해 배경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카리브 사람들은 기원후 1200년경 남아메리카에서 카리브해로 이주했다.[15] 타이노 족의 증언에 따르면, 칼리나고 족은 당시 섬에 거주하던 타이노 족과 그 이전의 이그네리 족을 대체로 몰아내고, 멸종시키고, 동화했다.[16][17][18]
3. 2. 17세기: 프랑스와의 갈등, 노예 무역
1635년, 카리브인들은 모험가 피에르 벨랭 드즈낭뷔크(Pierre Belain d'Esnambuc)와 그의 조카 자크 디엘 뒤 파르케(Jacques Dyel du Parquet)가 이끄는 프랑스군에 의해 압도당했다.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Richelieu)은 자신이 주주로 있는 생크리스토프 회사(Compagnie de Saint-Christophe)에 이 섬을 할양했고, 이후 이 회사는 아메리카 제도 회사(Compagnie des Îles de l'Amérique)로 재편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은 주민들에게 프랑스 법(French Law)을 부과했고,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이 와서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로 개종시키려 했다.[19]
카리브인들이 프랑스인들이 카리브해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설탕과 코코아 농장 건설 및 유지에 노동자로 일하는 것을 거부하자, 1636년 프랑스의 루이 13세(Louis XIII of France)는 "흑인 조약(La Traité des Noirs)"을 선포했다. 이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노예(Slavery)로 잡힌 사람들을 포획하고 구입하여 마르티니크(Martinique) 및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French West Indies)의 다른 지역으로 노동력으로 수송하는 것을 허가했다.[16]
1650년, 회사는 청산되어 마르티니크를 자크 디엘 뒤 파르케(Jacques Dyel du Parquet)에게 매각했고, 그는 총독이 되었다. 그는 1658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그의 미망인 뒤 파르케 부인은 프랑스로부터 섬의 통제권을 인계받았다. 더 많은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이 도착하면서 그들은 "카베스테르"(리워드 측)로 알려진 비옥한 지역에 매료되었다. 프랑스인들은 남은 카리브인들을 북동쪽 해안과 카라벨 반도로 몰아넣었지만, 식민지 개척자들은 추가적인 땅을 원했다. 예수회(Jesuits)와 도미니크 수도회는 어느 수도회가 먼저 도착하든 그 지역의 모든 미래 교구를 얻기로 합의했다. 예수회는 바다로, 도미니크 수도회는 육지로 왔고, 최종적으로 도미니크 수도회가 승리했다.
1660년 카리브인들이 프랑스 지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샤를 우엘 뒤 쁘띠 프레(Charles Houël du Petit Pré) 총독은 그들에 대한 전쟁으로 보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섬에서 추방되었다. 마르티니크에서는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이 남은 소수의 카리브인들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일부 카리브인들은 도미니카와 생빈센트로 도망쳤고, 프랑스인들은 그들을 평화롭게 내버려두기로 합의했다.
3. 3. 18세기: 영국과의 갈등, 카리브 전쟁, 강제 이주
17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세인트빈센트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했다. 1719년 마르티니크의 프랑스 식민지 총독은 군대를 파견하여 섬을 점령하려 했지만 카리브인 주민들에게 저지당했고, 1723년 영국의 시도 역시 격퇴되었다.[28] 1748년 영국과 프랑스는 세인트빈센트를 중립 섬으로 선포했지만,[29] 이 기간 동안 비공식적인 프랑스인 정착이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탈출 노예들이 계속 세인트빈센트에 도착하여 카리브인과의 혼혈을 통해 혼혈 인구가 증가했다.[16]
1763년 파리 조약으로 영국은 세인트빈센트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고,[16] 이후 1세기 동안 카리브-아프리카 원주민들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일련의 카리브 전쟁을 일으켰다.[16]
1627년 영국이 세인트빈센트 섬을 차지하면서 프랑스 정착지 및 카리브인과의 협력 관계에 반대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섬의 영국 지역 총독 윌리엄 영(William Young)은 흑색 카리브인들이 최고의 땅을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살 권리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더욱이 프랑스 정착민들과 흑색 카리브인들의 우호 관계는, 세인트빈센트에 머물려고 노력했던 그들조차도 그들의 투쟁을 지원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카리브 전쟁"을 일으켰다.
제1차 카리브 전쟁은 1769년에 시작되었다. 흑색 카리브인 추장 조셉 샤토예르(Joseph Chatoyer)가 이끈 카리브인들은 섬의 풍상 측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영국 식민 정부 대표들에게 토지를 팔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카리브인들의 효과적인 방어, 영국의 지역 무지, 그리고 런던의 전쟁 반대는 전쟁을 중단시켰다. 1773년 영국과 카리브인 지역의 경계를 구분하는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23] 이 조약은 카리브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획정하고, 세인트빈센트에 피신한 도망친 노예들을 영국과 프랑스 농장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이 마지막 조항과 인근 섬과의 무역 금지는 카리브인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3년 후,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을 지원했고(1776~1783);[30] 카리브인들은 영국에 맞서 싸웠다. 1779년 카리브인들이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어, 전투에서 카리브인들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프랑스에 항복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한다.[31]
1795년 카리브인들은 다시 섬에 대한 영국의 지배에 반발하여 제2차 카리브 전쟁을 일으켰다. 카리브인들은 킹스타운(Kingstown) 주변을 제외한 섬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영국군의 증원으로 킹스타운은 구출되었다. 섬의 내륙과 풍상 지역을 관통하여 장악하려는 영국의 노력은 질병 등으로 좌절되었고, 결국 프랑스군이 도착했다. 랄프 에버크롬비(Ralph Abercromby) 장군의 대규모 군사 원정으로 1796년 카리브인들의 저항은 물리쳐졌다.
전쟁이 끝나고 카리브인들이 항복한 후, 영국 당국은 세인트빈센트의 카리브인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카리브인들이 더 많은 노예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797년 아프리카계 특징을 가진 카리브인들이 추방 대상으로 선정되어, 자메이카로 추방되었다가 온두라스(Honduras)의 로아탄(Roatan) 섬으로 이송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원주민 특징이 더 강한 흑색 카리브인들은 섬에 남을 수 있었다. 5,000명이 넘는 흑색 카리브인들이 추방되었지만, 1797년 4월 12일 추방자들이 로아탄에 상륙했을 때는 약 2,500명만이 살아남았다. 온두라스에 정착한 후 그들은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안을 따라 확장되어 북쪽으로는 벨리즈(Belize)와 과테말라(Guatemala), 남쪽으로는 니카라과(Nicaragua)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앙아메리카 본토의 흑색 카리브인들은 "가리푸나(Garifuna)"로 불리게 되었다.[20]
3. 4. 19세기 이후: 중앙아메리카 정착과 현대
아이티 혁명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밍그에서 노예들이 봉기하여 1804년 독립 공화국 아이티를 건설한 사건이다. 프랑스는 섬을 되찾으려 했으나 황열병 유행 등으로 수천 명의 병력을 잃었다. 이 혁명으로 카리브해 전역과 미국 남부의 유럽인들은 노예 반란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영국은 1833년 노예 제도를 폐지할 때까지 세인트빈센트에서 약 1세대 동안 노예 제도를 운영하여 다른 카리브해 섬들과는 다른 유산을 남겼다.[16]
21세기 가리푸나 인구는 중앙아메리카, 유루메인(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미국 등에 약 6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으로 인해 미국은 중앙아메리카를 제외하고 두 번째로 많은 가리푸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한 뉴욕시에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벨리즈 출신 가리푸나가 가장 많이 거주하며, 로스앤젤레스에는 벨리즈 출신이 가장 많고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출신이 그 뒤를 잇는다. 휴스턴, 애틀랜타, 뉴올리언스에도 가리푸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니카라과 가리푸나 인구는 매우 적으며, 지역 지도자들은 언어와 문화 전통을 부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2014년까지 더 많은 가리푸나들이 온두라스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32]
1797년 세인트빈센트 섬 주민들이 영국에 패배한 후, 영국은 섬 주민들을 온두라스 북쪽의 로아탄 섬으로 이주시켰다.[54] 가리푸나인들은 중앙아메리카 각지로 이주했으며, 무용과 항해술에 능숙하여 스페인의 환영을 받았다. 19세기에는 아이티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과의 통혼으로 가리푸나인들의 아프리카계 혈통이 더욱 짙어졌다.[54]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전후에 가리푸나인들은 뉴욕, 뉴올리언스, 모빌 등을 목적지로 하는 미국의 배에서 일했고, 그 결과 미국에도 가리푸나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54] 과테말라 이사발 주에 거주하는 가리푸나인들은 검은 피부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지만,[55] 온두라스나 벨리즈에서는 그렇지 않다.[54]
4. 언어
가리푸나인들은 가리푸나어[34]와 빈센트 크리올어를 사용한다.[33]
가리푸나어는 아라와크어족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로, 온두라스, 벨리즈,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가리푸나인들이 사용한다. 아라와크어 계열 언어이며, 프랑스어, 영어, 네덜란드어, 아프리카어, 스페인어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식민지 시대 사람들과의 오랜 상호 작용을 반영하고 있다.[34] 가리푸나어에는 여성이 사용하는 용어와 남성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카리브인들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일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남녀 카리브인들은 모두 섬 카리브어를 사용했지만, 남성들은 섬 카리브어와는 관련 없는 본토의 카리브어를 기반으로 한 별개의 피진을 추가적으로 사용했다.
거의 모든 가리나구인들은 이중 언어 사용자 또는 다중 언어 사용자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거주하는 국가의 공용어(스페인어나 영어 등)를 주로 제1언어로 사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리푸나어를 가족의 유산의 일부로 문화적 언어로 사용한다. 가리푸나는 원래의 아라와크어족 계통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지만, 스페인어나 영어 등 다른 언어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54]
5. 인구 분포
2011년 미국 내 가리푸나 단체들은 가리푸나 인구가 약 40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대부분 온두라스와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했다.[1] 1981년경 과테말라, 벨리즈, 니카라과의 54개 어촌 마을에 약 6만 5천 명의 가리푸나족이 거주하고 있었다.[7]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가리푸나인들은 미국의 뉴욕, 뉴올리언스, 모빌 등으로 가는 배에서 일했고, 그 결과 미국에도 가리푸나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54]
5. 1. 세인트빈센트
1805년 세인트빈센트 모른 롱드(Morne Ronde)에 남은 가리푸나 인구는 남자 16명, 여자 9명, 어린이 20명이었지만, 1797년 강제 추방 이후에도 섬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36][35] 1844년 세인트빈센트 인구 조사에는 "흑인 카리브인"(Black Caribs) 273명이 기록되었다.[36] 1960년 인구 조사에서는 세인트빈센트에 "흑인 카리브인" 1,26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6] 1984년, 인류학자 마이클 크로포드(Michael Crawford)는 세인트빈센트에 1,100~2,000명의 가리푸나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했다.[37]5. 2. 중앙아메리카
1981년경 과테말라, 벨리즈, 니카라과의 54개 어촌 마을에 약 6만 5천 명의 가리푸나족이 거주하고 있었다.[7] 소앤틸레스 제도 주민들은 식민지화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나, 1797년 세인트빈센트 섬(St. Vincent) 주민들이 영국에 패배하자 영국은 섬 주민들을 온두라스 북쪽의 로아탄 섬으로 이주시켰다.[54] 가리푸나인들은 거기서 중앙아메리카 각지로 이주했다. 가리푸나인들은 무용과 항해술에 능숙했기 때문에 당시 중앙아메리카를 지배하던 스페인인들은 가리푸나인들을 환영했다.[54] 19세기에 아이티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과 통혼하면서 가리푸나인들의 아프리카계 혈통이 더욱 짙어졌다.[54]제2차 세계 대전 중과 전후에 가리푸나인들은 미국의 뉴욕, 뉴올리언스, 앨라배마주 모빌 등을 목적지로 하는 배에서 일했고, 그 결과 미국에도 가리푸나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현재 가리푸나인들은 중앙아메리카 여러 국가와 미국의 도시들에 거주하고 있다.[54]
과테말라 이사발 주에 거주하는 가리푸나인들은 검은 피부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지만,[55] 온두라스나 벨리즈에서는 그렇지 않다.[54]
6. 문화
유네스코는 2001년에 니카라과, 온두라스, 벨리즈, 과테말라의 가리푸나어, 전통 무용 및 음악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언했고, 2008년에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56] 2005년에는 니카라과의 코르호섬에서 제1회 가리푸나 국제 정상회담이 열려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 정부들이 참여했고, 2003년 유네스코 협정 비준 등이 이루어졌다.[57]
6. 1. 음식
가리푸나 요리는 다양하지만, 가장 흔히 알려진 음식은 카사바 뿌리(유카)로 만드는 에레바(카사바 빵)이다. 에레바를 만드는 과정은 가리푸나 사람들이 지키는 가장 중요한 전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카사바는 가리푸나 문화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가리푸나'라는 이름 자체가 원래 카사바 족을 의미하는 "카리푸나"라고 불렸던 카리브 사람들로부터 유래했다. 그들은 나중에 "가리푸나"라는 이름을 채택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카사바를 먹는 사람들을 의미한다.에레바를 만드는 것은 길고 힘든 과정이며, 대부분 가리나구 여성들과 아이들이 대규모로 참여한다. 카사바는 주로 가리나구 농장에서 재배된다. 수확할 준비가 되면 대량(보통 수십 파운드의 카사바 뿌리)으로 수확하여 마을로 가져온다. 그런 다음 뿌리를 씻고 껍질을 벗긴 후 나무판에 고정된 작은 날카로운 돌 위에 갈아낸다. 갈리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며, 여성들은 단조로운 작업을 덜어내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갈아낸 카사바는 "루구마"라고 불리는 큰 원통형의 엮은 자루에 담는다. 루구마는 나무에 매달고 무거운 돌로 아래쪽을 무겁게 하여 갈린 펄프에서 독성이 있는 액체와 전분을 짜내 제거한다. 추는 때때로 루구마 바닥에 나뭇가지를 꿰뚫고 한두 명의 여성이 그 가지 위에 앉아서 무게를 더하기도 한다. 추의 방식에 관계없이 결과는 같다. 그런 다음 카사바는 밀가루로 만들 준비가 된다. 남은 펄프는 하룻밤 말린 후 납작하고 둥근 바구니(히비세)로 체에 걸러 밀가루를 만들고, 큰 쇠판(코말)에서 팬케이크처럼 굽는다.
에레바는 생선, 마추카(삶아서 부드럽게 만든 플랜테인) 또는 소스(라수수)와 함께 먹는데, 라수수는 종종 "후두트"라고 불리는 생선 수프로 만들어진다. 다른 반찬으로는 번디가(녹색 바나나 라수수), 마사판(빵나무), 비메카쿨레(끈적끈적한 밥), 그리고 붉은 콩을 넣은 코코넛 밥이 있다. 나이지리아 사람들 또한 말린 강판 카사바 가루로 "에바", "가리", "푸푸"를 만들고, "에포-리로"(시금치 잎으로 만든) 또는 "에구시"(갈은 멜론씨로 만든) 수프와 같은 비슷한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기피티(기피티)라고 불리는 알코올 음료는 집에서 흔히 만들어지는데, 뿌리와 허브를 우려낸 럼주 기반의 쓴맛이다.
6. 2. 음악

현대 벨리즈에서는 앤디 팔라시오(Andy Palacio), 모호부브 플로레스(Mohobub Flores), 아우렐리오 마르티네스(Aurelio Martinez) 등의 음악가들에 의해 가리푸나 음악이 부흥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리푸나 음악 형태의 여러 측면을 채택하여 현대적인 사운드와 융합했다. 푼타 록(punta rock)과 파란다(paranda)의 혼합으로 묘사되는 이 음악은 앤디 팔라시오의 앨범 ''와티나(Watina)''와 벨리즈 레코드 레이블인 스톤트리 레코드(Stonetree Records)에서 발매된 ''우말랄리: 가리푸나 여성 프로젝트(Umalali: The Garifuna Women's Project)''에서 잘 나타난다. 캐나다 음악가 대니 미셸(Danny Michel) 또한 가리푸나 음악가들과 함께 ''검은 새들이 나를 넘어 춤을 춘다(Black Birds Are Dancing Over Me)''라는 앨범을 발매했다.[39]
전통적인 춤과 음악을 통해 음악가들은 HIV/AIDS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40]
2001년에 유네스코는 니카라과, 온두라스, 벨리즈, 과테말라 지역의 가리푸나어, 가리푸나 전통 무용(가리푸나 음악), 가리푸나 음악(가리푸나 음악)에 대해 인류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언을 하였고, 2008년에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56] 2005년, 니카라과의 코르호섬에서 제1회 가리푸나 국제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 정부가 참가하여 2003년 유네스코 협정의 비준 등이 이루어졌다.[57]
6. 3. 종교
가리푸나 공동체는 서인도 제도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예수회, 도미니크회 등 여러 가톨릭 식민 세력과의 역사적 만남 이후 대부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가리푸나의 전통 종교에는 조상과 붕기우(Bungiu, 신) 또는 순티 가바푸(Sunti Gabafu, 전능하신 분)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는 개인 및 집단을 위한 복잡한 의례들이 존재한다. '''부예이(buyei)'''로 알려진 샤먼이 모든 가리푸나 전통 의례의 책임자이다. 가리푸나의 영적 관행은 아프리카계 혈통을 가진 다른 부족들이 행하는 부두교(보통 유럽인들이 그렇게 부름) 의식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구 의식(Dugu ceremony)과 추구(chugu)와 같은 신비적인 관행과 참여 또한 가리푸나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현재 대부분의 가리푸나는 공식적으로는 가톨릭교회 신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종교 신자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에 현지에 뿌리내린 전통 신앙과 혼합된 형태의 신앙이 가리푸나의 종교 상황이다. 부예이(buyei)라 불리는 무당이 가리푸나의 전통 종교 의식 전반을 주관한다. 신비주의적 의식과 Dugu영어 방식의 장례식 등도 가리푸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벨리즈의 Sein Bight와 단리가에서는 공중 부양 의식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한다.
또한, 종교적 소수파에는 라스타파리 운동을 실천하는 라스타파리안도 있으며, 주로 벨리즈의 단리가와 벨리즈시티, 그리고 과테말라의 리빙스턴에 거주하고 있다.
7. 사회
가리푸나 공동체 내 성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일자리 기회에 의해 크게 정의된다. 가리푸나 사람들은 과거에 꾸준한 수입을 위해 농업에 의존해 왔지만, 20세기에 많은 토지가 과일 회사에 빼앗겼다.[41] 이들 회사는 처음에는 생산이 지역 사회에 소득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환영받았지만, 사업이 부진해짐에 따라 이들 대기업은 토지를 매각했고, 이는 메스티소 농부들이 거주하게 되었다.[42] 그 이후로 가리푸나 사람들은 외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아 여행을 강요받았다. 가리푸나 사람들은 주로 수출 사업에 꾸준한 일자리를 의존하지만, 여성들은 심각한 차별을 받고 대개 이러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43]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외국계 회사에서 목재와 치클을 채취하여 수출하거나 어부로 일한다.[44]
가리푸나 사람들은 모계 중심 사회에 살지만,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꾸준한 수입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가사일 및 수제품 판매는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입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45] 여성은 가정 내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의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남성들은 오랫동안 일을 위해 멀리 떠나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남성과 그의 신생아 아들 사이에 강한 유대감이 있다고 믿는다. 가리푸나 사람들은 남자아이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으며,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45] 아들의 아버지가 그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그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일부 의무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45] 이 기간 동안 여성은 가정 내에서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얻는다.
8. 유전적 기원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가리푸나족의 조상은 평균적으로 아프리카계 76%, 아라와크/카리브계 20%, 유럽계 4%로 구성되어 있다.[46] 섬과 중앙아메리카 가리나구 공동체 간의 혼혈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벨리즈 스탠 크릭의 가리나구는 아프리카계 79.9%, 유럽계 2.7%, 아메리카 원주민계 17.4%이고, 세인트빈센트 샌디 베이의 가리나구는 아프리카계 41.1%, 유럽계 16.7%, 아메리카 원주민계 42.2%이다.[47]
8. 1. 아프리카계 기원
구전 전승에 따르면, 일부 학자들은 가리푸나족이 카리브인과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은 에피크인(나이지리아-카메룬 거주), 이보(이그보)인(나이지리아, 카메룬, 적도 기니), 폰인(베냉-나이지리아 사이 거주), 판테인과 아샨티인(아산테 지역, 중앙 가나), 요루바인(토고, 베냉, 나이지리아 거주), 콩고인(콩고, 콩고 민주 공화국 및 앙골라) 등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에 의해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해안 지역에서 잡혀왔다. 이들은 다른 카리브 제도로 팔려갔고, 그곳에서부터 세인트빈센트로 이주하거나 (그들 또는 그들의 후손들이) 잡혀왔다.[48]벨리즈 출신 인류학자이자 가리푸나족 역사가인 세바스찬 R. 카예타노는 가리푸나족의 아프리카계 조상들이 서아프리카 출신, 구체적으로는 "현재 가나,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에 있는 요루바, 이보, 아샨티 부족 출신"이라고 말한다.[49] 로저 바스티드는 세인트빈센트 북동부의 거의 접근 불가능한 요새에 요루바, 폰, 판티-아샨티, 콩고 탈주자들이 끊임없이 통합되었다고 말한다.[50] 이러한 아프리카 기원은 적어도 남성에게는 사실이다. 여성의 경우, 흑인 노예와 카리브인의 결합에서 비롯된다.[48] 18세기 영국 문서를 바탕으로 루이 갈바오 데 안드라데 코엘료는 나이지리아, 골드코스트, 다호미, 콩고 "및 기타 서아프리카 지역" 출신이라고 제안한다.[51]
18세기 초, 세인트빈센트의 인구는 이미 대부분 흑인이었고, 이 세기 동안 흑인과 카리브 인디언 간에 광범위한 혼혈이 있었지만, "흑인 카리브인"과 구분하기 위해 "붉은 카리브인"이라고 불리는 혼혈이 적은 카리브인 집단이 계속 존재했다.[20] 어떤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본 가리푸나의 기원은 평균적으로 76%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계, 20%가 아라와크족 또는 소앤틸리스 제도 원주민계, 4%가 유럽인계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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