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경교장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친일파 최창학이 지은 별장으로, 김구에게 넘겨진 후 김구의 거처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김구는 이곳에서 암살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9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3년에 재개관하였으며, 현재는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은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김구의 집무실과 회의실 등이 보존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2022년 3월 1일에 개관했으며, 옛 서대문구의회 터에 세워졌다.
  • 장급 저택 - 이화장
    이화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거주했던 사저로, 대통령 당선 전후와 퇴임 후에도 거주하며 야당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요한 현장으로 평가받는다.
  • 장급 저택 - 안국동 윤보선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는 고종이 박영효에게 하사한 것을 윤치소가 매입하여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저로 사용되었으며, 99칸 규모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채 등으로 구성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 제438호로 관리되고 있는 한옥이다.
  • 1938년 작품 - 버지니아 주하원 직장
    버지니아 주하원 직장은 버지니아 주 하원의 회의에서 주 정부의 권위를 상징하며, 1792년 폐기되었다가 1974년 24캐럿 금 도금된 새로운 직장이 헌정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다.
  • 1938년 작품 - 서울 구 경기고등학교
    서울 구 경기고등학교는 김옥균 등의 집터에 1900년 관립중학교로 개교하여 여러 차례 교명 변경을 거쳐 1976년 강남구로 이전하고 1977년부터 정독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교장
개요
경교장 건물 외관 (2009년)
경교장 건물 외관 (2009년)
종류가옥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08-1
개장일1938년
명칭
한국어경교장
한자京橋莊
로마자 표기Gyeonggyojang
원래 명칭 (한국어)죽첨장
원래 명칭 (한자)竹添莊
원래 명칭 (로마자 표기)Jukcheomjang
지정 정보
사적 지정 번호465호
사적 지정일2005년 6월 13일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 (과거)129호
유형문화재 지정일 (과거)2001년 4월 6일
유형문화재 해제일 (과거)2005년 6월 13일
기타 정보
웹사이트경교장 공식 웹사이트

2. 역사

경교장은 최창학의 별장이었는데 김구에게 넘겨주고나서 김구가 이곳에서 생활하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경교장은 원래 최창학한국어에 의해 1938년에 지어졌다. 원래 "죽첨장"(竹添莊/죽첨장한국어)이라고 불렸다.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동안 광산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2][1]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이곳은 김구의 거처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KPG) 청사가 되었다. 김구는 건물 이름을 근처 개울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꿨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 의한 김구의 암살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이 이름이 유지되었다.[2][1]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어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중화민국 대사관, 6·25 전쟁 중 의료 시설, 그리고 베트남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 1968년에는 삼성에 의해 운영되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후 병원 본관에 부속되어 병원 단지의 입구로 사용되었다.[1]

원래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6월 13일, 현대 및 근대 한국사에서 이 건물의 중요성을 재평가한 후 국가지정문화재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한 김구의 옛 사무실은 삼성에 의해 김구 기념관으로 운영되었다.[1][2]

2009년 8월 14일, 경교장 전체가 60년 만에 복원될 예정이었고, 건물 내 모든 병원 시설이 이전되었으며, 2011년 3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2013년 3월 1일에 개관했다.[1]

2. 1. 일제강점기: 죽첨장

1938년 친일파 최창학이 금광으로 번 돈으로 지은 일본식 건물로, 완공 당시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 건축면적 396.69m2, 연면적 945.45m2(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였다. 경교장은 광화문(경복궁)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동양극장 건너편, 지금의 서대문역 인근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부지에 위치해 있었다.

2. 2. 해방과 임시정부: 경교장으로의 변화

1945년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에게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는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 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2][1]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김구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5][6]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임시정부 성격인 비상국민회의국무회의가 열린 청사로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경교장은 원래 최창학1938년에 지었으며, 일제강점기 광산 사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2][1] 해방 이후 경교장은 김구의 거처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김구 암살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어 대만 대사관, 한국 전쟁 중 의료 시설, 베트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었다.[1] 1968년에는 삼성이 운영하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일부가 되었고,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제465호로 지정되었다.[1][2] 2009년부터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2013년 3월 1일에 재개관하였다.[1]

2. 3. 김구 선생 서거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2][1]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임시정부 성격인 비상국민회의국무회의가 열린[5] 청사로[6]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2. 4.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경교장은 원래 최창학에 의해 1938년에 지어졌으며, 원래 "죽첨장"(竹添莊/죽첨장한국어)이라고 불렸다.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동안 광산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김구의 거처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면서, 건물 이름을 근처 개울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 의한 김구 암살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이 이름이 유지되었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 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 건물 뒷면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본관을 붙여 건축하면서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었다.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6월 13일, 현대 및 근대 한국사에서 이 건물의 중요성을 재평가한 후 국가지정문화재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한 김구의 옛 사무실은 삼성에 의해 김구 기념관으로 운영되었다.

2009년 8월 14일, 경교장 전체가 60년 만에 복원될 예정이었고, 건물 내 모든 병원 시설이 이전되었으며, 2011년 3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2013년 3월 1일에 개관했다.

2. 5. 복원과 개방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동 건물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7][1][2]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을 삼성에서 김구 기념실로 운영하기도 했다.[1][2]

2009년 8월 14일에는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약품 창고[7] 같은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3년 3월 1일 개관하였다.[1] 2021년 11월부터 12월까지는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3. 구조

경교장은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 서대문역 근처 종로구 평동의 삼성서울병원 부지에 위치해 있으며, 동아일보사 건너편에 있다.[1]

건물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1] 1938년에 건축된 일본식 가옥으로, 전체 면적은 396.69m², 연면적은 945.45m²이다. 이 건물은 김세연(김세연/金世演한국어; 1897–1975)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1930년대 건축 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

건물의 우측과 후면은 강북삼성병원 단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건물 내부 391.67m² 공간은 역사적 보존을 위해 보호되고 있다.[1]

2층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집무실과 회의실이 있다.

3. 1. 1층

wikitext

3. 2. 2층



2층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집무실과 회의실이 있다.

4. 평가 및 의의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7]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을 삼성에서 김구 기념실로 운영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14일에는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약품 창고 같은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3년 3월 1일 개관하였다.[7] 2021년 11월부터 12월까지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참조

[1] 웹사이트 사적: 서울 경교장 (서울 京橋莊) http://www.heritage.[...]
[2] 웹사이트 Gyeonggyojang House https://museum.seoul[...] 2023-06-30
[3] 간행물 서울특별시고시제2001-98호 https://event.seoul.[...] 서울특별시장 2001-04-06
[4] 웹인용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전시 해설 서울역사박물관 2021-05-26
[5] 웹인용 백범의 숨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흔적이 남다 https://www.cha.go.k[...] 문화재청 2010-07-02
[6] 뉴스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복원한다 https://www.sedaily.[...] 서울경제 2016-06-02
[7] 뉴스 역사 현장 속으로, 백범 김구의 정신이 깃든 경교장을 가다 https://mediahub.seo[...] 서울특별시 2023-01-19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