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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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산 베어스는 1982년 창단된 한국 프로 야구 원년 멤버로,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이다. OB 베어스로 시작하여 1999년 두산 베어스로 팀명을 변경했으며, 서울을 연고지로 잠실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김영덕, 김인식, 김태형 감독 등을 거치며 박철순, 김상호, 타이론 우즈, 더스틴 니퍼트, 김재환, 조쉬 린드블럼 등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다. 현재 팀 컬러는 남색, 흰색, 빨간색이며, 열정적인 팬덤과 다양한 응원 문화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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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스 파크는 두산 베어스 2군 훈련장 및 홈 구장으로 사용되는 야구장이며, 2005년 이천에 건립되어 베어스 필드로 운영되다가 시설 개선 및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두산 베어스 - 2005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를 4전 전승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오승환이 MVP로 선정되었다.
두산 베어스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팀 이름 | 두산 베어스 |
원어 이름 | 두산 베어스 |
원어 이름 (언어) | ko |
영어 이름 | Doosan Bears |
창단 | 1982년 |
연고지 | 서울특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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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리그 | KBO 리그 (1982년–현재) |
영구 결번 | 21 54 |
팀 색상 | 남색 빨간색 흰색 |
이전 팀 이름 | OB 베어스 (1982년–1998년) |
홈구장 | 잠실야구장 (1986년–현재) |
이전 홈구장 | 대전한밭야구장 (1982년–1984년) 동대문야구장 (1985년) |
리그 우승 | 1995년, 2016년, 2018년, 2019년 |
한국시리즈 | 한국시리즈 |
한국시리즈 우승 | 1982년, 1995년, 2001년, 2015년, 2016년, 2019년 |
구단주 | 두산 |
감독 | 이승엽 |
단장 | 김태룡 |
대표이사 | 고영섭 |
웹사이트 | 두산 베어스 공식 웹사이트 |
법인 정보 | |
회사명 | 주식회사 두산베어스 |
영어 회사명 | Doosan Bears Co., Ltd, |
종류 | 주식회사 |
국적 | 대한민국 |
본사 위치 | 서울특별시송파구 올림픽로25 잠실야구장 내 두산베어스 |
설립일 | 1983년 3월 24일 (주식회사 OB베어스) |
업종 | 서비스업 |
사업 내용 | 프로야구팀 운영, 피트니스 기기 및 일용잡화 도소매, 부동산 임대 |
대표자 | 정풍 |
자본금 | 150억 5,031만 원 (2020년) |
매출액 | 452억 6,067만 원 (2020년) |
영업 이익 | △17억 6,024만 원 (2020년) |
순이익 | △31억 3,625만 원 (2020년) |
직원 수 | 81명 (2020년) |
주요 주주 | 두산 |
외부 링크 | 두산베어스 공식 웹사이트 |
역사 정보 | |
이전 연고지 | 대전광역시 (1982년~1984년) |
이전 구단명 | OB 베어스 (1982년~1998년) |
이전 홈구장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년~1984년) |
홈구장 (1군)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985년~현재) |
홈구장 (2군) | 베어스 파크 (2005년~현재) |
시즌 결과 | |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 | 6 |
한국시리즈 우승 연도 | 1982년, 1995년, 2001년, 2015년, 2016년, 2019년 |
한국시리즈 출장 횟수 | 15 |
한국시리즈 출장 연도 | 1982년, 1995년, 2000년, 2001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
플레이오프 횟수 | 16 |
플레이오프 진출 연도 | 1986년, 198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4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3년, 2015년, 2017년, 2020년, 2021년 |
준플레이오프 횟수 | 11 |
준플레이오프 진출 연도 | 1993년, 1998년, 2001년, 2004년, 2009년, 2010년, 2012년, 2013년, 2015년, 2020년, 2021년 |
와일드카드 결정전 횟수 | 3 |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연도 | 2021년, 2023년, 2024년 |
기타 정보 | |
마스코트 | 철웅이 |
소속 리그 (1군) | KBO 리그 |
소속 리그 (2군) | 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
수용 인원 | 25,000명 |
스폰서 | 두산그룹 |
현재 시즌 | 2022년 KBO 리그 |
리그 우승 횟수 | 4 |
리그 우승 연도 | 1982년 전기, 1986년 후기, 1995년, 1999년 드림, 2016년, 2018년, 2019년 |
2. 역사
OB 베어스는 1982년 1월 15일 한국 프로 야구 원년 멤버로 창단된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의 팀이다.[1] 당시 연고지는 대전이었고, 초대 감독은 김영덕이었다. OB 베어스는 1981년 12월 29일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드래프트에서 박철순, 선우대영, 조범현 등을 지명했다.
OB 베어스의 한국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MBC 청룡과의 경기로, 박철순의 4피안타 2실점(1자책점) 완투승으로 승리했다. 전기리그를 28승 8패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후기리그에서도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을 할 수 있었으나 삼성에 1경기차 2위를 기록하여 전기리그 1위팀의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무 1패로 꺾고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김유동이 한국시리즈 6차전 4-3 상황에서 9회에 만루홈런을 쳐내면서 초대 MVP에 선정되었다. 박철순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연승인 22연승을 포함 시즌 24승을 거두면서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었다.[20][21]
1983년 시즌에는 박종훈, 한대화 등 신인을 확보했으나, 박철순, 선우대영 등 주력 투수와 구천서 등 야수진이 부상을 당하면서,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2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탓에 플로리다 베로비치 다저타운(현재 홀먼 스타디움)에서 시즌 전 전지훈련 예정이었지만 미국행 비자를 받기 어려워 대만, 일본으로 전지훈련 장소를 변경했고,[23] 일본 전지훈련 당시 난카이 호크스와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처음으로 일본 프로 선수들과의 맞대결을[24] 경험했다. 10월 14일, 김영덕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984년 새 감독으로 김성근이 취임했고,[25]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 등을 확보했다.[25] 계형철이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이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26]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다.[27]
1985년,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다. 1985년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하여, 처음에는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다가, 1986년 이후로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1986년,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의 동점 홈런과 이후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28]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한다.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한다. 1988년, 개막전에서 장호연은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29]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한다. 시즌 후에 두산 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된다.[30]
1989년, 제3대 이광환 감독이 취임했으나, 전임감독에게 젖은 고참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하지 못한 데다[31] 팀컬러의 갑작스러운 변모를 꾀하려다가 오히려 10연패, 11연패를 기록했고, 1989년 6월 19일 시즌 중 교체되었다.[33] 제4대 감독으로는 이재우였다. 그는 1990년 대행 기용되어 1991년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 하지만 초반에 잠깐 1위를 했으나 중반의 11연패 뿐 아니라 장호연의 연봉 재계약[35] 문제-부상 등으로 투수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했으며 구동우를 선발-중간-마무리 가리지 않고 투입시켜 최하위로 처지자 1990년 9월 9일 시즌 중에 교체되었다.[33]
1991년, 제5대 감독은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윤동균이 내정되었고,[34] 그는 남은 경기를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36] 1992년, 본격적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 장원진, 안경현 등의 신예들을 대거 발탁하여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37] 1993년에는 초반에는 5위에 머무르다가 9월부터 연승을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LG에게 승리하며 3위로 6년 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끈다.[37]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승 2패로 탈락한다.
1994년, 선발진은 김상진, 권명철, 강병규 등의 젊은 투수로 구성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노장 박철순 등이 있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김상호의 중심 타선과 김민호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있었다.[37] 하지만, 5월 중순부터는 6,7위에 머물렀고 7위를 굳히는 형세가 되었다.[38] 그리고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에서 1-2로 패배하자 윤동균 감독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를 거부하자 윤동균 감독이 '맞기 싫은 선수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명의 선수들은 이탈해 서울로 올라갔다.[39][40] 선수들 중 최고참인 박철순은 '윤 감독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40] 결국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41] 박철순, 김상호, 김형석, 장호연, 강영수 등의 다섯 고참 선수들은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42] 그러나 그들은 팀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진했던 강영수 만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42]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했다.[43]
1995년, 제6대 감독인 김인식이 취임했다. 선수단 이탈 사건을 겪었으나 예상과 달리 연습생 출신의 김상진이 3경기 연속 완봉승[44]을 포함해 17승을 올렸고, 권명철이 15승, 그리고 3년생 이용호와 신인 진필중은 김경원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45] 타선에서는 1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연습생 출신 김민호, 고졸 2년생 심정수는 21홈런으로 분발했다.[45] 시즌 구도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선두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월 중순에 6경기차로 간격을 벌렸다.[45] 그러나, 이후 LG가 연패를 하자 OB는 6연승, 4연승을 거두고 9월 10일에는 처음으로 선두를 탈환한다.[45] 그리고 마지막 27경기에서 OB는 20승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 반 경기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한다.[45]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꼴찌 8위로 추락하여 최하위, 1997년에는 5위를 기록했다. 1998년, 이 해에는 10년 이상 중심 타선을 지켜오던 김상호, 김형석이 빠지게 된다.[47] 그 때문에 8월 말까지 꼴지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은 시즌 막판 연승으로 1경기차 4위에 오른다.[48]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연패로 탈락하게 된다.
2. 1. OB 베어스 (1982년 ~ 1998년)
OB 베어스는 1982년 1월 15일 한국 프로 야구 원년 멤버로 창단된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의 팀이다.[1] 당시 연고지는 대전이었고, 초대 감독은 김영덕이었다. OB 베어스는 1981년 12월 29일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드래프트에서 박철순, 선우대영, 조범현 등을 지명했다.OB 베어스의 한국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MBC 청룡과의 경기로, 박철순의 4피안타 2실점(1자책점) 완투승으로 승리했다. 전기리그를 28승 8패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후기리그에서도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을 할 수 있었으나 삼성에 1경기차 2위를 기록하여 전기리그 1위팀의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무 1패로 꺾고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김유동이 한국시리즈 6차전 4-3 상황에서 9회에 만루홈런을 쳐내면서 초대 MVP에 선정되었다. 박철순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연승인 22연승을 포함 시즌 24승을 거두면서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었다.[20][21]
1983년 시즌에는 박종훈, 한대화 등 신인을 확보했으나, 박철순, 선우대영 등 주력 투수와 구천서 등 야수진이 부상을 당하면서,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2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탓에 플로리다 베로비치 다저타운(현재 홀먼 스타디움)에서 시즌 전 전지훈련 예정이었지만 미국행 비자를 받기 어려워 대만, 일본으로 전지훈련 장소를 변경했고,[23] 일본 전지훈련 당시 난카이 호크스와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처음으로 일본 프로 선수들과의 맞대결을[24] 경험했다. 10월 14일, 김영덕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984년 새 감독으로 김성근이 취임했고,[25]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 등을 확보했다.[25] 계형철이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이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26]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다.[27]
1985년,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다. 1985년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하여, 처음에는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다가, 1986년 이후로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1986년,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의 동점 홈런과 이후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28]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한다.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한다. 1988년, 개막전에서 장호연은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29]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한다. 시즌 후에 두산 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된다.[30]
1989년, 제3대 이광환 감독이 취임했으나, 전임감독에게 젖은 고참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하지 못한 데다[31] 팀컬러의 갑작스러운 변모를 꾀하려다가 오히려 10연패, 11연패를 기록했고, 1989년 6월 19일 시즌 중 교체되었다.[33] 제4대 감독으로는 이재우였다. 그는 1990년 대행 기용되어 1991년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 하지만 초반에 잠깐 1위를 했으나 중반의 11연패 뿐 아니라 장호연의 연봉 재계약[35] 문제-부상 등으로 투수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했으며 구동우를 선발-중간-마무리 가리지 않고 투입시켜 최하위로 처지자 1990년 9월 9일 시즌 중에 교체되었다.[33]
1991년, 제5대 감독은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윤동균이 내정되었고,[34] 그는 남은 경기를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36] 1992년, 본격적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 장원진, 안경현 등의 신예들을 대거 발탁하여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37] 1993년에는 초반에는 5위에 머무르다가 9월부터 연승을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LG에게 승리하며 3위로 6년 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끈다.[37]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승 2패로 탈락한다.
1994년, 선발진은 김상진, 권명철, 강병규 등의 젊은 투수로 구성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노장 박철순 등이 있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김상호의 중심 타선과 김민호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있었다.[37] 하지만, 5월 중순부터는 6,7위에 머물렀고 7위를 굳히는 형세가 되었다.[38] 그리고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에서 1-2로 패배하자 윤동균 감독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를 거부하자 윤동균 감독이 '맞기 싫은 선수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명의 선수들은 이탈해 서울로 올라갔다.[39][40] 선수들 중 최고참인 박철순은 '윤 감독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40] 결국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41] 박철순, 김상호, 김형석, 장호연, 강영수 등의 다섯 고참 선수들은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42] 그러나 그들은 팀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진했던 강영수 만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42]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했다.[43]
1995년, 제6대 감독인 김인식이 취임했다. 선수단 이탈 사건을 겪었으나 예상과 달리 연습생 출신의 김상진이 3경기 연속 완봉승[44]을 포함해 17승을 올렸고, 권명철이 15승, 그리고 3년생 이용호와 신인 진필중은 김경원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45] 타선에서는 1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연습생 출신 김민호, 고졸 2년생 심정수는 21홈런으로 분발했다.[45] 시즌 구도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선두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월 중순에 6경기차로 간격을 벌렸다.[45] 그러나, 이후 LG가 연패를 하자 OB는 6연승, 4연승을 거두고 9월 10일에는 처음으로 선두를 탈환한다.[45] 그리고 마지막 27경기에서 OB는 20승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 반 경기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한다.[45]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꼴찌 8위로 추락하여 최하위, 1997년에는 5위를 기록했다. 1998년, 이 해에는 10년 이상 중심 타선을 지켜오던 김상호, 김형석이 빠지게 된다.[47] 그 때문에 8월 말까지 꼴지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은 시즌 막판 연승으로 1경기차 4위에 오른다.[48]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연패로 탈락하게 된다.
2. 2. 두산 베어스 (1999년 ~ 현재)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기존의 OB 베어스에서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바꿨다.[2] 이 해 타이론 우즈, 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한화 이글스에 4연패로 탈락한다.[49]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 유니콘스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2위를 기록했다.[50]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했다.[50]2001년, 김인식 감독은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세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55] 심정수는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되었으나, 심재학은 3할 4푼 4리에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심정수의 공백을 메웠다.[51]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1차전을 패했지만, 2차전에서 장원진의 3점 홈런으로 승리했다.[53] 3차전 난타전 끝에 승리하고,[53] 4차전에서는 2회초 삼성에 8점을 내줬지만, 3회말 김동주의 만루홈런 등으로 12점을 뽑아내며 18-11로 승리했다.[54] 이 경기는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점수, 최다 안타, 최다 점수 차 역전 경기였다.[54] 5차전에서 대패했지만,[54] 6차전에서 8회말 정수근의 결승 득점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55] 한국시리즈 MVP는 타이론 우즈가 차지했다.[56] 이후 FA, 트레이드로 팀 전력이 약화되면서 2002년에는 5위, 2003년에는 7위를 기록했고, 2003년 시즌 후 김인식 감독은 물러났다.
2003년 말, 두산은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하고,[57][58] 김경문을 감독으로 영입했다.[59] 김경문 감독(2004~2011)은 '화수분 야구'를 통해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며 두산을 강팀으로 만들었다. 2004년,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기아를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했다. 2005년에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에게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해 이천 구장을 준공했다.[60] 2006년에는 WBC에 출전했던 김동주의 부상으로[61] 5위에 머물렀지만, 신고선수 출신 이종욱을 발굴했다.
2007년,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의 활약으로 정규시즌 2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했다.[63]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했다.[63]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패했다.[64]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했다. 2011년,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고, 김광수 감독 대행 체제로 5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 시즌 후 김진욱 감독(2012~2013)이 부임했다. 2012년, 니퍼트, 노경은, 이용찬 등 선발 투수진의 활약으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패했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삼성에게 패하며 준우승했다.
김진욱 감독이 경질된 후, 송일수 감독이 부임했으나 2014년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경질되었다. 김태형 감독(2015~2022)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5년, 2016년, 2019년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4] 2015년, 장원준을 영입하고,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14년 만에 우승했다. 2016년, 김현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지만, 니퍼트, 보우덴, 유희관, 장원준 등 선발 투수 4명이 모두 15승 이상을 기록하며 정규리그 최다승(93승)을 기록,[15]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NC를 꺾고 2년 연속 우승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에 패하며 준우승했다. 2018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서 SK에 패하며 준우승했다. 2019년, 양의지가 NC로 이적했지만, 페르난데스의 활약과 SK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정규시즌 마지막 날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서 키움을 꺾고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15]
2020년, 린드블럼과 후랭코프가 이적했지만, 알칸타라와 플렉센의 활약으로 3위를 기록,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NC에 패하며 준우승했다. 2021년, 4위를 기록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KT에 패하며 준우승했다. 2022년, 9위로 추락하며 김태형 감독이 물러났다.
2023년,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여 현재까지 팀을 이끌고 있다. 5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NC에 패했다.
3. 역대 감독
두산 베어스의 창단 감독은 김영덕이었으며, 현 감독은 12대 이승엽이다.[11] 최장 기간 지휘봉을 맡은 감독은 6대 김인식으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시즌 동안 한국 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1995년, 2001년)하며 정규 시즌 579승 33무 556패를 기록했다. 김태형 감독은 2015년, 2016년, 2019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10]
번호 | 이름 | 재임 기간 | 수상 내역 |
---|---|---|---|
1 | 김영덕 | 1982년 1월 15일 – 1982년 8월 8일 | 1982년 한국시리즈 우승 |
2 | 김성근 | 1983년 12월 24일 – 1988년 9월 8일 | |
3 | 이광환 | 1988년 9월 9일 – 1990년 6월 19일 | |
4 | 이재우 | 1990년 6월 19일 – 1991년 7월 11일 | |
5 | 윤동균 | 1991년 9월 9일 – 1994년 | |
6 | 김인식 | 1994년 9월 21일 – 2003년 |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
7 | 김경문 | 2003년 10월 10일 – 2011년 6월 13일 | |
8 | 김광수 | 2011년 6월 13일 – 2011년 10월 9일 | |
9 | 김진욱 | 2011년 10월 9일 – 2013년 11월 27일 | |
10 | 송일수 | 2013년 11월 27일 – 2014년 10월 21일 | |
11 | 김태형[10] | 2014년 10월 21일 – 2022년 10월 11일 |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6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 |
12 | 이승엽[11] | 2022년 10월 14일 – 현재 |
4. 선수단
두산 베어스의 선수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두산 베어스 선수 명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현재 두산 베어스의 감독은 이승엽이며, 주장은 양석환이다.
'''코칭스태프'''
- 고토 고지 (수석)
- 조웅천 (투수)
- 박정배 (투수)
- 임재현 (작전)
- 이영수 (타격보조)
- 조성환 (수비)
- 박석민 (타격)
- 유종수 (트레이닝)
- 조광희 (트레이닝)
- 천종민 (트레이닝)
- 이도형 (퓨처스 타격)
- 김진수 (퓨처스 배터리)
- 김지용 (퓨처스 불펜)
- 권명철 (퓨처스 투수)
- 김동한 (퓨처스 작전/주루)
- 강석천 (퓨처스 수비)
- 조경택 (잔류군/재활군)
- 조인성 (잔류군/재활군)
- 이광우 (잔류군/재활군 트레이닝)
- 가득염 (잔류군/재활군)
- 이덕현 (잔류군/재활군 트레이닝)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입대 선수'''
'''2024년 신인지명 선수'''
5. 영구 결번
두산 베어스의 영구 결번은 54번(김영신)과[67][68] 21번(박철순)이다.[69] 21번은 1982년 KBO 리그 MVP, 투수 트리플 크라운, 그리고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투수 박철순을 기리기 위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8] 박철순의 번호는 2002년 4월 5일 시즌 개막전 경기 전 영구 결번식을 통해서 영구 결번되었다.[69] 54번은 젊은 나이에 자살한 포수 김영신을 추모하기 위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9]
6. 주요 선수
두산 베어스는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를 일곱 명 배출했다.
- 1982년 - 박철순(투수)
- 1995년 - 김상호(외야수)
- 1998년 - 타이론 우즈(내야수)
- 2007년 - 다니엘 리오스(투수)
- 2016년 - 더스틴 니퍼트(투수)
- 2018년 - 김재환 (외야수)
- 2019년 - 조쉬 린드블럼 (투수)
김동주는 OB/두산 베어스에서 1998년부터 2014년까지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박철순은 1982년 창단 멤버 중 가장 오래 OB 베어스에서 뛴 선수로 1996년에 은퇴했다. 타이론 우즈, 더스틴 니퍼트, 조쉬 린드블럼,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 크리스 플렉센, 라울 알칸타라, 아리엘 미란다 등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를 거쳐갔다.
정재훈(チョン・ジェフン)은 2003년부터 2014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두산 베어스에서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투수 코치이다. 이도형(이・도현)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타격 코치이다. 고영민(고・영민)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수비 코치이다. 박정배(박・정배)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불펜 코치이다. 정진호(정・진호)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2군 수비 및 작전 코치이다. 김상진(김・상진)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재활 투수 코치이다.
그 외에도 한대화, 김영신, 최일언, 조범현, 김경문, 강영수, 장호연, 김익재, 송재용, 강현석, 황일권, 윤기수, 류택현, 추승곤, 진갑용, 심정수, 강혁, 김태형, 전형도, 김덕용, 김원섭, 정수근, 최훈재, 한태균, 김경태, 홍민구, 백대현, 차명주, 문동환, 표성대, 윤태수, 백승훈, 전병두, 박명환, 강인권, 최경환, 정종수, 이경필, 나주환, 강동우, 채상병, 금민철, 지승민, 유재웅, 고창성, 손지훈, 임재철, 이종욱, 최준석, 김선우, 이혜천, 이재우, 임태훈, 장민석, 김강, 민병헌, 고원준, 김성배, 홍상삼, 이현호, 변시원, 배영수, 김승회, 이흥련, 권혁, 정상호, 류희관, 백동훈, 오재원, 구하성, 윤명준, 이현승, 최용제, 장원준, 신성현, 김지용, 안승한, 김재호 등 수많은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를 거쳐갔다.
일본 출신 선수로는 홍신차(洪新次), 오헌조(呉憲助), 목원창익(木原彰彦), 기모토 히로시(吉本博), 기무라 모토미(吉村元富), 타나카 미노루(田中実), 이리에 사토시(入来智), 안다 곤수(安田権守) 등이 있다.
6. 1. 한국 프로야구 MVP
두산 베어스는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를 일곱 명 배출했다.- 1982년 - 박철순(투수)
- 1995년 - 김상호(외야수)
- 1998년 - 타이론 우즈(내야수)
- 2007년 - 다니엘 리오스(투수)
- 2016년 - 더스틴 니퍼트(투수)
- 2018년 - 김재환 (외야수)
- 2019년 - 조쉬 린드블럼 (투수)
6. 2. 기타 주요 선수
김동주는 OB/두산 베어스에서 1998년부터 2014년까지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국가대표 포수 홍성흔은 두산 베어스 주장을 역임했다. 김현수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활약 후, 현재 LG 트윈스 소속이다. 양의지는 국가대표 포수로, 현재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고 있다.그 외에도 박철순은 1982년 창단 멤버 중 가장 오래 OB 베어스에서 뛴 선수로 1996년에 은퇴했다. 타이론 우즈, 더스틴 니퍼트, 조쉬 린드블럼,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 크리스 플렉센, 라울 알칸타라, 아리엘 미란다 등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를 거쳐갔다.
이재학은 현재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2011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했다. 노경은은 현재 SSG 랜더스 소속이며, 2015년 임의탈퇴 후 고원준과의 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했다. 이원석은 현재 키움 히어로즈 소속으로, 2016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삼성으로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이흥련이 지명되었다. 최재훈은 현재 한화 이글스 소속이며, 2017년 신성현과의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류지혁은 현재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2020년 홍건희와의 트레이드로 기아로 이적했다.
최주환은 현재 키움 히어로즈 소속이며, 2020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SSG로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강승호가 지명되었다. 오재일은 현재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2020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박계범이 지명되었다. 함덕주는 현재 LG 트윈스 소속으로, 2021년 양석환, 남호와의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용찬은 현재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2021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박정수가 지명되었다. 박건우는 현재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2021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강진성이 지명되었다.
박세혁은 현재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2022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고, 보상 선수로 박준영이 지명되었다. 임창민은 현재 키움 히어로즈 소속으로, 2022년 구단에서 방출되어 퇴단했다. 강진성은 현재 SSG 랜더스 소속으로, 2023년 김정수와의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형범은 현재 기아 타이거즈 소속으로, 2023년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어 이적했다. 허경민은 현재 KT 위즈 소속으로, 2024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다. 정철원은 현재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2024년 3대2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김강률은 현재 LG 트윈스 소속으로, 2024년 FA 자격을 행사하여 이적했다.
정재훈(チョン・ジェフン)은 2003년부터 2014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두산 베어스에서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투수 코치이다. 이도형(이・도현)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타격 코치이다. 고영민(고・영민)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수비 코치이다. 박정배(박・정배)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불펜 코치이다. 정진호(정・진호)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2군 수비 및 작전 코치이다. 김상진(김・상진)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두산 베어스 재활 투수 코치이다.
그 외에도 한대화, 김영신, 최일언, 조범현, 김경문, 강영수, 장호연, 김익재, 송재용, 강현석, 황일권, 윤기수, 류택현, 추승곤, 진갑용, 심정수, 강혁, 김태형, 전형도, 김덕용, 김원섭, 정수근, 최훈재, 한태균, 김경태, 홍민구, 백대현, 차명주, 문동환, 표성대, 윤태수, 백승훈, 전병두, 박명환, 강인권, 최경환, 정종수, 이경필, 나주환, 강동우, 채상병, 금민철, 지승민, 유재웅, 고창성, 손지훈, 임재철, 이종욱, 최준석, 김선우, 이혜천, 이재우, 임태훈, 장민석, 김강, 민병헌, 고원준, 김성배, 홍상삼, 이현호, 변시원, 배영수, 김승회, 이흥련, 권혁, 정상호, 류희관, 백동훈, 오재원, 구하성, 윤명준, 이현승, 최용제, 장원준, 신성현, 김지용, 안승한, 김재호 등 수많은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를 거쳐갔다.
일본 출신 선수로는 홍신차(洪新次), 오헌조(呉憲助), 목원창익(木原彰彦), 기모토 히로시(吉本博), 기무라 모토미(吉村元富), 타나카 미노루(田中実), 이리에 사토시(入来智), 안다 곤수(安田権守) 등이 있다.
7.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 자이언츠를 4승 3패로 꺾고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000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에 3승 4패로 패했지만,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4승 2패로 누르고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OB 베어스 시절을 포함해 첫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
2015년, 2016년,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삼성 라이온즈(4승 1패), NC 다이노스(4승), 키움 히어로즈(4승)를 꺾고 우승을 추가하여 총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 | 연도 | 감독 | 상대 팀 | 경기 결과 | 우승 횟수 | 시리즈 MVP | |
---|---|---|---|---|---|---|---|
1 | 1982년 | 김영덕 | 삼성 라이온즈 | 4승 1무 1패 | V1 | 김유동 | |
2 | 1995년 | 김인식 | 롯데 자이언츠 | 4승 3패 | V2 | 김민호 | |
3 | 2000년 | 김인식 | 현대 유니콘스 | 3승 4패 | |||
4 | 2001년 | 김인식 | 삼성 라이온즈 | 4승 2패 | V3 | 타이론 우즈 | |
5 | 2005년 | 김경문 | 삼성 라이온즈 | 4패 | |||
6 | 2007년 | 김경문 | SK 와이번스 | 2승 4패 | |||
7 | 2008년 | 김경문 | SK 와이번스 | 1승 4패 | |||
8 | 2013년 | 김진욱 | 삼성 라이온즈 | 3승 4패 | |||
9 | 2015년 | 김태형 | 삼성 라이온즈 | 4승 1패 | V4 | 정수빈 | |
10 | 2016년 | 김태형 | NC 다이노스 | 4승 | V5 | 양의지 | |
11 | 2017년 | 김태형 | KIA 타이거즈 | 1승 4패 | |||
12 | 2018년 | 김태형 | SK 와이번스 | 2승 4패 | |||
13 | 2019년 | 김태형 | 키움 히어로즈 | 4승 | V6 | 오재일 | |
14 | 2020년 | 김태형 | NC 다이노스 | 2승 4패 | |||
15 | 2021년 | 김태형 | KT 위즈 | 4패 | |||
한국시리즈 총 6회 우승 (OB 2회 / 두산 4회) |
8. 라이벌
8. 1. LG 트윈스와의 관계
8. 2. 기타 라이벌
9. 응원 문화
두산 베어스는 열정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응원가와 응원 도구를 활용한 독특한 응원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응원가로는 '승리의 두산', '최강두산' 등이 있다.
10. 마스코트
두산 베어스의 마스코트는 '곰'이며, 이름은 철웅이다.[6] 철웅이는 곰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강인함과 친근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2010년부터는 로봇 컨셉을 도입하여 힘과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7]
11. 팀 컬러 및 유니폼
현재 팀 컬러는 남색, 흰색, 빨간색이다.[5]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했으나, 2010년부터 다시 원래의 OB 베어스의 상징적인 남색과 빨간색 조합으로 변경되었다.[5]
두산 베어스는 다양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해 왔다. OB 베어스 시절에는 흰색 바탕에 짙은 남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프로 원년 전기리그에는 가슴 양쪽에 OB가 새겨진 버튼형 유니폼을 착용하였고, 후기리그에는 가슴 전체에 OB BEARS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1983년부터 1998년까지는 원년 후기리그 유니폼 디자인에 V넥 형태의 셔츠형 유니폼으로 변경되어 착용하였다.
1999년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변경되면서 구단 BI도 변경되었다. 흰색 바탕에 짙은 남색, 노란색의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으며, 새로운 구단 BI의 상징인 반달곰 로고를 가슴 부분에 새겨 넣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가슴 전체에 반달곰 로고가 들어간 셔츠형 유니폼을 착용하였고, 2002년부터 2009년까지는 반달곰 로고를 가슴 오른쪽에 새겨 넣은 단추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2010년 1월 4일, 짙은 남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새로운 팀 엠블럼 및 유니폼을 제작 발표하였다. 현재 홈 유니폼은 흰색에 'BEARS' 로고가 새겨진 버튼형이고, 원정 유니폼은 짙은 남색 바탕에 가슴 오른쪽에 구단 엠블럼이 새겨진 버튼형이다. 2015년 중반부터 등번호에 약간의 그림자를 입혔다. OB 베어스 시절의 올드 유니폼도 이벤트성으로 착용한다.
11. 1. 팀 컬러
현재 팀 컬러는 남색, 흰색, 빨간색이다.[5]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했으나, 2010년부터 다시 원래의 OB 베어스의 상징적인 남색과 빨간색 조합으로 변경되었다.[5]11. 2. 유니폼
두산 베어스는 다양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해 왔다. OB 베어스 시절에는 흰색 바탕에 짙은 남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프로 원년 전기리그에는 가슴 양쪽에 OB가 새겨진 버튼형 유니폼을 착용하였고, 후기리그에는 가슴 전체에 OB BEARS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1983년부터 1998년까지는 원년 후기리그 유니폼 디자인에 V넥 형태의 셔츠형 유니폼으로 변경되어 착용하였다.1999년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변경되면서 구단 BI도 변경되었다. 흰색 바탕에 짙은 남색, 노란색의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으며, 새로운 구단 BI의 상징인 반달곰 로고를 가슴 부분에 새겨 넣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가슴 전체에 반달곰 로고가 들어간 셔츠형 유니폼을 착용하였고, 2002년부터 2009년까지는 반달곰 로고를 가슴 오른쪽에 새겨 넣은 단추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2010년 1월 4일, 짙은 남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새로운 팀 엠블럼 및 유니폼을 제작 발표하였다. 현재 홈 유니폼은 흰색에 'BEARS' 로고가 새겨진 버튼형이고, 원정 유니폼은 짙은 남색 바탕에 가슴 오른쪽에 구단 엠블럼이 새겨진 버튼형이다. 2015년 중반부터 등번호에 약간의 그림자를 입혔다. OB 베어스 시절의 올드 유니폼도 이벤트성으로 착용한다.
12. 기타
12. 1. 팬 서비스
두산 베어스는 다양한 팬 서비스 행사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65] 매월 마지막 일요일 홈경기는 '베어스 데이'로 지정하여 팬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한다.[65]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토요일에 베어스 데이가 시행되었다.[65] 베어스 데이는 홈페이지 여론 조사를 통해서 기획되었다.[65] 이 외에도 '플레이어스 데이'(매월 특정 일요일 홈경기, 옛 유니폼 착용), '퀸스 데이'(여성 대상 이벤트)[66], '직장인의 날'(직장인 대상 이벤트),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를 위한 '두린이날' 등 다양한 팬 서비스와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12. 2. 사회 공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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