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시스템 간 상호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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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개방형 시스템 간 상호 접속(OSI)은 1970년대 후반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다양한 네트워크 환경 간의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고 개방형 시스템 간의 연결을 위한 표준 개발을 목표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OSI는 산업계의 통일된 네트워크 표준을 통해 여러 업체의 상호 운용성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간의 상호 작용을 정의하여 프로토콜 계층 모델의 개념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구현이 어려웠으며, TCP/IP의 등장과 이더넷, 토큰 링의 보편화로 인해 쇠퇴하여, 최종적으로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에 그 역할을 넘겨주었다. OSI 표준화 과정은 NIH 증후군으로 비판받았으며, 1996년 OSI 프로젝트는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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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시스템 간 상호 접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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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이름 | 개방형 시스템 간 상호 접속 |
영어명 | Open Systems Interconnection |
약자 | OSI |
로마자 표기 | Gaebanghyeong Siseutem Gan Sangho Jeopsok |
종류 | 네트워크 프로토콜 스택 |
개발 | 국제 표준화 기구(ISO) |
OSI 7계층 모델 | |
계층 구조 | 7계층 |
각 계층 | 물리 계층 데이터 링크 계층 네트워크 계층 전송 계층 세션 계층 표현 계층 응용 계층 |
2. 역사
OSI 이전에는 ARPANET, CYCLADES처럼 정부 지원을 받거나 SNA, 애플토크, 넷웨어, DECnet과 같이 업체 개발 규격 표준을 따르는 방식의 네트워킹이 주를 이루었다. OSI는 여러 업체 간 상호 운용성을 제공하기 위해 산업 종사자들이 통일된 네트워크 표준에 동의하도록 하는 산업적 노력의 결과였다. OSI가 자체 네트워크 표준을 만든 반면, 인터넷에서는 TCP/IP가 널리 쓰였고, 근거리 망에서는 이더넷과 토큰 링이 널리 쓰였다.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간 상호 작용을 정의하여 프로토콜 계층 모델 개념을 널리 퍼뜨리는 등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중요한 진전이었다.
2. 1. OSI 이전의 네트워크 환경
1970년대 이전, 컴퓨터 네트워크는 주로 각 벤더(제조사)별 독자적인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통신하였다. (\SNA, 애플토크, 넷웨어, DECnet 등) 이 때문에 업계 공통의 네트워크 표준을 통한 멀티 벤더 상호 운용성을 확립하고자 OSI 제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규모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네트워크 프로토콜 스위트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많은 기기가 공통 프로토콜이 없어 서로 통신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외국산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네트워크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다.2. 2. OSI 모델의 등장과 목표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개념에 대한 교육에 주된 진전이었다. 이는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상호 작용을 정의함으로써 프로토콜 계층의 일정한 모델에 대한 개념을 널리 퍼뜨렸다.OSI 이전에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통신 프로토콜은 SNA, AppleTalk, NetWare, DECnet 등 벤더마다 독자적인 규격이 난립해 있었다. 이 때문에 업계 공통의 네트워크 표준을 통한 멀티 벤더 상호 운용성을 확립하고자 OSI의 제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규모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네트워크 프로토콜 스위트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많은 기기가 공통 프로토콜이 없어 서로 통신할 수 없었다.
2. 3. TCP/IP와의 경쟁
OSI 참조 모델이 완성되고 OSI 제정이 진행되던 중, TCP/IP가 멀티 벤더 네트워크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OSI 이전에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통신 프로토콜은 벤더마다 독자적인 규격이 난립해 있었다 (SNA, AppleTalk, NetWare, DECnet 등). 이 때문에 업계 공통의 네트워크 표준을 통한 멀티 벤더 상호 운용성을 확립하고자 OSI 제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규모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네트워크 프로토콜 스위트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많은 기기가 공통 프로토콜이 없어 서로 통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실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구현이 매우 어려웠다. 또한 전환 방법은 기존 프로토콜을 모두 사용 중지하고 프로토콜의 모든 계층을 한 번에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구현이 더욱 어려워졌고, 많은 벤더와 사용자는 더욱 유용한 네트워크 기술 도입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또한 위원회 방식의 규격 제정으로 OSI 프로토콜에는 다양한 옵션 설정이 가능해졌으며, 설정에 따라 상호 통신이 불가능해졌다. 너무 많은 옵션 때문에 많은 벤더의 구현은 벤더 간 상호 운용이 불가능했고, 단순히 표준화 노력 자체가 헛수고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정부 기관은 OSI 지원을 기기 조달 조건으로 삼았지만, 그럼에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2. 4. OSI 모델의 영향과 유산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중요한 진전이었다. 이는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상호 작용을 정의함으로써 프로토콜 계층의 일정한 모델에 대한 개념을 널리 퍼뜨렸다.OSI 이전에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통신 프로토콜은 벤더마다 독자적인 규격이 난립해 있었다 (SNA, AppleTalk, NetWare, DECnet 등). 이 때문에 업계 공통의 네트워크 표준을 통한 멀티 벤더 상호 운용성을 확립하고자 OSI 제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규모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네트워크 프로토콜 스위트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많은 기기가 공통 프로토콜이 없어 서로 통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OSI 제정이 진행되던 중, TCP/IP가 멀티 벤더 네트워크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고, 네트워크 계층 이하에서는 이더넷과 토큰 링이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OSI 참조 모델 (OSI 자체보다 앞선 1977년에 완성)은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중요한 진전이었다. 프로토콜의 계층 모델이라는 생각의 보급에 기여했으며, 기기 간 또는 소프트웨어 간의 상호 운용성 정의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실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구현이 매우 어려웠다. 또한 전환 방법은 기존 프로토콜을 모두 사용 중지하고 프로토콜의 모든 계층을 한 번에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구현이 더욱 어려워졌고, 많은 벤더와 사용자는 더욱 유용한 네트워크 기술 도입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또한 위원회 방식의 규격 제정으로 OSI 프로토콜에는 다양한 옵션 설정이 가능해졌으며, 설정에 따라 상호 통신이 불가능해졌다. 너무 많은 옵션 때문에 많은 벤더의 구현은 벤더 간 상호 운용이 불가능했고, 단순히 표준화 노력 자체가 헛수고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정부 기관은 OSI 지원을 기기 조달 조건으로 삼았지만, 그럼에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3. 비판과 평가
OSI 표준화 과정은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에 빠져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사양을 책정해 나갔다는 점이 자주 비판받았다. 이 때문에 ISO 및 ITU-T와 인터넷 표준화 단체인 IETF 사이에 균열이 생겨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벤더 중립" 표준이 아니라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가 국제 규격이라는 명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OSI는 최종적으로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에 그 역할을 빼앗겼다. TCP/IP는 실용적인 방식과 구현의 단순함이 평가받아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OSI의 X.400전자 메일 표준 사양은 매우 두꺼운 책 여러 권으로 되어 있지만, 인터넷의 전자 메일 표준(SMTP) 사양은 RFC-821에 수십 페이지로 기술되어 있다. 단, SMTP 확장은 개별 RFC로 수시로 발행되어 전부 합하면 OSI와 비슷한 양이 된다. X.400은 옵션이 매우 많아 초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간 메시지 해석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토큰 버스, CLNS, FTAM, X.400 등 OSI 프로토콜 스위트 대부분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규격으로 대체되었다. 다만, X.500은 디렉토리 구조만 현재 사용되며(LDAP), IS-IS는 TCP/IP 위에서 사용하도록 변경되어 대규모 통신 사업자가 라우팅 프로토콜로 사용한다. 구형 SONET 시스템에서는 TARP (CLNP와 IS-IS 사용)를 통해 상대 노드 식별자를 변환한다. 이처럼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구형 시스템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996년, OSI 프로젝트는 해산되었다. OSI 도입을 추진했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3. 1. NIH 증후군 비판
OSI 표준화 과정은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 즉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사양을 정해 나갔다는 점이 자주 비판받았다. 이 때문에 ISO 및 ITU-T와 인터넷 표준화 단체인 IETF 사이에 균열이 생겨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벤더 중립" 표준 등이 아니라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가 국제 규격이라는 명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라는 신랄한 평가도 있다.3. 2. 복잡성과 구현의 어려움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구현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OSI의 전환 방식은 기존 프로토콜을 모두 중단하고 모든 계층을 한 번에 교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켰다.OSI 표준화 과정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사양을 책정해 나갔다는 점에서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에 빠졌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이 때문에 ISO 및 ITU-T와 인터넷 표준화 단체인 IETF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벤더 중립" 표준이 아니라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가 국제 규격이라는 명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OSI는 최종적으로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를 주축으로 하는 프로토콜 스택)에 그 역할을 빼앗겼다. TCP/IP는 실용적인 방식과 구현의 단순함이 평가받아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OSI의 X.400전자 메일 표준 사양은 매우 두꺼운 책 여러 권으로 되어 있지만, 인터넷의 전자 메일 표준(SMTP) 사양은 RFC-821에 수십 페이지로 기술되어 있다.
3. 3. 벤더 간 상호 운용성 문제
OSI 프로토콜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간에 서로 메시지를 해석할 수 없는 구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는 벤더 간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려던 OSI 모델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3. 4. TCP/IP의 부상과 OSI의 쇠퇴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에 빠져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사양을 책정해 나갔다는 비판을 받은 OSI 표준화 프로세스는 IETF와 논쟁을 일으켰다.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벤더 중립" 표준이 아니라,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가 국제 규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한 것뿐이라는 평가도 있었다.OSI는 결국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에 밀려났다. TCP/IP는 실용성과 구현의 단순함으로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OSI의 X.400전자 메일 표준 사양은 매우 두꺼운 반면, 인터넷의 SMTP 사양은 RFC-821에 수십 페이지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SMTP 확장 RFC들을 모두 합하면 OSI와 비슷한 양이 된다. 또한 X.400은 옵션이 너무 많아 초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간 메시지 해석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토큰 버스, CLNS 패킷 전달, FTAM 파일 전송, X.400 전자 메일 등 OSI 프로토콜 스위트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규격으로 대체되었다.
X.500은 디렉토리 구조만 현재 사용되며, LDAP이 이를 다룬다. IS-IS는 TCP/IP 위에서 사용하도록 변경되어 대규모 통신 사업자가 라우팅 프로토콜로 사용한다. 구형 SONET 시스템에서는 TARP (CLNP와 IS-IS 사용)를 통해 상대 노드 식별자를 변환한다.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구형 시스템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996년, OSI 프로젝트는 해산되었다. OSI 도입을 추진했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4. 대한민국과 OSI 모델
현재 대한민국에서 OSI 모델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간 상호 작용을 정의하고 프로토콜 계층 모델을 제시하여, 네트워크 개념을 이해하는 데 널리 활용된다.
OSI 표준화 과정은 모든 사양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책정했기 때문에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ISO, ITU-T와 IETF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들이 국제 규격이라는 명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한 시도였다는 평가도 있다.
1996년 OSI 프로젝트는 해산되었지만, OSI 도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은 없다.
4. 1. 초창기 네트워크 환경과 OSI
1980년대 초, 네트워킹은 ARPANET, CYCLADES처럼 정부 지원을 받거나 SNA, 애플토크, 넷웨어, DECnet과 같이 독자적인 규약 표준을 따르는 업체 개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OSI는 여러 업체 간의 상호 운용성을 제공하기 위해 산업 종사자들이 통일된 네트워크 표준에 동의할 수 있도록 추진되었다.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간 상호 작용을 정의하고 프로토콜 계층의 일정한 모델에 대한 개념을 널리 퍼뜨려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
4. 2. OSI 모델의 현재적 의미
OSI 참조 모델은 네트워크 장치와 소프트웨어 간의 상호 작용을 정의하고 프로토콜 계층의 일정한 모델에 대한 개념을 널리 퍼뜨려 네트워크 개념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OSI 표준화 과정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사양을 책정해 나갔다는 점에서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ISO 및 ITU-T와 인터넷 표준화 단체인 IETF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OSI 프로토콜 스위트는 "벤더 중립" 표준이 아니라 TCP/IP에 점유율을 빼앗긴 벤더가 국제 규격이라는 명목으로 점유율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OSI는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 (TCP/IP를 주축으로 하는 프로토콜 스택)에 그 역할을 빼앗겼다. TCP/IP는 실용적인 방식과 구현의 단순함이 평가받아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OSI의 X.400전자 메일 표준 사양은 매우 두꺼운 반면, 인터넷의 전자 메일 표준 (SMTP) 사양은 RFC-821에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만, SMTP에 대한 확장은 개별적으로 RFC로 수시로 발행되고 있어, 그것들을 전부 합하면 OSI와 큰 차이가 없다. 또한 X.400은 매우 많은 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서로 메시지를 해석할 수 없는 구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토큰 버스, CLNS 패킷 전달, FTAM 파일 전송, X.400 전자 메일 등 OSI 프로토콜 스위트의 각 프로토콜 및 사양 대부분은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규격으로 대체되었다.
다만, 일부는 사양을 단순화한 형태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X.500은 디렉토리 구조만 현재도 사용되며, 이를 다루는 프로토콜은 LDAP이 되었다. IS-IS도 TCP/IP 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을 가한 후 대규모 통신 사업자가 라우팅 프로토콜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구형 SONET 시스템에서는 아직도 TARP (TID 주소 확인 프로토콜, CLNP와 IS-IS 사용)를 사용하고 있다. OSI 프로토콜 스위트의 프로토콜 및 사양은 구형 시스템에서는 지금도 계속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996년 OSI 프로젝트는 해산되었다. TCP/IP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도 국제 규격이 되었음에도 보급되지 않은 BASIC, PASCAL 등 예가 많으며, 관계했던 단체(특히 ISO)의 명예와 권위에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었다. OSI 도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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