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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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호는 문흠의 셋째 아들이자 문앙의 아우이다. 아버지 문흠이 관구검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어린 나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제갈탄의 난 당시 오나라 지원군에 속해 수춘성에 들어갔다. 문흠이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하자 형 문앙과 함께 사마소에게 항복하여 장군에 임명되고 관내후에 봉해졌다. 이후 문흠의 유해를 운반하는 것을 허락받았으나, 그 이후의 행적은 뚜렷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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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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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경기도 양평군 |
면적 | 77.38km² |
행정 구역 | |
하위 행정 구역 | 10개 법정리 |
행정동/읍/면 | 문호면 |
통계 정보 | |
인구 | 4,270명 (2023년 12월 기준) |
인구 밀도 | 55.18명/km² |
교통 | |
도로 | 국도 제6호선 국도 제37호선 |
2. 생애
문호는 문흠(文欽)의 셋째 아들이며, 문앙(文鴦)의 아우이다.[1]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형 문앙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문호는 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제갈탄(諸葛誕)이 사마소(司馬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나라 지원군에 속해 아버지, 형과 함께 수춘성에 들어갔다.[1] 그러나 제갈탄과 사이가 나빴던 문흠이 살해당하자, 형과 함께 사마소에게 항복하여 장군에 임명되고 관내후에 봉해졌다.[1]
문호는 문앙과 수춘성 주변을 돌며 항복을 권유했고, 이후 행적은 기록되지 않았다. 형 문앙은 291년 사마요(司馬繇)에게 삼족과 함께 죽임을 당했는데, 문호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면 함께 화를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1]
2. 1. 초기 생애와 가계
문흠(文欽)의 셋째 아들로, 문앙(文鴦)의 동생이다.아버지 문흠이 관구검(毌丘倹)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형 문앙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1] 이후 제갈탄(諸葛誕)이 사마소(司馬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吳)나라에서 제갈탄에게 보낸 지원군에 아버지, 형과 함께 소속되어 수춘성(壽春城)으로 들어갔다.[1] 그러나 제갈탄 측 군사들이 수춘성에 고립되었고, 제갈탄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문흠이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하자, 형을 따라 성벽을 넘어 사마소에게 항복하여 장군에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1]
문호는 문앙과 함께 수춘성 주변을 돌며 항복을 권유했다.[1]
2. 2. 제갈탄의 난과 투항
제갈탄(諸葛誕)이 사마소(司馬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오나라가 보낸 지원군에 속하여 아버지 문흠(文欽)과 형 문앙(文鴦)을 따라 수춘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갈탄 측 군사들이 수춘성에 고립되었을 때, 제갈탄과 사이가 좋지 못하던 문흠이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문호는 형 문앙과 함께 성벽을 넘어 사마소에게 항복하여 장군에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1]문호는 문앙과 함께 수춘성 주변을 돌며 항복을 권유했다. 사마소는 "문흠의 아들조차 죽이지 않는다! 그 외의 자들이 (항복해도)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외치게 하였고, 이에 성에 갇힌 제갈탄의 군세는 동요했다.[1]
2. 3. 투항 이후
문호는 문앙과 함께 수레를 지급받아 아버지 문흠의 유해를 조상의 묘까지 운반하는 것이 허락되었다.[1] 문앙은 서진 시대까지 사적이 남아있지만, 문호의 행적은 그 이후로 뚜렷하게 기록되지 않았다.[1] 문앙이 291년 제갈탄의 외손자인 사마요에 의해 삼족과 함께 죽임을 당했는데, 만약 문호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함께 화를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3. 가계
관계 | 이름 |
---|---|
아버지 | 문앙 |
형 | 문숙(文淑) |
동생 | 문정(文靜) |
아들 | 문웅(文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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