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길원옥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길원옥은 일제강점기 평양 출신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1998년부터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으며,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증언 활동을 했다. 2016년 가수 데뷔, 2018년 정의기억연대에 참여했으며, 오사카 조선학교에 기부했다. 치매 발병 이후 정의연 관련 논란이 있었으며, 친족은 재판을 검토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희천시 출신 - 이용설
    이용설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노스웨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의사이자 정치인으로, 세브란스 의과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 희천시 출신 - 나창헌 (1896년)
    나창헌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일본군 위안부 - 하타 이쿠히코
    하타 이쿠히코는 일본의 역사학자로, 일본 근현대사와 군사 및 전쟁사를 연구하며 난징 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실증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다수의 저서를 저술하여 일본 내외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여러 상을 수상했다.
  • 일본군 위안부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0년 설립된 대한민국의 시민단체로, 피해자 지원, 수요시위, 국제 연대 활동 등을 전개하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전쟁과 여성인권센터 및 박물관 건립 등의 활동을 펼쳤으며 정의기억연대로 통합되었다.
  •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 - 박래군
    박래군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생 박래전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및 정책실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국 국장, 다산인권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및 소장,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부위원장,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이다.
  •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 - 전태일
    전태일은 1948년 대구 출생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 운동을 펼치다 1970년 분신 자살하며 노동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길원옥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길원옥
한자 표기吉元玉
로마자 표기Gil Won-ok
배경
직업위안부 피해자, 인권 운동가
출생1928년
알려진 이유위안부 생존자로서의 활동
주요 활동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관련 정보2011년 8월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시위 참여
기타위안부 지원 단체 관련 시설 수색 (2020년)
위안부 지원 단체의 친북 교육 논란

2. 생애

길원옥은 1928년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났다.[2] 1940년, 13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1945년까지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1] 해방 이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전쟁 후,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국경이 폐쇄되어 실패했다.[1] 199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가가 되었다.[2]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버려진 아들을 입양하여 목사로 키웠다.[1]

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우리집'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거주했다.[1] 일본 제국군의 범죄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헌신했다.

2010년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와 그에 기초한 배상"이라고 말했다.[11] 2012년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에 항의하며 면담을 요청했다가 "사죄 없이는 만날 필요가 없다"며 취소했다.[12]

2016년 정대협의 협력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13] 2018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변경되자, 해당 단체로 이적했다. 같은 해 오사카 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약 300000JPY을 기부했다.[14]

정대협 산하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했으나, 소장 자살 후 아들이 집으로 데려갔다. 정의연은 길원옥이 휴양 시설에 남길 원했지만, 본인이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15][16][17][18][19][20]

길원옥 관련, 치매 발병 후 정부 지원금이 정의연에 부자연스럽게 송금된 사실, 윤미향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유언장 작성 사실이 밝혀졌다.[21][22] 정의연 기부금 반환 요구 동영상이 공개, 친족은 재판을 검토 중이다.[23]

2. 1. 어린 시절과 강제 연행

길원옥은 1928년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2] 1940년, 13세 때 일자리를 약속받고 일본으로 가는 기차에 탔으나, 만주 하얼빈의 위안소로 끌려가 18세까지 일본군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1]

이 과정에서 매독에 걸려 4번의 수술을 받았고, 합병증으로 자궁 절제술을 받아 불임이 되었다.[1][2]

길원옥은 위안부가 된 경위에 대해 "11살 때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다"[7]는 주장과 "13살 때 강제 연행되었다"[8]는 주장을 번갈아 하기도 했다.

2. 2. 위안부 피해

길원옥은 1928년 일제강점기 평양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2] 1940년, 13세 때 일자리를 약속받고 일본으로 가는 기차에 탔으나, 만주 하얼빈의 위안소로 끌려가 18세까지 일본군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1]

매독으로 4번의 수술을 받았고, 합병증으로 자궁 절제술을 받아 불임이 되었다.[1][2] 전쟁 후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국경이 폐쇄되어 실패했다.[1]

1998년, 5년간 겪었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2] 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쉼터 '우리집'에서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1]

위안부가 된 경위에 대해 "11살 때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다[7]", "13살 때 강제 연행되었다[8]" 등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 2010년 일본 정부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11]

2. 3. 해방 이후

1998년, 길원옥은 이전에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던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2] 이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1] 신체적인 문제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도박장에서 일하던 중 버려진 아들을 입양하여 목사로 키웠다.[1]

길원옥은 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우리집'이라는 쉼터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거주했다.[1] 2010년에는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에 기초한 배상을 국가로서 해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11]

2012년에는 하시모토 도루의 종군 위안부 문제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지지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하시모토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사죄를 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면담을 취소했다.[12]

2016년 9월, 정대협의 협력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13] 2018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합병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출범시키자, 해당 단체로 이적했다. 같은 해 9월, 오사카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여 약 300000JPY을 기부했다.[14]

정대협 산하 위안부로서 정대협에 협력하여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했으나, 소장의 자살을 계기로 아들이 집으로 데려가면서 퇴거했다. 정의연 측은 길원옥이 휴양 시설에 남기를 희망하고 아들의 동행을 반대했지만, 최종적으로 본인이 휴양 시설을 나가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15][16][17][18][19][20]

길원옥과 관련하여, 치매 발병 이후 정부 지원금이 정의연 및 관련 언론에 부자연스럽게 송금된 사실과 2019년 윤미향 대표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내용의 동영상 유언장을 작성한 사실이 밝혀졌다.[21][22] 또한, 정의연에 기부한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길원옥의 친족은 재판도 검토하고 있다.[23]

2. 4.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길원옥은 일본 제국군에 의해 자행된 폭력 범죄 사실을 공개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1]

2012년, 길원옥과 김복동은 정의기억연대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 성적 전쟁 범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더 버터플라이 펀드'를 시작했다.[3] 두 여성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모든 기금을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4] 이 기금의 수혜자 중에는 제2차 콩고 전쟁 피해자와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베트남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포함되어 있다.[4]

2016년 9월, 정대협의 협력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13] 2018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합병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출범시키자, 해당 단체로 이적했다. 같은 해 9월 오사카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방일하여 약 300000JPY을 기부했다.[14]

정대협 산하 위안부로서 정대협에 협력하여 우대받아, 정대협이 관리하는 서울시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했으나, 소장의 자살을 계기로 아들이 자택으로 데려가면서 퇴거했다. 정의연 측은 길원옥이 휴양 시설에 남기를 희망하고, 아들의 데려감을 반대했지만, 최종적으로 본인이 휴양 시설을 나가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했다.[15][16][17][18][19][20]

길원옥을 둘러싸고 치매가 발병한 이후,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지원금이 정의연 및 정의연과 관련된 언론에 부자연스럽게 송금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2019년에는 "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을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동영상 유언장을 작성한 사실도 밝혀졌다.[21][22] 또한, 정의연에 기부한 돈을 돌려달라고 본인이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길 씨의 친족은 재판도 검토하고 있다.[23]

2. 4. 1. 수요 시위 참여

길원옥은 일본 제국군에 의해 자행된 폭력 범죄 사실을 공개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에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하여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1] 일본 여자 대학교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했다.[1] 또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요구하는 1억 명 서명 운동에도 참여했다. 2014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여 국제 연합 인권 고등 판무관 사무소에 1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1]

1998년부터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9] 일본 기독교 협의회에 따르면, 길원옥은 기독교 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위안부보다 늦은 1998년부터 수요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10]

2010년 길원옥은 "제가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에 기초한 배상을 국가로서 해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주장했다.[11]

2. 4. 2. 증언 활동

길원옥은 일본 제국군에 의해 자행된 폭력 범죄 사실을 공개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에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하여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1] 일본 여자 대학교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했다.[1] 또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요구하는 1억 명 서명 운동에도 참여했다. 2014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여 국제 연합 인권 고등 판무관 사무소에 1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1]

2016년 영화 ''더 어폴로지''는 션 티파니가 감독했으며, 3명의 전 위안부가 전시 성 노예 피해자로서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방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영화는 길원옥 할머니가 위안부로 지냈던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활동가로서의 다양한 활동들을 따라간다. 영화 속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여자 대학교, 중국, 스위스를 방문하여 20만 명의 전시 성 노예 피해 여성들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150만 개의 서명을 국제 연합에 전달했다.[1]

1998년부터 위안부로서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9] 2010년에는 "제가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에 기초한 배상을 국가로서 해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주장했다.[11] 2012년 하시모토 토루의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지지자들과 함께 방일했다. 하시모토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하시모토가 "어떤 경위로 위안부가 되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다"고 응하자, "사죄를 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면담을 취소했다.[12]

2016년 9월, 정대협의 협력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13] 2018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변경되자, 해당 단체로 이적했다. 같은 해 9월 오사카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방일하여 약 300000JPY을 기부했다.[14]

2. 4. 3. 국제 연대 활동

길원옥은 일본 제국군에 의해 자행된 폭력 범죄 사실을 공개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에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하여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1]

일본 여자 대학교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했다.[1] 또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요구하는 1억 명 서명 운동에도 참여했다. 2014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여 국제 연합 인권 고등 판무관 사무소에 1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1]

2016년 영화 ''더 어폴로지''는 션 티파니가 감독했으며, 3명의 전 위안부가 전시 성 노예 피해자로서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방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영화는 길원옥 할머니가 위안부로 지냈던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활동가로서의 다양한 활동들을 따라간다. 영화 속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여자 대학교, 중국, 스위스를 방문하여 20만 명의 전시 성 노예 피해 여성들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150만 개의 서명을 국제 연합에 전달했다.[1]

2. 5. 나비기금 설립

2012년,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정의기억연대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 성적 전쟁 범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비기금을 시작했다.[3] 두 할머니는 자신들에게 가해진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모든 기금을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4] 이 기금의 수혜자 중에는 제2차 콩고 전쟁 피해자와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베트남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포함되어 있다.[4]

3. 논란

길원옥은 위안부가 된 경위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11살 때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다"[7]고도 하고, "13살 때 강제 연행되어 군인에게 폭행, 강간당했다"[8]고도 주장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2012년 하시모토 토루의 종군위안부 문제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방일했을 때, 하시모토가 "어떤 경위로 위안부가 되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다"고 하자, "사죄를 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면담을 취소하기도 했다.[12]

3. 1.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논란

정대협 산하 위안부로서 정대협에 협력하여 우대받았으며, 정대협이 관리하는 서울시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했다. 그러나 소장의 자살을 계기로 아들이 자택으로 데려가면서 퇴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측은 길원옥이 휴양 시설에 남기를 희망했고 아들의 데려감을 반대했지만, 최종적으로 본인이 휴양 시설을 나가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했다.[15][16][17][18][19][20]

길원옥을 둘러싸고 치매 발병 이후,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지원금이 정의연 및 정의연과 관련된 언론에 부자연스럽게 송금된 사실이 밝혀졌다. 2019년에는 "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을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동영상 유언장을 작성한 사실도 밝혀졌다.[21][22] 또한, 정의연에 기부한 돈을 돌려달라고 본인이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길 씨의 친족은 재판도 검토하고 있다.[23]

4. 출연 작품

참조

[1] Film The Apology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2016
[2] 서적 Embodied Reckonings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8
[3] 간행물 Metamorphosis of the Korean 'Comfort Women': How Did Han 恨 Turn into the Cosmopolitan Morality? 2017-09
[4] 웹사이트 In solidarity with wartime rape victims http://www.koreahera[...] 2019-06-14
[5] 웹사이트 慰安婦支援団体が購入した施設「憩いの場」ソウル地検が家宅捜索 https://news.livedoo[...] 2020-06-07
[6] 웹사이트 挺対協、「欧州平和紀行」で親北朝鮮教育 - ライブドアニュース https://archive.is/S[...] 2020-06-07
[7] 문서 (京都)吉元玉さんの証言を聴く会-旧日本軍性奴隷制(「慰安婦」)問題の解決のために 2010年5月 http://bund.jp/modul[...]
[8] 문서 吉元玉ハルモニ証言集会(2010/04/17) http://www.ianfu-kan[...]
[9] 문서 吉元玉ハルモニ証言集会(2010/04/17) http://www.ianfu-kan[...]
[10] 문서 クリスチャントゥディ 2014年7月3日17時06分 性奴隷制問題の討論をジュネーブで開催 http://www.christian[...]
[11] 문서 吉元玉ハルモニ証言集会(2010/04/17) http://www.ianfu-kan[...]
[12] 뉴스 元慰安婦、橋下氏と面談中止…「嫌になった」 https://web.archive.[...] 読売新聞 2013-05-24
[13] 뉴스 日本軍慰安婦被害者のキル・ウォンオクさん、晩年の歌手デビュー ハンギョレ新聞 2016-09-05
[14] 뉴스 慰安婦被害者2人、台風で被害の大阪朝鮮学校を訪問 https://japanese.joi[...] 中央日報日本語版 2018-09-27
[15] 웹사이트 慰安婦支援団体が購入した施設「憩いの場」ソウル地検が家宅捜索 https://news.livedoo[...] 2020-06-07
[16] 웹사이트 挺対協、「欧州平和紀行」で親北朝鮮教育 - ライブドアニュース https://archive.is/S[...] 2020-06-07
[17] 웹사이트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 자택 화장실서 숨진 채 발견 https://news.naver.c[...] 2020-06-07
[18] 웹사이트 慰安婦支援団体が非協力的な被害者を差別か 最大野党議員が指摘 https://jp.yna.co.kr[...] 2020-06-07
[19] 웹사이트 慰安婦被害者が支援施設から退去 居住者ゼロに=韓国 http://www.chosunonl[...] 2020-06-11
[20] 웹사이트 【独自】休養施設を去った吉元玉ハルモニの叫び「今やっと我が家に!」 http://www.chosunonl[...] 2020-06-20
[21] 웹사이트 「慰安婦被害者の認知症発症後に…通帳からまとまった額のカネが出て行った」 http://www.chosunonl[...] 2020-06-20
[22] 웹사이트 【社説】慰安婦被害者の支援金まで? 検察は徹底かつ迅速な捜査を https://japanese.joi[...] 2020-06-20
[23] 웹사이트 慰安婦被害者の吉元玉さん「正義連に出した寄付金7920万ウォン返してもらいたい」 https://japanese.joi[...] 2021-02-04
[24] 웹사이트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 자택 화장실서 숨진 채 발견 https://news.naver.c[...] 2020-06-07
[25] 웹사이트 慰安婦支援団体が非協力的な被害者を差別か 最大野党議員が指摘 https://jp.yna.co.kr[...] 2020-06-07
[26] 뉴스 韓.대만 위안부 할머니 日에 사과 촉구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3-08-07
[27] 뉴스 김복동 할머니 빈소 조문 행렬···"일본 정부 사과하라" https://news.naver.c[...] 서울경제 2019-01-29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