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마스조에 요이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스조에 요이치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학자이다.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대학교, 제네바 국제고등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도쿄 대학 조교수를 역임했다. 1980년대부터 TV 토론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 후생노동대신을 역임했다. 2010년 자민당을 탈당하여 신당개혁을 창당했고,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2016년 사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국제관계학자 - 아키라 이리에
    아키라 이리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로, 외교사에 문화적 관점을 통합하여 국제 관계 연구를 확장하고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 냉전 시대 아시아 등에 대한 연구로 학계에 기여했으며, '역사의 국제화'를 주장하며 국제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일본의 국제관계학자 - 오가타 사다코
    오가타 사다코는 1927년 도쿄에서 태어나 2019년 사망한 일본의 외교관이자 학자이며, 유엔 난민 기구 수장, 일본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 특별 대표, 국제협력기구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 사회에 기여했다.
  • 도쿄도지사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도쿄도지사 - 미노베 료키치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미노베 료키치는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를 바탕으로 도쿄도지사를 3선 역임하며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나, 재정 적자와 친북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 일본의 후생노동대신 - 시오자키 야스히사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에히메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며 아베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 등을 지냈고, 일본회의 회원으로 우익 성향을 보였으며, 2021년 총선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였다.
  • 일본의 후생노동대신 - 고토 시게유키
    고토 시게유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며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나가노현 제4구에서 8선 의원을 지냈고, 후생노동대신, 경제재생담당대신, 감염증 위기 관리 담당대신 등을 역임하며 헌법, 외교·안보, 젠더, 에너지 정책 등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표명해 왔다.
마스조에 요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4년 요이치 마스조에 공식 사진
2014년 공식 사진
출생 이름舛添 要一 (ますぞえ よういち)
출생일1948년 11월 29일 ()
출생지후쿠오카현기타큐슈시야하타히가시구
거주지도쿄도세타가야구
국적일본
배우자프랑스인 여성 (1978년 결혼, 1981년 이혼)
가타야마 사쓰키 (1986년 결혼, 1989년 이혼)
일본인 여성 (1996년 결혼)
자녀5명
학력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국제 대학원 개발 연구소
직업정치 평론가
종교알려진 정보 없음
서명알려진 정보 없음
웹사이트요이치 마스조에 공식 웹사이트
정치 경력
소속 정당무소속 (2013년–현재)
자유민주당 (2001년–2010년)
신당 개혁 (2010년–2013년)
공직 경력
도쿄도지사임기 시작: 2014년 2월 9일
임기 종료: 2016년 6월 21일
이전: 이노세 나오키
이후: 고이케 유리코
신당 개혁 대표임기 시작: 2010년 4월 23일
임기 종료: 2013년 7월 22일
이전: 와타나베 히데오
이후: 아라이 히로유키
후생노동대신임기 시작: 2007년 8월 27일
임기 종료: 2009년 9월 16일
총리: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이전: 야나기사와 하쿠오
이후: 나가쓰마 아키라
참의원 의원임기 시작: 2001년 7월 29일
임기 종료: 2013년 7월 28일
선거구: 비례대표
기타 정보
학위법학사 (도쿄 대학, 1971년)

2. 생애

후쿠오카현 야하타 시(현 기타큐슈시)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파리 대학교 현대 국제 관계사 연구소, 제네바 고등국제 정치 연구소 객원 연구원을 거쳐 1979년 도쿄대 교양학부 조교수가 되었다. 프랑스 정치 외교, 국제관계론 등을 연구했다.[191]

1980년대부터 TV 토론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1989년 도쿄대 퇴임 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방송 출연을 통해 국제 정세, 문화, 사회 문제 등을 다뤘다.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했다.[191]

2001년 자민당 소속으로 참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해 1위로 당선되었고, 2007년 재선에 성공했다.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에서 후생노동대신으로 임명되어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까지 연임했다. 2009년 자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며 장관직에서 물러났다.[191]

2010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개혁을 창당해 대표가 되었으나,[191] 당세 부진으로 2013년 참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자민당 등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었다. 2020년 하계 올림픽 시설 정비비 절감, 국립 경기장 재건축 관련 유식자 회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고,[88] 방재 핸드북 "도쿄 방재"를 기획했으며,[90] 신은행 도쿄와 도쿄 TY 파이낸셜 그룹의 경영 통합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91][92]

2016년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도쿄도지사직을 사임했다.[191]

마스조에 요이치 생애 요약
연도사건
1948년 11월 29일후쿠오카현야하타시 (현재의 기타큐슈시야하타히가시구)에서 출생
1967년 3월 31일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 졸업
1971년 6월 30일도쿄 대학 법학부 제3류(정치 코스) 졸업
1971년 7월 1일도쿄 대학 법학부 제3류 조교 부임
1973년 - 1978년파리 대학교, 제네바 국제 연구 대학원 객원 연구원
1979년 - 1989년도쿄 대학 교양학부 정치학 조교수
1989년 - 2007년마스조에 정치경제연구소 소장
1999년도쿄도지사 선거 출마 (3위)
2001년 - 2013년참의원 의원 (자민당, 신당개혁)
2007년 - 2009년후생노동대신
2010년신당개혁 창당 및 대표 취임
2014년 - 2016년도쿄도지사
2016년도쿄도지사 사임



2017년 저서 『도지사 실격』을 간행하고,[147] 미디어에 복귀하여 국제 정치학자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2. 1.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마스조에 요이치는 1948년 11월 29일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태어났다.[2] 후쿠오카현야하타시 (현: 기타큐슈시야하타히가시구)에서 아버지 야지로, 어머니 유키노(어머니는 나가노현고마가네시의 고이케 가문 출신)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4명의 누나가 있다.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마스조에 가문은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촌장 가문이다.[50]

아버지는 1930년 와카마츠시 시의원 선거에 입헌 민정당 진영에서 입후보한 적이 있지만 낙선했다.[51] 와카마츠에서 석탄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 야하타히가시구에서 채소가게로 전업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요이치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근처 목재화재로 가게가 불탄 이후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가족은 장녀 등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52]

야하타 시립 이와이마치 초등학교(현: 기타큐슈 시립 이와이마치 초등학교), 동 오쿠라 중학교를 거쳐[53] 후쿠오카 현립 야하타 고등학교에서는 육상부 단거리 선수로 인터하이에도 출전했다.[54] 도쿄 대학에 진학하여, 교양 과정에서는 사토 세이자부로의 세미나에 소속되었다. 법학부에서는 제3류 (정치 코스)로 진학하여, 오카 요시타츠의 세미나에서 정치학, 시노하라 하지메의 세미나에서 유럽 정치사를 각각 배웠다.[55] 1971년 6월에 졸업했다.

1967년 야하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법학, 정치학, 역사학을 전공했다.[2] 1971년부터 도쿄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했으며, 이후 파리 대학교 (1973–75)와 제네바의 국제고등연구원 (1976–78)에서 연구원으로 수년간 유럽에서 활동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도쿄 대학 조교수를 역임했다.[2]

다음은 마스조에 요이치의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의 연표이다.

연도사건
1948년 11월 29일후쿠오카현야하타시 (현재의 기타큐슈시야하타히가시구)에서 출생
1967년 3월 31일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 졸업
1971년 6월 30일도쿄 대학 법학부 제3류(정치 코스) 졸업
1971년 7월 1일도쿄 대학 법학부 제3류 조교에 부임
1973년 9월파리 대학교 현대 국제 관계사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부임(1975년 6월 퇴임)
1976년 9월제네바 국제 연구 대학원 객원 연구원으로 부임(1978년 6월 퇴임)
1979년 4월도쿄 대학 교양학부 정치학 조교수로 부임(1989년 6월 퇴임)



유도고도칸 2단이다.[50] 언어에 능통하여 6개 국어에 정통하다.[182] 도쿄대 재학 중에는 영어 외에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 과목의 제3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으며, 네이티브 선생님에게 1대1로 러시아어와 스페인어를 배웠다.

2. 2. 학자로서의 경력

도쿄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대학 현대 국제 관계사 연구소 객원 연구원, 제네바 고등국제 정치 연구소 객원 연구원 등을 거쳐 1979년 도쿄대 교양학부 조교수에 취임했다. 프랑스의 정치 외교를 비롯하여 국제관계론 등을 연구해왔다.[191]

1971년 7월, 도쿄 대학 법학부 조수로 채용되어 시노하라 하지메 밑에서 유럽 정치를 공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로 건너갔다. 장서 자료나 지도 교관 등 도쿄 대학의 연구 환경이 좋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지만, 당시 조수 신분으로 유학은 이례적이어서 사유서까지 써야 했다.[56] 일불학원, 그르노블 대학교에서 프랑스어 연수를 받은 후, 파리 대학교 현대 국제 관계사 연구소 객원 연구원, 제네바 국제 고등 연구 대학원(HEI) 연구원으로 프랑스 외교사 연구를 진행했다(주로 전간기 프랑스의 안전 보장 정책 연구). 1979년에 도쿄 대학 교양학부 조교수로 취임(정치학)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정치·외교·안보에 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며, 국제 관계론 등을 강의했다.

1980년대 말부터 『아침까지 생방송!』, 『선데이 프로젝트』, 『비트 다케시의 TV 턱클』 등의 토론 프로그램에 빈번히 출연했다. 1989년 6월에 도쿄 대학의 체질을 비판하며 퇴관, 마스조에 정치경제연구소를 설립하여 독립했다. 독립 후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도 활동의 장을 넓혔다. 만담 심사위원도 맡았으며, 오타 히카루(폭소 문제)는 "우리 같은 젊은 시절, 심사위원과 다툼이 있었다. 우리 시대는 문화인이나 아이돌 등이 (심사위원을) 하는 거였다. 본방송 중에 재미없다고 말하길래, '네깟 게 뭘 아냐, 이 멍청아', '네 놈한테 듣고 싶지 않다, 꺼져'라고 말했는데 그 상대가 마스조에 요이치다. 그랬더니 회장이 싸늘해졌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엄청 싸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57]

2. 3. 정계 입문

1979년 도쿄 대학 교양학부 조교수가 되었고, 1980년대부터 TV 토론 방송 등에 자주 출연하여 토론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도쿄대의 체질을 비판하며 퇴임 후 프리랜서로 일본의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며 국제 정세, 문화, 사회 문제 등에 걸쳐 활동 범위를 넓혔다.[191]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이시하라 신타로, 하토야마 구니오에 이어 19명의 후보 중 3위로 84만 표를 획득했다.[5][191]

2001년 7월 자민당 소속으로 참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1,588,862표를 얻어 1위로 당선되었다.[191] 그의 주요 선거 공약은 일본은행법을 개정하여 일본은행의 정책을 바꾸는 것이었다.[6] 리처드 워너의 저서 『엔의 지배자』(『円の支配者』일본어)가 일본은행에 관한 책으로 일반 서적 판매 1위를 차지했고, 마스조에는 경기 침체를 종식시키고 미래의 금융 재앙과 신용 주도 호황-불황 사이클을 피하기 위해 일본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다.[7]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마스조에는 LDP 일본은행법 개혁 그룹을 결성하고 워너 교수를 고문으로 임명했다.[8]

2007년 7월 다시 참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8월 27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의 후생노동대신으로 임명되어 연금 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제를 담당했으며,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에서도 연임했다.[2][191] 재임 기간 동안 정부가 5천만 건의 연금 기록을 소유자와 일치시키지 못한 사건으로 비난을 받았다.[10]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면서 아소 내각은 총사퇴했고, 마스조에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4월 22일, 마스조에는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개혁을 창당하여 대표로 취임했다.[191]

2. 4. 후생노동대신 시절 (2007-2009)

2007년 8월 27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의 후생노동성 장관으로 임명되어, 연금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제를 담당했다. 이후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에서도 연임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면서 아소 내각은 내각 총사퇴를 했고 마스조에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191]

=== 연금 문제 ===

2007년 8월 말, 사회보험청과 사회보험사무소 직원들의 연금 보험료 횡령 문제가 발각되었을 때, 마스조에는 "도둑은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며 형사 고발을 약속했다.[151] 또한 사회보험청 직원보다 시구정촌 직원(이전에는 징수 업무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되어 있었다)의 횡령 건수와 횡령 총액이 더 많았던 점(사회보험청 직원 보험료 횡령: 52건, 약 1.69억, 시구정촌 직원 횡령: 101건, 약 2.43억)을 들어 "은행원은 (보험료를) 주머니에 넣을 리가 없다. 은행은 신용할 수 있지만, 사회보험청은 신용할 수 없다. 시정촌은 사회보험청보다 더 신용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연금 보험료 횡령이 확인되지 않은 자치단체 시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았지만, 마스조에는 "소인(しょうじん)의 잡소리에 어울릴 시간은 없다"고 발언했다.[152] 이 발언은 각지의 시장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2007년 10월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매우 부적절한 말이었다"고 말하며 철회했다.[153]

2007년,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에 "사라진 연금"이 선정되었고, 마스조에는 연금 문제의 당사자이자 행정 책임자인 후생노동대신으로서 시상식에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2007년 12월 11일, "사라진 연금"과 관련하여, 뜬 연금 기록 약 5000만 건 중 945만 건의 특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회보험청의 조사 결과를 받아 기자 회견을 열고, "다른 분이 대신이 되어도 결과는 같다. 없는 것은 없는 거니까", "(참의원 선거에서) 연금은 최대 테마이다. '못할지도 모르지만 해보겠습니다' 따위는 말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적반하장이라는 보도가 나왔다.[154]

사회보험청의 대장 보존, 정보 관리의 미비가 드러나는 가운데, 연금 기록 문제의 해결을 위해 속도를 높일 필요성을 느낀 마스조에는 2008년 1월 22일 대신 직속의 "연금 기록 문제 작업 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 멤버로는 하코다테 대학 객원 교수인 이소무라 모토시, 저널리스트인 이와세 타츠야 등 정부 비판파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2008년 11월 5일, 전국사회보험직원노동조합 등의 야미 전종을 하던 자와 책임자 20명 정도를 형사 고발할 방침을 밝혔다. 대신 직속의 "복무 위반 조사 위원회"는 고발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지만, 급여를 받으면서 조합 활동을 했던 행위는 공적 연금 제도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엄중한 대응을 취했다.[156]

=== 의료 문제 ===

마스조에의 자서전에 따르면, 나라현의 "오요도 병원 사건"(2007년 8월) 등을 배경으로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의 조사를 토대로 의사 부족 문제에 대한 대처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후생노동성은 현장의 의사들의 목소리와 180도 달랐고, 1997년 각의 결정을 근거로 "의사는 남아돈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마스조에는 2008년 1월, 의정국에 지시하여 "안심과 희망의 의료 확보 비전 검토 위원회"를 설치했다. 인선이 의정국에 의해 진행된 탓에 위원회의 논의는 의사 과잉론으로 흐르기 쉬웠지만, 마스조에는 현장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위원과 직원을 설득하여 "기존의 각의 결정을 대신하여 의사 양성 수를 증가시킨다" 등의 문구를 포함한 비전을 수립했다.[157]

2008년1월 19일, 의사 부족 문제에 대한 국민 대화 집회에서 "의사는 10년 후에나 성장한다. 만약 지금 부족한 의사를 확 늘린다면 10년 뒤에는 남아돌아 의사 홈리스가 생길 것이다"라고 발언하여 후생노동 대신으로서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58]

2008년 6월 27일, 위 비전의 주장을 담은 『뼈대 있는 방침』이 각의 결정되자, 정책 구체화를 서두르기 위해 7월, "'안심과 희망의 의료 확보 비전' 구체화에 관한 검토회"를 설치했다. 이 검토회의 위원은 스스로 인선을 진행하여 직접 전화를 걸어 취임을 요청했다. 카야마 타카마사나 와다 히토타카 등 "일본의 의료 행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후생노동성에 대해서도 가감 없는 충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기용했다고 한다.[159]

검토회는 16시간에 걸친 논의를 거듭하여, 2008년 9월 22일, "중간 정리"를 발표했다. "근무 의사의 대우 등의 상황을 개선하는 동시에, 더욱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사 양성 수에 대해서는 증가시켜야 한다……장기적으로는 50% 정도 의사 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등이라고 선언하며, 기존의 의사 수 억제 정책에서 큰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161]

=== 약해(薬害) 문제 ===

2007년 10월, 후쿠다 내각 발족 직후 국회에서 약해 C형 간염에 관한 이른바 '생명의 리스트' 문제가 발각되었다. 마스조에는 관료로부터 "후생노동성에 제출된 리스트로는 피브리노겐 제제를 투여받은 환자의 개인 정보를 특정할 수 없다"라고 브리핑을 받았지만, 3일 후 개인 식별에 연결되는 자료가 후생노동성 지하 창고에 남아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마스조에는 즉시 조사 프로젝트 팀을 발족하고 연내 화해를 목표로 피해자 전원을 구제하는 방침을 표명했다.

후생노동성 관료는 이 방침에 대립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의원 입법으로 일률 구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고, 약해 간염 문제는 기본적인 해결을 보게 되었다.[163]

=== 노동 문제 ===

2008년 4월 23일, 일본전산 사장나가모리 시게노부가 "사원 전원이 휴일 반납하고 일하는 기업이기에 성장할 수 있고 급여도 오른다. 푹 쉬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기울어져 인원 정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쉬고 싶다면 그만두면 된다"고 말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164] 4월 26일에 개최된 연합의 메이데이 중앙대회에 참석한 마스조에는 내빈 인사에서 "노동 관계 법령은 제대로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조사하고, 지도해야 할 것은 지도하고,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말했다.[167]

2008년 12월 19일, 일본연금기구의 채용 문제에 관해 일본 변호사 연합회로부터 "일본의 노동 법제에 위배되는 것이다"라며 위헌이며 위법이라고 지적받았다.[168]

2009년 8월 18일, 요코하마 시내의 연설에서 연말연시에 걸쳐 도쿄 히비야 공원에 설치된 "해넘이 파견촌"에 언급하며 "(당시) 4000명 분의 구인표를 가져갔지만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다. 자민당이 다른 무책임한 야당과 다른 점은, 중요한 세금을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에게 지불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견촌 실행위원이었던 세키네 슈이치로 파견 유니온 서기장은 "구인으로 소개된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지만 거절당한 것이 대부분이다. 마스조에 씨의 발언은 현장의 실태를 전혀 모르고 있어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다"고 비판했다.[169]

=== 의약품 인터넷 판매 규제 ===

후생노동대신 시대에 인터넷 판매 규제를 담은 개정 성령을 시행하여 사실상 인터넷에서 대부분의 의약품 구매를 금지했다. 이에 대해 라쿠텐이나 야후 등의 인터넷 판매업자 단체는 통신 판매의 지속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2. 5. 신당 개혁 창당과 정계 은퇴

2010년 4월 22일, 마스조에는 자민당을 탈당하고 야노 데쓰로(矢野哲朗) 전 참의원국회대책위원장, 고이케 마사카쓰(小池正勝) 참의원 등 여섯 명의 의원과 함께 신당개혁을 창당하고 대표로 취임했다.[191] 자민당은 마스조에가 의원직을 사직하고 의석을 반납해야 한다며 제명했다.

2010년 초, 마스조에는 높은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었다. 여론 조사에서 그는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총리 후보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10년 3월 교도 통신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3.7%가 그를 총리감으로 꼽았는데, 이는 2위인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총리(8.3%)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14]

마스조에가 창당한 신당 개혁은 분권화, 규제 완화, 국회의원 수 감축을 강령으로 내세웠다.[16]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마스조에를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16] 그러나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신당 개혁 소속 의원 6명 중 4명이 낙선하면서, 마스조에와 아라이 히로유키만이 참의원에 남게 되었다.[17]

2013년 6월, 마스조에는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거의 3년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당의 힘을 키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28]

2. 6. 도쿄도지사 당선과 사임 (2014-2016)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마스조에 요이치는 자유민주당과 민주당 양쪽 모두에게 잠재적 후보로 고려되었다.[29] 2013년 12월 자민당 여론조사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는 후보로 나타났다.[30] 자민당은 후보 선정을 두고 지방 의원들은 경험 있는 후보를, 중앙 지도부는 인지도 높은 후보를 원하며 분열되었다. 마스조에는 이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인물로 여겨졌지만, 더 이상 자민당 당원이 아니었다.[31]

아베 신조와 함께 (2014년 2월 26일 내각총리대신 관저)


야마구치 슌이치와 함께 (2014년 10월 22일 정보통신연구기구 본부에서)


마스조에는 자민당의 지원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신당개혁을 탈당하고 자민당과 정책 협약을 맺었다. 그의 공약은 2020년 하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사회 보장 및 재해 예방 조치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민당의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마스조에가 "보건, 복지 및 노동 문제 관리에 국무대신으로서 큰 기여를 했다"고 평했고, 민주당의 마쓰바라 진은 "우리의 지지를 받을 적임자"라고 말했다.[32] 마스조에는 2014년 1월 도쿄 자민당 회의에 참석하여 당을 떠난 것에 대해 사과하며 지지를 호소했다.[33]

선거 운동 마지막 주까지 여론 조사를 이끌었던 마스조에는 전 야당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경쟁했다. 호소카와는 인기 있는 전 자민당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지지를 받았다. 마스조에는 "총리가 백 명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겠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34] 우츠노미야 겐지와 호소카와는 원자력 반대를 핵심 쟁점으로 삼았지만, 마스조에는 사회 복지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폭설로 인한 낮은 투표율 속에서 결국 선거에서 승리했다.[35]

2016년 3월부터 도쿄도 의회는 마스조에의 과도한 지출 의혹과 관련하여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 5월에는 주간지 슈칸 분슌이 공인들의 관용차 여행 경비 및 가족 여행에 정치 자금 사용 문제를 보도했다. 마스조에는 가족 여행에 정치 자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언론의 비판은 계속되었다.[36][37] 조사 결과, 그는 440만 엔을 "부적절하게" 사용했지만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38] 마스조에는 부적절하게 사용된 경비를 환불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퇴는 거부했다.

2016년 6월, 대중의 불만은 계속 높아졌고, 도쿄 주민의 70% 이상이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참의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과 공명당도 마스조에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38] 2016년 6월 15일, 모든 정당이 공동 제출한 불신임 결의안이 도 의회에서 표결될 예정이었다. 마스조에는 리우 올림픽 참석을 이유로 사퇴를 늦추려 했으나, 결국 6월 15일 아침 가와이 시게오 의회 의장에게 6월 21일 자로 사임서를 제출했다.[39]

2. 7. 도쿄도지사 사임 이후

2016년 6월 21일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도쿄도지사 직에서 사임했다.[191]

같은 해 4월 27일 발매된 주간 문춘 5월 5일·12일 골든 위크 특별호에서 마스조에가 매주말 가나가와현아시가라시모군유가와라정에 있는 별장에 공용차로 통근했다고 단독 보도했다.[114][115][116] 5월 11일 발매된 5월 19일호에서는 마스조에의 자금 관리 단체 "글로벌 네트워크 연구회"(해산)의 부적절한 지출 문제가 밝혀졌으며,[117][118][119] 5월 13일에 열린 정례 기자 회견에서는 기자로부터 거취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117]

같은 해 6월 1일에 개회한 도쿄도의회 정례회에서도 "그만둬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등의 악담이 오갔다.[120] 6월 7일, 일본공산당의 이즈미 나오미는 위증에 형사 처벌을 규정한 백조 위원회 설치를 요구했지만, 도쿄도 총무국장은 "지방 자치법 제100조에 비추어 보아도 참의원 의원 시절의 문제는 지방 공공 단체의 사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니므로 백조 위원회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여, 도지사 취임 전 마스조에의 정치 자금 문제에 관한 백조 위원회의 법적 문제가 부상했다.[121]

6월 7일, 변호사 2명에 의한 조사 결과 일부 지출은 부적절하지만 "위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라고 발표되었다.[122] 마스조에는 정치 자금 반환 등의 대응 자세를 보이면서도 지사직에 머물려고 했지만, 비판은 계속되었다.[123]

6월 13일 도의회 총무위원회 집중 심의에서는 설명이 없었으며,[124] 6월 14일 도의회에서 도지사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었다.[125] 마스조에는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사직 아니면 해산밖에 없다. 리우 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선거를 치르는 것은 공익에 맞지 않는다. 9월에 열리는 다음 도의회 정례회까지 유예를 받고 싶다. 모든 급여를 사퇴하고, 도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리우 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지사 자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126][127][128] 그러나 마스조에가 상세한 설명을 거부하고, 마스조에 옹호가 다음 해 7월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공명당·자민당도 찬성으로 돌아섰다.[129] 도지사 불신임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6월 15일 지사 사직원을 제출,[130] 6월 21일자로 도지사에서 사직했다.[131]

3. 정치 활동 및 정책

마스조에 요이치는 1980년대부터 TV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3위를 기록했고, 2001년 자민당 소속으로 참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07년에는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에서 후생노동대신으로 임명되어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까지 연임했다. 2010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개혁을 창당하여 대표를 맡았으며,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정치 활동 기간 동안, 마스조에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자민당 의원 시절에는 일본국 헌법 제9조 개정을 주장하며 자위대의 군대 지위 인정을 지지했다. 후생노동대신 시절에는 연금 기록 문제와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신당개혁 대표 시절에는 탈원전과 TPP 협상 참여를 지지했다.

도쿄도지사 시절, 마스조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 올림픽 시설 정비비 절감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신은행 도쿄와 도쿄 TY 파이낸셜 그룹의 경영 통합에 대해 도쿄도의 출자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매 도시인 베이징과 서울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다.

한일의원연맹 간사직을 맡았던 마스조에는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에서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177] 외국인 참정권과 귀화 요건 완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171][172][173][174][175]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인 서포터들이 경기장 청소를 한 것에 대해 "문화와 사회 구성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의 상이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 1. 자민당 의원 시절

1980년대부터 TV 토론 방송 등에 자주 출연하여 토론 스타일로 각광받았다.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3위로 84만 표를 획득했다. 2001년 7월 비례대표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1,588,862표를 획득하여 1위로 당선되었다. 2007년 7월에 다시 참의원 비례대표구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8월 27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내각의 후생노동성 장관으로 임명되어, 연금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제를 담당했다. 이후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에서도 연임을 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면서 아소 내각은 내각 총사퇴를 했고 마스조에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191]

2006년, 일본 헌법을 재작성하는 LDP 위원회의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일본이 전쟁 수행 능력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일본국 헌법 제9조가 일본의 방위 체제의 현실과 점점 더 동떨어져 있으며, 자위대가 군대의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9]

2007년 8월, 후생노동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 등 3명의 총리 밑에서 2009년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2] 아베는, 자주 아베의 정책을 비판했던 마스조에를 파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비판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그를 임명했다고 전해진다.[3] 마스조에는 재임 기간 동안 정부가 5천만 건의 연금 기록을 소유자와 일치시키지 못한 사건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민주당 대표 오zawa 이치로는 마스조에가 사과하지 않으면 징계를 요구했다.[10]

2001년 7월,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비례대표로 자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여 158만 8862표를 획득하여 1위로 당선되었다. 2006년 10월, 아베 내각 발족에 따라 당선 1회였지만 참의원 자민당의 정책 책임자인 정책 심의 회장에 취임했다.

2007년 7월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는 재선을 목표로 자민당 공인으로 비례대표에서 입후보, 여당에 대한 역풍 속에서 득표수를 줄였지만 46만 7735표를 획득하여 자민당 1위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 8월 27일 제1차 아베 개조 내각에 후생노동대신으로 입각, 아베 신조가 총리직을 사임한 후 같은 해 9월 26일에 발족한 후쿠다 야스오 내각, 나아가 2008년 9월 24일에 발족한 아소 내각에서도 유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역사적인 참패를 당하고, 아소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마스조에는 후생노동대신을 퇴임했다. 그 후, 사임한 아소를 대신하여 타니가키 사다카즈가 신임 총재로 취임했지만, 마스조에는 총재 선거 직후부터 집행부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탈당 및 신당 결성이 거론되었다.

우정 반역 조 복당 문제에 관해서는 무소속 의원의 복당을 강력하게 지지했지만, 낙선했던 에토 세이이치의 복당·참의원 선거 출마가 거론되자 참의원 선거 책임자 입장에서 "백해무익" 등 발언을 했다. 에토의 복당에 반대한 이유로, 마스조에는 "공명당과의 선거 협력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자민당 개헌안 정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중시하여 보수색을 희석하고자 조정을 했다. 또한, 전 총리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중심이 되어 작성한 자민당 헌법 초안에서 "일본의 국풍"을 명기한 부분을 당시 자민당 총재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승낙을 받아 삭제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3. 2. 후생노동대신 시절 정책

2007년 8월 말, 사회보험청과 사회보험사무소 직원들의 연금 보험료 횡령 문제가 발각되었을 때, 마스조에는 "도둑은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며 형사 고발을 약속했다.[151] 사회보험청 직원보다 시구정촌 직원(이전에는 징수 업무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위임)의 횡령 건수와 총액이 더 많았던 점(사회보험청 직원 보험료 횡령: 52건, 약 1.69억, 시구정촌 직원 횡령: 101건, 약 2.44억)에 비추어 "은행원은 (보험료를) 주머니에 넣을 리가 없다. 은행은 신용할 수 있지만, 사회보험청은 신용할 수 없다. 시정촌은 사회보험청보다 더 신용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연금 보험료 횡령이 확인되지 않은 자치단체 시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았지만, 마스조에는 "소인(しょうじん)의 잡소리에 어울릴 시간은 없다"고 발언,[152] 각지의 시장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2007년 10월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발언들에 대해 "매우 부적절한 말이었다"고 말하며 철회했다.[153]

2007년,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에 "사라진 연금"이 선정되었고, 시상식에는 연금 문제의 당사자이자 행정 책임자인 후생노동대신으로서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2007년 12월 11일, "사라진 연금"과 관련하여, 뜬 연금 기록 약 5000만 건 중 945만 건의 특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회보험청의 조사 결과를 받아 기자 회견을 열고, "다른 분이 대신이 되어도 결과는 같다. 없는 것은 없는 거니까", "(참의원 선거에서) 연금은 최대 테마이다. '못할지도 모르지만 해보겠습니다' 따위는 말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적반하장이라는 보도가 나왔다.[154]

사회보험청의 대장 보존, 정보 관리 미비가 드러나는 가운데, 연금 기록 문제 해결을 위해 2008년 1월 22일 대신 직속의 "연금 기록 문제 작업 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 멤버로는 하코다테 대학 객원 교수인 이소무라 모토시, 저널리스트인 이와세 타츠야 등 정부 비판파를 적극 기용했다.

2008년 11월 5일, 전국사회보험직원노동조합 등의 야미 전종을 하던 자와 책임자 20명 정도를 형사 고발할 방침을 밝혔다. 대신 직속의 "복무 위반 조사 위원회"는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지만, 급여를 받으면서 조합 활동을 했던 행위는 공적 연금 제도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엄중 대응을 취했다.[156]

마스조에의 자서전에 따르면, 나라현의 "오요도 병원 사건"(2007년 8월) 등을 배경으로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 조사를 토대로 의사 부족 문제 대처를 시작했다. 당시 후생노동성은 현장 의사들의 목소리와 달리 1997년 각의 결정에 따라 "의사는 남아돈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았다. 2008년 1월, 마스조에는 의정국에 지시하여 "안심과 희망의 의료 확보 비전 검토 위원회"를 설치했다. 인선이 의정국에 의해 진행되어 위원회 논의는 의사 과잉론으로 흐르기 쉬웠지만, 마스조에는 현장 정보를 제시하며 위원과 직원을 설득, "기존 각의 결정을 대신하여 의사 양성 수를 증가시킨다"는 문구를 포함한 비전을 수립했다.[157]

2008년1월 19일, 의사 부족 문제에 대한 국민 대화 집회에서 "의사는 10년 후에나 성장한다. 만약 지금 부족한 의사를 확 늘린다면 10년 뒤에는 남아돌아 의사 홈리스가 생길 것이다"라고 발언하여 후생노동 대신으로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158]

2008년 6월 27일, 위 비전의 주장을 담은 『뼈대 있는 방침』이 각의 결정되자, 정책 구체화를 위해 7월, "'안심과 희망의 의료 확보 비전' 구체화에 관한 검토회"를 설치했다. 검토회 위원은 직접 인선을 진행, 전화를 걸어 취임을 요청했다. 카야마 타카마사나 와다 히토타카 등 "일본 의료 행정에 대해 적극 발언하며 후생노동성에 가감 없는 충고를 하는 인물"을 기용했다.[159]

검토회는 16시간 논의 끝에 2008년 9월 22일, "중간 정리"를 발표했다. "근무 의사의 대우 등의 상황을 개선하는 동시에, 더욱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사 양성 수에 대해서는 증가시켜야 한다……장기적으로는 50% 정도 의사 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기존 의사 수 억제 정책에서 전환을 이루었다.[161]

2007년 10월, 후쿠다 내각 발족 직후 국회에서 약해 C형 간염 '생명의 리스트' 문제가 발각되었다. 마스조에는 관료 브리핑에서 "후생노동성 제출 리스트로는 피브리노겐 제제 투여 환자 개인 정보 특정 불가"라고 들었지만, 3일 후 개인 식별 자료가 후생노동성 지하 창고에 남아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즉시 조사 프로젝트 팀을 발족, 연내 화해를 목표로 피해자 전원 구제 방침을 표명했다. 후생노동성 관료는 대립적 자세를 보였지만, 최종적으로 의원 입법으로 일률 구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 약해 간염 문제는 기본적 해결을 보았다.[163]

2008년 4월 23일, 일본전산 사장나가모리 시게노부가 "사원 전원이 휴일 반납하고 일하는 기업이기에 성장할 수 있고 급여도 오른다. 푹 쉬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기울어져 인원 정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쉬고 싶다면 그만두면 된다"고 말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164] 4월 26일 연합 메이데이 중앙대회에 참석한 마스조에는 내빈 인사에서 "노동 관계 법령은 제대로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조사하고, 지도해야 할 것은 지도하고,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말했다.[167]

2008년 12월 19일, 일본연금기구 채용 문제에 관해 일본 변호사 연합회로부터 "일본 노동 법제에 위배된다"며 위헌, 위법 지적을 받았다.[168]

2009년 8월 18일, 요코하마 시내 연설에서 연말연시 도쿄 히비야 공원에 설치된 "해넘이 파견촌"을 언급하며 "(당시) 4000명 분의 구인표를 가져갔지만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다. 자민당이 다른 무책임한 야당과 다른 점은, 중요한 세금을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에게 지불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견촌 실행위원 세키네 슈이치로 파견 유니온 서기장은 "구인으로 소개된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지만 거절당한 것이 대부분이다. 마스조에 씨 발언은 현장 실태를 전혀 모르고 있어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169]

후생노동대신 시절 인터넷 판매 규제를 담은 개정 성령을 시행, 사실상 인터넷에서 대부분 의약품 구매를 금지했다. 라쿠텐, 야후 등 인터넷 판매업자 단체는 통신 판매 지속 요구 건의서를 제출했다.[170]

3. 3. 도쿄도지사 시절 정책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유민주당과 민주당은 모두 마스조에를 잠재적인 후보로 고려했다.[29] 2013년 12월 자민당 여론조사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30] 자민당은 후보 선정을 놓고 의견이 갈렸는데, 지방 자민당 의원들은 경험이 풍부한 후보를 원했고, 중앙 당 지도부는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원했다. 마스조에는 이 두 가지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는데, 그는 더 이상 자민당 당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31]

마스조에는 자민당의 지원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신당개혁을 탈당하고 자민당과 정책 협약을 맺었다. 그의 공약은 2020년 하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사회 보장 및 재해 예방 조치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민당의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마스조에가 "보건, 복지 및 노동 문제 관리에 국무대신으로서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고, 민주당의 마쓰바라 진은 마스조에를 "우리의 지지를 받을 적임자"라고 말했다.[32] 마스조에는 2014년 1월 도쿄 자민당 회의에 참석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당을 떠난 것에 대해 사과했다.[33]

선거 운동 마지막 주까지 여론 조사를 이끌었던 마스조에는 전 야당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경쟁했다. 호소카와는 인기 있는 전 자민당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지지를 받았다. 마스조에는 전 총리들의 "태그 팀"이 위협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총리가 백 명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겠다!"라고 말했다.[34] 호소카와와 우츠노미야 겐지 모두 원자력 반대를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삼았고, 원자력의 점진적 폐지를 지지하는 마스조에는 사회 복지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전날 도쿄에서 폭설이 내린 후 낮은 투표율 속에서 결국 선거에서 승리했다.[35]

신당개혁 대표 시절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탈원전을 해야 한다"며 탈원전을 지지하는 자세를 보였다. 다만, "지금 논의는 공급 측면의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에너지 이야기에만 치우쳐 있고, 소비 생활 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가정의 전구 4개 중 1개를 끄면 원자력 발전은 필요 없다"고 언급하며, 생활 방식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176]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에 대해서는 "협상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176]

3. 4. 외교 정책 및 한일 관계

마스조에 요이치는 한일의원연맹의 간사직을 맡고 있었다.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도쿄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 "도쿄도(東京都)로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177] 귀국 후 참석한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 회의에서는 "국회에서 제대로 법률을 만드는 것이 문제 대응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국내에서의 반일 운동 규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이야기는 아닙니다"라고 언급했지만, 외국에서의 반일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극히 불쾌하고,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비난했다.[178] 자신의 방한이 한국 외교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도쿄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과 도청에 비판이 오고 있지만, 메일을 조사해 보면 한 명의 인터넷 우익이 1000명 분을 하고 있어서 커지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상도 심하다. 내가 재일이라고 하거나, 아내가 중국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 '일부 인터넷 우익 때문에 도쿄 올림픽을 망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전했다"고 말했다.[179]

2002년 12월 4일, 참의원 헌법 조사회에서 외국인 참정권과 외국인 귀화 요건 완화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171]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 "같은 지역에 사는 인간으로서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172]", "그 지역에서의, 이것도 주민 참여, 여러 곳에서 외국인에게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 시도는 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173]"라고 언급했다.

일본이 정하는 귀화 요건에 대해 "저는 여러 외국과 비교해서 결코 일본의 귀화 요건이, 뭐라고 할까, 간단하다고 할까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174]"라는 견해를 보인 후, "어느 정도 귀화 요건은 완화해도 괜찮지 않을까[175]"라고 말했다.

4. 사상 및 논란

마스조에 요이치는 원자력이 국가 에너지 및 국방 정책의 핵심 요소이며, 지역적 우려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6년 《쇼쿤》 기사에서 "3만 명의 지역 주민이 국민 정책을 국민투표로 거부할 수 있다면, 나머지 1억 2,500만 명의 일본 국민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40]

그는 자매 도시인 베이징과 서울 방문에 대해 "자매, 형제가 있고, 옆집에 살면서 18년 동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하며[96] 적극적인 해외 방문을 했다. 그러나 해외 수뇌와 독단적으로 약속을 맺은 것, 관례를 벗어난 해외 출장비,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등의 재해 중에 방문지에서 행한 퍼포먼스 등이 과장되었다는 비판과 더불어, 도쿄도의 경제 성장 및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성과가 전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97]

4. 1. 여성관 및 여성 비하 발언 논란

1989년에 마스조에는 여성이 "근본적으로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고 후쿠시마 미즈호가 인용했다. 후쿠시마에 따르면, 마스조에는 여성이 부분을 논리적인 전체로 구성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단일 쟁점 정치로 이어지며, 하루 24시간 일하고 주요 결정을 내릴 체력이 부족하고, 생리 주기 때문에 매달 "비정상적"이며 전쟁 발발 여부와 같은 주요 정책 결정을 내리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41]

도쿄도 지사 시절인 2014년 6월 18일, 도쿄도의회에서 시오무라 아야카 여성 의원이 남성 의원들에게 여러 차례 야유를 받았을 때, 마스조에는 함께 웃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오무라 의원은 아이를 갖기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했고, "너나 빨리 결혼해", "애도 못 낳냐?"와 같은 야유를 받았다.[42][43]

4. 2. 혐한 발언 논란

박근혜와 회담했을 때, 도쿄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 "도쿄도(東京都)로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177]. 귀국 후 참석한 자민당 정무조사회 회의에서는 "국회에서 제대로 법률을 만드는 것이 문제 대응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국내에서의 반일 운동 규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이야기는 아닙니다"라고 언급했지만, 외국에서의 반일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극히 불쾌하고,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비난했다[178]. 자신의 방한이 한국 외교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에 대해, 도쿄 스포츠의 취재에 "인터넷과 도청에 비판이 오고 있지만, 메일을 조사해 보면 한 명의 인터넷 우익이 1000명 분을 하고 있어서 커지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상도 심하다. 내가 재일이라고 하거나, 아내가 중국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 '일부 인터넷 우익 때문에 도쿄 올림픽을 망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전했다"고 말했다[179].

5.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집행일연령정당명득표수득표율득표순위후보자 수당락비고
도쿄도지사 선거1999년 4월 19일50세무소속836,104표15.30%3위19명낙선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2001년52세자유민주당1,588,262표1위당선비례대표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2007년58세자유민주당470,571표1위당선비례대표
도쿄도지사 선거2014년 2월 9일65세무소속2,112,979표43.40%1위16명당선


참조

[1] 웹사이트 Masuzoe Yōichi: Tokyo's Next Governor http://www.nippon.co[...] nippon.com 2014-02-10
[2] 웹사이트 プロフィール http://www.masuzoe.g[...] Masuzoe Yoichi Official Site 2005-03-29
[3] 뉴스 Yoichi Masuzoe set for the Cabinet? https://web.archive.[...] 2007-08-27
[4] 뉴스 A Son's Solution: How one man showed his love http://edition.cnn.c[...] 1998-07-24
[5] 웹사이트 平成11年都知事選挙 開票結果 https://web.archive.[...] 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2013-12-25
[6] 뉴스 Cabinet Profiles: Yoichi Masuzoe http://info.japantim[...] 2014-01-08
[7] 서적 Princes of the Yen M. E. Sharpe 2003
[8] 간행물 CHICHI http://www.chichi.co[...] 2002-05
[9] 웹사이트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Arguments made by Mr. Masuzoe of Liberal Democratic Party of Japan's New Constitutional Amendment Drafting Committee and its Issues. http://www.jicl.jp/e[...] Japan Institute of Constitutional Law 2006-06-26
[10] 뉴스 Ozawa Says DPJ Won't Rule Out Censure Against Health Minister https://www.bloomber[...] 2008-04-01
[11] 뉴스 Gov't keen on settlement with hepatitis C patients by year-end http://www.thefreeli[...] 2007-10-24
[12] 뉴스 Hepatitis patients reject govt aid plan http://www.chinadail[...] 2007-12-21
[13] 뉴스 Man Who Cried Wolf? Yoichi Masuzoe's newly-launched party gets off to an unpromising start https://thediplomat.[...] 2010-04-24
[14] 뉴스 参院は「民主過半数望まず」58% 共同通信世論調査 内閣支持率、36%に下落 http://www.nikkei.co[...] 2010-03-07
[15] 뉴스 Japan's LDP Loses Its Way http://www.newsweek.[...] 2010-04-22
[16] 뉴스 LDP, RIP: Japan's most popular politician quits Japan's Liberal Democratic Party https://www.economis[...] 2010-04-23
[17] 뉴스 Former welfare minister Yoichi Masuzoe out of political spotlight https://web.archive.[...] 2012-01-30
[18] 뉴스 舛添氏「本当に迷惑」 都知事選巡る自民幹事長発言に http://www.nikkei.co[...] 2010-10-23
[19] 뉴스 小沢・鳩山・邦夫・舛添氏が会合 政界再編へ臆測も 「仙谷氏辞任を」小沢系が攻勢 http://www.nikkei.co[...] 2010-12-09
[20] 웹사이트 The Kan Administration Reveals Its Incompetence https://web.archive.[...] Japan Echo 2011-05-18
[21] 뉴스 舛添氏、中国国務委員と会談 日中関係改善努力で合意 http://www.nikkei.co[...] 2011-03-09
[22] 뉴스 Taiwan-US-Japan security dialogue held in Taipei https://web.archive.[...] 2011-10-17
[23] 뉴스 Diplomats call for better China-Japan ties http://www.chinadail[...] 2013-04-02
[24] 웹사이트 An Uncertain Year Ahead Following the Leadership Elections http://www.nippon.co[...] Nippon.com 2012-10-25
[25] 웹사이트 Gearing Up for the General Election http://www.nippon.co[...] Nippon.com 2012-10-09
[26] 뉴스 改革 舛添代表 規制緩和で活性化 党首討論の要旨 http://www.nikkei.co[...] 2012-12-01
[27] 뉴스 民主、舛添氏に都知事選出馬打診 前向き検討か http://www.nikkei.co[...] 2012-11-10
[28] 뉴스 New Renaissance Party head Masuzoe won't seek re-election http://www.japantime[...] 2013-06-08
[29] 뉴스 自民、民主で舛添氏奪い合う http://www.nikkanspo[...] 2013-12-21
[30] 뉴스 東国原氏、舛添氏が人気 自民調査 http://www.nikkanspo[...] 2013-12-25
[31] 뉴스 都知事選「勝てる候補」は? 自民、7氏選び世論調査 http://www.nikkei.co[...] 2013-12-21
[32] 뉴스 Ex-health minister Masuzoe mulls running in Tokyo gubernatorial race https://web.archive.[...] 2014-01-08
[33] 뉴스 舛添氏、自民離党を陳謝 都連会合に出席 http://www.nikkei.co[...] 2014-01-17
[34] 뉴스 都知事選候補の"仰天発言"相次ぐ シロクマ大量死、AKB… http://www.zakzak.co[...] 2014-02-06
[35] 뉴스 Masuzoe says he wants to make Tokyo No. 1 city in world http://www.japantoda[...] 2014-02-10
[36] 뉴스 舛添都知事に政治資金規正法違反の重大疑惑! https://www.msn.com/[...] 2016-05-13
[37] 뉴스 舛添都知事に政治資金規正法違反の重大疑惑! https://web.archive.[...] 2016-05-10
[38] 웹사이트 Masuzoe resigns over expenses scandal; Sakurai vows not to enter forthcoming gubernatorial race http://www.japantime[...] Japan Times 2016-06-15
[39] 웹사이트 舛添氏が辞職願=21日付、政治資金流用で引責―都議会の不信任前に https://web.archive.[...] 2016-06-15
[40] 뉴스 舛添要一さんの発言について http://blogos.com/ar[...] 2013-01-31
[41] 웹사이트 舛添要一さんの発言について http://mizuhofukushi[...] 2014-01-31
[42] 뉴스 Tokyo metropolitan assembly flooded with protests over sexist jeering https://web.archive.[...] 2014-06-19
[43] 뉴스 都議会ヤジ>笑った指摘に舛添知事「塩村氏の笑いに笑み」 https://archive.toda[...] 2014-06-20
[44] 뉴스 舛添要一氏 「月収8万円だから」と婚外子への扶助減額要求 https://web.archive.[...] 2013-12-02
[45] 뉴스 都知事選「本命」舛添氏 高支持率も最大のネックはカネ https://web.archive.[...] 2014-01-06
[46] 뉴스 片山氏、舛添氏支持依頼に難色 「婚外子への慰謝料扶養が不十分」 https://web.archive.[...] 2014-01-19
[47] 뉴스 舛添厚労相 ~実は4度の結婚、2人の愛人、5人の子供~ http://eritokyo.jp/i[...] 2007-09-08
[48] 뉴스 舛添氏の離党了承=新党改革 https://web.archive.[...] 時事通信 2014-01-21
[49] 웹사이트 類い稀な男性的魅力を持つ舛添要一氏 結婚3回で子供は5人 https://www.news-pos[...] 小学館 2014-01-15
[50] 문서 舛添要一(ますぞえよういち)の公式サイト。 | プロフィール http://www.masuzoe.g[...]
[51] 서적 河伯洞往来 創言社 2004
[52] 뉴스 舛添要一が恥ずかしい/自宅長屋が全焼で赤貧だったケチと虚言と異常の原点 週刊新潮 2016-06-16
[53] 간행물 会誌/ つながり瓦版 http://kanto-seikyok[...] 関東誠鏡会 2014
[54] 뉴스 元妻・片山さつき氏との恩讐も 周囲が明かす舛添新都知事の裏と表 http://dot.asahi.com[...] 週刊朝日 2014-02-28
[55] 문서 舛添要一のヒトラー入門(6):§1.ヒトラーとの出会い②海外留学へ・・❶ https://ameblo.jp/sh[...]
[56] 서적 闘論 政治はこう動く 講談社 1994
[57] 뉴스 ミキ昴生 M―1暴言騒動に複雑 審査員への不満は「ありますよ。それは」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8-12-12
[58] 웹사이트 野末陳平、かつて応援した舛添都知事をメッタ斬り「茶番」「人望がない」「次の選挙はダメ」 http://www.hochi.co.[...] スポーツ報知 2016-05-14
[59] 뉴스 自民党内で舛添氏批判が噴出 https://news.ntv.co.[...] 日テレNEWS24 2010-04-15
[60] 뉴스 舛添氏に批判噴出「オオカミ中年」 http://www.nikkanspo[...] 2010-04-16
[61] 뉴스 '『新党改革』旗揚げ――『必ず政界再編』' 読売新聞東京本社 2010-04-24
[62] 뉴스 自民党が与謝野、舛添両氏を除名処分 http://sankei.jp.msn[...] 産経新聞社 2010-04-27
[63] 뉴스 舛添氏、参院選無所属出馬も 東京か神奈川選挙区で https://www.chibanip[...] 2013-04-19
[64] 뉴스 舛添氏、参院選立候補せず 新党改革代表も辞任へ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13-06-07
[65] 뉴스 新党改革、荒井広幸氏が代表に https://web.archive.[...] 2013-07-22
[66] 뉴스 自民都連、舛添氏支援を10日決定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 2014-01-10
[67] 뉴스 舛添氏、石破氏に支援要請 自民若手「大義ない」 https://web.archive.[...] 東京新聞
[68] 뉴스 都知事選「しっかり支援」=出馬の舛添氏と会談-石破自民幹事長 https://archive.is/m[...] 時事通信
[69] 뉴스 進次郎氏、小泉元首相の細川氏支援に理解「そうだろうなと https://web.archive.[...] 2014-01-15
[70] 뉴스 【都知事選】片山氏、舛添氏支持依頼に難色「婚外子への慰謝料扶養が不十分」 https://web.archive.[...] 2014-01-19
[71] 뉴스 【都知事選】公明都本部が舛添氏を推薦 細川氏は公約を調整 https://web.archive.[...] 2014-01-16
[72] 뉴스 【社会】「脱原発」争点に - 細川・舛添氏 出馬正式表明(主な立候補予定者の原発への考え方) http://www.tokyo-np.[...] 中日新聞(東京新聞) 2014-01-15
[73] 뉴스 都知事選:公明党都本部が舛添氏を推薦 http://mainichi.jp/s[...] 2014-01-16
[74] 뉴스 【都知事選】時間切れ…自・民、舛添氏支援に動く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4-01-15
[75] 뉴스 細川氏支援の都連方針了承=民主 https://web.archive.[...] 時事通信 2014-01-21
[76] 뉴스 【社会】都民調査「投票行く」93% 都知事選 舛添氏、細川氏、宇都宮氏に支持 https://web.archive.[...] 東京新聞・中日新聞 2014-01-15
[77] 뉴스 舛添氏、都知事選出馬を正式表明「五輪成功させる」 https://web.archive.[...] 朝日新聞 2014-01-14
[78] 뉴스 舛添氏、正式出馬表明…細川氏は17日に公約 https://web.archive.[...] 読売新聞 2014-01-15
[79] 웹사이트 国家戦略特区の東京は、他の自治体の模範となるのか~日本外国特派員協会で舛添要一氏が会見 http://iwj.co.jp/wj/[...] IWJ Independent Web Journal 2014-01-31
[80] 웹사이트 舛添氏が池袋で街宣 「東京を国家戦略特区にしてどんどん金儲けを」 若者に訴え http://iwj.co.jp/wj/[...] IWJ Independent Web Journal 2014-01-26
[81] 웹사이트 東京都知事に元厚生労働相の舛添氏-元首相チーム下す http://jp.wsj.com/ar[...] Dow Jones & Company, Inc. 2020-10-21
[82] 문서 2014年(平成26年)1月23日東京都選挙管理委員会告示第3号「東京都知事選挙の選挙期日」
[83] 문서 2014年(平成26年)2月11日東京都選挙管理委員会告示第9号「東京都知事選挙における当選人」
[84] 뉴스 東京都知事選 舛添要一氏が初当選 http://www3.nhk.or.j[...] 2014-02-10
[85] 뉴스 「都政の空白を埋める」 舛添氏に知事当選証書 初登庁は12日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4-02-11
[86] 뉴스 舛添新知事が初登庁 「全力疾走したい」 https://web.archive.[...] 2014-02-12
[87] 뉴스 20年五輪、バスケなど3会場の建設中止表明 東京都 日本経済新聞 2014-11-19
[88] 블로그 国民に祝福される新国立競技場建設を:提言 http://ameblo.jp/shi[...] 舛添要一オフィシャルブログ 2015-07-20
[89] 블로그 国民に祝福される新国立競技場建設を:提言(2) http://ameblo.jp/shi[...] 舛添要一オフィシャルブログ 2015-08-12
[90] 웹사이트 ターゲットは全都民! 「東京防災」はこうしてできた(前編) http://dentsu-ho.com[...] 電通報
[91] 뉴스 日本経済新聞 2015/5/27 18:00 https://www.nikkei.c[...] 2015-05-27
[92] Youtube 東京MX TV https://www.youtube.[...]
[93] 뉴스 東京にシャンゼリゼ通りを オープンカフェ設置簡単に https://web.archive.[...] 東京新聞 2014-03-18
[94] 뉴스 「ダサい」観光ボランティア制服 小池知事「変えたい」 http://www.asahi.com[...]
[95] 뉴스 "ダサい"と物議「東京都観光ボランティア」のユニフォームが再考へ https://www.fashions[...] ZAKZAK
[96] 뉴스 【舛添知事定例会見録】北京、ソウルとの都市外交「姉妹、兄弟に18年会わないのは異常」と正当性強調 https://web.archive.[...] 2015-12-07
[97] 뉴스 「舛添都市外交」の成果見えず 得意分野も独断専行で批判 東京新聞 2016-06-21
[98] 뉴스 北京訪問終了の舛添都知事、双方の信頼回復に自信 大気汚染問題などで協力も―中国報道 http://www.focus-asi[...] フォーカス・アジア 2015-12-07
[99] 뉴스 東京─北京 交流再開 舛添都知事に聞 人民中国 N/A
[100] 뉴스 竹田恒泰氏、舛添要一都知事が中国側から印鑑を授受したことを「バカじゃねーの」と批判 https://news.livedoo[...] ライブドアニュース 2018-03-16
[101] 문서 東京都とソウル特別市の交流・協力に関わる合意書 http://www.metro.tok[...] 2014-07-23
[102] 웹사이트 ヘイトスピーチ許さず=韓国大統領との会談で一致―舛添氏 http://headlines.yah[...] 時事通信 2024-02-17
[103] 뉴스 舛添氏「ヘイトスピーチは許しがたい行為」=ソウル大で講演 http://www.chosunonl[...] 聯合ニュース 2014-07-25
[104] 뉴스 “高飛車”朴大統領に都民激怒 舛添知事「90%韓国好き」の不可解講演も https://www.zakzak.c[...] ZAKZAK 2014-07-26
[105] 뉴스 「成果挙がった」と舛添知事 都市外交の意義、帰国前に強調 https://web.archive.[...] 2014-07-25
[106] 뉴스 政府、慰安婦言及に冷ややか=期待外れ、菅官房長官「従来と同じ」 http://www.jiji.com/[...] 2014-07-25
[107] 뉴스 舛添都知事 2泊3日韓国訪問費用1007万円、宿泊は1泊7万円 http://news.ameba.jp[...] アメーバニュース 2014-11-18
[108] 뉴스 豪ブリスベンG20サミット、最も安いホテルに宿泊するのはどの国の首脳?それは安倍首相です!―英紙 https://www.recordch[...] レコードチャイナ 2014-11-14
[109] 뉴스 舛添都知事の訪韓に「税金払わん、ふるさと納税する」の抗議 https://www.news-pos[...] NEWSポストセブン 2014-08-05
[110] 뉴스 舛添要一都知事にネットでリコール運動 デモ開催へ https://megalodon.jp[...] アメーバニュース 2014-07-27
[111] 뉴스 「韓国だけ便宜は困難」 韓国学校増設、都知事は快諾したけれど…担当者「用地がない」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4-08-20
[112] 뉴스 舛添都知事 韓国人学校新設で「用地など検討中」 http://japanese.yonh[...] 2014-09-30
[113] 뉴스 舛添都知事のロンドン・パリ出張費 20人で5000万円なり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3-08
[114] 웹사이트 舛添都知事:公用車で別荘へ…湯河原、1年に48回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6-04-27
[115] 뉴스 鬼平なら身銭を切った…舛添都知事の公用車での別荘通い 4月29日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4-29
[116] 웹사이트 週刊文春 2016年5月5日・12日 ゴールデンウィーク特大号 https://bunshun.jp/a[...] 文春オンライン
[117] 웹사이트 舛添氏会見:「誤解招いた支出分は返金」 辞職の意思なし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24-5-13
[118] 뉴스 舛添知事「調べないと分からない」 「会議費」名目で家族旅行疑惑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5-11
[119] 웹사이트 週刊文春 2016年5月19日号 https://bunshun.jp/a[...] 文春オンライン
[120] 웹사이트 【舛添知事公私混同疑惑】荒れる議場 飛び交う罵声 傍聴の都民「納得できない」 http://www.sankei.co[...] 産経新聞 2016-06-01
[121] 뉴스 都議からは「不支持率100%」といわれ、「真摯に向き合う姿勢なくなり猛省」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08
[122] 뉴스 不適切でも「違法性なし」なぜ? 舛添氏の政治資金調査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16-06-07
[123] 뉴스 「ルールに従っており問題ない」強気から一転、追い込まれ…そして、決断 http://www.sankei.co[...] 産経新聞 2016-06-15
[124] 뉴스 舛添氏の辞職 人気投票の後任選び許されない お粗末な退任劇、厳しい信頼回復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6-16
[125] 뉴스 舛添都知事 共産都議団、不信任案14日提出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6-06-13
[126] 뉴스 質問終了後に発言求め、不信任決議案提出「猶予をいただきたい」 舛添氏の懇願に失笑広がる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6-14
[127] 뉴스 「選挙がリオ五輪に重なるので」 “延命”懇願に失笑 http://www.sankei.co[...] 産経新聞 2016-06-13
[128] 뉴스 自民も不信任案提出 辞職応じず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6-06-15
[129] 뉴스 舛添氏の不信任案、自公も提出 辞職確実な情勢 可決なら都議会解散も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6-06-14
[130] 뉴스 舛添知事、辞表を提出 7月14日告示・31日投開票か7月21日告示・8月7日投開票で調整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15
[131] 뉴스 舛添都知事、21日辞職 政治資金問題で引責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6-06-15
[132] 뉴스 「家族旅行中、昼間に会議」 舛添氏、公私うやむや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16-05-14
[133] 뉴스 ホテルでの面会者めぐり説明変遷 「作り話では?」の追及にも詳細明かさず http://www.sankei.co[...] 産経新聞 2016-06-13
[134] 뉴스 政治資金問題、舛添前都知事を不起訴…東京地検 読売新聞 2017-03-03
[135] 뉴스 舛添要一氏は「不起訴相当」 政治資金問題で検察審査会 産経新聞 2017-06-23
[136] 뉴스 「公用車は動く知事室」 舛添知事、危機管理可能と強調 http://www.tokyo-np.[...] 東京新聞 2016-04-29
[137] 뉴스 「公」より「私」? 「湯河原の風呂は広いから足を伸ばせる」「公用車は『動く知事室』。移動中も指示」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4-29
[138] 뉴스 美術館に偏る視察「バランス欠き、言い訳のしようない」 自民都議は「もはや異常値」「視察は趣味だった」と批判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13
[139] 뉴스 舛添氏の別荘通い「違法といえず」 都監査委、住民請求を棄却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7-08
[140] 뉴스 公用車でN響コンサート疑惑「都知事として呼ばれた」が、招待者は明かさず それでも「『過ちては改むるにはばかることなかれ』の言葉の通りで…」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10
[141] 뉴스 公用車経費返還を 都監査委員 家族同伴「私的疑い」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8-01
[142] 뉴스 舛添要一氏が公用車経費返還 野球観戦やコンサート観賞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8-30
[143] 뉴스 ヤフオクで絵画落札 政治資金、「資料」と説明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6-05-16
[144] 뉴스 不適切な支出440万円 「違法性ない」と続投表明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06
[145] 뉴스 政治団体間の美術品移動は「明確な資産隠しだ!」公明都議の追及に「資産の感覚なし。資料として引き継いだ」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6-06-13
[146] 뉴스 舛添知事の海外出張費は1回2600万円 石原元知事時代より1千万円高額 貴賓室利用に165万円も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4-07
[147] 뉴스 舛添氏、退任後初めて語る 美術品寄付、別荘は売らず https://www.asahi.co[...] 2019-09-21
[148] 뉴스 舛添前都知事の現在は…月収は事務所収入の11万円、貯金切り崩して生活 https://www.sponichi[...] 2019-09-21
[149] 문서 2014年(平成26年)1月24日東京都選挙管理委員会告示第2号「東京都知事選挙における候補者の届出」
[150] 문서 舛添要一都知事がレジオン・ドヌール勲章コマンドゥールを受章 http://www.ambafranc[...]
[151] 뉴스 「きちんと牢屋に入ってもらう」 年金横領で舛添厚労相(2007年9月4日朝日新聞) http://www.asahi.com[...]
[152] 뉴스 舛添厚労相「小人のざれ言」市長抗議一蹴 http://www.nikkanspo[...] 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07-10-03
[153] 웹사이트 第168回国会 参議院予算委員会会議録第2号 https://kokkai.ndl.g[...] 参議院 2016-06-13
[154] 뉴스 舛添厚労相、町村官房長官が年金記録問題で開き直り http://sankei.jp.msn[...] 2009-05-21
[155] 서적
[156] 뉴스 厚労相、社保庁「ヤミ専従」関与で20人告発へ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08-12-05
[157] 서적
[158] 뉴스 「医者増やすとホームレスに」舛添厚労相 https://www.jcp.or.j[...] 日本共産党 2008-01-20
[159] 서적
[160] 서적
[161] 문서 「安心と希望の医療確保ビジョン」具体化に関する検討会 中間とりまとめ https://www.mhlw.go.[...]
[162] 서적
[163] 뉴스 薬害肝炎患者を一律救済へ、首相が議員立法での解決表明 http://jp.reuters.co[...] 『ロイター通信』 2007-12-23
[164] 뉴스 「休みたいならやめればいい」急成長の日本電産社長 http://www.asahi.com[...] 朝日新聞社 2008-04-23
[165] 뉴스 日本電産社長 「休みたいなら辞めろ」発言を否定 https://www.j-cast.c[...] ジェイ・キャスト 2009-05-21
[166] 웹사이트 2008年4月24日付け一部報道記事について http://www.nidec.co.[...] 日本電産株式会社 2009-05-21
[167] 뉴스 「休みたいなら辞めろ」発言は言語道断! 連合会長、日本電産社長を批判 https://www.j-cast.c[...] ジェイ・キャスト 2008-04-26
[168] 웹사이트 日本年金機構の職員採用に関する意見 http://www.nichibenr[...] 日本弁護士連合会公式HP 2011-05-19
[169] 뉴스 怠けている連中に税金払う気なし 厚労相、『派遣村』で言及 http://www.tokyo-np.[...] 中日新聞社 2009-08-19
[170] 문서 楽天やヤフーなど,舛添大臣に医薬品通販継続の要望書 https://xtech.nikkei[...]
[171] conference 参議院 憲法調査会 https://kokkai.ndl.g[...] 2002-12-04
[172] 문서 第155回国会 憲法調査会 第5号 平成14年(2002年)12月4日(水曜日) 2番目の答弁 29頁より
[173] 문서 第155回国会 憲法調査会 第5号 平成14年(2002年)12月4日(水曜日) 29番目の答弁 23頁より
[174] 문서 第155回国会 憲法調査会 第5号 平成14年(2002年) 12月4日(水曜日) 29番目の答弁
[175] 문서 第155回国会 憲法調査会 第5号 平成14年(2002年) 12月4日(水曜日) 29番目の答弁 17-18頁より
[176] 뉴스 党首に聞く:2012衆院選 新党改革・舛添要一代表 http://senkyo.mainic[...] 毎日新聞 2012-11-30
[177] 문서 集会、集団行進及び集団示威運動に関する条例(俗称:[[公安条例]])に基づき、集会、集団行進及び集団示威運動をする場合には、各公安委員会に届出をする必要がある。これらの活動が届出を経て東京都内で行われているということは、これらの活動自体については、都知事、東京都[[公安委員会]]が許可していることを意味する。
[178] 뉴스 舛添知事 定例会見詳報(上)訪韓への反対の声「何件来たから全部反対とか、何件来たからどう、という問題ではない」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179] 뉴스 ヘイトスピーチ根絶に動いた舛添都知事 https://web.archive.[...] 東スポWeb
[180] 서적 母に襁褓をあてるとき――介護・闘いの日々 中央公論社
[181] 웹사이트 第166回国会 参議院 本会議 第39号 平成19年6月29日 https://kokkai.ndl.g[...] 2007-06-29
[182] 웹사이트 自民党が最後まで舛添氏を守った「そういう事情」~彼らにとっては、実に都合のいい知事だったんです https://gendai.media[...] [[講談社]] 2016-06-16
[183] 웹사이트 スーパースターに魅せられた人々 舛添要一 http://www.rollingst[...] アトミックスメディア 2009-09-01
[184] 뉴스 嫌われるジジイ調査 1位舛添氏、4位鳥越氏、6位張本氏 https://www.news-pos[...] 週刊ポスト
[185] 웹사이트 舛添前都知事の現在は…月収は事務所収入の11万円、貯金切り崩して生活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新聞社]] 2017-08-17
[186] 웹사이트 舛添氏 現在月収11万円…テレビ界復帰を希望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17-08-17
[187] 웹사이트 集団左遷 https://www.allcinem[...] allcinema 2024-07-25
[188] 웹사이트 博多ムービー ちんちろまい https://www.allcinem[...] allcinema 2024-07-25
[189] 웹사이트 麻雀放浪記2020 https://www.allcinem[...] allcinema 2024-07-25
[190] 웹사이트 "「改めて考える年金問題」" https://www.tv-tokyo[...] テレビ東京 2007-10-22
[191] 뉴스 선거 앞둔 일본 ‘자고 나면 신당’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0-04-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