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로베르가는 7세기부터 벨기에, 프랑스, 독일 지역에서 활동한 가문으로, 서프랑크 왕국과 프랑스 왕국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가문의 시조는 파리 백작 강력공 로베르로, 그의 후손들은 에스바유 백작, 보름스 백작 등을 역임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특히, 로베르 가문은 카페 왕조를 통해 프랑스 왕위를 차지하며 프랑스 왕국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카롤링거 가문, 오토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혈족 관계를 형성하여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왕가 - 왕실
왕실은 군주와 직계 가족 및 혈연으로 구성되며 정치 체제에 따라 권한이 다르지만, 고유한 역사와 전통으로 국가의 정체성 유지에 기여하며 왕정 복고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 로베르가 - 로베르 르 포르
9세기 서프랑크 왕국의 유력 귀족이었던 로베르 르 포르는 앙주 백작과 투르의 생 마르탱 수도원장을 지냈으며, 바이킹과 브르타뉴인의 침략을 막는 데 공헌하고 카페 왕조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브리사르트 전투에서 전사했다. - 로베르가 - 위그 르 그랑
위그 르 그랑은 로베르티앙 가문의 일원으로서 서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자 네우스트리아의 유력자였으며, 아버지의 왕위 계승을 거부하고 루이 4세를 옹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부르고뉴 공작령을 얻어 세력을 확장했으며, 그의 아들 위그 카페는 카페 왕조를 열었다.
로베르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로베르가 정보 | |
유형 | 왕가 |
원어 명칭 | Robertiens |
원어 명칭 (언어) | 프랑스어 |
국가 | 프랑키아 서프랑키아 |
설립 | 기원후 800년경 |
설립자 | 로베르 2세 드 에스베 |
최종 통치자 | 위그 르 그랑 |
해산 | 956년 |
작위 | |
주요 작위 | 프랑크인의 왕 |
기타 작위 | 프랑크 공작 부르고뉴 공작 네우스트리아 변경백 파리 백작 에스바유 백작 오를레앙 백작 보름스 백작 |
분가 | |
주요 분가 | 카페 왕조 |
카페 왕조 분가 | 부르고뉴 가문 베르망두아 가문 드뢰 가문 쿠르트네 가문 아르투아 가문 앙주 카페 가문 부르봉 왕가 발루아 가문 에브뢰 가문 |
바벤베르크 | 포포 가문 |
2. 로베르가의 역사와 계보
로베르 가문의 역사는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가문은 7세기부터 벨기에 동부 에스베(Hesbaye) 지역에서 시작되어, 프랑크 왕국과 서프랑크 왕국, 그리고 카페 왕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왕국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7세기, 벨기에 동부 하스펭가우(에스베이, Hesbaye)에서 시작된 로베르 가문은 영주나 성직자를 지낸 기록이 남아있다. 8세기 후반에는 독일 보름스에 거점을 마련했다.[3]
강력공 로베르 (822/830–866) 대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되자 서프랑크 왕국으로 옮겨 샤를 2세에게 중용되었다. 노르만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강력공 로베르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파리의 오도 (857/860-898)는 885-886년 파리를 포위한 노르만인을 격퇴하고 888년 서프랑크 왕국 왕으로 추대되었다. 오도의 동생 로베르 1세 (866–923) 역시 922년 서프랑크 왕위에 올랐다.
로베르 1세의 아들 위그 르 그랑 (898–956)은 루아르 강과 센 강 사이 대부분 지역을 소유한 대영주가 되었고, 936년 프랑스 공작 지위를 얻었다.[9] 그의 아들 위그 카페 (c.939–996)는 987년 서프랑크 왕국 왕으로 선출되어 카페 왕조를 개창하였다.
카롤링거 왕조는 루이 5세 (987년 사망)의 죽음으로 프랑스 통치를 멈추었다. 이후 위그 카페가 프랑크 왕으로 선출, 카페 왕조를 열었다. 카페 왕조는 프랑스 혁명까지, 그리고 1815년 이후 루이필리프가 1848년에 폐위될 때까지 프랑스를 통치했다.
스페인에서는 부르봉 왕조를 통해 두 차례의 공화국 시기를 거쳐 현재의 왕 펠리페 6세까지 로베르 가문의 후손들이 통치하고 있다.
로베르 가문의 분가로는 바벤베르크 가문(포폰 가문)이 있다.
2. 1. 초기 기원
가장 오래된 로베르티안 가문은 현대 벨기에의 통게렌 주변 에스베이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확실한 조상은 파리 백작 강력공 로베르이며,[1] 아마도 보름스의 로베르 3세의 아들이자 에스베이의 로베르의 손자, 에르망가르드 드 에스베이의 조카일 것이다. 에르망가르드는 잉그람의 딸이자 경건왕 루이의 아내였다. 다른 관련 가문으로는 로르슈 수도원의 설립자인 칸코르, 그의 누이 란드라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성 크로데강(메츠의 대주교)이 있다.벨기에 동부 하스펭가우(에스베이, Hesbaye)에서 시작된 호족으로, 영주나 성직자를 지낸 기록이 7세기부터 남아있다. 8세기 후반에는 독일 보름스에 거점을 마련했다고 한다.[3]
2. 2. 주요 인물 및 가계
로베르 가문은 현재 벨기에 동부 에스베(Hesbaye) 지역에서 시작된 귀족 가문으로, 7세기부터 영주나 성직자를 지낸 기록이 남아있다. 8세기 후반에는 독일의 보름스에 거점을 마련했다.[3]로베르 가문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에스바유의 로베르 1세''' (697-748): 에스베이 백작이자 누스트리아 공작. 보름스의 빌리스빈다와 결혼했다.
- '''캉코르''' (771년 사망): 로르슈 수도원 설립.
- '''헤스베이의 투링베르트''' (735-770)
- '''에스바유의 로베르 2세''' (770–807): 에스바유의 로베르 1세의 손자.
- '''보름스의 로베르 3세''' (800–834): 에스바유의 로베르 2세의 아들.
- '''강력공 로베르''' (822/830–866): 보름스의 로베르 3세의 아들.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되자 서프랑크 왕국으로 옮겨 샤를 2세에게 중용됨. 노르만인과의 전투에서 전사.
- '''파리의 오도''' (857/860-898): 강력공 로베르의 아들. 885-886년 파리를 포위한 노르만인 격퇴, 888년 서프랑크 왕국 왕으로 추대.
- '''로베르 1세''' (866–923): 강력공 로베르의 아들이자 파리의 오도의 동생. 922년 서프랑크 왕국 왕위에 오름.
- '''위그 르 그랑''' (898–956): 로베르 1세의 아들. 루아르 강과 센 강 사이 대부분의 지역을 소유한 대영주. 936년 프랑스 공작 지위 획득.[9]
- '''위그 카페''' (c.939–996): 위그 르 그랑의 아들. 987년 서프랑크 왕국 왕으로 선출, 카페 왕조 개창.
로베르 1세의 아들 오도와 로베르는 모두 서프랑크 왕국의 왕이었으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통치했다. 로베르 가문은 오도 치하에서 파리 백작, 로베르 치하에서는 "프랑크 공작"이 되어 고대 네우스트리아의 많은 부분을 소유했다.
카롤링거 왕조는 루이 5세 (987년 사망)의 죽음으로 프랑스 통치를 멈추었다. 이후 위그 르 그랑의 아들 위그 카페가 프랑크 왕으로 선출, 카페 왕조를 열었다. 카페 왕조는 프랑스 혁명까지, 그리고 1815년 이후 루이필리프가 1848년에 폐위될 때까지 프랑스를 통치했다.
스페인에서는 부르봉 왕조를 통해 두 차례의 공화국 시기를 거쳐 현재의 왕 펠리페 6세까지 로베르 가문의 후손들이 통치하고 있다.
로베르 가문의 분가로는 바벤베르크 가문(포폰 가문)이 있다.
2. 2. 1. 테루안느의 귀족들 (가설)
로베르 가문의 분파 중 하나로, 테루안느(Thérouanne)의 귀족으로 추정되는 가문이다.미상의 아버지로부터 삼형제가 태어났다.
- '''로베르''' (Robert): 다고베르투스 1세의 상서이자 654년 네우스트리아 궁재.[1]
- '''알드베르''' (Aldebert): 수도사.[1]
- '''에를베르''' (Erlebert)[1]
에를베르는 아래의 자식들을 낳았다.
- '''리옹의 성 랑베르''': 퐁트넬의 2대 수도원장, 그 후 678년부터 리옹 주교.[1]
- '''로베르''': 654년부터 677년까지 클로타리우스 3세의 궁정백이자 네우스트리아 공작.[1]
클로타리우스 3세의 승상(''chancelier'')인 로베르는 테오드라드와 결혼하여 아래의 자식들을 낳았다.
- '''라뇨베르''' (Ragnobert): 궁재 에브로인에 대한 음모로 고발당해서 678년 사형당함.[1]
- '''앙가드리스마''' (Angadrisma): 앙스베르와 결혼. 퐁트넬의 3대 수도원장 겸 684년부터 692년까지 루엥 주교[1]
- (추정) '''마스트리히트의 성 랑베르''': 669년부터 705년까지 리에주 주교[1]
- (추정) '''폴셰드''' (Folchaide): 아길로핑 가문의 바이에른 공작 테오동 2세 (716년 사망)와 결혼.[1]
2. 2. 2. 에스바유 백작 (확실)
로베르 가문의 분가 중 하나로, 에스바유 백작 작위를 가진 것이 확실한 가문이다.이름 | 비고 |
---|---|
에스바유의 랑드라다 | 에스바유의 시그람과 결혼 |
성 크로도강 (766년 사망) | 메츠 대주교이자 로르슈 수도원장 |
에스바유의 로베르 1세 (697-748) | 에스바유 백작이자 누스트리아 공작, 보름스의 빌리스빈다와 결혼 |
에스바유의 로베르 1세의 자녀 | |
캉코르 (771년 사망) | 로르슈 수도원 설립자 |
에스바유의 시그람 | |
에스바유의 투링베르트 (735-770) | |
캉코르의 자녀 | |
하임리히 (795년 사망) | 란가우 백작 |
하임리히의 자녀 | |
그라프펠트의 포포 (839–841년 사망) | 프랑크 바벤베르크 가문의 조상 |
에스바유의 시그람의 자녀 | |
에스바유의 잉게르만 (750-818) | |
에스바유의 잉게르만의 자녀 | |
에르멩가르트 오브 헤스베이 (778-818) | 황제 경건왕 루이의 아내 |
에스바유의 투링베르트의 자녀 | |
에스바유의 로베르 2세 (770–807) | |
에스바유의 로베르 2세의 자녀 | |
보름스의 로베르 3세 (800–834) | |
보름스의 로베르 3세의 자녀 | |
강력공 로베르 (830–866) | |
강력공 로베르의 자녀 | |
파리의 오도 (857-898) | 888년부터 서프랑크 왕국의 왕, 트로예의 테오드라트와 결혼 |
로베르 (866–923) | 922년부터 서프랑크 왕국의 왕, 베르망두아의 베아트리체와 재혼 |
파리의 오도의 자녀 | |
라울 | |
아르누프 | |
기 | |
로베르의 자녀 | |
엠마 (894–935) | 부르고뉴의 라울과 결혼 |
아델라 | 베르망두아의 에르베르 2세와 결혼 |
위그 르 그랑 (898–956) | 작센의 헤드비지(독일 왕 사냥꾼 하인리히의 딸)와 재혼 |
위그 르 그랑의 자녀 | |
베아트리스 (c.938–987) | 바의 프리드리히 1세와 결혼 |
위그 카페 (c.939–996) | 카페 왕조의 조상 |
파리의 엠마 (c.943–968) | 노르망디 공작 리처드 1세와 결혼 |
파리의 오토 (c.944–965) | 956년부터 부르고뉴 공작 |
오도-앙리 (c.946–1002) | 965년부터 부르고뉴 공작 |
기타 | |
에스바유의 랑베르 | 카페 왕조의 선조로 추정됨 |
2. 2. 3. 기타 분가 (가설)
헤스베이의 로베르 1세 (697-748)- 캉코르 (771년 사망)
- * 하임리히 (795년 사망)
- ** 그라프펠트의 포포 (839–841년 사망), 프랑크 바벤베르크 가문의 조상
- 란드라다
- * 성 크로도강 (766년 사망)
- * 헤스베이의 시그람
- ** 헤스베이의 잉게르만 (750-818)
에르멩가르트 오브 헤스베이 (778-818)
- 헤스베이의 투링베르트 (735-770)
- * 헤스베이의 로베르 2세 (770–807)
- ** 보름스의 로베르 3세 (800–834)
강력공 로베르 (830–866)
* 파리의 오도 (857-898)
** 라울
** 아르누프
** 기
* 리칠디스 또는 레길린디스
* 로베르 (866–923)
** 엠마 (894–935)
** 아델라
** 위그 르 그랑 (898–956)
*** 베아트리스 (c.938–987)
*** 위그 카페 (c.939–996), 카페 왕조의 조상
*** 파리의 엠마 (c.943–968)
*** 파리의 오토 (c.944–965)
*** 오도-앙리 (c.946–1002)
*** 에르베르 (996년 사망)
3. 로베르 가문, 카롤링거 가문, 오토 가문 사이의 혈족 관계
(† 814)
황제
백작
힐데가르다
(777 † 810)
이탈리아 국왕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 840)
황제
(797 † 818)
이탈리아 국왕
지젤
에브라르
프리울 후작
에스바유 백작
발드라다
(823 † 877)
프랑스 국왕
(† ap.850)
백작
(† 886)
네우스트리아 후작
인겔트루다
(846 † 879)
프랑스 국왕
(† 900/907)
베르망두아 백작
(† 866)
네우스트리아 후작
오토
(† 912)
작센 공작
헤드비가
(860 † 923)
프랑스 국왕
(876 † 936)
독일 국왕
샤를 3세
(879 † 929)
프랑스 국왕
(† 956)
프랑크 공작
(† 965)
(912 † 973)
황제
게르베르가
(† 969)
루이 4세
(† 954)
프랑스 국왕
(955 † 983)
황제
로테르
(† 986)
프랑스 국왕
(† 996)
프랑스 국왕
프로방스 백작
(† 993)
아델라이드
(† 1026)
(† 987)
프랑스 국왕
(† 1031)
프랑스 국왕
(†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