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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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투 라는 시킴과 좀비 계곡을 구분하는 해발 4,343m의 고개로, "휘파람 고개" 또는 "듣는 귀 고개"라는 뜻을 지닌다. 고대 실크로드의 지선이 지나갔으며, 1962년 인도-중국 전쟁으로 폐쇄되었다가 2006년 재개방되었다. 1958년 갱톡-나투라 도로가 개통되었으며, 현재는 관광과 제한적인 무역이 이루어진다. 또한, 인도와 중국 간의 국제 우편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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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 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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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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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시킴 주, 인도 – 티베트 자치구, 중국 |
산맥 | 동캬 산맥, 히말라야 산맥 |
해발고도 | 4310 m |
중국어 | |
중국어 간체 | 乃堆拉山口 |
중국어 병음 | Nǎiduīlā Shānkǒu |
티베트어 | |
티베트어 | རྣ་ཐོས་ལ |
와일리 표기 | rna thos la |
티베트어 발음 | Na tö la |
기타 이름 | |
기타 표기 | Nathu-la Nathula Natu La Natö-la Natöla Natoi La Nathui La Gnatui Rnathos La Natuila |
추가 정보 | |
관련 인물 | 고피나트 무투카드 |
2. 명칭 및 의미
"나투 라(Nathu La)"라는 이름은 전통적으로 "휘파람 고개"[7] 또는 더 일반적으로 "듣는 귀 고개"[8]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이를 "눈이 가장 깊고 바람이 가장 강한 곳"으로 설명한다.[9] G. S. 바즈파이(G. S. Bajpai)에 따르면, "나투 라"는 "언덕의 지형이 오른쪽과 왼쪽으로 점차 높아지는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이 지역 원주민인 레프차족은 이곳을 ma-tho hlo/na tho lo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현재의 명칭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투 라는 고대로부터 실크로드의 지선이 지나가던 곳이다.
3. 지리
나투 라는 시킴과 좀비 계곡(Chumbi Valley)을 구분하는 돈크야 산맥(Dongkya Range)에 있는 고개로, 해발 고도는 약 4343.40m이다.[10] 다른 기록된 고도로는 약 4309.87m[11], 약 4507.99m가 있다. 이 고개는 시킴의 수도 갱톡(Gangtok)에서 동쪽으로 52km 떨어져 있으며,[12] 야둥 현(Yadong County) (좀비 계곡(Chumbi Valley)의 중심지 야퉁 샤시마(Yatung Shasima))에서 35km 떨어져 있다.[13]
나투 라는 시킴과 좀비 계곡 사이에서 자주 이용되는 세 개의 고개 중 하나이며, 다른 두 고개는 초라(Cho La)와 젤렙 라(Jelep La)이다. 역사적으로 나투 라는 갱톡, 초라는 시킴의 옛 수도 툼롱(Tumlong), 젤렙 라는 서벵골 주 칼림퐁(Kalimpong)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나투 라는 젤렙 라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약 4.83km 북서쪽에 있지만,[14] 실제 이동 거리는 약 16.09km에 달할 수 있다.[10] 티베트 쪽에서는 초라 길이 좀비(Chumbi)로, 나투 라 길이 체마(Chema) 마을로, 젤렙 라 길이 린청강(Rinchengang)으로 이어졌는데, 이 마을들은 모두 좀비 계곡(Chumbi Valley) 하부에 위치한다.
오늘날에도 폭설로 인해 고개가 폐쇄되는 경우가 있으며, 기온은 -25°C까지 떨어지고 강풍이 불기도 한다.
4. 역사
1962년 인도-중국 전쟁으로 인해 나투 라가 폐쇄되었다. 이후 1975년 인도가 시킴 주를 완전히 병합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 폐쇄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시킴 주를 인도의 영토로 사실상 인정하면서 2006년 국경이 재개방되었다.
1949년 티베트 정부가 티베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추방했을 때, 대부분의 난민들은 나투라-시킴-콜카타 루트를 통해 중국으로 돌아갔다.[22]
1950년대 시킴 왕국은 춤비 계곡을 통해 캘커타와 라싸를 잇는 무역로의 주요 통행로로 번영했다. 당시 중국과 인도 간 무역의 대부분은 이 루트를 통해 이루어졌으며,[23] 인도의 일부 상인들은 야둥에 상점을 열기도 했다.[23] 주요 운송 수단은 노새와 말이었다.[24]
1954년 강토크-나투라 간 자동차 도로 건설이 시작되어,[25] 1958년 9월 17일 자와할랄 네루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공식 개통되었다.[25][26] 당시 자동차 도로는 셰라탕에서 끝났고,[25] 중국은 도로 건설을 착수하지 않았다.[25] 1956년 가을,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붓다 탄생 250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이 고개를 통해 인도로 이동했다.[24][27]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장악과 1959년 티베트 봉기 진압 후, 시킴으로 통하는 고개는 티베트 난민들의 통로가 되었다. 1962년 중국-인도 전쟁 당시 나투라에서 양국 군인 간의 충돌이 발생한 직후 통행이 차단되어 40년 이상 폐쇄되었다.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동안 중국은 인도에 외교적, 군사적 압력을 가했다. 시킴 남동부 전선의 나투라, 젤렙라, 초라, 동주 네 고개에는 인도군 진지가 있었다. 중국의 압력에 따라 나투라와 젤렙라 주둔 인도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으나, 사가트 싱 중장은 철수를 거부하여 젤렙라는 중국군이 점령했지만 나투라는 인도군이 방어했다.
이후 양측은 춤비 계곡 지배권을 두고 다퉜다. 1967년 9월 7일부터 13일까지 중국 인민해방군(PLA)과 인도군은 나투라와 초라에서 대포 사격 등 여러 차례 국경 충돌을 벌였다.[28]
1975년 국민투표로 시킴이 인도에 가입하면서 나투라는 인도 영토가 되었으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국 군대는 국경에서 비공식적인 소통을 유지했다.[29]
4. 1. 영국령 인도 제국 시기
1861년, 영국령 인도 제국은 툼롱 조약을 통해 시킴 왕국을 보호령으로 삼았고, 시킴을 통해 티베트와의 무역을 장려하고자 했다.
1873년, 달라지의 부차관인 J. W. 에드가는 무역 조건을 조사하고 최적의 루트를 권고하라는 요청을 받았다.[15] 에드가는 나투 라 고개("Gnatui pass"라고 그의 용어에서는 표기)를 통해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고개는 갱톡과 달라지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상인들은 갱톡보다 달라지에서 상품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15] 그러나 에드가는 지리적 이유로 인접한 젤렙 라 고개를 선호했고, 그 고개에 도로를 건설하고 그 근처에 무역 시장을 건설할 것을 권고했다.
1903~1904년 프랜시스 영허스밴드는 1,150명의 군인과 10,000명이 넘는 지원 인력 및 짐승을 거느린 영국 군사 원정대를 라싸로 이끌었다.[16] 춤비 계곡으로 진입하기 위한 첫 번째 선택지는 나투 라 북쪽의 야크 라 고개였다. 야크 라는 갱톡에서 시킴 동부 국경까지 가장 짧은 길을 제공했지만,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위험했다. 원정대는 나투 라와 젤렙 라 모두를 이용했으며, 나투 라가 주요 통신 채널이 되었다.
1936~1937년, B. J. 고울드와 F. S. 채프먼을 포함한 라싸로 향하는 영국 외교 사절단이 나투 라 고개를 이용했다.[17] 채프먼은 갱톡에서 나투 라로 가는 여정 중 고개 기슭 바로 아래에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쿠푸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었다고 적었다. 이 루트는 젤렙 라를 경유하는 칼림퐁-라싸 루트로 이어졌을 것이다. 채프먼은 "갱톡에서 나투 라로 가는 노새 길이 시작되고, 칼림퐁에서는 더 길고 어려운 길이 젤렙 라로 향합니다. 이 두 고개를 통해 라싸에서 인도로 가는 길이 히말라야 산맥의 주요 산맥을 넘습니다..."라고 적었다. 채프먼은 고개 정상에서 안개가 없었다면 사절단이 초몰하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상에서 채프먼은 여행자의 안전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시킴과 티베트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무더기와 기도깃발에 대해 적었다. 고개 근처의 도로는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고개를 지난 후 첫 번째 정거장은 챔피탕이었고, 라싸로 가는 길에 영국인들을 위한 휴식처였다.[18]
1938~1939년 에른스트 셰퍼는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에 따라 나투 라를 통해 합법적으로 독일 티베트 원정대를 이끌었다.[19][20] 이 원정대는 고개, 즉 국경에서 문이나 장벽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직 ''라제,'' 기도깃발과 돌무더기만 발견했다.[21]
4. 2. 인도 독립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62년 인도-중국 전쟁으로 나투라가 폐쇄되었다. 이후 1975년 인도가 시킴 주를 완전히 병합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시킴 주의 병합을 인정하지 않아 계속 폐쇄된 상태로 있었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시킴 주를 인도의 영토로 사실상 인정한 이후 2006년 국경이 다시 열렸다.
1949년 티베트 정부가 티베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추방했을 때, 대부분의 난민들은 나투라-시킴-콜카타 루트를 통해 중국으로 돌아갔다.[22]
1950년대 시킴 왕국은 번영하는 무역을 영위했다. 캘커타는 춤비 계곡을 통해 라싸와 연결되었으며, 나투라는 주요 통행로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중국과 인도 간 무역의 대부분은 이 루트를 통해 이루어졌다.[23] 인도의 일부 상인들은 야둥에 상점을 열기도 했다.[23] 당시 주요 운송 수단은 노새와 말이었다.[24]
강토크-나투라 도로의 자동차 통행 가능 공사는 1954년에 시작되었다.[25] 이 도로는 1958년 9월 17일 시킴 마하라자의 참석 하에 자와할랄 네루에 의해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25][26] 당시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도로는 셰라탕에서 끝났다.[25] 그러나 당시 중국은 자국 측 도로 공사를 착수하지 않았다.[25]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1956년 가을 붓다 탄생 25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 고개를 통해 인도로 이동했다.[24][27]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장악하고 1959년 티베트 봉기를 진압한 후, 시킴으로 통하는 고개는 티베트 난민들의 통로가 되었다. 1962년 중국-인도 전쟁 당시 나투라에서는 양국 군인 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 직후 통행이 차단되어 40년 이상 폐쇄되었다.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동안 중국은 인도에 외교적, 군사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1965년 9월 중국은 야퉁과 인근 산악 고개에 또 다른 보병 연대를 증원했다. 인도 또한 이 지역에 병력을 증강했다. 시킴 남동부 전선의 나투라, 젤렙라, 초라, 동주 네 개의 고개에는 각각 9, 37, 1, 9개의 인도군 진지가 있었다. 이러한 병력 증강은 동파키스탄과의 근접성, 그리고 1962년 전쟁 이후 남아있는 긴장 때문이었다. 중국의 압력에 따라 나투라와 젤렙라에 주둔한 인도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다. 나투라는 사가트 싱 중장이 지휘하고 있었고 그는 철수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며칠 후 젤렙라는 중국군이 점령했지만 나투라는 인도군이 방어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양측은 춤비 계곡의 지배권을 두고 다퉜다. 중국 측 자료에는 인도군의 여러 차례 침입이 보고되었다. 나투라에서는 실제통제선에 대한 상이한 인식이 양측 최전방 부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참호 파기, 철조망 설치, 순찰, 독립기념일 기념 등 모든 행동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1967년 9월 7일부터 13일까지 중국 인민해방군(PLA)과 인도군은 나투라와 초라에서 여러 차례 국경 충돌을 벌였고, 그중에는 대포 사격도 포함되었다.[28]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975년 국민투표 이후 시킴이 인도에 가입하면서 나투라는 인도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 가입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도 양국 군대는 국경에서 비공식적인 소통을 유지했다.[29] 1988년 라지브 간디 수상의 중국 방문은 양국 간 새로운 회담의 시작을 알렸다.[30]
4. 3. 2006년 재개방
인도-중국 전쟁으로 1962년 폐쇄되었던 나투 라는 2003년 중국-인도 관계가 해빙되면서 재개방 논의가 시작되었다. 인도의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국경 개방에 대해 논의했다.[31] 2003년에 체결된 국경 협정들은 1991년과 1992년에 체결된 이전 협정들을 나투 라에 적용하고 확대했다.[32]2003년 8월, 시킴의 파완 챔링 수석장관은 국경에서 인민해방군 병사와 악수하고 손목시계를 선물했고, 인민해방군 병사는 답례로 담배 한 갑을 주었다. 이는 나투 라 무역 재개를 알리는 신호였다.[33] 공식 개방은 여러 차례 연기되었으나,[34] 마침내 2006년 7월 6일, 수십 년 만에 나투 라가 공식적으로 개방되었다.[37] 이는 당시 중국과 인도 사이의 3개 개방 무역 국경 검문소 중 하나였으며, 다른 두 곳은 십킬라와 리풀렉 패스였다.[35] 재개방은 티베트와 시킴 주를 각각 중국과 인도의 일부로 공식 인정하는 것과 관련된 양국의 정치적 조치의 일환이었으며,[36] 당시 달라이 라마의 생일과 일치했다.[36]
나투 라 패스 개방 기념식은 양국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 측에서 열렸다. 각 측에서 100명의 무역업자 대표단이 국경을 넘어 각자의 무역 도시로 이동했다. 폭우와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리, 지역 주민, 국제 및 지역 언론이 참석했다.[37][23] 인도와 중국 사이의 철조망 울타리는 폭 10m의 돌담 통로로 대체되었다.[38] 2006년은 중국-인도 우정의 해로 기념되었다.[39] 양측 모두 경제적, 전략적 이유로 국경 지역 안정을 위해 패스를 개방한 것으로 추측된다.[23]
패스 재개방을 둘러싼 이야기는 국경 무역, 고대 실크로드, 두 문명 간의 고대 연결을 강조했다. 인류학자 티나 해리스는 이 국가 중심의 서사가 지역 서사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비단이 거래되던 상품 중 하나였지만, 이 지역에서는 양모 거래가 훨씬 더 많았다. 한 상인은 해리스에게 이 길을 "양모 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4. 4. 2006년 이후
나투라는 인도 육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간의 정기적인 협의 및 교류를 위한 공식적으로 합의된 5개의 국경 초소 접촉 지점(BPM) 중 하나이다.[40]2008년 티베트 소요 사태 당시, 인도에 있는 수백 명의 티베트인들이 나투라까지 행진하여 시위를 벌였다.[41][42]
2009년, 당시 구자라트주 수상이었던 나렌드라 모디가 이 고개를 방문했다.[43]
2010년, 그 해 영연방 경기 대회의 퀸즈 배턴 릴레이가 이 고개의 주요 무역 관문에도 들렀다.[44]
2015년, 나투라는 카일라시 만사로바르로 가는 관광객과 순례자들에게 개방되었다.[45]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대치가 도클람을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나투라를 통한 순례는 취소되었다.[46] 국경 긴장은 이 고개를 통한 무역에도 영향을 미쳤다.[47]
대치는 2017년 8월 말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48] 10월에는 인도의 니르말라 시타라마난 국방장관이 나투라를 방문하여 이 고개에서 중국군과 짧게 교류하기도 했다.[49] 2018년에는 인민해방군 창립 기념일을 기념하여 이 고개에서 "특별 국경 초소 회의"가 열렸다.[48] 2019년 요가의 날에는 중국군과 민간인들이 나투라에서 합동 요가 행사에 참여했다.[50]
2019년에는 도로 사정이 이 고개를 통한 이동에 영향을 미쳤다.[51] 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이후 시킴 주 정부는 이 고개를 폐쇄했다.[52] 나투라를 통한 카일라시-만사로바르 순례도 중단되었다.[52] 또한, 새로운 정치적 상황과 2020년의 국경 긴장과 충돌도 무역에 영향을 미쳤다.[51] 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국경 긴장 상황은 2021년까지 지속되어 이 고개를 통한 이동에 영향을 미쳤다.[53] 2024년 10월 현재, 이 고개는 인도 측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54]
5. 생태
1910년 스코틀랜드 식물학자 W. W. 스미스는 이 지역을 방문하여 ''가는돌쩌귀'', ''갯장대속'', ''양지꽃속'', ''솜다리속'', ''진달래속'', ''좀고채속'', ''앵초속'', ''현호색속'', 민좁쌀풀속'', ''돌꽃속'', 금매화속'', 미나릿대속'', 청금강꽃속'', 초롱꽃속'', 점나도나물속'', 개지치속'', 꼬리풀속'' 및 ''샐비어속''을 기록했다.[55]
고갯길 주변의 급격한 고도 상승으로 인해 식생은 기저부의 아열대 숲에서 온대 지역, 습윤 및 건조 고산 기후를 거쳐 식물이 거의 없는 차가운 툰드라 사막으로 변한다. 나투 라와 티베트 쪽 주변 지역은 드문드문 흩어진 관목 외에는 식물이 거의 없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주요 종에는 왜성 진달래류(''털진달래'', ''R. setosum'')와 노간주나무가 있다. 초원에는 ''잔디속'', ''히말라야양귀비속'', ''송이풀속'', ''앵초속'', 및 ''돌쩌귀속''이 있다. 이 지역은 4개월의 생장기가 있으며, 이 기간 동안 풀, 사초 및 약초가 풍부하게 자라 다양한 곤충, 야생 및 가축 초식 동물, 종달새 및 핀치를 먹여 살린다. 인근 키옹노슬라 고산 보호구역(Kyongnosla Alpine Sanctuary)에는 키 큰 노간주나무와 전나무 사이에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땅 난초와 진달래가 섞여 있다.
이 지역에는 영구적인 인간 정착지는 없지만, 양쪽 국경을 지키는 많은 국방 인력이 있다. 소수의 유목민 티베트 목동(''도크파(Dokpas)'')이 이 지역에서 야크, 양 및 파슈미나 유형의 염소를 방목한다. 가축과 야생 초식 동물로 인해 토지에 대한 방목 압력이 심하다. 야크는 이 지역에서 발견되며, 많은 마을에서 짐마차 동물로 사용된다. 나투 라 주변 지역에는 티베트 영양, 눈표범, 티베트 늑대, 티베트 눈닭, 독수리, 까마귀, 황금 독수리 및 붉은 쇠오리를 포함한 많은 멸종 위기 종이 있다. 들개는 이 지역에서 주요 위험으로 간주된다. 이 지역의 지뢰로 인해 야크, 나얀(nayan), 키앙(kiang) 및 티베트 늑대가 사상자를 낸다.
조류상은 관목과 숲 바닥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휘파람새로 구성되어 있다. 푸른휘파람새, 붉은지빠귀속 및 개개비속은 폭포와 구릉 개울 근처에서 발견된다. 이 지역에 있는 혼합 사냥 종에는 휘파람새, 솔딱새과, 기어오르는새, 흰눈썹참새, 솔딱새, 및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있다. 맹금류인 검독수리, 검은날개말똥가리 및 매 그리고 꿩인 금꿩 및 피꿩도 발견된다.
6. 경제
나투라는 1962년 폐쇄되기 전까지 인도와 티베트 간의 주요 교역로였다. 당시 노새를 이용해 펜, 시계, 곡물, 옷감, 식용유, 비누, 건축 자재, 심지어 분해된 스쿠터와 자동차까지 다양한 상품을 티베트로 수출했다. 약 200마리의 노새가 80kg의 짐을 싣고 강톡에서 라싸까지 20~25일 동안 물건을 날랐다. 돌아올 때는 비단, 양모, 사향, 약초, 술, 보석, 금, 은제품 등을 인도로 가져왔다.[56] 당시 무역은 대부분 마르와리 상인들이 주도했다.[36]
2006년 나투라가 다시 열린 후, 인도와 중국은 제한된 품목에 대해 무관세 무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무역량은 저조했는데, 이는 열악한 도로와 기반 시설, 제한된 교역 품목, 인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61] 2006년 7월부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무역이 이루어진다.[37]
수출 | 수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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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라는 관광지로도 개방되어 인도 국민은 방문 전 허가를 받으면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방문할 수 있다.[66][67] 이곳에서는 '무인지대' 없이 양측 군대가 매우 가까이 있으며, 관광객들은 중국군과 사진을 찍거나 악수를 할 수도 있다.[68][64]
나투라는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르 호로 가는 순례길 중 하나로, 기존 경로보다 더 짧고 쉬운 여정을 제공한다.[66][67][68] 바바 하르바잔 싱 기념관도 나투라 관광 코스에 포함된다.[68]
6. 1. 무역
1962년 나투라가 폐쇄되기 전에는 펜, 시계, 곡물, 목화 천, 식용유, 비누, 건축 자재, 분해된 스쿠터와 4륜차와 같은 상품들이 노새를 이용하여 티베트로 수출되었다. 각각 약 80kg의 짐을 실은 200마리의 노새가 강톡에서 라싸까지 상품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20~25일이 걸렸다. 돌아올 때는 비단, 원모, 사향, 약초, 막걸리, 보석, 금, 은제품 등이 인도로 수입되었다.[56] 당시 무역의 대부분은 200개의 허가받은 회사의 95%를 소유한 마르와리 상인 공동체가 담당했다.[36]나투라 재개방을 앞두고 2003년 시킴 주정부는 시킴과의 국경 무역 범위를 연구하기 위해 나투라 무역 연구 그룹(NTSG)을 설립했다. 마헨드라 P. 라마가 이끈 이 그룹은 2005년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57][58] 이 보고서는 2015년까지 나투라를 통한 국경 무역 규모를 추산했다. 인도산업연합(CII)은 10년 안에 무역 규모가 1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더 높은 추정치를 제시했다.[57]
2006년 7월부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다.[37] 2006년 인도는 수출 29개 품목과 수입 15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면제했고, 2012년에는 12개 품목이 더 추가되었다.[60]
수출 | 수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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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라 재개방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도-중국 무역을 증진시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미흡했다.[61] 2008년 마헨드라 P. 라마는 처음 2년간의 전망치와 실제 무역량의 불일치에 대해 "이는 주로 열악한 도로 사정, 초기 단계의 인프라 시설, 제한된 거래 품목, 정책 입안자들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시킴 주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과 2011년에는 나투라를 통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없었다.
인도의 일부 상인들은 인도 상품이 티베트에서 제한된 시장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중국은 시킴과 서벵골에서 쉽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62] 인도 정부는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과 뼈, 곰의 담낭, 수달 가죽, 샤토슈 털과 같은 야생 동물 제품의 인도 내 밀반입을 우려하여, 해당 지역의 경찰과 기타 법 집행 기관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63]
6. 2. 관광
나투라는 시킴 동부의 관광 코스 중 하나이다.[65] 인도 국민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방문할 수 있으며, 방문 1일 전에 강톡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66][67] 나투라에는 '무인지대'가 없다. 최소한의 군사력과 가시철조망이 양측을 구분한다. 관광객들은 중국군 병사들과 군사령부를 배경으로 비공식적으로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68] 불과 수 미터 떨어진 나투라의 병사들은 중국-인도 국경 전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병사들 중 하나이다.[64] 나투라 국내 관광은 1999년에 개방되었다.[65]이 고개는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르 호로 가는 대체 순례길을 제공한다.[66] 리풀레크 고개를 통과하는 기존 경로와 비교했을 때 나투라를 통과하는 경로는 순례자들이 훨씬 쉽고 짧은 여정을 할 수 있게 한다.[67][68] 그러나 국경도로기구의 새로운 도로 건설로 리풀레크 고개 경로도 더 쉬워졌다.[69] 바바 하르바잔 싱 기념관 및 사당도 나투라 관광 코스에 포함된다.[68]
7. 우편 교환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30분, 단 3분 동안 인도와 중국 간의 국제 국제우편이 나투 라의 셰라탕 국경 검문소에서 각국의 우편 배달부에 의해 교환된다. 이메일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편물의 양은 줄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인도의 티베트 난민이나 국경 양쪽에 친척이 있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오가는 편지이다. 이러한 방식은 국경 지역 주민들의 우편 배달 시간을 몇 주에서 며칠로 단축시켜 준다. 그렇지 않으면 우회적인 물류망을 통해 배달되는 데 몇 주가 걸릴 것이다.[70] 양측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짧은 교환 과정에서 말 한마디 없이 우편물을 교환하고, 확인서에 서명하며, 우편물 양이 줄어들면 빈 우편낭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 시스템은 초걀 시대부터 중국과 인도 간의 분쟁 중에도 고도 14000m, 기온이 -20°C까지 떨어지는 곳에서도 중단 없이 계속되어 왔다.[70] 1992년 중국과 인도 간의 합의에 따라 이 절차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71][70]
8. 교통
갱톡-나투라 도로는 1958년에 처음으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25][26] 당시에는 세라탕까지만 도로가 있었고, 그 이후는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당시 중국은 이 도로를 개발하지 않았다.[25]
이 구간은 여러 곳이 지반 침하 구역이며, 일부는 산사태가 발생하기 쉽다.[72] 차량 통행이 통제되며, 인도 육군의 부대인 국경도로기구가 도로 유지 보수를 지원한다.[73] 이 도로는 52km 구간에 걸쳐 km당 평균 약 50.29m 상승한다.[73] 2008년에 2차선화 공사가 시작되었다.[74] 'JN 마르그'로도 알려져 있으며, 나중에 국도(NH) 310호선으로 명명되었고, 2020년에 대체 축이 건설되었다.[75]
2006년에는 베이징에서 칭하이-티베트 철도를 통해 라싸까지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되었다. 2011년에는 이 철도가 시가체까지 연장되기 시작했다. 칭하이-티베트 철도를 야둥까지 연장하는 논의가 있었다.[76][77] 중국 국도 318호선(상하이~장무)은 시가체를 통해 지방도 S204를 경유하여 춤비 계곡과 연결되는데, 나투라와 젤렙라에서 약 30km 떨어져 있다.[78]
인도는 서벵골주 다르질링 지구의 세보크에서 시킴 주의 주도인 갱톡까지, 나투라에서 약 61.15km 떨어진 곳까지 철도 서비스를 연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79] 2023년 3월, 철도부 장관인 아슈위니 바이슈나우가 장래에 이를 건설할 의향을 확인했다.[80] 그러나 지금까지 실제 광궤 철도 건설은 세보크에서 랑포까지 45km 연장에 국한되었으며, 2022년에 완공될 예정이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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