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2세 드 로렌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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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르네 2세 드 로렌 공작은 1473년 로렌 공작이 되었으며, 부르고뉴 공작 샤를 용담공을 상대로 낭시 전투에서 승리하여 부르고뉴 전쟁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그는 1470년 보데몽 백작을 상속받았고, 1480년에는 바르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르네 2세는 프랑스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영토 확장을 시도했으나, 프랑스 왕 샤를 8세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다. 그는 1508년 사망했으며, 로렌 공작, 기즈 공작 등을 배출하며 가문을 번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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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2세 드 로렌 공작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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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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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로렌 공작 |
통치 기간 | 1473년 7월 24일 – 1508년 12월 10일 |
이전 통치자 | 니콜라 1세 |
다음 통치자 | 앙투안 |
작위1 | 바 공작 |
통치 기간1 | 1483년 3월 23일 – 1508년 12월 10일 |
이전 통치자1 | 욜랑드 |
다음 통치자1 | 앙투안 |
작위2 | 보데몽 백작 |
통치 기간2 | 1470년 8월 31일 – 1508년 12월 10일 |
이전 통치자2 | 욜랑드 |
다음 통치자2 | 앙투안 |
가문 | 로렌 |
아버지 | 프레데리크 2세 드 보데몽 |
어머니 | 욜랑드 드 로렌 |
배우자 | 필리프 드 구엘드르 (1485년 결혼) |
출생일 | 1451년 5월 2일 |
출생지 | 앙제 |
사망일 | 1508년 12월 10일 (57세) |
사망지 | 팽 |
자녀 |
2. 생애
페리 2세 드 보데몽과 욜랑드 당주의 아들로 앙제에서 태어난 르네 2세는 어린 시절을 할아버지 르네 당주의 궁정에서 보냈다. 147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데몽 백작이 되었고, 1473년에는 삼촌에게서 앙주의 요직을 물려받았다. 같은 해, 외사촌 니콜라 당주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어머니 욜랑드가 로렌 공국을 상속받았으나, 곧 르네 2세에게 양위하였다.
1474년, 용담공 샤를이 로렌에 주둔군을 배치하려 하자, 르네는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비밀 동맹을 맺었다. 샤를이 로렌 공국을 침략하면서, 르네는 1475년 낭시를 떠나야 했다. 그는 이듬해인 1476년 10월 5일에 낭시를 되찾고 스위스 용병 부대를 고용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동했다. 1477년 1월 5일, 르네는 이 부대를 이끌고 낭시 전투에서 샤를을 격파하고 전사시켜 부르고뉴 전쟁을 종식시켰다.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처음에는 동맹 관계였으나, 이후 관계가 악화되었다. 루이 11세는 르네 2세의 영토 대부분을 빼앗았다. 1482년 아라스 조약으로 부르고뉴 백작령이 프랑스에 넘어가고, 1493년 상리스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가에 넘어가면서 르네 2세는 부르고뉴 공작령을 통치하지 못했다.
1480년 르네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할아버지에게서 바르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1482년 룩셈부르크 공국의 일부인 비르통을 정복해 바르에 합병시켰다. 1484년 어린 샤를 8세의 섭정이던 피에르 2세 드 부르봉은 그를 공식적으로 바르 공작에 임명하였다. 1483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나폴리 왕국과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권리를 계승하였다.
1482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동맹으로 이탈리아에 갔으나, 아드리아 전투에서 페라라 공작에게 패배하였다. 1485년 "광기 전쟁"에 참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에서 빠졌다. 1488년 나폴리인들이 나폴리 왕국의 왕위를 제안했으나, 샤를 8세에 의해 좌절되었다.
1495년 할머니의 유산을 놓고 6촌 장 4세 드 리외와 분쟁하여 아르쿠르 백작령을 넘기고, 엘뵈프와 브리옹만 유지했으며, 오말 백국을 받았다.
르네는 팽에서 사냥 도중 병을 얻어 1508년에 사망했다.
2. 1. 가문 배경 및 초기 생애
페리 2세 드 보데몽과 욜랑드 당주의 아들로 앙제에서 태어났다. 르네는 앙제와 프로방스 사이에서 할아버지 르네 당주의 궁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70년 보데몽 백작이 되었고, 3년 후 삼촌의 뒤를 이어 앙주의 캡틴, 원수이자 앙주의 총독이 되었다. 그해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부르고뉴의 용담공 샤를의 압박을 받던 로렌 공작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샤를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샤를이 로렌에 주둔군을 배치하자 르네는 루이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1474년).샤를은 공국을 침략했고 르네는 낭시를 떠나야 했다(1475년 11월 30일). 이듬해 10월 5일 도시를 되찾고 스위스 용병 부대를 고용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동했다. 이 부대로 르네는 낭시 전투 (1477년 1월 5일)에서 샤를을 물리치고 죽여 부르고뉴 전쟁을 종식시켰다. 1476년 할머니가 사망하자 아르쿠르 백작과 엘뵈프 남작을 단독으로 상속받았다.
2. 2. 로렌 공작 즉위
페리 2세 드 보데몽과 욜랑드 당주의 아들로 앙제에서 태어났다. 1473년에 외사촌 로렌 공작 니콜라 당주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어머니 욜랑드가 로렌 공국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 해 안에 욜란드는 장남 르네에게 권한을 양도하고 정치에서 물러났다. 이렇게 르네 2세는 부모 양쪽의 혈통을 바탕으로 로렌 공국과 보데몽 백작령을 상속했다.같은 해 그는 당시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초창기에는 동맹이기도 했던 부르고뉴의 용담공 샤를의 압박에 놓여있던 로렌 공작이 되었다. 이후 르네는 로렌 지역에 수비 시설을 갖췄으며, 루이와 비밀 동맹을 맺었다(1474년). 샤를은 로렌 공국을 침략했고 르네는 낭시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1475년 11월 30일). 다음 해 10월 5일에 그는 로렌을 탈환해냈고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하기 위해 스위스로 떠났다. 이 군대가 부르고뉴 전쟁을 종전시킨 낭시 전투 (1477년 1월 5일)에서 샤를을 패배시키고 전사시켜냈다.
2. 3. 부르고뉴 전쟁과 낭시 전투
1474년, 용담공 샤를이 로렌에 주둔군을 배치하려 하자, 르네는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비밀 동맹을 맺었다. 샤를이 로렌 공국을 침략하면서, 르네는 1475년 11월 30일에 낭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듬해인 1476년 10월 5일에 낭시를 되찾고 스위스 용병 부대를 고용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동했다. 1477년 1월 5일, 르네는 이 부대를 이끌고 낭시 전투에서 샤를을 격파하고 전사시켜 부르고뉴 전쟁을 종식시켰다.2. 4. 프랑스와의 관계
르네 2세는 프랑스의 루이 11세와 처음에는 동맹 관계였으나, 이후 관계가 악화되었다. 루이 11세는 르네 2세의 영토 대부분을 빼앗았고, 1478년 6월에는 앙주와 프로방스에 대한 왕가의 압수에 대한 보상으로 룩셈부르크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령의 과거 부르고뉴 소유지에 대한 르네 2세의 권리를 재확인해주었다. 이 권리는 르네 2세와 그의 후손들에게 전해졌다.[1]1482년 아라스 조약으로 부르고뉴 백작령이 프랑스에 넘어가면서 이 권리가 실현되는 듯했으나, 1493년 상리스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가에 넘어가면서 르네 2세는 부르고뉴 공작령을 통치하지 못했다. 룩셈부르크에 대한 권한도 비르통을 점령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론에 불과했으며, 룩셈부르크 공국은 르네 2세 생전에는 합스부르크의 소유지로 남았다.
1484년, 어린 샤를 8세의 섭정이던 피에르 2세 드 부르봉은 르네 2세를 공식적으로 바르 공작에 임명하였다. 1485년 르네 2세는 "광기 전쟁"에 참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에서 빠졌다. 1488년 나폴리인들이 르네 2세에게 나폴리 왕국의 왕위를 제안했고, 르네 2세는 영토 확장을 준비했으나, 나폴리를 자신의 영지로 만들고 싶었던 샤를 8세에 의해 중단되었다.
2. 5. 말년
르네는 팽에서 사냥 도중 병을 얻었고 1508년에 사망했다.[1] 그의 성인 아들들인 앙투안은 로렌 공작을, 클로드는 후에 프랑스로부터 기즈 공작을, 베르됭 주교 루이 드 로렌은 보데몽 백작을 각각 계승하여 분가했고, 결과적으로 일반 지방 영주 이상으로 자손이 번성하여 현재 유럽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3. 가족
르네 2세는 1485년 9월 1일 오를레앙에서 아돌프 드 구엘드레의 딸인 필리프 드 구엘드레와 혼인하여 다음과 같은 자식들을 두었다.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샤를 | 1486년 8월 17일 낭시 | 어릴 때 사망 | |
프랑수아 | 1487년 7월 5일 퐁타무송 | 출생 때 사망 | |
앙투안 드 로렌 | 1489년 | 1544년 | 로렌 공작 |
안 | 1490년 12월 19일 바르르뒤크 | 1491년 | |
니콜라 | 1493년 4월 9일 낭시 | 어릴 때 사망 | |
이자벨 | 1494년 11월 2일 뤼네빌 | 1508년 이전 | |
클로드 드 로렌 | 1496년 | 1550년 | 초대 기즈 공작 |
장 3세 드 로렌 | 1498년 | 1550년 | 로렌 추기경, 메스 주교 |
루이 드 보데몽 | 1500년 | 1528년 | |
클로드와 카트린 | 1502년 11월 24일 바르르뒤크 | 쌍둥이, 어릴 때 사망 | |
프랑수아 | 1506년 | 1525년 | 랑벡 백작 |
1471년 9월 9일 탕카르빌의 여백작 잔 다르쿠르(Jeanne d'Harcourt)와 혼인하였으나 1485년에 혼인은 무효가 되었다.[1]
4. 유산 및 평가
르네 2세는 로렌 공작 장 1세의 증손자인 보데몽 백작 페리 2세와 나폴리 왕 르네 1세 및 로렌 여공작 이자벨의 딸인 욜랑드 당주 사이에서 앙제에서 태어났다.
1473년 외사촌 로렌 공작 니콜라 당주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어머니 욜랑드가 상속했지만, 그 해 장남 르네에게 권한을 양도하고 정치에서 물러났다. 르네 2세는 부모 양쪽의 혈통을 바탕으로 로렌 공국과 보데몽 백작령을 상속했다.
영토 확대를 노린 부르고뉴 공작 샤를 용담공과 격돌, 1477년 낭시 전투에서 스위스 용병의 힘을 빌려 용담공을 쳐부수었다.
1508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성인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가문을 이었다.
아들 | 상속 내용 |
---|---|
앙투안 | 로렌 공작 |
클로드 | 기즈 공작 (프랑스로부터 받음) |
Louis, Count of Vaudémont|루이 드 로렌영어 | Count of Vaudémont|보데몽 백작영어 (베르됭 주교) |
결과적으로 일반 지방 영주 이상으로 자손이 번성하여 현재 유럽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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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작위
페리 2세 드 보데몽과 욜랑드 당주의 아들인 르네 2세는 1470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데몽 백작이 되었다. 1476년에는 할머니가 사망하면서 아르쿠르 백작과 엘뵈프 남작 작위를 받았다.[1] 1480년에는 할아버지에게서 바르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다.[1] 1483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나폴리 왕국과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계승권을 주장했다.[1] 1495년, 6촌인 장 4세 드 리외와의 분쟁 끝에 아르쿠르 백작령을 넘겨주고 엘뵈프와 브리온을 유지했으며, 오말 백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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