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동대문야구장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동대문야구장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과 함께 지어져 1980년대 초까지 학생 야구 대회의 중심지였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첫 시즌 개막전이 열렸고, MBC 청룡이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잠실야구장 완공 후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아마추어 야구 전용 구장으로 사용되었다. 2007년 철거가 결정되어 2008년 완전히 철거되었고, 현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없어진 야구 경기장 - 숭의야구장
    1934년 개장하여 재건립된 숭의야구장은 KBO 리그 출범 후 여러 프로 야구팀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었으나, 2008년 철거되어 현재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건립되었다.
  • 1928년 전국체육대회 경기장 - 동대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경성운동장', '서울운동장'을 거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과거 동양 최대 규모의 스포츠 중심지이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홈구장으로 사용되었으나, 2007년 폐쇄 후 철거되어 현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서 있다.
동대문야구장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동대문 야구장
원어 이름Dongdaemun Baseball Stadium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 1번지
역사
개장1959년
폐장2007년 12월 18일
철거2008년 3월 14일 발파 해체
이전 이름경성운동장 야구장 (1925년~1945년)
서울운동장 야구장 (1945년~1984년)
소유 및 운영
소유주서울특별시
운영서울 스포츠 시설 관리 사업소
구장 정보
그라운드내야: 흙, 외야: 천연잔디 (1959년~1989년)
내/외야 모두 인조잔디 (1990년~2007년)
규모경기장 면적: 12,853m2
좌우 펜스: 98m
중앙: 118m
수용 인원30,000명 (좌석: 26,874석)
사용
사용 팀MBC 청룡 (1982년, 1988년, 1989년)
OB 베어스 (1985년, 1988년)
주요 대회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198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1982년 3차전)
대학교, 고등학교 야구 대회 (1946년~200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2. 역사

1905년 야구장이 있던 터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와 한성고등학교의 한반도 첫 야구 시합이 벌어졌다. 1925년 경성운동장이 개장될 때 야구장도 함께 지어졌다. 이 야구장의 첫 홈런1928년 6월 8일 이영민이 기록했다.[2]

광복 이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59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고교 야구 대회의 중심지였다. 고교 야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2]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 야구의 첫 시즌 개막전(MBC 청룡 11 - 7 삼성 라이온즈)이 이 구장에서 열렸다. 프로야구 초창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MBC 청룡이 이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다가 잠실야구장이 완공되면서 홈 구장을 옮겼다. 1985년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5년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해 온 OB 베어스도 이 구장을 홈 구장으로 이용했고, 이듬해 홈 구장을 잠실야구장으로 변경했다.

이후 동대문야구장은 아마추어 야구 전용 구장으로서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등 한국 4대 메이저 고교 야구 전국 대회나 대학 야구 대회를 개최했다.

1989년 말 지나친 경기량 과부하로 천연 잔디를 걷어내고 인조 잔디를 설치했다. 또한 야구공이 더 높이 튄다는 점을 고려해 외야 펜스를 1.6m에서 3.2m로 높였다.

2006년 10월 야구장과 축구장을 포함한 동대문운동장 전 시설에 대해 전면 철거 및 재개발이 결정되었다. 2007년 12월 18일부터 구장의 철거 작업이 시작되어 2008년 3월 14일에 발파하여 완전히 철거되었다.

2. 1. 일제 강점기 (1905년 ~ 1945년)

1905년 야구장이 있던 터의 좌익수 뒤쪽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와 한성고등학교의 한반도 첫 야구 시합이 벌어졌다. 이후 1925년 경성운동장이 개장될 때 야구장도 함께 지어졌다. 이 야구장의 첫 홈런1928년 6월 8일 이영민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2. 광복 이후 (1945년 ~ 2007년)

광복 이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59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프로 야구가 생기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학생 야구 대회의 중심지였다. 고교 야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TV 뉴스를 중단하고 야구 중계를 계속할 정도로 고교 야구 열기가 뜨거웠다.[2]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 야구의 첫 시즌 개막전이 이 구장에서 열렸다(MBC 청룡 11 - 7 삼성 라이온즈). 같은 해 프로야구 올스타전 3차전도 이곳에서 열려 동군이 10-5로 승리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MBC 청룡이 이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그 해 잠실야구장이 완공되면서 홈 구장을 옮겼는데,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잠실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잠실야구장이 완성됨에 따라 1985년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5년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해 온 OB 베어스도 이 구장을 홈 구장으로 이용했고, 이듬해 홈 구장을 잠실야구장으로 변경했다.

이후 동대문야구장은 아마추어 야구 전용 구장으로서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등 한국 4대 메이저 고교 야구 전국 대회나 대학 야구 대회를 개최했다. 서울 올림픽 기간에는 MBC 청룡OB 베어스가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고, 1989년 9월 16일부터 23일까지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잠실야구장에서 열리면서 MBC 청룡이 임시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1989년 9월 24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더블헤더 2차전이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였다.

1982년에는 지방 팀(삼성, OB, 해태, 삼미 등)이 홈경기를 갖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7월 29일8월 28일(이상 VS 롯데), OB 베어스6월 26일(VS 해태)(더블헤더), 해태 타이거즈8월 18일(VS MBC)(더블헤더)에 특정 팀과의 2홈경기를 치렀다. 8월 18일 MBC VS 해태전은 같은 달 8일 광주 경기가 프로야구 최초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기록되자[2] 장소를 옮겨 더블헤더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삼성 김일융1985년 9월 8일 이 구장에서 벌어진 OB전 선발승으로[3] 역대 두 번째 선발 20승 도달 투수가 됐다.

지나친 경기량 과부하로 천연 잔디 그라운드가 크게 훼손되어, 1989년 말 천연 잔디를 걷어내고 인조 잔디를 설치했다. 또한 야구공이 더 높이 튄다는 점을 고려해 외야 펜스를 1.6m에서 3.2m로 높였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치러진 전국 고교 야구 대회는 제3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이며, 충암고등학교가 우승했다. 전국 규모 대회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치러진 고교 야구 대회는 서울특별시 추계 고교 야구 대회였으며, 결승전에서 배명고등학교충암고등학교를 꺾고 우승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치러진 공식 대회는 대통령배 전국 대학 야구 대회였으며, 경성대학교단국대학교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했다.

2. 3. 철거 (2007년 ~ 2008년)

2006년 10월 야구장과 축구장을 포함한 동대문운동장 전 시설에 대해 전면 철거 및 재개발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대한야구협회 등 프로와 아마추어 야구 단체는 같은 해 10월 25일에 공동 성명을 발표해 철거 반대의 의사를 나타냈으나 묵살되어, 2007년 12월 18일부터 구장의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8년 3월 14일에 발파하여 완전히 철거되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아마추어 야구의 주요 대회는 목동야구장과 수원야구장 등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서울 지역 내에서는 양천구 신월동광진구 구의동 등지에 대체 야구장이 건립됐다. 아울러 구로구 고척동에 하프 돔 구장 형태로 동대문야구장의 대체 야구장을 지으려고 했으나, 완전 돔 구장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야구장 1층에서 운영되던 스포츠 용품 전문점의 대부분은 잠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인근으로 이전됐고, 인근의 노점상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전됐다.

한편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된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서면서 사거리 이름, 버스 정류장명도 이에 따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거리(정류장)으로 변경되었다. 인근의 2호선4호선, 5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인 동대문운동장역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개명하였다. 다만,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이 인근에 신설되었다.

3. 교통

2호선, 4호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구 동대문운동장역) 1번 출구 앞에 있었다.

참조

[1] 웹사이트 동대문운동장 https://terms.naver.[...] 2019-06-10
[2] 뉴스 NC 롯데, 서스펜디드 게임 재개… 프로야구 역대 7번째 https://sports.news.[...] 스포츠동아 2019-04-25
[3] 뉴스 프로야구「한이닝 3연타석」홈런에 李萬洙(이만수)19호 라이온즈「'85종점」直進(직진)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2-04-1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