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1945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정길은 1945년생으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시절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했으며, 12,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국민의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2010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201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2013년 정계 은퇴를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장목초등학교 동문 - 김영삼
김영삼은 1929년 거제 출생으로, 제14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군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금융실명제 실시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했으나 IMF 외환 위기를 겪고 2015년 서거했다. - 장목초등학교 동문 - 김한표
김한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경찰, 청와대 근무 후 제19대,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뇌물 수수 혐의로 전과가 있는 정치인이다. - 부산남중학교 동문 - 유남규
유남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탁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포함한 다수의 국제 대회 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게임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 부산남중학교 동문 - 유백만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는 현재 개성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 대한민국의 행정자치부 장관 - 이용섭
이용섭은 함평학다리고등학교, 전남대학교 등을 졸업하고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등을 역임하고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거쳐 제18, 19대 국회의원과 제13대 광주광역시장을 지냈다. - 대한민국의 행정자치부 장관 - 김기재 (1946년)
김기재는 행정고시 합격 후 공직에 입문하여 부산시 시장, 총무처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고 제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정길 (1945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김정길 |
출생일 | 1945년 5월 28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 |
국적 | 대한민국 |
경력 | |
경력 | 통일민주당 원내수석부총무 민주당 원내총무 민주당 최고위원 통합민주당 부총재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의정 활동 | |
의원 선수 | 2 |
의원 대수 | 12·13 |
정당 | 무소속 |
지역구 | 부산 중구·동구·영도구(12) 부산 영도구(13) |
2. 이력
김정길은 1971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시절, 3선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에서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선거를 목격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여 지역주의 해소와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해왔다.[1]
3당합당 이후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계속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낙선을 거듭했다.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최초로 시도한 장관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임명직 대신 부산 영도구에 출마했으나, 17대 총선에서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훼발언 파문으로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국제적인 문화체육 행정가로 활동했다.
2010년 6월, 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선출되었고, 야권 단일화 경선 끝에 야권단일 후보로 선출되었으나,[2] 6.2 지방선거에서 44.57% 득표를 하였지만 석패했다.[3]
2011년 6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사실상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부산진구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40.5%의 득표를 얻고 낙선했다.
2012년 7월 22일,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탕탕평평 인권국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미 FTA폐기, 강정해군기지 백지화, 비정규직 철폐"등을 약속하면서 대통령후보 출마선언식을 가졌다.
2013년 6월 5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는 북경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객좌연구원으로 있다.[4]
2. 1. 정치 입문과 국회의원 시절
1971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시절, 김정길은 3선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에서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선거를 목격했다. 이효상 국회의장의 하와이 발언과 투표 전날 영남 전역에 뿌려진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는 전단지 등으로 지역주의가 극에 달했다.[1] 이를 계기로 김정길은 지역주의를 없애는 데 앞장서게 되었고, 이후 40년간 동서화합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1]김정길은 12대, 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통일민주당 원내수석부총무, 통합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며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3당합당 이후 정치적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계속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낙선을 거듭했다.[1] (사하구 보궐선거, 14대 총선, 15대 총선, 16대 총선, 17대 총선, 부산시장선거, 19대 총선 7차례 연이어 낙선)[1] 이 과정에서도 민주당 초대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을 지내며 차세대 리더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서 정권교체에 기여한 후,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1]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에는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최초로 시도했다.[1]
2. 2. 3당 합당 거부와 부산 출마
김정길은 12대, 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원내수석부총무, 통합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는 등 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1] 하지만 3당합당 이후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하여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줄곧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계속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1] (사하구 보궐선거, 14대 총선, 15대 총선, 16대 총선, 17대 총선, 부산시장선거, 19대 총선 7차례 연이어 낙선)[1]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초대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을 지내며 민주당의 차세대 리더로서 역량을 보여주었다.2. 3. 국민의 정부 참여와 행정 개혁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내며 정권 교체에 일익을 담당한 그는 이후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1]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공직 사회의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최초로 시도한 장관이기도 하다.2. 4. 노무현 정부 시절과 이후 활동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김정길은 임명직 공직 대신 부산 영도구에 다시 출마했다.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으나,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 파문으로 낙선했다.[1] 이후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시간 주립대학교, U.C 샌디에이고 국제관계대학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국제적인 문화체육 행정가로 활동했다.2010년 김민석 예비후보를 꺾고 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진보신당 김석준, 민주노동당 민병렬 후보와 경선 끝에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으나,[2] 6.2 지방선거에서 44.57% 득표로 석패했다.[3]
2011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희망버스 참여, 한미 FTA 폐기에 앞장섰으며, 야권 단일 후보 성사를 위해 자신의 지역구 영도구 출마를 포기하고, 부산진구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40.5%의 득표를 얻었으나 7번째 낙선을 경험했다.
2012년 7월 22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탕탕평평 인권국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미 FTA 폐기, 강정해군기지 백지화, 비정규직 철폐"를 약속하며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식을 가졌다.
2013년 6월 5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는 북경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객좌연구원으로 있다.[4]
2. 5. 부산시장 출마와 대선 도전
김정길은 1971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시절, 3선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에서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선거를 목격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여 지역주의 해소와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해왔다.[1]3당합당 이후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계속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낙선을 거듭했다. (사하구 보궐선거, 14대 총선, 15대 총선, 16대 총선, 17대 총선, 부산시장선거, 19대 총선 7차례 연이어 낙선)[1] 이 과정에서 민주당 초대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을 지내며 민주당의 차세대 리더로서 역량을 보였다.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최초로 시도한 장관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임명직 대신 부산 영도구에 출마했으나, 17대 총선에서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훼발언 파문으로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국제적인 문화체육 행정가로 활동했다.
2010년 6월, 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선출되었고, 야권 단일화 경선 끝에 야권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2] 6.2 지방선거에서 44.57% 득표를 하였지만 석패했다.[3]
2011년 6월, 사실상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부산진구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40.5%의 득표를 얻고 낙선했다.
2012년 7월 22일,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탕탕평평 인권국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미 FTA폐기, 강정해군기지 백지화, 비정규직 철폐"등을 약속하면서 대통령후보 출마선언식을 가졌다.
2013년 6월 5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4]
3. 학력
4. 경력
5. 저서
- 우리의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1978)
-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 (1998)
- 삼인행 (2006)
-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개정판 및 중국어판) (2009)
- 김정길의 희망 (2011)
6.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 10대 | 국회의원 | 부산 중구·영도구 | 무소속 | 8,284 표 | 6.09% | 4위 | 낙선 | |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 11대 | 국회의원 | 부산 중구·동구·영도구 | 무소속 | 43,544 표 | 18.35% | 4위 | 낙선 | |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 12대 | 국회의원 | 부산 중구·동구·영도구 | 민주한국당 | 97,688 표 | 37.42% | 1위 | 당선 | 초선 |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13대 | 국회의원 | 부산 영도구 | 통일민주당 | 47,433 표 | 56.28% | 1위 | 당선 | 재선 |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14대 | 국회의원 | 부산 영도구 | 민주당 | 25,492 표 | 25.14% | 2위 | 낙선 | |
1993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 14대 | 국회의원 | 부산 사하구 | 민주당 | 14,871 표 | 22.3% | 2위 | 낙선 | |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15대 | 국회의원 | 부산 중구·동구 | 민주당 | 22,400 표 | 22.63% | 3위 | 낙선 | |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16대 | 국회의원 | 부산 영도구 | 새천년민주당 | 25,396 표 | 29.13% | 2위 | 낙선 | |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17대 | 국회의원 | 부산 영도구 | 열린우리당 | 36,695 표 | 45.24% | 2위 | 낙선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5대 | 시장 | 부산광역시 | 민주당 | 619,565 표 | 44.57% | 2위 | 낙선 | 민선 5기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19대 | 국회의원 | 부산 부산진구 을 | 민주통합당 | 33,786 표 | 40.54% | 2위 | 낙선 |
참조
[1]
웹인용
추도사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김정길/전 대한체육회장
https://web.archive.[...]
2010-04-09
[2]
뉴스
김정길·민병렬·김석준 중 '부산시장 야권단일후보' 나온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0-05-09
[3]
뉴스
<6·2 지방선거 ‘국민의 선택’>‘심상찮은’ 기록들 - 부산 김정길 44.5%…‘盧 득표율’ 넘어
https://news.naver.c[...]
[4]
뉴스
친노 김정길 전 장관 정계 은퇴 선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3-06-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