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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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에 있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가야 시대의 무덤군이다. 1~5세기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고인돌, 널무덤, 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유물로는 토기, 철기, 목기,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해 당시 가야의 문화 교류와 고대 무덤 형식의 변화를 알 수 있다. 2022년에는 피장자의 DNA 분석을 통해 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조몬계, 순장자가 야요이계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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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 고분군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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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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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명칭 | 김해 대성동 고분군 |
로마자 표기 | Gimhae Daeseongdong Gobungun |
한자 표기 | 金海 大成洞 古墳群 |
소속 | 해당 없음 |
위치 |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
좌표 | 좌표: 35° 14′ 14.8″ N 128° 52′ 20.6″ E |
면적 | 56,762 m2 (고분군 전체) |
사적 번호 | 341호 |
지정일 | 1991년 1월 9일 |
세계 유산 등록 | 2023년, 다른 주변 고분군과 함께 가야 고분군으로 등록 |
역사 | |
축조 연대 | 1세기 - 5세기 (주 시기는 4세기 - 5세기) |
피장자 | 구야한국 및 금관가야의 수장층 |
유물 | |
출토품 | 해당 없음 |
문화재 정보 | |
문화재 유형 | 사적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418-2번지 외 24필지 |
시대 | 해당 없음 |
소유 | 해당 없음 |
참고 | 해당 없음 |
수량 | 해당 없음 |
전승지 | 해당 없음 |
전승자 | 해당 없음 |
웹사이트 | 해당 없음 |
문화재청 | 13,03410000,38 |
2. 위치 및 환경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 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길이 300m, 높이 20m 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현재 구릉 정상 일부분을 제외한 주변 경사지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발굴 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 집단의 무덤 자리로 확인되었다.
3. 발굴 조사 및 무덤 형식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한국 고대 무덤 형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제 거울이나 토기류에서 한·중·일의 문화 교류 상황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3. 1. 무덤 형식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 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 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을 조립하여 널(관)을 만든 것으로, 이전에 통나무관을 이용하던 것에서 나무판 널을 사용하는 시기로의 전환이 1세기경임을 보여준다.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1]
4. 주요 출토 유물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1~5세기에 걸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덧널무덤에서는 토기류,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1]
낮은 구릉지에 밀집된 3세기 말엽부터 5세기 전반의 무덤에서는 아시아 북방의 목곽묘와 유사한 형태의 목곽묘가 발견되었다.[1] 청동으로 만든 케틀(銅鍑, 동부)이라는 용기나 말 모양의 띠고리 등은 북방 유목민과의 교류를 보여준다.[1]
방패 장식 금구인 소용돌이 모양 동기, 창 등의 자루 끝에 끼우는 筒形銅器(통형동기), 벽옥으로 만든 鏃形(촉형, 화살촉 모양)이나 방추 모양의 석제품 등 왜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도 출토되었다.[1]
도데 히로시(고고학)는 4세기 후반 이후 고구려가 남진하여 삼한 남부 일대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에, 가야도 왜와의 연계를 강화했고, 북방 계통이나 왜 계통의 물품이 유입될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1]
이 유물들은 대성동고분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되어 있다.
4. 1. 주요 유물 종류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토기류: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가진 토기들은 당시 가야의 토기 제작 기술과 문화를 보여준다.
- 철기류: 철제 무기, 농기구, 갑옷 등은 철기 제작 기술과 철을 이용한 생산 활동을 보여준다.
- 목류: 나무로 만든 관, 칠기 등 다양한 목제품은 목재 가공 기술과 생활상을 보여준다.
- 중국제 거울 (동경): 중국에서 수입된 청동 거울은 당시 가야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준다.[1]
- 북방 유목민 계통 유물: 청동솥(동복)과 말 모양 띠고리는 북방 유목민과의 교류를 보여준다.[1]
- 왜 계통 유물: 소용돌이 모양 동기, 통형동기, 벽옥제 화살촉 모양 석제품 등은 왜와의 교류를 보여준다.[1]
이 유물들은 대성동고분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되어 있으며,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중국 및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당시 가야가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5. 피장자 DNA 분석
2022년, 한국 게노믹스 센터, 울산 국립 화학기술연구소 등의 협력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가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가야 왕릉에서 출토된 피장자의 인골을 검사한 결과,[4] 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묘주는 조몬계 Y염색체 하플로그룹인 D-M116.1 (D1a2a1)에 속하며, 가신으로 보이는 순장자는 야요이계 하플로그룹 O-PH40 (O1b2a1a2a1b1)에 속하는 남성임이 밝혀졌다.[5]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도 가야와 마찬가지로 D-116.1 (D1a2a1)의 Y염색체를 가진 조몬계 인골이 출토되었다.[6][7]
5. 1. 추가 DNA 분석 결과
2022년, 한국 게노믹스 센터, 울산과학기술원 등의 협력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가 "[http://itagakitaisuke.link/wp/wp-content/uploads/2024/05/Northeastern-Asian-and-Jomon-related-genetic-struc.pdf Northeastern Asian and Jomon-related genetic structure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of Gimhae, Korea (한국 김해의 삼국시대 동북아시아 및 조몬인 관련 유전자 구조)]"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에서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가야 왕릉에서 출토된 인골을 검사한 결과,[4] 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묘주는 조몬계 Y염색체 하플로그룹인 D-M116.1 (D1a2a1)에 속하며, 가신으로 추정되는 순장자는 야요이계 하플로그룹 O-PH40 (O1b2a1a2a1b1)에 속하는 남성으로 밝혀졌다.[5]이와 관련하여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도 가야와 마찬가지로 D-116.1 (D1a2a1)의 Y염색체를 가진 조몬계 인골이 출토되었다.[6][7] 장항유적에서는 일본산 비취 장신구 등 48구의 인골이 출토되었고, 이 중 과학적 분석이 가능했던 17구 가운데 1구에서는 유럽 계통과 공통되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 H가 검출되었다.[8][9]
6. 역사적 의의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한국 고대무덤 형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제 거울이나 토기류에서 한·중·일의 문화교류 상황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대성동 고분군에는 낮은 구릉지에 3세기 말엽부터 5세기 전반의 무덤이 십여 기 밀집된 지역이 있는데, 이 중 대규모 무덤은 길이 8m, 너비 4m, 깊이 5m의 묘광 내에 통나무를 엮어 만든 덧널무덤(목곽묘)을 축조했다.[1] 이는 아시아 북방의 목곽묘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1] 또한, 청동으로 만든 케틀(銅鍑, 동부)이라는 용기나 말 모양의 띠고리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는 북방 유목민과의 교류를 시사하는 유물이다.[1]
한편, 방패의 장식 금구인 소용돌이 모양의 동기, 창 등의 자루 끝에 끼우는 筒形銅器(통형동기), 벽옥으로 만든 鏃形(촉형, 화살촉 모양)이나 방추 모양의 석제품 등 왜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도 출토되었다.[1]
도데 히로시(고고학)는 4세기 후반 이후 고구려가 남진하여 삼한 남부 일대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에, 가야도 왜와의 연계를 강화했을 것이고, 북방 계통이나 왜 계통의 물품이 유입될 기회도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1]
참조
[1]
논문
[2]
논문
[3]
논문
[4]
뉴스
金海で伽耶王陵級古墳 発見
https://web.archive.[...]
2012-08-08
[5]
웹사이트
Northeastern Asian and Jomon-related genetic structure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of Gimhae, Korea
https://www.cell.com[...]
2024-03-23
[6]
문서
「獐項8号人骨(Changhang 8)」の解析結果による
[7]
웹사이트
加徳島の獐項遺跡出土人骨のDNA分析
https://researchmap.[...]
2019-06
[8]
방송
加徳島7000年の謎!
KBSパノラマ・コリアンイブ(Eve)
[9]
문서
中央大学生命科学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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