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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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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0년 설립된 단체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왔다. 1992년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확장했고, 남북 간 연대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펼쳤다. 수요시위, 피해자 지원, 국내외 연대, 교육 및 홍보 활동을 주요 활동으로 하며, 2018년 정의기억재단과 통합되어 정의기억연대가 되었다. 2020년에는 윤미향 및 단체의 활동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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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로마자 표기The 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약칭정대협
설립일1990년
유형NGO
목적여성의 권리 회복;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 중단; 아시아 평화 구축
본부마포구,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언어한국어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조직 구성
주요 인물윤미향
김삼열
정강자
주요 활동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연대 활동
역사 교육 및 연구
국제 연대 활동
기타 정보
비고2020년 정의기억연대로 명칭 변경

2. 역사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창립 이후, 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약칭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였다.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문제를 넘어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17]

<아시아연대회의>는 남북 간 연대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이끌어냈다. 특히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남북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노력은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 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졌다.[17]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전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법정은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 법정으로서 성노예 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17]

2001년 7월, 정대협은 병설기구로 <전쟁과 여성인권센터>를 발족하였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는 "지금도 세계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점을 교육해왔다. 여기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일상 속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인권을 소중히 하는 태도가 평화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성매매 피해 여성, 기지촌 피해 여성 등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전쟁의 속성과 평화의 참된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17]

<전쟁과여성인권센터>의 노력과 할머니들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2011년 8월, ‘희망의 문 열기’ 행사를 통해 서울 마포구에 개관을 준비 중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며 미래 세대에 평화의 참뜻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기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직접 마련했는데, 이는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일에 피해 할머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이와 같은 범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하고자 박물관 건립에 앞장섰다.[17] 2012년 5월 5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개관했다. 이는 200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 생활지원금을 쪼개어 낸 주춧돌 기금으로 점화식을 한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박물관은 당초 서대문독립공원 부지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광복회 등 독립유공자 단체들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반대하여 마포구 성산동에 새 부지를 마련해야 했다.[18][19][20]

2013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었다. 이는 국외에 처음으로 세워진 소녀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은 소녀상 제막식에 맞춰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일본군 위안부 증언 활동을 펼쳤다.[21][22]

2012년 12월, 정대협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공개 증언을 기념하여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2013년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기념하는 1087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23]

2018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통합되었다.[24]

2. 1. 설립 배경 (1980년대 - 1990년)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과거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진보적인 기독교 여성 단체들이 '위안부'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6] 이후 일본 정부 관계자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사설 브로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하자, 이에 분노한 여러 단체들이 연대하게 되었다.[6]

1990년 11월, 윤정옥과 이효재를 중심으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설립되었다.[6] 정대협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로 여성 단체들과 불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일부 종교 단체들이 연합하여 구성되었다.[7]

'정신대'(挺身隊)는 문자 그대로 "자발적으로 몸을 바친 부대"를 의미한다.[1][2] 원래 일본 정부가 사용한 "자원병 부대"를 의미했지만, 나중에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한국 여성들을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1][2] 정대협의 공식 영어 명칭은 "The Korean Council for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인데, 이는 한국어 명칭을 직역한 것이 아니다.[1]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구절이 한국어 '정신대'에 해당한다.[1]

한편, 전 위안부이자 활동가인 이용수는 "성노예"라는 용어가 자신을 "더럽고 부끄럽게" 느끼게 한다며 강한 반감을 표명했다. 그녀는 2020년 5월 7일 기자회견에서 정대협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을 비난했다.[3][4]

2. 2. 초기 활동 (1991년 - 1990년대)

1990년 창립된 정대협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23]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은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졌고, 정대협은 피해자들을 위한 핫라인을 설치하여 지원 활동을 펼쳤다.[8]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폭로를 계기로 피해자들을 공식 인정하고 금전적 지원, 무료 의료 서비스, 공공주택 임대 권리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8]

1992년 1월, 정대협은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에 맞춰 호텔 앞에서 시위를 주도했고, 이후 매주 수요일 수요시위를 시작했다.[8]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 다음 사항을 요구했다.[8]

# 한국 여성들의 강제 연행 인정

# 공식 사과

# 진상 규명

# 위령비 건립

# 배상

# 역사 교육

1992년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여, 이 문제를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확장시켰다.[17] 아시아연대회의는 남북 및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 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하도록 이끌었다.[17]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17]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 보고서는 사과를 포함했지만, "전후 조약에 따라 모든 청구권이 포기되었다"고 주장했다.[8] 이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정대협을 비롯한 피해자 지원 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2. 3. 국제 연대 활동 (1992년 - 2000년대)

1990년 창립된 정대협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약칭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였다.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문제를 넘어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17]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 연대 활동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이끌어냈다.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남북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연대 활동의 결과로,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 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연달아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졌다.[17]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국제 종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유엔 인권위원회 및 그 산하 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여 공론화하는데 성공하였다.[7]

1994년 일본이 개별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자 도쿄 검찰청에 일본 제국군의 기소를 요청했으나 기각되었다.[8]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전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법정은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 법정으로서 성노예 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17]

2. 4. 정대협에서 정의연으로 (2018년)

2018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통합되었다.[24]

3. 주요 활동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 시위 개최: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대한민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개최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9]
  • 피해자 지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상담, 의료 지원, 쉼터 운영 등 피해자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8][9]
  • 국제 연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와 미국, EU 등 각국 의회가 일본 정부를 압박하도록 이끌었다.[17] 2000년에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을 통해 히로히토 전 일본 국왕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17]
  • 교육 및 홍보: 2012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개관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고 미래 세대에 평화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18][19][20] 박물관은 전시, 자료 제공,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11][10]


2018년 정대협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하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24]

3. 1. 수요시위

1990년에 창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2년 1월 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대한민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정대협은 다른 지지자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정오에 시위를 이어왔다. 이 시위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넘어 전쟁과 성폭력에 맞서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9]

정대협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약칭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문제를 넘어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확장시켰다.[17] <아시아연대회의>는 남북 간 연대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통해,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졌다.[17]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전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 법정으로서 성노예 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17]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는 1000회차를 기록했다.[9] 2013년 7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은 이 '소녀상 제막식'에 맞춰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일본군 위안부 증언 활동을 하였다.[21][22]

2012년 12월, 정대협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을 기념해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고, 2013년 8월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기념하는 1087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23]

2018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통합되었다.[24]

3. 2. 피해자 지원 활동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씨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연락하여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면서, 정대협은 피해자 지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8] 정대협은 피해자들을 위한 핫라인을 설치하여 다른 생존자들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8]

정대협은 주로 고령의 전쟁 중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제공한다.[9]

  • 상담
  • 의료 지원
  • 야외 방문
  • 장례 절차 준비 및 상담
  • 매주 정기적인 저녁 모임


또한, 정대협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교육하며, '우리집'이라는 피해자 쉼터를 운영한다.[9]

이러한 정대협의 활동은 보건복지부가 피해자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금전적 지원, 무료 의료 서비스, 공공주택 임대 권리를 제공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8]

3. 3. 국내외 연대 활동

1990년에 창립된 정대협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약칭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였다.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문제를 넘어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로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갔다.[17]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 연대 활동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이끌어내었다.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남북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연대 활동의 결과로,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연달아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졌다.[17]

1990년대 초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북한과의 협력은 유일한 "소통 채널"[7]이었다. 남북한은 제네바 포럼부터 도쿄와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에 이르기까지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서울과 평양에서 상호 방문과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전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법정은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 법정으로서 성노예 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17] 같은 해, 한국교회협의회는 북한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여성 국제전범재판소 공동 기소를 제출하여 가해자들의 범죄를 명확히 하고 피해자들의 존엄성과 정의를 회복하려고 했다. 재판소의 최종 판결에서 히로히토를 포함한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9]

1992년, 한국교회협의회는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자격으로 유엔 인권위원회 및 그 산하 위원회에 참여하여 유엔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다. 세계개혁교회연맹과 아시아태평양 여성, 법률 및 개발 포럼도 한국교회협의회를 지지했다. 한국교회협의회의 현장 조사 요청은 국제법률가위원회에서 승인되었고, 두 명의 위원이 한국, 필리핀, 북한, 일본에 파견되었다. 조사 결과는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했으며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7]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국제노동기구, 국제법률가위원회에서도 추가적인 권고가 있었다. 한국교회협의회의 활동은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여성회의의 결의에도 기여하여 국제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7]

한국교회협의회가 유엔 인권위원회(UNCHR)에 로비를 시작하면서 인권 규범을 통합하기로 결의했다. 협의회는 테오 반 보벤의 배상 개념, 즉 배상은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원상회복, 재활, 만족, 그리고 재발 방지 보장을 포함한다"[8]는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에 따라 한국교회협의회의 정체성은 인권 옹호로 재구성되었다. 이후 한국교회협의회 대표들은 1994년 일본이 개별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자 도쿄 검찰청에 일본 제국군의 기소를 요청했다. 이 고소의 정당성은 반 보벤의 "처벌하지 않음에 대한 배상 의무"라는 생각에 근거했다.[8] 그러나 이 고소는 기각되었다.

같은 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서울에서 최초로 아시아 연대 회의를 개최했다. 일본은 회의에 참여하고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본에 초청하여 공개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대를 표명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관한 아시아 연대 회의는 필리핀, 타이완, 인도네시아, 중국 등 아시아의 다른 피해 국가들이 전략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포럼 역할을 했다. 1997년부터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제네바에서 전시 여성 폭력에 대한 공개 포럼을 조직했다. 또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미얀마, 스리랑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에서 군인들이 저지른 강간 등 다른 유형의 폭력 사례를 유엔 인권위원회 및 그 산하 위원회의 심의에 포함시켰다.[7]

2013년 7월 30일(현지시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과 같은 '평화의 소녀상'이 국외에서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은 이 '소녀상 제막식'에 맞춰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로스앤젤레스·시카고·워싱턴 등지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증언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21][22]

2018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통합되었다.[24]

3. 4. 교육 및 홍보 활동

2001년 7월, 정대협 병설기구로 <전쟁과 여성인권센터>가 발족하였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는 "지금도 세계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점을 교육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인권을 소중히 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바로 평화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다.[17]

<전쟁과여성인권센터>의 노력과 할머니들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2011년 8월, ‘희망의 문 열기’ 행사를 가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서울 마포구에 개관을 준비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고 미래 세대에 평화의 참된 뜻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의 종자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으로 마련된 것인데,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일에 누구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즉,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인류 역사에 이와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하고자 박물관 건립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이다.[17] 2012년 4월 27일,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개관일이 2012년 5월 5일로 결정되었다. 이는 2003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 생활지원금을 쪼개어 낸 주춧돌 기금으로 점화식을 한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이 박물관은 당초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부지에 건립될 예정이었는데, 서울시가 독립공원 매점 부지를 기부해 200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첫 삽을 떴으나 광복회 등의 반대에 부딪혀 마포구 성산동에 새 부지를 마련했던 것이다. 독립유공자 단체들은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었다.[18][19][20]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억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9] 2001년에 설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오늘날 전 세계 무력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고 위안부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9] 이 박물관은 주로 역사 교육과 캠페인, 전시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전쟁범죄의 진실을 보존하고 평화와 인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박물관 건립 기금을 모았다. 이 박물관은 9년간의 건설 끝에 2012년에 완공되었으며, 전시와 자료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위안부들의 이야기는 영상, 개인 음성 증언, 사진, 물건, 서면 자료, 패널 등을 통해 전시된다. 전시가 끝나면, 안내원이 문제 해결을 위한 생존자들의 지속적인 활동에 대해 논의한다.[1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교육센터’를 설립했다. 교육센터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있다.

시설설명
휴식공간생존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휴식과 교육, 의료 프로그램을 제공
교육실역사와 인권 교육을 제공
전시실관련 자료, 역사 사진, 현재 진행 중인 인권 운동 사진 등을 전시
자료실국내외 자료, 사진, 영상을 보관하고 대여



또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 자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관련된 여성 인권 강좌 등을 통해 학생,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국내외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10]

4. 논란

2020년 5월,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치적, 재정적으로 이용했다고 폭로했다.[13] 또한 정대협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일본 정부의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16]

4. 1.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와 그 내용

이용수 할머니는 2020년 5월, 윤미향정대협이 자신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치적, 재정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고 폭로했다.[13]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과 정대협이 건강이 좋지 않은 김복동 할머니를 모금을 위해 미국 순회 강연에 보냈다고 비난했다.[13]

이용수 할머니는 많은 지지자, 특히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요시위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한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시기에 수요시위가 젊은 세대에게 "증오심"을 가르쳤다고 말했다.[14]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는 2023년 3월부터 다시 수요시위에 참여했다.[15]

정대협은 2015년에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의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도록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비난도 받았다.[16]

4. 2.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논란

정대협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의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도록 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16] 2020년 5월, 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는 정대협과 윤미향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전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치적, 재정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용수는 정대협과 윤미향이 건강이 좋지 않은 전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을 모금을 위해 미국 순회 강연에 보냈다고 비난했다.[13] 또한 이용수는 많은 지지자, 특히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요시위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용수는 일본과 한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시기에 수요시위가 젊은 세대에게 "증오심"을 가르쳤다고 말했다.[14] 하지만 이용수는 2023년 3월부터 다시 수요시위에 참여했다.[15]

5.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

日本軍慰安婦일본어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 일본 정부는 전쟁 범죄를 인정해야 한다.[9]
  • 日本軍慰安婦일본어 범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9]
  •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9]
  • 법적으로 배상해야 한다.[9]
  • 전쟁 범죄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9]
  • 역사 교과서에 日本軍慰安婦일본어 문제를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9]
  • 日本軍慰安婦일본어 피해자를 위한 위령탑 및 역사관을 건립해야 한다.[9]


이러한 과제들은 희생된 여성들의 침해된 권리를 회복하고, 전시 여성 폭력을 종식시키며, 한국과 일본 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방지하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9]

참조

[1] 논문 From Imperial Gifts to Sex Slaves: Theorizing Symbolic Representations of the 'Comfort Women'
[2] 웹사이트 Labeled the reporter who "fabricated" the comfort woman issue: A Rebuttal http://apjjf.org/201[...] 2015-01-12
[3] 웹사이트 'Comfort woman' survivor says she won't be used anymore https://koreajoongan[...] 2020-05-14
[4] 웹사이트 (LEAD) Former 'comfort woman' calls for justice for former civic group head, 'accurate' history education for students of S. Korea, Japan https://en.yna.co.kr[...] 2020-05-25
[5] 서적 Activists Beyond Borders https://archive.org/[...] Cornell University Press
[6] 논문 The Korean "Comfort Women": Movement for Redress 1996
[7] 서적 Global civil society 2011 Palgrave Macmillan 2011
[8] 논문 The Comfort Women Reparation Movement https://content-ebsc[...] 2013
[9] 웹사이트 정대협 http://www.womenandw[...] 2018-03-05
[10] 뉴스 Korean Council for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 PSPD in English - 참여연대 http://www.peoplepow[...] 2018-02-23
[11] 웹사이트 War & Women's Human Rights Museum, Seoul http://www.warinasia[...] 2018-03-08
[12] 뉴스 COMFORT WOMEN: A New Musical Releases Original Off-Broadway Cast Album https://www.broadway[...] BroadwayWorld 2018-12-07
[13] 뉴스 'Yoon uses comfort women for own interest' https://www.koreatim[...] 2020-06-08
[14] 뉴스 The 'comfort women' of South Korea: pawns in a political game? https://www.scmp.com[...] 2020-06-08
[15] 웹사이트 수요집회와 전광훈집회…3·1절 도심의 '두 얼굴' https://www.nocutnew[...] 2023-03-01
[16] 웹사이트 'Comfort women' advocates deny allegations http://www.koreahera[...] 2020-06-08
[17] 웹사이트 평화 할머니, 당신의 이름은 ‘평화’입니다 http://www.ildaro.co[...] 일다 2011-12-14
[18] 웹사이트 9년 만에 결실 맺은 할머니들의 꿈 http://www.womennews[...] 여성신문 2012-04-27
[19] 웹사이트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깊은 어린이날 선물 https://news.v.daum.[...] 노컷뉴스 2012-05-05
[20] 웹사이트 20만 명 시민의 힘으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개관 http://womennews.co.[...] 여성신문 2012-05-05
[21] 웹사이트 “우리 고통 알아주는 이들 많으니 행복해요” http://www.womennews[...] 여성신문 2013-08-07
[22] 웹사이트 워싱턴 ‘소녀상’ 임시 제막식…길원옥 할머니 “안식처 찾아주오” http://www.hani.co.k[...] 한겨레 2016-12-11
[23] 웹사이트 위안부 기림일 기념 수요집회…9개국서 국제연대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3-08-14
[24] 뉴스 정대협·정의기억재단 통합 출범…이사장엔 윤미향 대표 http://www.hani.co.k[...]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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