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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호국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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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후 호국신사는 기후현에 있는 신사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기후현에는 오가키 쇼콘샤와 히다 쇼콘샤가 있었으나, 현 전체를 아우르는 신사가 필요하여 1940년에 기후 호국신사로 완공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노 미타마 신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가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경내에는 전쟁 희생자들을 모시는 진령사, 봉안전, 갓파당 등이 있으며, 기후현 지정 중요 문화재인 오미노카미 히사미치 명의 도검이 있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며, 주변에는 기후 공원, 기후성 등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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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호국신사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명칭기후 호국신사
원어 명칭岐阜護國神社 (기후 고코쿠 진자)
종교
종교신토
상세 정보
종류신사
창건자알 수 없음
설립1940년
소재지일본 기후현기후시 미타라시 393 (우편 번호 500-8002)
웹사이트기후 호국신사 공식 웹사이트
건축
건축 양식알 수 없음
행사
축제4월 12일, 10월 5일
조직
지도자알 수 없음
제신
모시는 신기후 지구, 주노, 도노 각 지구 출신 영령 37,800여 기

2. 역사

메이지 시대 초기, 기후현에는 오가키의 오가키 쇼콘샤(大垣招魂社, 이후 노히 호국 신사)와 다카야마의 히다 쇼콘샤(飛騨招魂社, 이후 히다 호국 신사)가 있었으나, 이는 일부 지역의 전사자만을 기리는 시설이었다. 러일 전쟁 종전 이후 현 전체 전몰자를 아우르는 신사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08년 보병 제68연대 주둔과 1917년 가카미가하라 비행장 개설 등 군사적 배경 속에서 건립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3]

1918년의 초기 건립 시도는 무산되었으나, 1937년 중일 전쟁 발발을 계기로 다시 추진되어 1939년 3월 내무성의 창립 허가를 받았다. 같은 해 시행된 법령에 따라 초혼사가 호국신사로 개칭되면서, 신사는 처음부터 '기후 호국 신사'라는 이름으로 1940년 11월 완공 및 창건되었으며, 내무대신 지정 지정 호국신사가 되었다.[3][4]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신사는 잠시 '''美濃御霊神社|미노고령신사일본어'''로 개칭되었으나, 일본의 주권 회복 이후 다시 '기후 호국 신사'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1952년에는 기후현 신사청으로부터 현 신사청장 참향 지정 신사(금폐사)로 지정되었으며, 1962년 쇼와 천황고준 황후의 참배, 1995년 종전 50주년 기념 배전 준공 등의 과정을 거쳤다.[3]

2. 1. 건립 배경

메이지 시대 초기, 기후현에는 전쟁 사망자를 기리기 위한 신사로 오가키의 오가키 쇼콘샤(大垣招魂社, 이후 노히 호국 신사)와 다카야마의 히다 쇼콘샤(飛騨招魂社, 이후 히다 호국 신사) 두 곳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신사는 일부 지역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현 내 다른 지역에는 전몰자를 기리는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3]

러일 전쟁이 끝난 후인 1908년 (메이지 41년), 기후시 외곽 이나바군 기타나가모리촌 (현 기후시 노잇시키)에 육군 보병 제68연대가 주둔하게 되었고, 1917년 (다이쇼 6년)에는 이나바군 나카촌 (현 가카미가하라시)에 육군 가카미가하라 비행장이 개설되었다. 이러한 군사 시설의 등장은 지역 출신 전몰자를 추모하는 초혼사 건립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1918년 (다이쇼 7년), 보병 제68연대가 기후현 지사, 시정촌장, 재향군인 등과 함께 초혼사 건립을 추진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3]

1937년 (쇼와 12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초혼사 건립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었다. 1939년 (쇼와 14년) 3월 10일, 기후현 내 2시 10군 209개 촌의 대표자들이 내무성에 신사 창립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1일 시행된 「초혼사를 호국신사로 개칭하는 건」(쇼와 14년 3월 15일 내무성령 제12호)에 따라, 건립될 신사는 처음부터 '기후 호국 신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사는 다음 해인 1940년 (쇼와 15년) 11월에 완공되었으며, 11월 19일 진좌(鎮座) 의식과 20일 폐백 봉진 의식을 거쳐 정식으로 창건되었다.[3] 창건과 동시에 내무대신 지정 호국신사로 지정되었다.[4]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신사는 한때 '''미노고령신사'''(美濃御霊神社)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일본의 주권 회복 이후 다시 원래 이름인 기후 호국 신사로 돌아갔다. 1952년 (쇼와 27년) 10월에는 기후현 신사청으로부터 현 신사청장 참향 지정 신사(금폐사)로 지정받았다.[3]

기후 호국 신사의 도리이와 본전


신사 입구의 코마이누

2. 2. 건립 과정

메이지 시대 초기, 기후현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신사가 두 곳 있었다. 오가키에는 오가키 쇼콘샤(大垣招魂社, 이후 노히 호국 신사로 개칭)가 있었고, 다카야마에는 히다 쇼콘샤(飛騨招魂社, 이후 히다 호국 신사로 개칭)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신사는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현 내 여러 지역 출신의 전사자들을 함께 기릴 수 있는 통합된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1905년 러일 전쟁이 종결된 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신사 건립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1908년 기후시 교외의 이나바군 기타나가모리촌(현 기후시 노잇시키)에 육군 보병 제68연대가 설치되고, 1917년 이나바군 나카촌(현 가카미가하라시)에 육군 가카미가하라 비행장이 개설되면서, 지역 출신 전사자들을 모시는 초혼사 건립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1918년에는 보병 제68연대가 기후현 지사, 시정촌장 및 재향군인 등과 함께 초혼사 창건을 추진했으나, 당시에는 실현되지 못했다.[3]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신사 건립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었다. 1939년 3월 10일, 기후현 내 2시 10군 209개 촌의 대표자들이 내무성에 신사 창립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마침 같은 해 4월 1일부터 시행된 「초혼사를 호국신사로 개칭하는 건」(쇼와 14년 3월 15일 내무성령 제12호)에 따라 초혼사의 명칭이 호국신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 건립될 신사는 처음부터 '기후 호국 신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1940년 11월에 사당이 준공되었고, 같은 해 11월 19일에 진좌(鎮座) 의식, 다음 날인 20일에 폐백 봉진(奉進) 의식이 거행되면서 '기후 호국 신사'로 정식 창건되었다.[3] 창건과 동시에 내무대신 지정 지정 호국신사로 지정되었다.[4]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신사는 한때 '''미노고령신사'''(美濃御霊神社)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일본의 주권 회복 이후 다시 원래 이름인 '기후 호국 신사'로 복귀했다. 1952년 10월에는 기후현 신사청으로부터 현 신사청장 참향 지정 신사(금폐사)로 지정받았다. 1962년에는 쇼와 천황고준 황후가 직접 참배하기도 했다.[3] 1995년에는 종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배전(外拝殿)이 새로 지어졌다.

2. 3. 전후 변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때 '''美濃御霊神社|미노 미타마 진자일본어'''(미노고령신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주권 회복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이름인 기후호국신사로 돌아왔다. 1952년 10월에는 기후현 신사청으로부터 현 신사청장 참향 지정 신사(금폐사)로 지정받았다.[3] 1962년에는 쇼와 천황고준 황후가 참배하였으며[3], 1995년에는 종전 5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배전(외배전)이 준공되었다.

3. 시설

기후시 미치카미자이모쿠초 거울 바위선가의 도리이와 륙교 (수색 철문)


경내에는 전쟁 희생자(공습이나 해외 이민,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음) 및 무연의 유족과 유골을 모시는 '''진령사'''가 있다. 또한 영령의 영지부(명부)를 보호하기 위해 내화 및 내진 구조로 지어진 '''봉안전'''과 갓파대명신을 모시는 '''갓파당''' 등이 위치한다.

신사의 부대 시설인 세이란 회관은 이전 '호텔 세이란'으로 운영되었으나, 2007년 (헤이세이 19년) 4월에 영업을 종료했다.[5] 이후 2009년 (헤이세이 21년) 6월 전면 리뉴얼을 거쳐 신사의 참집전 및 결혼 피로연 장소로만 운영되고 있다. 세이란 회관 1층에는 기후현 유족회 사무소가 입주해 있다.

본 신사는 나가라강 강변에 자리 잡고 있어 침수를 막기 위한 방수벽이 경내를 둘러싸고 설치되어 있다. 또한, 기후시 미치카미자이모쿠초 거울 바위선가 여러 곳에는 홍수 발생 시 사용되는 륙교가 설치되어 있다.[6]

4. 문화재


  • 기후현 지정 중요 문화재
  • * 도검 명 오미노카미 미나모토 히사미치 (일본 육군 중장 다카모리 다카시 봉납・1977년 3월 11일 지정)[7]

5. 벚꽃 명소

기후 호국 신사는 봄에 피는 벚꽃(사쿠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의 '우카이자쿠라'(鵜飼桜)는 기후 시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벚나무 중 하나로, 약 100년 전에 심어졌다.[2] 나무 줄기의 둘레는 약 2.5m이고, 높이는 약 8m이다.[2] 이 벚나무는 꽃의 상태를 보고 다가오는 나가라강의 가마우지 낚시(우카이) 시즌에 잡히는 은어(아유)의 양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겨져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2]

6. 주변 시설

참조

[1] 웹사이트 History http://www.gifu-goko[...] Gifu Gokoku Shrine 2008-06-25
[2] 웹사이트 Gifu's Four Seasons: Spring http://www.gifucvb.o[...] Gifu City Convention and Visitors Bureau 2008-06-19
[3] 웹사이트 神社について http://www.gifu-goko[...] 岐阜護國神社
[4] 문서 護國神社指定 内務省 1940-11-07
[5] 웹사이트 クローズ・アップ ぎふ経済 経営戦略の転換に本腰 http://www.gifu-np.c[...] 岐阜新聞 2007-12-01
[6] 웹사이트 長良川(伊自良川含む) 重点区間と要注意区間 拡大図A https://www.cbr.mlit[...] 国土交通省中部地方整備局 木曽川上流河川事務所
[7] 웹사이트 刀[かたな]銘近江守源久道[めいおおみのかみみなもとのひさみち] https://www.pref.gif[...] 岐阜県庁文化伝承課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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