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대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동작대교는 1978년 착공하여 1984년 11월 14일 개통된 서울의 다리이다. 서울시가 후암동에서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간선도로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형으로 설계되었다. 대우개발이 민간투자 방식으로 건설을 맡았으나, 자금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재개되어 개통되었다. 개통으로 한강대교와 반포대교의 통행량이 감소하고 서울 도심에서 과천시까지 이동 시간이 단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84년 완공된 교량 - 퐁데자르
퐁데자르는 파리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한때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철거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리 최초의 금속 다리이다. - 슬래브교 - 반포대교
반포대교는 서초구 반포동과 용산구 이촌동을 잇는 한강 다리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2층 다리로, 교통량 해소와 함께 달빛 무지개 분수와 한강 공원 접근성으로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 역할을 한다. - 슬래브교 - 말레이지아교
말레이지아교는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수교를 기념하여 말레이시아의 원조와 한국 육군의 지원으로 건설되었으며, 과거 주요 교통로였으나 현재는 안전 문제로 폐쇄된 파주시 고산천의 교량이다. - 서울 동작구의 건축물 - 한강대교
한강대교는 1917년에 완공된 한강인도교를 전신으로 하며,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어 한국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1958년에 재건되었고, 1984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2020년에는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동작구의 건축물 - 한강철교
한강철교는 경부선 등 주요 철도 노선을 잇는 서울 한강의 철교로, A, B, C, D선의 4개 교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철도 역사와 전쟁의 역사, 그리고 산업 발전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작대교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동작대교 |
한글 | 동작대교 |
한자 | 銅雀大橋 |
로마자 표기 | Dongjakdaegyo |
교통 시설 | 동작대로 |
횡단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서초구와 용산구 사이의 한강 |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서초구 ~ 용산구 |
관리 | 서울특별시청 |
구조 | |
철도교 | 랭거아치판거더교 |
도로교 | 거더교, 슬래브교 |
길이 | 1,330m |
너비 (철도교) | 11.4m |
너비 (도로교) | 28.6m |
건설 정보 | |
착공일 | 1978년 10월 18일 |
완공일 | 1984년 11월 14일 |
개통일 | 1984년 11월 14일 |
2. 역사
동작대교는 1978년 5월 서울특별시가 발표한 동작대로 건설 계획의 일부로 건설되었다. 1978년 10월 18일 착공하여 1984년 11월 14일 개통되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 구조로,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 교량으로 설계되었다.
대우개발이 민간투자 방식으로 건설을 맡았으나, 자금 문제로 1981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후 서울특별시가 공사를 재개하여 1984년 완공하였다.
날짜 | 내용 |
---|---|
1978년 10월 18일 | 착공[2] |
1980년 2월 |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 대우개발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8] |
1982년 1월 | 공사 재개[9] |
1983년 12월 | 완공 시기를 1984년 말로 연기[13] |
1984년 2월 | 6차선 차도 구간만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10] |
1984년 11월 14일 | 동작대교 개통[14] |
2009년 10월경 | 전망탑 설치 |
2. 1. 착공 및 초기 계획 (1978년 ~ 1981년)
동작대교는 본래 1978년 5월 서울시가 발표한 폭 40~50m, 연장 15km의 간선도로인 동작대로의 일부로 계획되었다. 동작대로는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며, 용산기지를 관통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도 이에 맞춰 건설되었다.[2]1978년 10월 18일, 구자춘 서울시장, 남덕우 부총리,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동작대교 착공식이 열렸다.[3] 당시 동작대교는 폭 40m (전철 구간 폭 12m 포함), 길이 1,320m로,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되었으며 1981년 9월에 개통할 예정이었다.[3][4] 서울 지하철 4호선이 다리 위를 지나가도록 설계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랭거아치형이 채택되었다.[3]
동작대교 건설은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착공 당시 동작대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
착공 후 8개월 동안 수중 작업을 통해 교량 하부구조인 우물통을 설치했으며,[6] 1980년 5월부터 하부 교각 공사를 마무리하고 상부 구조물 공사에 들어갔다.[7] 그러나 1980년 말부터 대우개발이 자금 조달 문제 및 공사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사 사업을 서울시에 반납하면서 1981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다.[8]
날짜 | 내용 |
---|---|
1978년 10월 18일 | 착공[3] |
1980년 2월 |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 대우건설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8] |
2. 2. 공사 중단 및 재개 (1981년 ~ 1984년)
동작대교는 1978년 5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폭 40~50m, 연장 15km의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동작대로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2] 동작대로는 후암동 병무청에서 용산기지를 통과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이에 맞춰 건설되었다.1978년 10월 18일 구자춘 서울시장, 남덕우 부총리,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이 거행되었다.[2] 당시 동작대교는 폭 22m에 전철 구간 폭 12m를 더해 전체 폭 40m, 길이 1,320m로,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되었으며 1981년 9월에 개통할 예정이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지나도록 설계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랭거아치형으로 건설되었다.[3][4] 당시 동작대교 건설은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공사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시공 당시 동작대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
착공 후 8개월 동안 수중 작업을 벌여 교량 하부구조인 우물통을 설치했으며[6], 1980년 5월부터 하부 교각 공사를 마무리짓고 상부 구조물 공사에 들어갔다.[7] 그러나 1980년 말부터 대우개발이 회사 내 자금조달 문제 및 공사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사 사업을 서울시에 반납하면서 1981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다.[8] 약 1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서울시가 1982년 1월에 공사를 다시 발주해 건설하기 시작했고[9], 1984년 2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84년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했다가[10] 실제 개통은 1984년 11월 14일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개통식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김성배 건설부장관,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11]
날짜 | 내용 |
---|---|
1978년 10월 18일 | 착공[2] |
1980년 2월 |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 대우건설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8] |
1982년 1월 | 공사 재개[9] |
1983년 12월 | 완공 시기를 1984년 말로 연기[13] |
1984년 2월 | 6차선 차도 구간만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10] |
1984년 11월 14일 | 동작대교 개통[14] |
2. 3. 완공 및 개통 (1984년)
동작대교는 1978년 5월 서울시에서 폭 40~50m, 연장 15km로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동작대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구간에 포함된 다리였다.[2] 이 도로는 용산기지를 관통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이에 맞춰 건설하게 되었다.1978년 10월 18일에 착공되었으며 구자춘 서울시장, 남덕우 부총리,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착공식에 참여했다.[3] 착공 당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되었으며 1981년 9월에 개통할 예정이었다.[3]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지나게 설계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3]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공사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시공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
1979년 6월까지 8개월 동안 수중 작업을 벌여 교량 하부구조인 우물통을 설치했으며[6], 1980년 5월부터 하부 교각 공사를 마무리짓고 상부 구조물 공사에 들어갔다.[7] 그러나 1980년 말부터 대우개발이 회사 내 자금조달 문제 및 공사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사 사업을 서울시에 반납하면서 1981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다.[8] 약 1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서울시가 1982년 1월에 공사를 다시 발주해 건설하기 시작했고[9], 1984년 2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84년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했다가[10] 실제 개통은 1984년 11월 14일에 이루어졌다.[11] 개통식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김성배 건설부장관,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11]
날짜 | 내용 |
---|---|
1978년 10월 18일 | 착공[12] |
1980년 2월 |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 대우건설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 |
1982년 2월 | 공사 재개 |
1983년 12월 | 완공 시기를 1984년 말로 연기[13] |
1984년 2월 | 6차선 차도 구간만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 |
1984년 11월 14일 | 동작대교 개통[14] |
2. 4. 기타
동작대교는 1978년 5월 서울시가 발표한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총 길이 15km, 폭 40~50m의 간선도로인 동작대로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2] 이 도로는 후암동 병무청에서 용산기지를 통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이에 맞춰 건설되었다.1978년 10월 18일에 착공되었으며, 구자춘 서울시장, 남덕우 부총리,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착공식에 참여했다.[3]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되었으며, 서울 지하철 4호선이 다리 위를 지나가게 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을 사용했다.[3][4]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공사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
1980년 말부터 대우개발이 자금조달 문제 및 공사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사 사업을 서울시에 반납하면서 1981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다.[8] 약 1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서울시가 1982년 1월에 공사를 다시 발주했고,[9] 1984년 11월 14일에 개통되었다. 개통식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김성배 건설부장관,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11]
- 1978년 10월 18일: 착공[12]
- 1980년 2월: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대우건설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
- 1982년 2월: 공사 재개
- 1983년 12월: 완공 시기를 1984년 말로 연기[13]
- 1984년 2월: 6차선 차도 구간만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
- 1984년 11월 14일: 동작대교 개통[14]
- 2009년 10월경: 전망탑 설치
3. 건설 배경 및 특징
동작대교는 1978년 5월 서울시가 발표한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동작대로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2] 이 도로는 용산기지를 통과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이에 맞춰 건설되었다.
1984년 2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했다가[10] 실제 개통은 1984년 11월 14일에 이루어졌다. 개통식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김성배 건설부장관,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11]
동작대교 건설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날짜 | 내용 |
---|---|
1978년 10월 18일 | 착공[12] |
1980년 2월 | 완공 시기를 1981년 12월로 연기[12] |
1981년 | 대우건설이 공사 사업을 반납하면서 공사 중단 |
1982년 2월 | 공사 재개 |
1983년 12월 | 완공 시기를 1984년 말로 연기[13] |
1984년 2월 | 6차선 차도 구간만 9월에 개통하기로 발표 |
1984년 11월 14일 | 동작대교 개통[14] |
3. 1. 랭거 아치 교량
동작대교는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 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된 교량이다.[3][4]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지나도록 설계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으로 만들어졌다.[3][4] 1978년 10월 18일 착공 당시에는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공사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당시 동작대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3. 2. 민자 유치 사업
동작대교는 원래 1978년 5월 서울시가 발표한 폭 40~50m, 연장 15km의 후암동 병무청에서 남태령을 지나 정부과천청사를 잇는 동작대로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2] 이 도로는 용산기지를 통과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이에 맞춰 건설되었다.1978년 10월 18일 구자춘 서울시장, 남덕우 부총리,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이 열렸다.[3] 당시 동작대교는 폭 22m에 전철 구간 폭 12m를 더해 전체 폭 40m, 길이 1,320m로, 대한민국 최초로 랭거아치(Langer-arch)형으로 설계되었으며 1981년 9월에 개통할 예정이었다.[3][4]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지나도록 설계되어 교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상판 대신 강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랭거아치형으로 설치되었다. 당시 동작대교 건설은 원효대교처럼 대우개발이 투자 및 시공을 맡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시행되어 20년간 통행 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3][4] 당시 동작대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다리였다.[5]
착공 후 8개월 동안 수중 작업을 통해 교량 하부구조인 우물통을 설치했으며[6], 1980년 5월부터 하부 교각 공사를 마무리하고 상부 구조물 공사에 들어갔다.[7] 그러나 1980년 말부터 대우개발이 자금 조달 문제 및 공사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사 사업을 서울시에 반납하면서 1981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다.[8] 약 1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서울시가 1982년 1월에 공사를 다시 발주해 건설하기 시작했다.[9]
4. 개통 효과
동작대교 개통으로 이웃한 한강대교와 반포대교의 통행량이 25~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서울 도심에서 과천시까지 직접 연결되어 과천정부청사까지 이동 시간이 약 5~10분 단축되었다.[15]
4. 1. 대중교통 연계
동작대교 개통으로 한강대교와 반포대교의 통행량이 25~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서울 도심에서 과천시까지 직접 연결되어 과천정부청사까지 이동 시간이 약 5~10분 단축되었다. 1984년 11월 15일부터 버스 노선이 조정되어 88번(사당동~망원동), 97번(과천~신세계), 156-1번(구파발~고속터미널), 288번(개포동~을지로4가) 일반시내버스와 89번(사당동~혜화동), 797번(군포시~신세계) 좌석버스가 이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또한 97번 버스 중 24대를 97-1번으로, 288번 버스 중 13대를 288-2번으로 변경하여 한강로 ~ 용산역 ~ 서빙고로 ~ 동작대교 ~ 신반포로 ~ 고속버스터미널 구간을 운행하게 했다.[15][16]5. 경로 문제
동작대교 건설 당시 용산구에 있던 미군기지를 이전하고 그 부지를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하여 후암동으로 연결, 서초동 - 반포동 - 동부이촌동 - 후암동 - 남대문 - 시청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중단되면서 동작대교는 다리 북단이 끊어진 형태를 띠게 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동작대교 銅雀大橋 (Dongjak Bridge)
http://100.nate.com/[...]
2009-07-13
[2]
뉴스
15km(km)·폭40~50m 江北(강북)~果川(과천) 새幹線道路(간선도로)건설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8-05-27
[3]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 오늘착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8-10-18
[4]
뉴스
확정된 銅雀大橋(동작대교)조감도…工程(공정)16% 81년完工(완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9-10-02
[5]
뉴스
◇폭40m로 우리나라서가장 넓은 다리가될 동작대교조감도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78-10-18
[6]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공사8개월…모슴드러낸橋梁(교량)우물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9-07-10
[7]
뉴스
한강교량중 가장 폭이 넓은 동작대교가 하부교각공사를 거의 마쳐 상부구조물공사에 착수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0-05-19
[8]
뉴스
大宇(대우),공사비감당못해 市(시)에반납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81-10-29
[9]
뉴스
대형공사79件(건) 앞당겨發注(발주)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2-02-18
[10]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 9月(월) 개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84-02-13
[11]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준공식 참석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4-11-14
[12]
뉴스
올해建設(건설) 8개교량·30개 도로 着工(착공).完工(완공)시기 확정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80-02-14
[13]
뉴스
金湖(금호)·銅雀大橋(동작대교) 내년末(말) 개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83-12-24
[14]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 개통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84-11-14
[15]
뉴스
銅雀大橋(동작대교)개통따른 交通(교통)효과 都心(도심)서 果川(과천)까지 10分(분)단축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4-11-14
[16]
뉴스
盤浦(반포)·제1漢江橋(한강교) 병목현상해소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84-11-1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