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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몽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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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몽골 관계는 고대부터 몽골 제국과의 관계를 거쳐 1990년 수교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구려는 몽골 지역의 부족들을 복속시켰으며,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 몽골 제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공녀를 바치는 등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990년 3월 26일 대한민국과 몽골은 수교하였으며, 양국은 외교 공관을 개설하고, 경제, 문화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으며, 2024년에는 기후 변화, 문화 콘텐츠 제작, 도시 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몽골 내에서는 반한 감정이 존재하며, 역사 인식에 차이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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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몽골 관계
지도
기본 정보
공식 명칭대한민국-몽골 관계
영문 명칭Mongolia–South Korea relations
몽골어 명칭Монгол, Өмнөд Солонгосын харилцаа
한국어 명칭대한민국-몽골 관계
외교 관계
대한민국 주재 몽골 대사관주한 몽골 대사관
몽골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몽골 대사에르덴척트 사랑터거스
대한민국 대사김종구
대표부
주한 몽골 대사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울란바토르

2. 역사

고려가 몽골에 보낸 공식 문서인 "계" (A)에서는 몽골 황제를 "하늘", "부모"와 같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임금은 하늘이며, 부모입니다.……엎드려 황제 폐하께 간청하옵니다. 천지 부모의 자애로움으로 소국에 다른 뜻이 없음을 헤아려주시고, 군대를 돌려 영원히 소국을 보호해주신다면, 저희는 더욱 노력하여 성심을 다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충성을 표하며, 더욱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뜻입니다.[10]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국서 (B) 및 충렬왕이 몽골 황제에게 올린 상소 (C)에서는 몽골을 "대국", "상국"으로, 자국을 "소방"으로 낮춰 부르고 있다.

: 저희 나라는 몽골 대국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황제의 인자하심은 밝으시어, 천하를 한 집안으로 여기고 멀고 가까움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은 모두 그 덕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10]

: 폐하께서 공주를 내리시고, 성스러운 은혜로 보살펴주시니, (저희) 소국의 백성들은 이제야 겨우 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상국이 부득이 군대를 소국에 설치하고자 하신다면, 차라리 타타르나 한족 젊은 군대를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파견해주시기를 바랍니다.[10]

몽골 황제에게 청원한 서면 (D)에서는 고려는 "해외의 소방"이며, 대국에 대해 항상 "사대의 예"를 행하여 신하로 섬기고, "조공의 예"를 행해왔음을 인정하고 있다.

: 저희 나라는 본래 해외의 작은 나라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반드시 사대의 예를 행해야 국가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래에는 대금에 신하로 섬겼으나, 금나라가 망하자 비로소 조공의 예를 폐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자년(1216)을 지나자, 거란이 대거 병력을 파견하여 저희 국경 내로 난입하여 마음대로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기묘년(1219)에는, 저희 대국(원)이 군사 하칭과 자랍을 파견하여 군대를 이끌고 와서 구원해주시어, 그들을 일소해주셨습니다. 소국에게 그 은혜는 갚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10]

종묘에 대한 기고문 (E)에서는, 옛 삼한 시대부터 삼방으로 경계를 다투며, 모든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며, 왕조차도 도탄에 빠졌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 본조는 삼한 시대부터 삼방으로 경계를 다투었고, 모든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으며, 우리 왕께서도 때로는 도탄에 빠지셨고, 백성들의 소망에 따라 의병을 일으키시자, 사방에서 소리가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귀순하였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때에 혹시 모반하는 무리가 있다면, 호령으로 사람을 모아 봉기하여 검으로 삼토를 쓸어버리고, 마침내 한 집안으로 만들었습니다.[10]

2. 1. 고대 ~ 중세

고구려는 378년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고 광개토대왕 때 거란을 복속시켰다. 907년 야율아보기가 요나라를 세우고 발해를 멸망시켰으나, 고려에 쳐들어왔다가 패퇴했다.[19]

원나라 시대에 조선(고려)은 몽골 제실의 사위 국가가 되었고, 원나라는 조선 왕의 아들이 새로운 왕이 되면 몽골에서 아내를 보내 조선을 통제했다.[9] 조선은 몽골의 환심을 얻기 위해 여몽 전쟁에 적극 참여했고, 공녀를 바쳤다. 그러나 몽골은 조선의 속셈을 간파하여 몽골 왕족은 고려 공녀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었다. 토곤 테무르가 공녀를 후궁으로 맞이하자, 공녀는 몽골의 규정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둘렀고, 이는 민심 이반과 반란 확산으로 이어져 원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몽골인들은 믿고 있다.[9]

고려가 몽골에 보낸 공식 문서인 "계"에서는 몽골 황제를 "하늘", "부모"와 같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국서 및 충렬왕이 몽골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서는 몽골을 "대국", "상국"으로, 자국을 "소방"으로 낮춰 부르고 있다. 몽골 황제에게 청원한 서면에서는 고려는 "해외의 소방"이며, 대국에 대해 항상 "사대의 예"를 행하여 신하로 섬기고, "조공의 예"를 행해왔음을 인정하고 있다.[10]

모리히라 마사히코는 고려가 몽골에 보낸 계에서 몽골 관인에게 '각하'라는 존칭을 사용하고, 몽골 측의 지시에는 '균지'라는 존칭을 사용하는 한편, 자국에 대해서는 '소국', '소방', '폐읍'으로 낮춰 부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려가 몽골을 중국 황제와 동일시하며, "천"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1][12]

2. 2. 근현대

몽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1948년에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과거 몽골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수교하지 않았으나, '''1990년 3월 26일'''에 수교하였다.[1]

남몽골 출신인 양하이잉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몽골인들은 "조선은 몽골 제국속국", "몽골의 혈통으로 권위를 확립했던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조선은 청조에도 전쟁에서 참패하여 신하의 예를 갖췄으며, 베트남, 태국 등의 다른 조공국과 비교했을 때, 유구한 역사 동안 중국 왕조의 속국이었던 실태가 동반된다고 인식하고 있다.[9]

원조 시대에 조선은 대대로 대도의 몽골 제실에서 딸을 들여 고려 국왕의 황후로 삼는 등 오랫동안 몽골 제실의 사위 자리에 있었고, 원나라는 조선 왕의 아들이 새로운 조선 왕이 되면 몽골에서 아내를 하가시켜 조선을 통제했다.[9] 조선은 몽골의 환심을 얻는 데 필사적이었고, 여몽 전쟁 또한 고려 충렬왕이 장인 앞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침략을 감행했다. 또한, 공녀로서 조선의 딸들은 몽골 제실에 바쳐져 궁정에 들어가 황후나 왕족의 곁에서 일하면서 몽골 지배층과의 결혼을 갈망했지만, 이는 몽골 제실에 들어가 조선의 일족을 보내 발언력을 확보하려는 조선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고, 몽골은 조선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몽골 왕족은 고려 공녀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고, 몽골의 일족은 통혼할 몽골 부족에서 후궁을 선택했지만, 토곤 테무르가 공녀를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 공녀는 몽골의 규정을 무시하고 후궁에서 권력을 휘둘렀으므로, 몽골 제실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초래하고 반란이 확산되어 원나라가 멸망했다고 몽골인들은 믿고 있으며, 몽골의 연대기에는 원나라가 멸망한 것은 공녀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9]

3. 외교 관계

대한민국과 몽골은 1990년 3월 26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1] 2011년 8월 22일, 양국 정상은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3. 1. 외교 공관

울란바타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는 주한 몽골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몽골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2,701명(재외국민 2,669명, 시민권자 32명)이다.[20]

3. 2. 인적 교류

울란바타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주한 몽골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2,701명(재외국민 2,669명, 시민권자 32명)의 한민족들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다.[20] 2011년 8월 22일 대한민국과 몽골 양국 정상은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의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대한민국 내 몽골인은 해외 거주 몽골 시민 중 가장 큰 규모이다.[2][3] 2008년 기준으로 약 33,000명으로 추산되었다.[4] 같은 해 약 3,500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었다.[5] 2006년에 체결된 양자 협정에 따라, 상호 국가에 거주하는 양국 국민은 해당 국가의 국민 연금 가입 의무에서 면제된다.[6]

2024년에는 몽골인 10명 중 1명꼴로 대한민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상당수의 몽골인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7]

3. 3. 상호 협정

울란바타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주한 몽골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2,701명(재외국민 2,669명, 시민권자 32명)의 한민족들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다.[20] 2011년 8월 22일 대한민국과 몽골 양국 정상은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의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대한민국 내 몽골인은 해외 거주 몽골 시민 중 가장 큰 규모이다.[2][3] 2008년 기준으로 약 33,000명으로 추산되었다.[4] 같은 해 약 3,500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었다.[5] 2006년 체결된 양자 협정에 따라, 상호 국가에 거주하는 양국 국민은 해당 국가의 국민 연금 가입 의무에서 면제된다.[6]

2024년에는 몽골인 10명 중 1명꼴로 대한민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상당수의 몽골인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7]

4. 경제 협력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일본산 차량이 대부분 운행되고 있으며, 일부 한국산 차량도 볼 수 있다.[21] 몽골에는 3천여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며 학교, 병원, 기업 등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에는 3만 명 이상의 몽골인이 생활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자원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몽골 자원 개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22]

2024년, 양국은 기후 행동, 콘텐츠 제작을 위한 문화 교류, 몽골 도시 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대한민국 국무총리 한덕수는 "[대한민국과 몽골]의 언어와 문화적 유사성이 양국 관계를 놀랍도록 향상시켰다"라고 언급했다.[8] 롭상남스라잉 어용에르덴 몽골 총리는 "[몽골과 대한민국]이 향후 30년 동안 경제, 무역, 투자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8]

4. 1. 항공 노선

IATA공항
ICAO거점 공항
이름항공사 및 상대국 취항지서울/인천ICNRKSI인천대한항공 : 울란바타르


5. 사회적 인식과 갈등

미국 국무부는 2010년 봄 이후 몽골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적 습격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국수주의 단체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 오해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여행 정보를 발표했다.[13] 미국 국무부는 몽골 민족주의자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울란바토르에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14]

5. 1. 몽골 내 반한 감정

미국 국무부는 2010년 봄 이후 몽골에서 외국 국적자에 대한 배타주의적 습격 사건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수주의 단체가 아시아계 미국인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 오해하여 갑자기 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여행 정보를 발표했다.[13] 미국 국무부 웹사이트는 몽골의 민족주의자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 오인하여 경고나 도발 없이 빈번하게 공격하므로,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걷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14]

5. 2. 역사 인식 차이

양하이잉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몽골인들은 조선몽골 제국속국이자, 몽골의 혈통으로 권위를 확립했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9] 시대에 조선은 대대로 대도의 몽골 제실에서 딸을 들여 고려 국왕의 황후로 삼는 등 오랫동안 몽골 제실의 사위 자리에 있었고, 원나라는 조선 왕의 아들이 새로운 조선 왕이 되면 몽골에서 아내를 하가시켜 조선을 통제했다.[9] 조선은 몽골의 환심을 얻는 데 필사적이었고, 여몽 전쟁 또한 고려 충렬왕이 장인 앞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침략을 감행했다.[9]

또한, 공녀로서 조선의 딸들은 몽골 제실에 바쳐졌는데, 이는 몽골 제실에 들어가 조선의 일족을 보내 발언력을 확보하려는 조선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몽골은 조선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고, 몽골 왕족은 고려 공녀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토곤 테무르가 공녀를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 공녀는 몽골의 규정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둘렀으므로, 몽골 제실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초래하고 반란이 확산되어 원나라가 멸망했다고 몽골인들은 믿고 있다.[9]

몽골 황제에게 바치는 공식 문서인 "계"('''A''')에서는, 몽골 황제를 "하늘"이나 "부모"와 같이 표현하며 절대적인 복종을 표명하고 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국서('''B''') 및 충렬왕이 몽골 황제에게 올린 상소 ('''C''')에서는 몽골을 "대국", "상국"으로, 이에 반해 자국을 "소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몽골 황제에게 청원한 서면('''D''')에서는 고려는 "해외의 소방"이며, 대국에 대해 항상 "사대의 예"를 행하여 신하로 섬기고, "조공의 예"를 행해왔음을 인정하고 있다.[10]

모리히라 마사히코는 고려가 몽골에 보낸 계에서 몽골을 "천", "부모", "대국", "상국"으로 표현하고, 자국(고려)을 "폐읍", "소방"으로 표현하는 것은 고려의 종전의 대중국 인식을 그대로 몽골에 적용하여 몽골을 중국 황제= "천"에 대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11][12]

참조

[1] 뉴스 Mongolia celebrates centennial of Mongolian People's Republic https://www.koreatim[...] 2024-12-18
[2] 간행물 Mongolians, Koreans share ancient bonds http://www.taipeitim[...] 2003-10-13
[3] 뉴스 Sea Breeze Helps Korea's Mongolians Speak with One Voice http://english.chosu[...] 2005-03-29
[4] 뉴스 'Korean Dream' fills Korean classrooms in Mongolia http://english.chosu[...] 2008-04-24
[5] 뉴스 유혈 사태, 평온 회복 중 http://www.ytn.co.kr[...] 2008-07-05
[6] 간행물 South Korean president in Mongolia https://web.archive.[...] 2006-05-18
[7] 웹사이트 "몽골인 10명 중 1명 한국서 일한 경험" : 네이트 뉴스 https://m.news.nate.[...]
[8] 뉴스 Korea, Mongolia pledge rare earths cooperation https://www.koreaher[...] 2023-02-15
[9] 논문 2014
[10] 논문 朝鮮と日本の自他認識 : 13〜14世紀の「蒙古」観と自己認識の変容 島根県立大学北東アジア地域研究センター
[11] 서적 モンゴル覇権下の高麗―帝国秩序と王国の対応 名古屋大学出版会 2013-11-30
[12] 논문 朝鮮と日本の自他認識 : 13〜14世紀の「蒙古」観と自己認識の変容 島根県立大学北東アジア地域研究センター
[13] 뉴스 極右化するモンゴルの反中感情、強まる警戒感 https://www.afpbb.co[...] 2010-09-01
[14] 뉴스 中国とモンゴル:中国を毛嫌いするモンゴル人 DNAに記録された蛮行の歴史~中国株式会社の研究(102) http://jbpress.ismed[...] 日本ビジネスプレス 2011-03-18
[15] 서적 삼국사기
[16] 서적 삼국사기
[17] 문서 염수의 위치에 대한 다양한 학설
[18] 논문 廣開土王碑文의 征服記事 再檢討, 고구려의 北方進出과 廣開土王碑文
[19] 논문 한국ㆍ몽골 국가 통합에 관한 연구 : 역사, 사회, 경제, 문화의 관점에서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20] 웹사이트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http://www.mofat.go.[...]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2012-02-25
[21] 문서 몽골에서 운행 중인 자일대우 BS105, BS106 버스
[22] 서적 몽골: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나라 이른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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