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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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테크리스토섬은 티레니아해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섬으로,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다양한 시대를 거치며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았다. 1971년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생태계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11년에는 쥐 개체 수 증가로 인해 생태계 위협이 보고되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엄격한 관리하에 제한적으로 방문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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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이름 | 몬테크리스토 섬 |
별명 | 해당사항 없음 |
위치 | 티레니아 해 |
군도 | 토스카나 군도 |
총 섬 수 | 해당사항 없음 |
주요 섬 | 해당사항 없음 |
면적 | 10.39 km² |
길이 | 4.1 km |
폭 | 3.4 km |
해안선 길이 | 17 km |
최고봉 | 포르테차 산 |
해발고도 | 645 m |
위치도 | center몬테크리스토 섬은 엘바 섬의 남쪽에 위치함 |
![]() | |
행정 구역 | |
국가 | 이탈리아 |
레지오네 | 토스카나 주 |
현 | 리보르노 현 |
코무네 | 해당사항 없음 |
수도 | 해당사항 없음 |
가장 큰 도시 | 해당사항 없음 |
인구 | 해당사항 없음 |
지도자 직함 | 해당사항 없음 |
지도자 이름 | 해당사항 없음 |
인구 통계 | |
인구 | 2명 |
인구 밀도 | 0.15 명/km² |
기타 정보 |
2. 역사
철기 시대부터 몬테크리스토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엘바섬의 광산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녹이는 데 필요한 용광로의 연료로 쓰기 위해 떡갈나무 숲을 이용했다. 그리스인들은 몬테크리스토섬에 '오글라사' 또는 '오크라시아'라는 가장 오래된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위의 황토색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곳을 '몬스 요비스'(Mons Jovis, "주피터 산")라고 불렀고, 최고봉에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에게 바치는 제단을 세웠는데,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제국 시대에는 로마인들이 채석장을 열어 화강암을 채취했는데, 이는 아마도 기가리오, 엘바섬, 잔누트리섬의 빌라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4]
서기 5세기 중반 무렵, 이 섬의 동굴은 반달족의 겐세릭을 피해 도망온 여러 은둔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성 마밀리안이었다.[4] 그들은 이 섬을 '몬스 크리스티'(Mons Christi, "그리스도의 산")라고 불렀고, 여기서 현대 지명이 유래되었다.
7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들을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규칙에 복종시켰다.[4] 이 시기에 성 마밀리아노 수도원이 세워졌고, 교회에 기증한 덕분에 전설적인 부를 축적했으며, 성인이 5세기에 살았던 성 마밀리아노 동굴에 예배당이 세워졌다.[5] 1216년에는 수도사들이 카말돌리회에 가입했다. 여러 귀족 가문의 기증 덕분에 수도원은 강력하고 부유해졌고, 이로 인해 섬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전설이 생겨났다.[4]
이 섬은 한때 피사 공화국의 소유였으나, 나중에 피옴비노 공국이 획득했다. 1553년, 오스만 제국의 해적 드라구트가 엘바섬으로 향하던 중 수도원을 습격하여 수도사들을 노예로 만들고 수도원의 폐쇄를 선언했다. 그 후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5] 16세기 후반에는 투스카나 군도의 대부분과 함께 스페인의 위성 국가인 Stato dei Presidi에 속하게 되었다.
이 섬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 제1 제국에 병합되었고, 그의 몰락 이후 토스카나 대공국의 소유가 되었다.[4] 1840년, 당시 몬테크리스토섬은 카를로 캄비아기 소유였는데, 두 명의 독일인 은둔자인 아우구스틴 오일하르트와 요제프 카임이 처음으로 몬테크리스토섬을 식민지화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5] 1843년에는 섬을 경작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젊은 티롤 출신 아돌프 프란츠 오버뮐러와 몇 달 후 프랑스인 샤를 르그랑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들이었다.[5] 또한 1843년에는 프랑스 농업인 조르주 기보가 다른 식민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5] 1846년에는 일부 제노바 사람들이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고, 1849년에는 프랑스인 자크 아브리알이 3년 동안 섬을 경작할 수 있었다.[5] 1852년, 조지 왓슨-테일러라는 부유한 영국인이 몬테크리스토섬을 사들여 칼라 마에스트라를 정원으로 바꾸고 유칼립투스와 아시아산 가죽나무 등 많은 이국적인 식물을 심었는데, 이 가죽나무는 현재 섬을 침범하는 침입종이다.[4] 로얄 빌라와 같은 몬테크리스토섬의 몇 안 되는 현대식 건물들은 이 시대에 지어졌다. 그 후 이 섬은 1869년 6월 3일 이탈리아 정부에 10만 파운드에 매입되었다. 몬테크리스토섬은 이전에 1860년 런던에 살던 이탈리아 망명자들이 이탈리아로 와서 카미치 로세에 합류하려다 섬에서 난파되어 약탈당한 적이 있었다.[5] 소유주가 피해 복구에 대한 막대한 금액을 요구하자 정부는 아직 무인도였던 섬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5]
1878년에 다른 식민지화 시도가 있은 후, 이탈리아 정부는 피아노사섬에 있는 형무소의 분교를 그곳에 세웠다.[5]
1889년, 몬테크리스토섬은 카를로 기노리 후작에게 넘겨졌고, 그는 빌라를 복원하고 섬을 사냥터로 만들었다.
1896년, 몬테크리스토섬은 사보이의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당시 황태자)와 몬테네그로의 엘레나의 신혼여행지였고,[5] 1899년 이후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전용 왕실 사냥터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몬테크리스토섬은 이탈리아와 점령된 코르시카 사이의 중요한 위치 때문에 이탈리아군에 의해 주둔되었다.[2]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 해군 정보국은 비밀 작전 요원 훈련 기지로 잠시 섬을 점령했다. 이탈리아 장교 중에는 마르코 데카로비오 백작과 루이지 페리가 강사로 배정되었다. 훈련을 받을 요원들은 활동가 알루시 레샤나쿠가 이끄는 블로쿠 콤베타르 독립이라는 우익 알바니아 망명 단체에 속했다. 훈련을 받은 엘바산 출신 시크리 비카쿠에 따르면, 비카쿠는 야전 라디오 사용법도 배우고 매우 능숙해져 1951년 10월 루마니아 산악 지대에 비밀 낙하하는 비밀 요원들에게 라디오 사용법을 가르치도록 고용되었다. 루마니아인들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몬테크리스토섬은 1948년 9월부터 11월까지만 해군 훈련 기지로 사용되었고, 훈련생들은 이탈리아 서부 해안으로 이동했다. 훈련받은 요원 4명은 1949년 2월 알바니아로 낙하했지만, 야전 라디오 고장으로 인해 임무를 포기하고 그리스로 도망쳤다.
여러 차례의 기물 파손과 투기 시도 이후, 1971년에 자연 보호 구역이 지정되었다.[2]
2011년 12월, 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섬에 존재해 온 검은 쥐의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하여 몬테크리스토섬의 조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보고가 있었다.[10] 지형의 접근 불가성으로 인해, 잔누트리섬과 사르데냐에서 최근 시도되었던 것처럼, 섬은 독성 펠릿으로 공중 폭격을 받았는데, 이는 토착 야생 동물과 주변 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 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6][7][8] 또한 가죽나무도 근절될 예정이었다.[10]
2. 1. 고대 ~ 중세
철기 시대부터 몬테크리스토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엘바섬의 광산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녹이는 데 필요한 용광로의 연료로 쓰기 위해 떡갈나무 숲을 이용했다. 그리스인들은 몬테크리스토섬에 '오글라사' 또는 '오크라시아'라는 가장 오래된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위의 황토색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곳을 '몬스 요비스'(Mons Jovis, "주피터 산")라고 불렀고, 최고봉에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에게 바치는 제단을 세웠는데,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제국 시대에는 로마인들이 채석장을 열어 화강암을 채취했는데, 이는 아마도 기가리오, 엘바섬, 잔누트리섬의 빌라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4]서기 5세기 중반 무렵, 이 섬의 동굴은 반달족의 겐세릭을 피해 도망온 여러 은둔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성 마밀리안이었다.[4] 그들은 이 섬을 '몬스 크리스티'(Mons Christi, "그리스도의 산")라고 불렀고, 여기서 현대 지명이 유래되었다.
7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들을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규칙에 복종시켰다.[4] 이 시기에 성 마밀리안 수도원이 세워졌고, 교회에 기증한 덕분에 전설적인 부를 축적했으며, 성인이 5세기에 살았던 성 마밀리아노 동굴에 예배당이 세워졌다.[5] 1216년에는 수도사들이 카말돌리회에 가입했다. 여러 귀족 가문의 기증 덕분에 수도원은 강력하고 부유해졌고, 이로 인해 섬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전설이 생겨났다.[4]
이 섬은 한때 피사 공화국의 소유였으나, 나중에 피옴비노 공국이 획득했다. 1553년, 오스만 제국의 해적 드라구트가 엘바섬으로 향하던 중 수도원을 습격하여 수도사들을 노예로 만들고 수도원의 폐쇄를 선언했다. 그 후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5]
2. 2. 근세 ~ 현대
몬테크리스토섬의 역사는 철기 시대부터 시작된다.[4] 에트루리아인들은 엘바섬의 광산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녹이는 데 필요한 용광로의 연료로 쓰기 위해 떡갈나무 숲을 이용했다.[4] 그리스인들은 몬테크리스토섬에 '오글라사' 또는 '오크라시아'라는 가장 오래된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위의 황토색에서 유래했다.[4]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곳을 '몬스 요비스'(Mons Jovis, "주피터 산")라고 불렀고, 최고봉에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에게 바치는 제단을 세웠는데,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4] 제국 시대에는 로마인들이 채석장을 열어 화강암을 채취했는데, 이는 아마도 기가리오, 엘바섬, 잔누트리섬의 빌라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4]서기 5세기 중반 무렵, 이 섬의 동굴은 반달족의 겐세릭을 피해 도망온 여러 은둔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성 마밀리안이었다.[4] 그들은 이 섬을 '몬스 크리스티'(Mons Christi, "그리스도의 산")라고 불렀고, 여기서 현대 지명이 유래되었다.[4]
7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들을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규칙에 복종시켰다.[4] 이 시기에 성 마밀리안 수도원이 세워졌고, 교회에 기증한 덕분에 전설적인 부를 축적했으며, 성인이 5세기에 살았던 성 마밀리아노 동굴에 예배당이 세워졌다.[5] 1216년에는 수도사들이 카말돌리회에 가입했다.[4] 여러 귀족 가문의 기증 덕분에 수도원은 강력하고 부유해졌고, 이로 인해 섬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전설이 생겨났다.[4]
이 섬은 한때 피사 공화국의 소유였으나, 나중에 피옴비노 공국이 획득했다.[4] 1553년, 오스만 제국의 해적 드라구트가 엘바섬으로 향하던 중 수도원을 습격하여 수도사들을 노예로 만들고 수도원의 폐쇄를 선언했다.[5] 그 후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5] 16세기 후반에는 투스카나 군도의 대부분과 함께 스페인의 위성 국가인 Stato dei Presidi에 속하게 되었다.
이 섬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 제1 제국에 병합되었고, 그의 몰락 이후 토스카나 대공국의 소유가 되었다.[4] 1840년, 당시 몬테크리스토섬은 카를로 캄비아기 소유였는데, 두 명의 독일인 은둔자인 아우구스틴 오일하르트와 요제프 카임이 처음으로 몬테크리스토섬을 식민지화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5] 1843년에는 섬을 경작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젊은 티롤 출신 아돌프 프란츠 오버뮐러와 몇 달 후 프랑스인 샤를 르그랑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들이었다.[5] 또한 1843년에는 프랑스 농업인 조르주 기보가 다른 식민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5] 1846년에는 일부 제노바 사람들이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고, 1849년에는 프랑스인 자크 아브리알이 3년 동안 섬을 경작할 수 있었다.[5] 1852년, 조지 왓슨-테일러라는 부유한 영국인이 몬테크리스토섬을 사들여 칼라 마에스트라를 정원으로 바꾸고 유칼립투스와 아시아산 가죽나무 등 많은 이국적인 식물을 심었는데, 이 가죽나무는 현재 섬을 침범하는 침입종이다.[4] 로얄 빌라와 같은 몬테크리스토섬의 몇 안 되는 현대식 건물들은 이 시대에 지어졌다.[4] 그 후 이 섬은 1869년 6월 3일 이탈리아 정부에 10만 파운드에 매입되었다.[5] 몬테크리스토섬은 이전에 1860년 런던에 살던 이탈리아 망명자들이 이탈리아로 와서 카미치 로세에 합류하려다 섬에서 난파되어 약탈당한 적이 있었다.[5] 소유주가 피해 복구에 대한 막대한 금액을 요구하자 정부는 아직 무인도였던 섬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5]
1878년에 다른 식민지화 시도가 있은 후, 이탈리아 정부는 피아노사섬에 있는 형무소의 분교를 그곳에 세웠다.[5]
1889년, 몬테크리스토섬은 카를로 기노리 후작에게 넘겨졌고, 그는 빌라를 복원하고 섬을 사냥터로 만들었다.
1896년, 몬테크리스토섬은 사보이의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당시 황태자)와 몬테네그로의 엘레나의 신혼여행지였고,[5] 1899년 이후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전용 왕실 사냥터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이탈리아와 점령된 코르시카 사이의 중요한 위치 때문에 이 섬은 이탈리아군에 의해 주둔되었다.[2]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 해군 정보국은 비밀 작전 요원 훈련 기지로 잠시 섬을 점령했다. 이탈리아 장교 중에는 마르코 데카로비오 백작과 루이지 페리가 강사로 배정되었다. 훈련을 받을 요원들은 활동가 알루시 레샤나쿠가 이끄는 블로쿠 콤베타르 독립이라는 우익 알바니아 망명 단체에 속했는데, 훈련을 받은 엘바산 출신 시크리 비카쿠에 따르면, 비카쿠는 야전 라디오 사용법도 배우고 매우 능숙해져 1951년 10월 루마니아 산악 지대에 비밀 낙하하는 비밀 요원들에게 라디오 사용법을 가르치도록 고용되었다. 루마니아인들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몬테크리스토섬은 1948년 9월부터 11월까지만 해군 훈련 기지로 사용되었고, 훈련생들은 이탈리아 서부 해안으로 이동했다. 훈련받은 요원 4명은 1949년 2월 알바니아로 낙하했지만, 야전 라디오 고장으로 인해 임무를 포기하고 그리스로 도망쳤다.
여러 차례의 기물 파손과 투기 시도 이후, 1971년에 자연 보호 구역이 지정되었다.[2]
2011년 12월, 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섬에 존재해 온 검은 쥐의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하여 몬테크리스토섬의 조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보고가 있었다.[10] 지형의 접근 불가성으로 인해, 잔누트리섬과 사르데냐에서 최근 시도되었던 것처럼, 섬은 독성 펠릿으로 공중 폭격을 받았는데, 이는 토착 야생 동물과 주변 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 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6][7][8] 또한 가죽나무도 근절될 예정이었다.[10]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몬테크리스토섬은 이탈리아와 점령된 코르시카 사이의 중요한 위치 때문에 이탈리아군에 의해 주둔되었다.[2]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 해군 정보국은 비밀 작전 요원 훈련 기지로 잠시 섬을 점령했다. 이탈리아 장교 중에는 마르코 데카로비오 백작과 루이지 페리가 강사로 배정되었다. 훈련을 받을 요원들은 활동가 알루시 레샤나쿠가 이끄는 블로쿠 콤베타르 독립이라는 우익 알바니아 망명 단체에 속했다. 훈련을 받은 엘바산 출신 시크리 비카쿠에 따르면, 비카쿠는 야전 라디오 사용법도 배우고 매우 능숙해져 1951년 10월 루마니아 산악 지대에 비밀 낙하하는 비밀 요원들에게 라디오 사용법을 가르치도록 고용되었다. 루마니아인들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몬테크리스토섬은 1948년 9월부터 11월까지만 해군 훈련 기지로 사용되었고, 훈련생들은 이탈리아 서부 해안으로 이동했다. 훈련받은 요원 4명은 1949년 2월 알바니아로 낙하했지만, 야전 라디오 고장으로 인해 임무를 포기하고 그리스로 도망쳤다.
여러 차례의 기물 파손과 투기 시도 이후, 1971년에 자연 보호 구역이 지정되었다.[2]
2011년 12월, 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섬에 존재해 온 검은 쥐의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하여 몬테크리스토섬의 조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보고가 있었다.[10] 지형의 접근 불가성으로 인해, 잔누트리섬과 사르데냐에서 최근 시도되었던 것처럼, 섬은 독성 펠릿으로 공중 폭격을 받았는데, 이는 토착 야생 동물과 주변 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 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6][7][8] 또한 가죽나무도 근절될 예정이었다.[10]
3. 지리 및 기후
몬테크리스토섬은 티레니아해에 위치하며, 코르시카 동쪽, 엘바섬 남쪽, 질리오섬과 몬테아르젠타리오 반도 서쪽, 피아노사섬 남동쪽, 그리고 스코글리오다프리카 바위(Formica di Montecristo라고도 함) 동쪽에 있다.[9]
잠수함 플루톤의 융기로 형성된 이 섬은 약간 타원형이며, 섬 전체가 산악 지형으로, 바다에서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여러 암벽이 있다. 이 섬은 거의 전부 화강섬록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큰 정장석 결정을 포함한다.[9] 섬을 가로지르는 산맥에는 몬테델라포르테차(645m), 치마델콜레폰도(621m), 치마데이레치(563m) 등 세 개의 주요 봉우리가 있다.[2] 몬테크리스토섬의 유일한 자연 항구는 북서쪽에 있는 ''마에스트라만''이다.[2] 이 섬은 풍부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다.
몬테크리스토섬은 해저에서 솟아오른 화산의 정점에 해당하며, 최고 지점은 포르테차 산(Fortezza, 645m)이다.
몬테크리스토섬은 군도의 모든 섬과 마찬가지로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일정한 해풍, 많은 햇볕, 매우 적은 강수량(연평균 강수량은 500mm 미만)을 보인다. 기후는 온화하고 비가 적당히 오는 겨울과 덥고 건조하지만 때로는 매우 무더운 여름이 특징이다.[2]
4. 생태
몬테크리스토에 인간 정착이 제한되면서 섬의 동식물이 잘 보존되었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서 발견되었던 동식물들이 아직도 이 섬에 살고 있다.[9] 계곡 바닥을 덮고 있는 거대한 에리카 군락과 가장 높은 고도에서 살아남은 수천 년 된 참나무들이 있다. 고유종 도마뱀 아종인 ''Podarcis muralis calabresiae''가 섬에서 번성하고 있다.[9] 몬테크리스토는 또한 수천 마리의 철새들의 휴식처이며, 대규모 바닷새 군집(특히 검은슴새)의 서식지이다.[10][9] 이 섬에는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야생 염소가 서식하고 있다.
해양 환경은 매우 풍부하여 해초, 말미잘, 부채 산호, 산호, 개복치 등이 서식한다. 1970년대까지 지중해몽크바다표범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탈리아 해역에서 극도로 희귀해진 멸종 위기종이다.[9]
고유종으로는 식물 ''Limonium Montis-christi'',[9] 무척추동물 ''Oxychilus oglasicola'' (몬테크리스토의 달팽이)가 있다.[9] 또한 양서류인 ''Discoglossus sardus''도 흥미로운데, 이 양서류는 토스카나와 사르데냐의 몇몇 섬에서만 발견된다. 몬테크리스토 살무사(''Vipera aspis hugyi'')는 현재 인간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4. 1. 동식물
몬테크리스토에 인간 정착이 제한되면서 섬의 동식물이 잘 보존되었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서 발견되었던 동식물들이 아직도 이 섬에 살고 있다.[9] 계곡 바닥을 덮고 있는 거대한 에리카 군락과 가장 높은 고도에서 살아남은 수천 년 된 참나무들이 있다. 고유종 도마뱀 아종인 ''Podarcis muralis calabresiae''가 섬에서 번성하고 있다.[9] 몬테크리스토는 또한 수천 마리의 철새들의 휴식처이며, 대규모 바닷새 군집(특히 검은슴새)의 서식지이다.[10][9] 이 섬에는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야생 염소가 서식하고 있다.해양 환경은 매우 풍부하여 해초, 말미잘, 부채 산호, 산호, 개복치 등이 서식한다. 1970년대까지 지중해몽크바다표범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탈리아 해역에서 극도로 희귀해진 멸종 위기종이다.[9]
고유종으로는 식물 ''Limonium Montis-christi'',[9] 무척추동물 ''Oxychilus oglasicola'' (몬테크리스토의 달팽이)가 있다.[9]
4. 2. 몬테크리스토섬 자연 보호 구역
오늘날 섬에는 두 명의 영구 거주자인 자연 보호 구역 관리인 두 명만 거주하고 있다. 폴로니카에서 온 국립 산림청 소속 요원들이 2주씩 교대로 그곳에서 생활한다.[11] 국립 자연 보호 구역인 ''몬테크리스토 섬''은 섬의 독특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1971년 각료령에 의해 설립된 1,039헥타르 규모의 생물 유전 보호 구역이다.[2] 오늘날 이 섬은 토스카나 군도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또한 1988년에는 유럽 보호 지역 디플로마를 받았으며,[12] 범유럽적 관심의 장소로 인정받았다.[13]방문객은 여러 가지 제한에 직면한다. 하룻밤 묵는 것은 불가능하며, 해안에서 1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수영과 서핑이 금지된다. 해안에서 3마일(4.828032 km) 이내에서는 크루즈가 가능하지만 낚시는 허용되지 않는다. 바다를 통한 접근은 칼라 마에스트라(해저가 모래인 곳)에서만 가능하며 해안에 수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두에 정박하거나 부표에 묶는 것은 가능하지만 닻을 내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비상 상황을 위한 작은 헬리포트도 있다. 섬을 방문하려면 폴로니카의 산림청에 접근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기본적인 허가를 받은 방문객은 칼라 마에스트라에 머물러야 하며, 왕궁, 식물원, 박물관만 방문할 수 있다. 방문객 제한이 연간 1,000명으로 정해져 있어 접근 대기자 명단이 길다. 방문 승인까지 평균 3년이 소요되며, 과학 탐험대, 협회 및 학교에 우선 순위가 주어진다. 투어는 기존 3개의 트레일에서만 진행되며, 모두 매우 어려운 코스이다.[14]
몬테크리스토 섬은 해저에서 솟아오른 화산의 정점에 해당하며, 최고 지점은 포르테차 산(Fortezza, 645m)이다.
이 섬은 철새들이 날개를 쉬는 곳이며, 독특한 동물상과 식물상을 가지고 있다. 주변 해역에도 풍부한 생태계가 있으며, 1970년대 말까지는 지중해몽크바다사자 조차 발견되었다.
섬 서쪽의 칼라 마에스트라 만에 면하여 19세기 중반에 영국인에 의해 지어진 별장(나중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체류에 제공되었다)이 있으며, 그 외에는 폐허가 된 중세 수도원 터만 있을 뿐, 취락은 없다. 국립산림경비대(이탈리아)에서 파견된 관리인 2명이 1주일씩 교대로 상주하고 있다. 입도에는 허가증이 필요하며,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접근 방법도 개인 요트 등으로 제한된다.
행정적으로는 토스카나 주리보르노 현에 속하며, 약 40km 북쪽에 떠 있는 엘바 섬의 중심 코무네인 포르토페라이오의 관할 구역이다.
5. 주요 명소
성 마밀리아노 수도원, 성 마밀리아노 동굴, 몬테크리스토 섬 최고봉(645m)에 위치한 몬테크리스토 요새가 있다. 왕궁 별장, 자연사 박물관, 식물원도 주요 명소로 꼽힌다. 과거 성 마밀리아노 동굴에 있던 제분소와 칼라 디 산타 마리아의 산타 마리아 예배당은 현재 유적으로 남아있다.
6. 문화
몬테크리스토 섬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1844년 - 1846년)의 무대가 된 것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무고한 죄로 투옥된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탈옥에 성공하여 이 섬에 숨겨진 막대한 보물을 손에 넣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자칭하며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자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섬에서 보물을 찾는 장면이 있지만, 해당 작품 속 섬의 묘사와 실제 섬의 상황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6. 1. 문학
몬테크리스토 섬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1844년 - 1846년)의 무대가 된 것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무고한 죄로 투옥된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탈옥에 성공하여 이 섬에 숨겨진 막대한 보물을 손에 넣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자칭하며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자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섬에서 보물을 찾는 장면이 있지만, 해당 작품 속 섬의 묘사와 실제 섬의 상황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6. 2. 한국에서의 인식
참조
[1]
웹사이트
Monte Cristo
2018-02-28
[2]
웹사이트
Riserva Naturale Statale Isola di Montecristo
https://web.archive.[...]
Corpo forestale dello Stato
2012-02-28
[3]
웹사이트
Parco Nazionale Arcipelago Toscano
http://www.parks.it/[...]
Ente Parco Nazionale Arcipelago Toscano
2012-03-02
[4]
웹사이트
Timeline
http://www.uniurb.it[...]
2012-02-27
[5]
서적
L'isola d'Elba e il culto di San Mamiliano
[6]
뉴스
Piovono esche avvelenate per salvare Montecristo dall'invasione dei ratti neri
http://www.corriere.[...]
2012-03-03
[7]
뉴스
Island of Montecristo to be bombed with poison after rat infestation
https://web.archive.[...]
2012-01-15
[8]
웹사이트
Plan to 'bomb' Montecristo with rat pellets may be blocked
https://web.archive.[...]
2012-01-31
[9]
서적
Arcipelago Toscano e il Parco Nazionale
Pacini Editore
[10]
웹사이트
Piano per l'eradicazione del ratto nero Rattus Rattus nell'isola di Montecristo
http://www.montecris[...]
Corpo Forestale dello Stato – Parco Nazionale dell'arcipelago toscano
2012-03-01
[11]
웹사이트
Isolani, ma non isolate
http://www.uniurb.it[...]
2012-02-27
[12]
웹사이트
Ministero dell'Ambiente – Le aree protette italiane insignite del Diploma
https://web.archive.[...]
[13]
웹사이트
Habitats Directive WWF European Shadow List
http://awsassets.pan[...]
WWF
2012-02-27
[14]
웹사이트
The Forbidden Island of Montecristo, Tuscany
http://greenholidayi[...]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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