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유키오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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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나카 유키오(1959년)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와 지도자로 활동했다. 덴덴 간토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약하다가 1982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하여 1989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1991년 은퇴했으며, 1985년에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은퇴 후에는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코치와 스카우트를, JFE 동일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등에서 코치를 역임했다. 2015년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시 코치를, 2015년 기쿠가와난료 고등학교, 2018년 이쿠분칸 고등학교에서 감독을 맡았고, 2024년부터 케이메이 학원 고등학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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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유키오 (195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선수명 | 다나카 유키오 |
로마자 표기 | Yukio Tanaka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
신장 | 190 |
체중 | 90 |
수비 위치 | 투수 |
투구 | 우 |
타석 | 우 |
![]() |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 지바현립 나가레야마 고등학교 덴덴 간토 |
프로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1982 ~ 1989) 주니치 드래건스(1990 ~ 1991) |
프로 입단 연도 | 1981년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첫 출장 | 1982년 4월 10일 |
마지막 경기 | 1989년 8월 23일 |
코치・감독 경력 | |
코치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2001 ~ 2003) JFE 동일본 시나노 그랜드세로우스(2013) |
감독 | 기쿠가와난료 고등학교 와카야마난료 고등학교 이쿠분칸 고등학교 게이메이 학원 고등학교 |
2. 선수 경력
;사회인 시대
- 덴덴 간토
;프로팀 경력
2. 1. 아마추어 시절
지바 현립 나가레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 덴덴 간토에 입단했다.[1] 198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팀의 에이스로서 출전, 선발로 2승을 올리며 팀의 준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2] 덴덴 간토에서는 유격수로 활약한 경험도 있다.[1] 같은 해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로도 선출되었다.유야마 고등학교 원예과를 전공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는 실물 감정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1] 야구부에서는 유격수와 3루수를 맡았고, 고등학교 2학년 가을부터 주장을 맡았다.[1] 부원은 10명 정도였으며, 대회 전에는 축구부 등 다른 부에서 보강을 받아, 여름 지방 대회는 3년 연속으로 1회전에서 패퇴했다.[1]
고등학교 3학년 봄 대회에서 우노 마사루가 있는 초시 상업고등학교와 대전하여 0 대 8로 콜드 게임으로 패배했지만, 신장 180cm의 다나카가 초시 상업고등학교 감독 사이토 카즈유키의 눈에 띄었다.[1] 당시 덴덴 간토의 감독이었던 카토 후미오가 대형 선수를 찾고 있었고, 사이토는 카토에게 다나카의 존재를 알렸다.[1]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 졸업 후 1977년에 덴덴 간토에 입단했다. 덴덴 간토에서는 처음에는 내야수였지만, 입사 3년째인 1979년에 투수로 전향했다.[2] 같은 해 8월 15일 일본 대학과의 오픈전에서 7회 1/3을 던져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했다.[2]
2. 2. 프로 선수 시절
지바 현립 나가레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 덴덴 간토에 입단, 198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팀의 에이스로서 출전하여 선발로 2승을 올리며 팀의 준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덴덴 간토에서는 유격수로 활약한 경험도 있다.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닛폰햄 파이터스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프로 1년째인 1982년부터 1군에서 활약하여 시즌 5승을 올렸다. 1983년에는 오른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늦게 출발했고, 1군 승격 후 6연승을 기록했지만 그 후 3연패를 했다.[3] 1984년에는 개막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2승 9패로 부진했다. 1985년 6월 9일 긴테쓰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는데, 이는 생애 유일한 완봉승이 됐다. 1986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악화된 가와하라 쇼지를 대신해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여 시즌 13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1987년에는 개막 이후부터 극도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마무리 투수의 자리를 마쓰우라 히로아키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이후에는 등판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고, 1990년에 주니치 드래곤스에 이적했지만 단 한 차례의 1군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한 채 1991년 시즌 끝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다나카 유키오는 은퇴 후 닛폰햄 파이터스의 스카우트와 투수 코치(2001년 ~ 2003년)를 역임했다.[9]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다시 닛폰햄의 스카우트를 맡았지만 2005년에 퇴단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사회인 야구팀 JFE 동일본의 코치를 맡았다.[4][9] 2010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스카우트로 부임했다.[5][10]
2013년에는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팀인 시나노 그랜드세로우스의 투수 코치로 부임했으나,[6][11] 같은 해 10월 31일 본인의 의향에 따라 퇴단했다.[7][12] 2015년 2월에는 대한민국 성균관대학교의 임시 코치를 2개월간 맡았다. 2015년 4월 시즈오카현의 기쿠가와난료 고등학교 야구부 조감독으로 취임, 10월부터 감독으로 승격됐다. 2016년 9월 와카야마 난료 고등학교 야구부 보조 감독으로 취임, 2017년 7월에 퇴직했다.
2017년 9월에 이쿠분칸 고등학교 경식 야구부 코치로 취임하여, 2018년 7월에 감독으로 승격했다. 2019년 여름 도쿄 동부 대회에서는 팀을 최고 성적인 베스트 16까지 이끌었지만, 2023년 여름을 끝으로 퇴임했다. 2024년 4월부터 케이메이 학원 고등학교 경식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8]
4. 상세 정보
4. 1. 개인 기록 (프로 선수 시절)
다나카 유키오는 1982년 4월 10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난카이 호크스와의 전기 1차전에 8회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첫 등판을 기록했다. 같은 경기에서 8회말에 진 닷슨으로부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1982년 4월 21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롯데 오리온스와의 전기 2차전에서는 첫 선발로 등판하여 4와 0/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1982년 5월 1일 가와사키 구장에서 열린 롯데 오리온스와의 전기 4차전에서는 5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리와 첫 선발 승리를 동시에 달성했다. 1982년 10월 2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후기 13차전에서는 5이닝 9실점(5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면서 첫 완투를 기록했다(강우 콜드). 1985년 6월 9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긴테쓰 버펄로스와의 9차전에서는 첫 완투 승리와 첫 완봉 승리를 동시에 달성했으며, 이는 역대 55번째 노히트 노런이었다.4. 2. 연도별 투수 성적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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