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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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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주 적상산성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방어 산성이다. 고려 시대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광해군 2년(1610)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는 적상산사고가 설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으며, 적상산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반출되었다. 현재 성벽은 훼손되었고, 사각 등 건물의 터만 남아 있으며, 최근 성 안에 저수지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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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무주 적상산성
이름무주 적상산성
한자 표기茂朱 赤裳山城
유형사적
지정 번호146
지정일1965년 7월 10일
주소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119번지
시대고려시대
면적214,976m2

2. 역사

무주 적상산성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고려 후기 거란의 침입 이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고 창고를 지을 것을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했다.[1] 고려 시대에는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이 있어,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1]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鎭)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적상산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은 1911년 창덕궁 장서각으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반출되어 현재 평양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어 있다.[1] 이중 남쪽에 남아있던 4책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을 2019년 국보 154-4호로 지정하였다. 4책중 1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3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2. 1. 고려 시대

고려 후기 거란의 침입 이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고 창고를 지을 것을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했다.[1] 고려 시대에는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이 있어,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1]

2. 2. 조선 시대

무주 적상산성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고려 후기 거란이 침입한 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게 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鎭)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적상산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은 1911년 창덕궁 장서각으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반출되어 현재 평양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어 있다.[1] 이중 남쪽에 남아있던 4책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을 2019년 국보 154-4호로 지정하였다. 4책중 1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3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2. 3.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2. 4. 대한민국

3. 유적 현황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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