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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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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주 오릉은 신라 시대의 5개의 원형 봉토 무덤으로, 신라 초대 왕인 혁거세 거서간과 왕비 알영, 그리고 남해, 유리, 파사 이사금 등 박씨 왕들의 능묘로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사릉(뱀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혁거세가 승천한 후 뱀이 나타나 유해를 합장하지 못하고 5개의 능을 만들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오릉은 봉토 외에 장식이 없는 신라 초기의 능묘 형식이며, 각 능의 높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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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경주 오릉
대한민국 지정 사적 제172호 (1969년 8월 27일 지정)
종류유적, 분구묘군
위치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7
면적185,129m² (89,950m², 89,550m²)
축조 시기신라 시대 (서기 3-111년 경)
관리경주시
소유경주시 외
웹사이트국가문화유산포털
세계유산
일부경주 역사 유적 지구
ID976
등재 연도2000년
기준문화유산: (2), (3)
명칭
한국어경주 오릉
한자慶州 五陵
영어Five Royal Tombs, Gyeongju
지정 정보
지정 번호사적 제172호
지정 날짜1969년 8월 27일

2. 피장자

경주 오릉에 있는 신라 시대 무덤들은 각 능묘의 피장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5기의 능은 『삼국사기』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혁거세, 왕비 알영, 제2대 왕 남해, 제3대 왕 유리, 제5대 왕 파사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씨의 능묘라고 한다.

2. 1. 전승 기록

오릉은 대형 원형 봉토무덤인데,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피장자로 전해지는 왕들의 통치기로 추정되는 1~2세기의 것이 아니다.[18] '오릉'이라는 명칭은 전한의 다섯 황제의 능을 오릉으로 모신 것에 착안하여 황제의 격을 세우고자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으며, '사릉'의 어원이 된 사변설화는 리그베다와의 관계가 주목되었으나,[19][20] 이에 대해 『리그베다』에는 해당 설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반박도 제기되어 있다.[21]

경주에 있는 신라 시대 대부분의 묘와 마찬가지로 각 능묘의 피장자는 불분명하나, 5기의 능묘는 『삼국사기』 등을 토대로 신라 초대 왕인 혁거세 (재위 기원전 57년 ~ 서기 4년)와 왕비 알영, 제2대 왕인 남해 (재위 4년 ~ 24년), 제3대 왕인 유리 (재위 24년 ~ 57년), 제5대 왕인 파사 (재위 80년 ~ 112년)의 것이라고 하며, 오릉은 씨의 능묘라고 한다.

『삼국사기』는 오릉을 '''사릉'''(릉)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알영 부인의 능묘에 대한 기술은 없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혁거세)이 승천한 지 7일 후,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지고 왕비 또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막았으므로, 각각 5구(왕의 유해 4편과 왕비의 유해)를 장사지내 5개의 능을 만들고 이를 사릉(뱀릉)이라고 명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혁거세릉은 오릉이라고 칭해지며, 또한 사릉이라고도 하니, 오릉 자체를 혁거세의 능묘로 파악하고 있다.

2. 2. 명칭에 대한 해석

오릉은 대형 원형 봉토무덤인데,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피장자로 전해지는 왕들의 통치기로 추정되는 1~2세기의 것이 아니다.[18] '오릉'이라는 명칭은 전한의 다섯 황제의 능을 오릉으로 모신 것에 착안하여 황제의 격을 세우고자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으며, '사릉'의 어원이 된 사변설화는 리그베다와의 관계가 주목되었으나,[19][20] 이에 대해 『리그베다』에는 해당 설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반박도 제기되어 있다.[21]

삼국사기』는 오릉을 '''사릉'''(릉)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알영 부인의 능묘에 대한 기술은 없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혁거세왕이 승천한 지 7일 후,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지고, 왕비 또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막았으므로, 각각 5구(왕의 유해 4편과 왕비의 유해)를 장사지내 5개의 능을 만들고, 이를 사릉(뱀릉)이라고 명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혁거세릉은 오릉이라고 칭해지며, 또한 사릉이라고도 하니, 오릉 자체를 혁거세의 능묘로 파악하고 있다.

3. 무덤 형식

경주 오릉은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반면에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17]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3. 1. 각 무덤의 특징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오릉은 신라 초기 박씨 임금 4명과 알영왕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의 겉모습은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다.[1] 2호 무덤은 표주박 형태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22] 1호 무덤 등 대형 원형 봉토분은 혁거세 이후 시대인 4세기 이후의 신라 것으로 추정된다.[2]

오릉의 무덤들은 모두 봉토 외에 장식 요소가 없는[9] 신라 시대 초기의 능묘이다.[15] 각 무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무덤형태크기비고
제1릉원형 봉토분높이 약 10m가장 큼
제2릉원형 봉토분높이 약 9m
제3릉표주박 형태높이 약 7.2m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
제4릉원형 봉토분높이 약 3.6m
제5릉원형 봉토분높이 약 1.8m


4. 기타 시설

경내에는 박혁거세의 제향을 받드는 숭덕전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알영부인의 탄생지라 전해지는 알영정이 자리하고 있다.[22]

참조

[1] 웹사이트 경주오릉(慶州五陵) https://encykorea.a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5-20
[2] 웹사이트 사적 제 172호 신라 오릉(新羅 五陵) http://www.kjsilla.r[...] 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23-05-20
[3] 웹사이트 경주 오릉 (慶州 五陵) http://www.heritage.[...] 문화재청 2023-05-20
[4] 웹사이트 慶州歴史遺跡地区[ユネスコ世界遺産(文化遺産)](경주역사유적지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https://japanese.vis[...] 한국관광공사 2023-05-20
[5] 웹사이트 慶州 五陵(경주 오릉) http://www.koreatrip[...] 한국관광공사 2023-05-20
[6] 문서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編集委員会 (2016)
[7] 문서 秦 (1973)
[8] 문서 東、田中 (1988)
[9] 문서 「歴史探訪 韓国の文化遺産」編集委員会 (2016)
[10] 문서 関野 (1944)
[11] 문서 新羅史研究会 (1999)
[12] 서적 삼국유사 卷第一 국사편찬위원회 2023-05-20
[13] 문서 新羅史研究会 (1999)
[14] 웹사이트 封土 https://kotobank.jp/[...] 2023-05-20
[15] 문서 秦 (1973)
[16]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1-07-28
[17] 문서 일연 (1281)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條) : 왕이 하늘로 올라가 7일 후에 유체가 부서져 땅으로 떨어지고, 왕후 역시 죽었다 한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하려고 하였는데 큰 뱀이 있어서 [사람들을] 쫒아내고 못하게 하므로, 5체를 각기 장례지내고 오릉으로 삼았다. 역시 이름을 사릉이라고 하니 담엄사 북쪽 릉이 이것이다. (王升于天 七日後遺體散落于地。后亦云亡。國人欲合而葬之。有大蛇逐禁。各葬五體為五陵。亦名蛇陵。曇嚴寺北陵是也。)
[18] 논문 신라왕릉의 재검토(1) 연세대 국학연구원 1984
[19] 논문 박혁거세 설화 경북대출판부 1983
[20] 서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02-15
[21] 논문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실체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2015
[22] 문서 현지 "경주 오릉"안내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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