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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새마을호 열차 탈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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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전 새마을호 열차 탈선 사고는 2003년 5월 29일, 계룡육교 철거 작업 중 발생한 사고이다. 1995년 안전 진단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계룡육교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잦은 비로 인해 구조물과 철재 빔의 이음새가 약해지고, 안전 장치 미설치 및 지지대 절단 등의 부실한 안전 관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새마을호 열차 4량이 탈선하고 호남선과 전라선의 열차 운행이 14시간 동안 중단되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건설/토목 산업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었으며, 관련 책임자들이 구속 또는 입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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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새마을호 열차 탈선 사고
사고 개요
제목대전 새마을호 열차 탈선 사고
날짜2003년 5월 30일
시간오후 1시 50분쯤
위치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노선호남선
운영자대한민국 철도청
사고 종류탈선
원인과속
열차새마을호 1
승객178
부상약 40
재산 피해약 34억 원열차탈선 초래한 계룡육교 붕괴 관련 3명 영장

2. 사고 경위

서울역[2]에서 목포역으로 가던 새마을호 열차가 서대전역 인근 계룡육교 하단을 통과하려던 순간, 기관사가 육교를 받치고 있는 철제 빔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비상제동을 걸었으나 제동거리가 미치지 못해 육교 상판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동력제어차 1량과 객차 3량이 탈선했고, 탈선한 객차 중 하나에는 불길이 번지기도 했다.[4] 사고 당시 열차에는 178명의 이용객이 타고 있었다.[3]

2. 1. 사고 발생

서울역[2]에서 출발해 목포역으로 가던 새마을호 열차가 서대전역 인근 계룡육교 하단을 통과하려던 순간, 기관사가 육교를 받치고 있는 철제 빔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비상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제동거리가 미치지 못해 열차는 육교 상판과 충돌 후, 동력제어차 1량과 객차 3량이 탈선했다. 탈선한 열차 4량 중 3번째에 있던 객차에는 불길까지 번졌다[4]. 사고 당시 열차에는 178명의 이용 고객이 타고 있었으며[3], 사고 직후 200톤급 대형 크레인 5대를 동원해 무너진 육교의 육중한 철 구조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다[5].

2. 2. 사고 수습

사고 직후 200t급 대형 크레인 5대가 동원되어 무너진 육교의 육중한 철 구조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벌어졌다.[5]

3. 사고 원인

이날 사고는 1995년에 안전 진단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계룡육교 철거 작업 중 발생했다. 2003년 5월 29일부터 내린 로 인해 구조물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시공사의 안전 조치 미흡과 X자형 지지대 절단 지시도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6][1]

3. 1. 직접적인 원인

이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1995년에 안전 진단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계룡육교를 2003년 5월 10일부터 철거하던 중 발생했다. 5월 29일부터 내린 로 인해 구조물과 철제 빔 사이의 이음새 부분이 물을 먹어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6] 또한 시공사 측이 상판 제거 작업을 하면서 붕괴에 대비한 안전 장치를 교각 사이에 전혀 설치하지 않았다.[6] 5월 22일, 5월 25일, 5월 28일, 5월 29일에 걸쳐 계룡육교 상판의 I자형 빔을 지탱하던 X자형 지지대 110개 중 70개를 산소용접기로 절단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1]

3. 2. 근본적인 원인

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1995년 계룡육교가 안전 진단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고 2003년 5월 10일부터 철거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문제점들로 지적된다. 5월 29일부터 내린 로 인해 구조물과 철재 빔 사이의 이음새 부분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6] 시공사 측이 상판 제거 작업을 하면서 붕괴에 대비한 안전 장치를 교각 사이에 전혀 설치하지 않았고,[6] 5월 22일, 5월 25일, 5월 28일, 5월 29일에는 계룡육교 상판의 I자형 빔을 지탱하던 X자형 지지대 110개 중 70개를 산소용접기로 절단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1]

4. 사고 여파

이 사고로 서울역[2]을 출발해 목포역으로 가던 새마을호 열차가 서대전역 인근 계룡육교 하단을 통과하려던 순간 육교를 받치고 있는 철제 빔이 떨어지는 것을 기관사가 발견해 비상제동을 걸었으나 제동거리가 미치지 못해 육교 상판과 충돌, 동력제어차 1량과 객차 3량이 탈선했고 탈선한 열차 4량 중 3번째 객차에는 불길까지 번졌다[4]. 사고 직후 200톤급 대형 크레인 5대를 동원해 무너진 육교의 철 구조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다[5].

이 사고로 호남선전라선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으며,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철거 공사를 맡은 보생건설과 코오롱건설의 현장소장, 금호엔지니어링 책임 감리자가 구속되고, 해당 업체 보조 감리자와 대전광역시지하철건설본부 담당 공무원은 불구속 입건되었다[1].

4. 1. 인적 피해

사고 당시 열차 이용객은 178명이었다.[3]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열차도 완전히 전복되지 않았다. 이용객들의 침착한 대처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4. 2. 물적 피해

이 사고로 새마을호 열차는 동력제어차 1량과 객차 3량이 탈선했고, 탈선한 열차 4량 중 3번째 객차에는 불길까지 번졌다.[4] 이 사고로 호남선전라선의 열차 운행이 14시간 동안 중단되기도 했다.[1]

4. 3. 사회적 파장

이 사고로 호남선전라선의 열차 운행이 14시간 동안 중단되었다.[1]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철거 공사를 맡은 보생건설과 코오롱건설의 현장소장, 그리고 금호엔지니어링 책임 감리자가 구속되고, 해당 업체 보조 감리자와 대전광역시지하철건설본부 담당 공무원은 불구속 입건되었다.[1]

1995년 안전 진단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계룡육교는 2003년 5월 10일부터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5월 29일부터 내린 로 인해 구조물과 철재 빔 사이의 이음새 부분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시공사 측은 상판 제거 작업을 하면서 붕괴에 대비한 안전 장치를 교각 사이에 전혀 설치하지 않았고,[6] 5월 22일, 25일, 28일, 29일에 걸쳐 계룡육교 상판의 I자형 빔을 지탱하던 X자형 지지대 110개 중 70개를 산소용접기로 절단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1] 이는 건설/토목 산업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열차도 완전히 전복되지 않았다. 이용객들의 침착한 대처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참조

[1] 뉴스 열차탈선 초래한 계룡육교 붕괴 관련 3명 영장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03-06-10
[2] 문서
[3] 뉴스 서울-목포 새마을호 열차 대전서 탈선 40여 명 부상 https://imnews.imbc.[...] 문화방송 2003-05-30
[4] 문서
[5] 뉴스 복구작업 한창 호남 전라선 불통 https://imnews.imbc.[...] 문화방송 2003-05-30
[6] 뉴스 안전 무시 계룡육교 철거작업 철제 빔 열차위로 떨어져 사고 https://imnews.imbc.[...] 문화방송 200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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