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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대 대한민국 (1998년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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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FIFA 월드컵 E조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와 대한민국은 맞붙어, 네덜란드가 5-0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는 1998년 6월 2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렸으며, 전반 37분 필립 코퀴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네덜란드가 전반에만 2골을 넣었다. 후반에는 데니스 베르캄프, 피에르 판 호이동크, 로날트 더 부르의 득점으로 네덜란드가 대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 패배로 대한민국은 조기 탈락이 확정되었고, 차범근 감독은 경질되었다. 반면 네덜란드는 이 승리를 발판 삼아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여 4강까지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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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대 대한민국 (1998년 FIFA 월드컵)
경기 정보
제목네덜란드 대 대한민국
스타드 벨로드롬
스타드 벨로드롬
경기1998년 FIFA 월드컵 E조 2차전(제 4경기)
팀 1 협회KNVB
팀 1 득점5
팀 2 협회KFA
팀 2 득점0
날짜1998년 6월 20일
경기장스타드 벨로드롬
도시마르세유, 프랑스
심판리샤르트 부이치크 (폴란드)
관중수55,000명

2. 경기 전 상황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와 함께 E조에 편성되었다. 1954년 FIFA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팀들과 한 조에 속하게 되면서,[1] 대한민국은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전반 28분 하석주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하석주의 퇴장과 콰우테모크 블랑코를 앞세운 멕시코에게 후반전에 3골을 잇달아 허용하며 1-3 역전패를 당했다.[2] 이로 인해 차범근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한편, 네덜란드는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1위로 올라서기 위해 대한민국과의 2차전에서 대승을 노리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은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전략을 인용해 선수비 후역습 작전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3. 경기 진행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5-0 대승을 거두었다. 전반전에는 필립 코퀴마르크 오버르마르스가 연속골을 넣었고, 후반전에는 데니스 베르흐캄프, 피에르 판 호이동크, 로날트 더 부르가 추가 득점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1954년 FIFA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에서 5점 차 이상으로 크게 패했다.

3. 1. 전반전

경기가 시작되자 네덜란드는 초반부터 강하게 공격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였고,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수비에만 급급했다. 전반 초반 김도훈최용수의 슈팅이 있었으나, 전반 내내 네덜란드에 밀리는 양상이었다. 김병지 골키퍼의 선방으로 실점을 막으며 버텼지만, 한국은 전반전부터 시간 끌기 전략을 사용하며 관중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전반 37분, 데니스 베르캄프의 패스를 받은 필립 코퀴가 선제골을 넣었다. 한국 수비수 3명이 있었지만 코퀴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1] KBS 해설위원 이용수는 "37분까지는 잘 개겼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1]

이후 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반 42분, 빔 용크의 패스를 받은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최성용을 제치고 추가골을 넣었다. 점수는 2 – 0으로 벌어졌다.[1]

2골을 앞선 네덜란드는 계속해서 공격했고, 한국은 김병지 골키퍼의 선방에 의존하며 추가 실점을 막는 데 집중했다. 전반전은 네덜란드가 2 – 0으로 앞선 채 종료되었다.[1]

3. 2. 후반전

후반전에도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였고, 대한민국 선수들은 계속해서 우왕좌왕하며 맥을 추지 못했다. 김병지 골키퍼의 선방으로 2점 차를 유지했을 뿐이었다. 차범근 감독은 후반 7분 최성용을 빼고 김태영을 투입해 수비를 강화했다. 대한민국은 5-3-2 포메이션으로 전환했다. 후반 24분에는 김도훈을 빼고 고종수를 투입했다. 그러나 후반 26분 엣하르 다비츠의 패스를 받은 데니스 베르캄프가 수비를 벗겨내고 오른발 슛으로 3번째 골을 넣었다.

후반 32분, 차범근 감독은 서정원 대신 이동국을 투입했다. 1분 후,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베르캄프 대신 피에르 판 호이동크를 투입했다. 후반 35분, 판 호이동크는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하여 4번째 골을 기록했다. 얼마 후 이동국이 슛을 날렸으나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후반 38분, 로날트 더 부르이민성을 따돌리고 오른발 슛으로 5번째 골을 넣었다. 이동국이 경기 막판 헤더 슛을 날렸으나 득점하지 못했다. 경기는 네덜란드의 5 – 0 대승으로 끝났고, 대한민국은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5점 차 이상 대패를 당한 것은 1954년 FIFA 월드컵 이후 44년 만이었다.

3. 3. 경기 상세 정보

야체크 포시엥기엘 (폴란드)

유리 두파노프 (벨라루스)

'''대기심:'''

비투르 멜루 페헤이라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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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한민국의 패인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우선,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감독으로서는 경험이 부족했다. 1998년 당시 차범근의 지도자 경력은 7년에 불과했고, 중간에 3년의 공백기까지 있어 실질적인 지도자 경력은 4년에 불과했다. 반면, 거스 히딩크 감독은 16년간의 지도자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또한 차범근 감독은 언론 대응 능력도 부족하여 월드컵을 앞두고 한일전 승리에 매달려 월드컵 준비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중국과의 평가전을 잡아 황선홍이 부상당하는 등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차범근 감독에게만 책임을 씌워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대표팀은 세계 축구의 흐름과 달리 구식 전술인 스위퍼식 스리백 시스템을 고수했다. 이는 홍명보라는 핵심 선수 때문이었는데, 홍명보는 포백에서는 활약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위퍼식 스리백은 선수 간 간격을 넓혀 네덜란드의 공격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당시 네덜란드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선수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고, 공수 협력이 제대로 안 돼 우왕좌왕했다"라고 지적했다.

1998년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세계 축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대한민국은 이전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높았지만, 아시아와 세계 무대의 격차, 그리고 네덜란드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4. 1. 차범근 감독의 전술적 한계

차범근 감독은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감독으로서는 경험이 부족했다. 1998년 당시 차범근 감독의 지도자 경력은 7년에 불과했고, 1994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후 3년 동안 공백기가 있어 실질적인 경력은 4년에 불과했다.[3] 이는 PSV 아인트호번에서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16년간의 지도자 경력을 가진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이었다.

차범근 감독은 언론 대응 능력도 부족했다. 1998년 4월에 열린 한일전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대표팀은 3.1절에 열린 다이너스티컵(동아시안컵의 전신) 개막전에서 일본에 1-2로 패배했고, 언론은 '국치일'이라며 차 감독 경질론까지 언급했다.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열린 한일전에서 2-1로 승리하며 여론을 잠재웠지만, 월드컵 준비에 써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4] 이는 "나의 모든 계획은 월드컵에 맞춰져 있다."고 말하며 비난 여론에도 뚝심 있게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갔던 히딩크 감독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중국과의 평가전을 잡아 황선홍이 부상당하는 등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는 차범근 감독에게만 책임을 씌워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부터 감독의 역량 부족과 협회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4. 2. 스리백 전술의 문제점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리고 사키가 창시한 지역방어 수비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독일은 이러한 세계 축구의 흐름과 달리 스위퍼식 스리백 시스템을 고수했다. 대한민국은 홍명보가 포백 수비 시스템에서 활약이 저조했기 때문에 스리백을 고집했다. 당시 대한민국 센터백 자원 중 홍명보만큼 수비 조율 능력과 딥라잉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선수가 없었기에, 홍명보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다.[1]

이러한 스위퍼식 스리백 시스템은 구식 수비 전술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의 공격 시 너무나도 쉽게 공간을 내주는 모습을 보였다. 지역방어 체제에서는 선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라인을 유지하며 각자 맡은 지역에 들어오는 패스 줄기를 차단하는 수비를 한다. 반면, 대인방어 체제에서는 상대 공격수 1명에게 수비수들이 우르르 몰려가 선수 A를 마크하면 선수 B가 자유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경기에서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베르흐캄프를 막기 위해 몰려가면 코퀴가 자유로워지는 일이 반복되었다.[1]

당시 네덜란드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는 자서전 <마이웨이>에서 "선수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고, 공수 협력이 제대로 안 돼 우왕좌왕했다"라고 지적했다. 히딩크가 지적한 선수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던 이유는 바로 구식 전술인 스위퍼식 스리백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대인방어 수비 때문이었다. 스위퍼식 스리백 시스템을 고수했던 독일 역시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 – 3으로 대패를 당했다.[1]

4. 3. 정보력 부족

1998년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세계 축구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에 1-3,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 2-3으로 석패했고,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스페인과 2-2 무승부, 독일에 2-3 석패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기에 자신감이 높았다.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였고, 16강 진출이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3]

지역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6승 3무 1패(승점 19점)로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 더욱 밝은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는 아시아와 세계 무대의 격차, 그리고 네덜란드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였다. 언론의 장밋빛 전망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말이었고, 대한민국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를 경험하게 되었다.[3]

5. 경기 이후

도쿄 대첩 때만 하더라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던 차범근 감독은 네덜란드전 0-5 대패와 조기 탈락 확정으로 한국 축구의 대역죄인으로 전락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네덜란드와의 경기가 끝난 후 차범근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이로써 차범근 감독은 대표팀과 함께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당시 대회 도중 경질된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 이후 2번째였다.[3]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멕시코전 퇴장으로 네덜란드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하석주는 징계 완화로 벨기에전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 한국은 전반 7분 만에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선수들의 투지가 더욱더 맹렬하게 불타올랐고, 유상철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특히, 이임생은 이마가 깨져 출혈이 났음에도 붕대를 감고 계속 뛰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벨기에를 탈락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하려던 벨기에는 3무를 기록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네덜란드는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며 1승 2무로 멕시코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앞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엣하르 다비츠의 결승골로 2-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있던 아르헨티나를 데니스 베르캄프의 결승골로 2-1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는 1978년 FIFA 월드컵 이후 20년 만의 준결승 진출이었다.

준결승에서 네덜란드는 브라질과 맞붙었다. 1974년 FIFA 월드컵1994년 FIFA 월드컵에서 각각 1승 1패를 기록했던 두 팀은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네덜란드는 브라질에 밀리지 않는 경기를 했지만, 후반전 시작과 함께 호나우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이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의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돌입했으나,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3, 4위전에서도 크로아티아에 1-2로 패하며 최종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회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사임하였고,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준결승까지 올려놓는 성과를 거두어 한국인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1]

5. 1. 대한민국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네덜란드에 0-5로 크게 패하며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혼란을 겪었다.[3] 차범근 감독은 당시 지도자 경력이 짧았고,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4] 또한 언론 대응 능력도 미숙하여, 월드컵을 앞두고 불필요한 한일전을 치르는 등 비효율적인 운영을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부상당하는 등 대표팀 운영에 문제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덜란드전 대패는 여론을 악화시켰고, 결국 차범근 감독은 경질되었다. 남은 벨기에와의 경기는 김평석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마지막 경기에서 투지를 발휘했다. 전반 7분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26분 유상철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임생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붕대를 감고 경기에 임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벨기에를 탈락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경기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이후 한국 축구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5. 2.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승 2무로 멕시코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앞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1] 16강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엣하르 다비츠의 결승골로 2-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1] 8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데니스 베르캄프의 결승골로 2-1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1] 이는 1978년 FIFA 월드컵 이후 20년 만의 준결승 진출이었다.[1]

준결승에서 네덜란드는 브라질과 맞붙었다.[1] 과거 두 번의 월드컵 맞대결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던 두 팀은 팽팽한 경기를 펼쳤으나, 후반전 시작과 함께 호나우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1] 이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의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돌입했으나, 결국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1] 3, 4위전에서도 크로아티아에 1-2로 패하며 최종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1]

이 대회를 끝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1]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었다.[1]

6. 1998년 FIFA 월드컵 E조 결과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와 함께 E조에 편성되었다.[1] 대한민국은 1954년 FIFA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팀들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1]

7. 같이 보기

참조

[1] 문서 1986년~1994년까지는 3개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들이 꼭 1팀 씩 끼어 있었다.
[2] 문서 한국 축구팬들이 일명 '개구리점프'로 부르는 그 기술이다. 양 다리 사이에 공을 끼우고 점프해서 수비수 사이를 넘으며 지나가거나 앞으로 던지는 기술이다.
[3] 문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선수 시절에는 '''"마라도나를 막으려면 12명의 선수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선수로 칭송을 받았으나, 감독 시절에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던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한테 패배를 당했고, 심지어 현지적응 훈련을 무시한 탓에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한테 1 – 6이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기도 했으며, 선수를 선발할 때 선수의 기량보다는 마라도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선발하는 등 '''인류 역사상 최악의 축구 감독'''으로 낙인찍혔다.
[4] 뉴스 "[단독] “한일전 이기고 월드컵 실패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범근의 일갈" https://sports.news.[...] 한국일보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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