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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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황후 묘는 고려인 기황후가 고국에 묻히기를 원하여 장사지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묘소이다. 조선 시대의 문헌에 언급되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상1리 산145번지 야산에 위치해 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묘역의 대부분이 유실되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묘소 주변에는 재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으며, 마정승 묘, 이정승 묘 등 측근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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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묘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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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향토문화재 |
지정 번호 | 18 |
지정일 | 2013년 11월 25일 |
시대 | 고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145 |
설명 | 원나라 11대 황제 원 혜종의 계비 기황후의 묘 |
2. 기황후 묘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고려말 권신 기철의 누이동생이며 원나라 북원(北元) 소종(昭宗)의 생모이다. 여러 기록에서 皇后塚(황후총)이라 불리는 기황후 묘는 '현에서 동쪽 20리 재궁동에 있으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원(元) 순제(順帝) 기황후가 고국에 묻히기를 원하여 이곳에 장사지냈다'고 한다.[1]
기황후 묘가 있던 자리와 사당인 재실, 재궁 때문에 주변 지역은 재궁동(齋宮洞)이라고 불렸다. 이후 묘는 실전되었다가 조선 중기 동국여지승람 등 기록에 연천현 동쪽에 기황후 묘가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현재 기황후 묘는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다.
2. 1. 위치 및 현황
기황후 묘는 상리초등학교에서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방향으로 가는 길 오른쪽 재궁동 언덕(상1리 산145번지) 야산에 있다.[1] 한국전쟁으로 곡장, 비석, 석물 등이 모두 사라졌다.[1] 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묘소 주변은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고 민간인 묘소도 들어서 있다.[1] 주변 지역에는 측근 또는 친척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고분군인 마정승묘, 이정승묘 등이 있으나 역시 보존 처리되지 않고 있다.[1]2. 2. 역사적 기록
1656년 사학자 반계(磻溪) 유형원이 편찬한 東國與地志|동국여지지중국어에는 '속전원순제기황후묘(俗傳元順帝奇皇后墓)'라 하여 기황후 묘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1] 조선 영조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연천현 동북쪽 15리에 원나라 순제 기황후의 묘와 석인, 석양, 석물 등이 있다고 전한다.[1] 1899년 간행된 연천현읍지에는 '황후총은 동쪽 20리 재궁동(齋宮洞)에 있는데, 세속에서 전하길 원 순제 기황후가 고국에 돌아가 묻히기를 원해서 이곳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1]2. 3. 관련 유물
기황후 묘소 주변에서는 고려 양식의 어글무늬 기와가 많이 발굴되기도 했다.[1] 이는 기황후 묘가 실제로 고려 시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3. 재궁동의 유래
연천군 연천읍 상리 신망리역 주변 지역은 기황후를 모신 재실인 재궁이 있던 곳으로, 여기서 재궁동(齋宮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재궁동은 발음이 순화되어 '쟁골'이라고도 불렸으며, 아랫쟁골, 윗쟁골 등으로 나뉘기도 했다.
3. 1. 주변 고분군
연천군 연천읍 상리 신망리역 주변, 기황후를 모신 재실인 재궁에서 이름이 유래한 재궁동(齋宮洞)에는 기황후 묘 외에도 마정승 묘와 이정승 묘로 알려진 두 기의 고분이 있다. 이 고분들은 기황후의 측근이나 친척의 묘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 방치되어 있다.[1]3. 1. 1. 마정승 묘
기황후 묘 동쪽에는 마정승 묘(馬政丞 墓)와 이정승 묘(李政丞 墓)로 알려진 고분 2기가 있는데, 측근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묘역으로 추정되나 매장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이 고분들 역시 방치되어 있다.마정승 묘는 기황후 묘소의 동쪽, 아랫쟁골과 쟁골 사이, 북쪽으로 뻗어 나온 산부리에 있다. 이는 단지 전설상으로 마정승 묘라고 전해 올 뿐, 묘에 묻힌 사람의 이름과 관직 등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봉분은 허물어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까지 봉분 아래 도로변에 있었던 비석 또한 논 속에 묻혀있다고 한다.[1]
3. 1. 2. 이정승 묘
이정승 묘(李政丞 墓)는 마정승 묘 동쪽 산부리 끝에 있는 고분으로, 상석과 문관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으나, 매장된 인물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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