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바룩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바룩서는 바빌론 유배 시기 또는 그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6장으로 구성된 문서이다. 이 문서는 바룩 벤 네리야가 바빌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읽어주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죄의 고백, 자비에 대한 기도, 지혜에 대한 찬가, 위로의 시, 그리고 예레미야의 편지로 이어진다. 바룩서의 정경성 여부는 논란이 있으며, 가톨릭, 성공회, 동방 정교회 등에서 전례적으로 사용된다. 신학적으로는 죄와 회개, 지혜 추구,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기독교 신학자들의 저술에도 인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1세기 책 - 우정론
    키케로의 《우정론》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친구 렐리우스가 두 사위와 우정에 대해 대화하며, 선한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우정의 본질과 가치를 탐구하는 내용을 담은 대화록이다.
  • 기원전 1세기 책 - 므나쎄의 기도
    므나쎄의 기도는 유다 왕 므나쎄가 지은 참회의 기도문으로, 정경성 논란이 있으며 다양한 언어 번역본으로 존재하고, 여러 종교에서 외경 또는 제2정경으로 여겨져 다양한 전례에서 사용된다.
  • 제2경전 - 집회서
    집회서는 벤 시라가 히브리어로 저술한 지혜 문헌으로, 다양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경외, 윤리적 삶, 사회적 책임을 다루며,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는 정경, 유대교와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된다.
  • 제2경전 - 지혜서
    지혜서는 19장으로 구성된 성경의 지혜서로, 의와 불의, 삶과 죽음의 대조를 통해 세상 통치자들에게 지혜를 추구하도록 권고하며, 헬레니즘 문화와 유대교적 특징이 혼합된 기원전 1세기 말에서 기원후 1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찬사이자 권고적 담론이다.
  • 기원전 2세기 책 - 집회서
    집회서는 벤 시라가 히브리어로 저술한 지혜 문헌으로, 다양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경외, 윤리적 삶, 사회적 책임을 다루며,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는 정경, 유대교와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된다.
  • 기원전 2세기 책 - 전도서
    전도서는 구약성경 지혜 문학의 하나로, 코헬렛이라는 저자가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 지혜의 한계를 성찰하며 세상의 불확실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서구 문화에 영향을 준 책으로, 정경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바룩서
개요
이름바룩서
원어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기록 시기기원전 2세기 ~ 기원후 1세기
장르지혜 문학
예언서
묵시 문학
분량5장 (또는 에레미야의 편지 추가 시 6장)
언어그리스어 (칠십인역)
내용 요약바빌론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에레미야의 동료 바룩의 글
포함칠십인역
불가타
일부 성경
정경성
인정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
미인정유대교
개신교
구성
1:1-3:8바빌론에 있는 유대인들의 참회 기도
3:9-4:4지혜에 대한 찬양
4:5-5:9예루살렘에 대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에레미야의 편지 (선택 사항)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특징
신학적 강조점죄에 대한 참회
지혜의 중요성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
문학적 특징시적인 표현
기도와 설교의 형태
묵시적인 요소
역사적 배경바빌론 유수 이후의 유대인 공동체의 상황 반영
다른 이름바룩 1서
관련 문서
관련 문서에레미야
애가
지혜서
집회서
마카베오기
연관 항목구약성경
외경
위경

2. 역사적 배경

랍비 문헌에는 바룩서에 대한 언급이나 인용이 없으며,[4][9] 사해 문서에서도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스어 조각은 발견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조각은 남아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4][11] 그러나 책 후반부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 일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12]

바룩서 본문에 대한 초기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 인용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서 발견된다.[4] 리옹의 이레네오스는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에서 바룩 4:36-5:9를 인용하며, 이는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많이 사용한 예이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는 이 구절들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짧은 인용문이 나타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 구절들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할 때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4]

바룩이 바빌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 말들'의 책을 읽고, 그 책을 (모금된 자금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읽게 하는 사건은 바룩 1:1-14에 나타난다. 바룩서가 성경의 별개 작품으로 여겨질 때, 바룩이 읽는 책으로 일반적으로 확인되며, 바룩 자신은 전통적으로 이 작품 전체의 저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룩서 1장의 문법적 형식은 '이 말들'이 앞선 텍스트, 즉 애가 또는 예레미야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예레미야서 36장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고 기록하는 바룩에 대한 언급과 비교할 수 있다.[14]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예레미야서, 바룩서, 애가, 예레미야의 편지, 이 네 작품 모두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보았다.

그러나 비평적 학계에서는 바룩이나 예레미야를 바룩서의 저자로 보지 않으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빌론 유배 기간에 작품이 쓰였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다니엘서집회서와 주제적, 언어적으로 유사성이 발견된다. 많은 학자들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진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가 회복된 것이 바룩서 이야기에 적용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며, 기원전 200-100년 사이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4]

2. 1. 저작 시기와 배경

랍비 문헌에는 바룩서에 대한 언급이나 인용이 없다.[4][9] 사해 문서에서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스어 조각은 발견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조각은 남아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4][11] 그러나 아담스는 책 후반부의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의 일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12]

바룩서 본문에 대한 초기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 인용된 것이다. 가장 초기의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나타난다.[4]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리옹의 이레네오스의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이며, 바룩 4:36에서 5:9까지를 인용한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는 이 구절들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짧은 인용문이 나타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 구절들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할 때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4]

바룩이 바빌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 말들'의 책을 읽고, 그 책을 (모금된 자금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읽게 하는 사건은 바룩 1:1-14에 나타난다. 바룩서가 성경의 별개 작품으로 여겨질 때, 바룩이 읽는 책으로 일반적으로 확인되며, 바룩 자신은 전통적으로 이 작품 전체의 저자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바룩서 1장의 문법적 형식은 '이 말들'이 앞선 텍스트, 즉 애가 또는 예레미야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고 기록하는 바룩에 대한 언급과 비교할 수 있는데, 예레미야서 36장에 기록되어 있다.[14] 이러한 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의 근간이 되며, 이 전통에서는 예레미야서, 바룩서, 애가, 예레미야의 편지, 이 네 작품 모두 예레미야가 저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평적 학문은 바룩서의 저자로 바룩이나 예레미야를 모두 배제하거나, 작품이 의도하는 맥락, 즉 바빌론 유배 기간에 작품의 연대를 두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다니엘서집회서와 유사성을 발견했다. 많은 학자들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진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가 회복된 것이 바룩서의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기원전 200-100년 사이의 연대가 제안되었다.[4]

2. 2. 언어와 원본

랍비 문헌에는 바룩서에 대한 언급이나 인용이 없다.[4][9] 사해 문서에서는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스어 조각이 발견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조각은 남아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11] 다만, 책 후반부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 및 고린도전서 일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12]

바룩서 본문에 대한 초기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 인용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있다.[4]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리옹의 이레네오스의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이며, 바룩 4:36에서 5:9까지를 인용한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는 이 구절들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짧은 인용문이 나타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 구절들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할 때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4]

바룩서와 예레미야서는 바티칸 사본(4세기)과 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에서 별개의 책으로, 예레미야, 바룩, 애가, 예레미야서의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15] 시나이 사본(4세기)에서는 애가가 예레미야 바로 다음에 나오며 바룩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애가 이후에 필사본 누락이 있어 이 사본의 다른 부분에 바룩서가 포함되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초기 라틴어 판덱트 성경 두 권(아미아티누스 사본(7세기)과 레온 팔림세스트(7세기))은 바룩서나 예레미야서를 포함하지 않는다.[14] 이 텍스트의 초기 라틴어 증거는 카벤시스 사본(9세기)과 테오둘프 성경(9세기)이다. 바룩서는 일부 초기 콥트어(보하이릭과 사히딕) 및 시리아어 사본에서도 확인되지만, 콥트어 또는 시리아어 렉셔너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16]

바룩 1:1-14는 바룩 벤 네리야가 바빌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 말들'의 책을 읽고, 그 책을 (모금된 자금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읽게 하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바룩서가 성경의 별개 작품으로 여겨질 때, 바룩이 읽는 책으로 일반적으로 확인되며, 바룩 자신은 전통적으로 이 작품 전체의 저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룩서 1장의 문법적 형식은 '이 말들'이 앞선 텍스트, 즉 애가서 또는 예레미야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경우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고 기록하는 바룩에 대한 언급(예레미야서 36장)과 비교할 수 있다.[14]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네 작품(예레미야서, 바룩서, 애가서, 예레미야의 편지) 모두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보았다.

하지만 비평적 학계에서는 바룩이나 예레미야를 바룩서의 저자로 보지 않으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빌론 유배 기간에 작품이 쓰였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니엘서집회서와 주제적, 언어적으로 유사성이 발견된다. 많은 학자들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진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가 회복된 것이 바룩서 이야기에 적용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며, 기원전 200-100년 사이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4]

바룩서의 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 아르메니아어, 아랍어, 보하이어 및 에티오피아어 판본은 모두 그리스어에서 직접 번역되었으며,[4] 그 텍스트는 바티칸 사본과 알렉산드리누스 사본에 남아있고 매우 일관성이 있다.[17] 예로니모(5세기)는 히브리어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18] 오리게네스(3세기)는 헥사플라 구약성서에서 바룩서 텍스트를 준비할 때 히브리어 텍스트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룩서 초반부(1:1~3:8)에는 그리스어의 이상한 구절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원본의 오역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예를 들어 3:4절에서 '이제 이스라엘의 '''죽은'''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מֵתֵי''' יִשְׂרָאֵל)는 '이제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4]('''מְתֵי''' יִשְׂרָאֵל, '사람'을 뜻하는 복수형 단어 מְתִים에서 유래, '내 장막의 사람들'(מְתֵי אָהֳלִי)과 같은 성경적 표현과 같음,[19] '헛된 사람들'(מְתֵי שָׁוְא)[20] 또는 '소수의 사람들'(מְתֵי מִסְפָּר)[21])의 오역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이후 비평 학자들은 이 책 초반부에 셈어 원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토브의 연구[22][23]와 같은 여러 연구에서 그리스어에서 히브리어 원본 텍스트로 되돌리려고 시도했다. 개정 표준역판(1957)에서는 바룩서의 영어 텍스트가 그리스어를 따랐지만, 새 개정 표준역판(1989)에서는 추정되는 히브리어 원본의 재구성에 맞춰 조정되었다.

최근 연구에서는 그리스어 텍스트를 원본으로 간주한다.[24][14] 아담스는 바룩서 대부분의 텍스트가 다른 성경 책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며, 토브는 특히 이 초반부를 "성경 구절의 모자이크"라고 특징지었다.[23] 결과적으로 문자적인 히브리어 텍스트와의 차이점이 셈어 중개 단계를 가정할 필요 없이 직접 의존적인 그리스어 판본에 들어갔을 수 있다. 아담스는 바룩서의 저자가 문자적 번역의 원리를 이해하고 따르기를 열망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추측적 되돌림의 전제에 이의를 제기한다.[25]

3. 주요 내용

바룩서는 서언, 예루살렘에 보내는 편지, 지혜 찬미, 예루살렘에 보내는 격려, 예레미야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 서언 (1:1-1:9): 바룩이 바빌로니아에서 말씀을 기록하고,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울며 금식하고 기도하는 내용이다.
  • 예루살렘에 보내는 편지 (1:10-3:8): 죄의 고백과 자비에 대한 기도를 담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공의로우십니다. ...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와 같이 죄를 고백하고,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은, 그들의 영이 그들의 창자에서 사라졌으니, 주님께 영광과 정의를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http://drbo.org/cgi-bin/d?b=drb&bk=21&ch=006&l=6 6:6/5] 참조)라며 자비를 구한다.
  • 지혜 찬미 (3:9-4:4):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디에 나라들의 군주들이 있는가,... 은과 금을 쌓아두는 자들, 사람들이 믿는 것들? ... 그들은 끊어져 지옥으로 내려갔다..."라고 말한다.
  • 예루살렘에 보내는 격려 (4:5-5:9): 바룩의 위로의 시[7]를 통해 포로로 잡힌 자들, "시온의 이웃들", 예루살렘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너희는 너희의 파멸을 위해 이방인에게 팔린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그분[영원하신 분]이 그들에게 멀리서 한 민족을 데려왔으니...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지도 않고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며, "나 [예루살렘]를 보고 기뻐하지 말아라, 많은 것을 잃은 과부여,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나는 황폐하게 남겨졌으니,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아, 동쪽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오는 기쁨을 보아라"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8]

3. 1. 기본 구조

바룩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1:1–14 서론: "바룩이 바빌로니아에서 기록한 ... 말들입니다.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울고, 금식하며, 주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 1:15–2:10 죄의 고백: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공의로우십니다. ...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 2:11–3:8 자비에 대한 기도: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은, 그들의 영이 그들의 창자에서 사라졌으니, 주님께 영광과 정의를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http://drbo.org/cgi-bin/d?b=drb&bk=21&ch=006&l=6 6:6/5] 참조)
  • 3:9–4:14 지혜에 대한 송가: "어디에 나라들의 군주들이 있는가,... 은과 금을 쌓아두는 자들, 사람들이 믿는 것들? ... 그들은 끊어져 지옥으로 내려갔다..."
  • 4:5–5:9 바룩의 위로의 시:[7] 포로로 잡힌 자들, "시온의 이웃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메시지: "너희는 너희의 파멸을 위해 이방인에게 팔린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그분[영원하신 분]이 그들에게 멀리서 한 민족을 데려왔으니...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지도 않고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나 [예루살렘]를 보고 기뻐하지 말아라, 많은 것을 잃은 과부여,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나는 황폐하게 남겨졌으니,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동쪽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오는 기쁨을 보아라".[8]
  • 6장: ''예레미야의 편지''


바룩서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서언 (1:1-1:9)
  • 예루살렘에 보내는 편지 (1:10-3:8)
  • 지혜의 찬미 (3:9-4:4)
  • 예루살렘에 보내는 격려 (4:5-5:9)

3. 2. 예레미야의 편지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서 특정 구절을 '바룩'에서 인용할 것인지, '예레미야'에서 인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예레미야서의 서로 다른 텍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그리스어 및 히브리어 성경 필사본에서 발견된다.[4] 그리스어 칠십인역 텍스트(바티카누스, 알렉산드리누스)의 예레미야서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나 라틴어 불가타보다 7분의 1이 짧다. 장의 순서도 매우 다른데, 칠십인역 버전의 책 중간 부분(열방에 대한 예언)은 마소라 본문과 불가타에서는 책의 끝부분에서 발견된다. 사해 두루마리에서 칠십인역과 마소라 본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편들이 발견되었으므로, 두 버전이 두 개의 별개의 히브리어 전통에서 유래했으며, 칠십인역 형태의 텍스트가 더 오래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4] 베네딕토회 학자 피에르-모리스 보가트는 바룩서가 예레미야서의 칠십인역 버전에 부가될 경우 칠십인역의 이야기(칠십인역 51:31–35장, 마소라 본문에서 축약된 45장에 해당)의 그럴듯한 연속으로 이어진다고 제안한다.[14] 에마누엘 토브는 이와 유사한 결론을 제안했는데, 그는 예레미야서 29장부터 칠십인역 텍스트의 일관된 수정 편집(히브리어로의 판독 수정)의 특징을 언급하며, 이러한 수정이 바룩 1:1에서 3:8까지의 그리스어 텍스트로 이어져, 한때 이들이 연속적인 텍스트를 형성했음을 시사한다.[37]

4. 신학적 의의

바룩서는 랍비 문헌에서 언급되거나 인용되지 않았다.[4][9]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스어 조각이 사해 문서에서 발견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남아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4][11] 그러나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 일부 주제와 바룩서 후반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12]

바룩서 본문에 대한 초기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 저작물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나타난다.[4] 리옹의 이레네오스는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에서 바룩서 4장 36절부터 5장 9절까지를 인용하며, 교부 문헌 중 바룩서를 가장 많이 사용한 예시로 꼽힌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는 이 구절들을 예레미야서에서 인용한 것으로 언급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짧은 인용문이 등장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 구절들을 '바룩서'에서 인용한 것으로 언급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할 때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4]

4. 1. 죄와 회개

바룩서 1장 15절부터 2장 10절까지는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공의로우십니다. ...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 재앙을 받았음을 인정한다.[7]

바룩서 2장 11절부터 3장 8절까지는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담고 있다.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은, 그들의 영이 그들의 창자에서 사라졌으니, 주님께 영광과 정의를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6:6/5 참조)라는 구절을 통해, 죽은 자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7]

바룩서 4장 5절부터 5장 9절까지는 바룩이 위로의 시를 통해 포로로 잡혀간 이들, "시온의 이웃들", 그리고 예루살렘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너희는 너희의 파멸을 위해 이방인에게 팔린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그분[영원하신 분]이 그들에게 멀리서 한 민족을 데려왔으니...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지도 않고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노하게 하여 벌을 받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러나 "나 [예루살렘]를 보고 기뻐하지 말아라, 많은 것을 잃은 과부여,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나는 황폐하게 남겨졌으니,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동쪽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오는 기쁨을 보아라"라는 구절을 통해, 결국 하느님의 율법으로 돌아가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8]

4. 2. 지혜의 추구

חכמה|하크마he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었다.[7] 바룩은 ציון|시온he의 이웃들과 예루살렘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7] "너희는 너희의 파멸을 위해 이방인에게 팔린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그분[영원하신 분]이 그들에게 멀리서 한 민족을 데려왔으니...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지도 않고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나 [예루살렘]를 보고 기뻐하지 말아라, 많은 것을 잃은 과부여, 내 자녀들의 죄 때문에 나는 황폐하게 남겨졌으니,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기 때문이다".[8] "예루살렘아, 동쪽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오는 기쁨을 보아라".[8]

4. 3. 희망과 회복

바룩서 4장 5절부터 5장 9절은 포로로 잡혀간 이들, "시온의 이웃들", 그리고 예루살렘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7] 이 부분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팔린 것이라고 설명한다.[7] "영원하신 분"이 그들에게 멀리서 온 민족을 데려왔는데,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거나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7]

바룩은 예루살렘을 "많은 것을 잃은 과부"라고 칭하며, 자녀들의 죄 때문에 황폐하게 남겨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예루살렘아, 동쪽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오는 기쁨을 보아라"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8]

5. 정경성 논란

바룩서는 랍비 문헌에서 언급되지 않으며, 본문의 인용도 없다.[4][9] 예레미야의 편지의 그리스어 조각이 사해 문서에서 발굴되었지만, 바룩서의 대응 조각은 남아 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주장된다.[4][11] 그러나 아담스는 책 후반부의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의 일부 주제 사이에 일반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제안한다.[12]

바룩서 텍스트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 인용된 것이다. 가장 초기의 인용은 1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있다.[4]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 것은 리옹의 이레네오스의 ''이단 반박: 5.35.1'' (약 180년)이며, 이는 바룩 4:36에서 5:9까지 광범위하게 인용한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 모두 이러한 구절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짧은 인용문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나타난다.[13] 그러나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러한 구절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라틴 교부들은 이러한 텍스트를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하는 경우에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4]

그리스 동방 교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367년),[26] 키릴로스(350년경),[27] 에피파니우스(385년경)[28]가 바룩기를 정경으로 목록화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바룩, 애가, 서신과 함께 예레미야"라고 언급했으며, 다른 교부들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했다.

바룩기는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364년경)에서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정경 목록이 59조에 추가되었으며, 이 조항에서는 "예레미야, 바룩, 애가, 서신"이 정경으로 명시되어 있다.[29] 이 목록은 에티오피아 교회에서 유통되는 라오디게아 결의안 요약본과 모든 후기 그리스 요약본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라틴, 콥트 및 시리아 교회에서 유통되는 라오디게아의 대조 요약본과 일부 초기 그리스 요약본에는 없다. 피렌체 공의회 (1442년)[30]트리엔트 공의회 (1546년)[31]의 결의에서 "바룩과 함께 예레미야"가 정경으로 언급되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1세 (405년),[32] 로마 공의회 (382년),[33] 히포 종교회의 (393년),[34] 카르타고 공의회 (397년)와 카르타고 공의회 (419년)[35]는 바룩기를 언급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정경으로 언급했지만, 서방 교회에서 유통되는 정경 목록에서 바룩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은 바룩기가 비정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단지 예레미야의 일부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부분의 교부들은 예레미야를 바룩기, 애가, 서신과 함께 하나의 책으로 간주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97년경)는 저서 《신국론》 18:33에서 바룩기 3:36–38의 본문을 논하며, 이 구절이 바룩기 또는 예레미야서로 인용되는데, 자신은 후자를 선호한다고 언급했다.[36] 히에로니무스는 바룩기를 정경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불가타 성경에 포함시켰다.[4]

또한 광범위한 위경적 ''바룩'' 묵시 문학 ( 2 바룩, 3 바룩, 4 바룩)이 있었으며, 이는 라틴 목록에서 외경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6. 현대적 적용

바룩서는 랍비 문헌에서 언급되지 않으며, 본문의 인용도 없다.[4][9] 사해 문서에서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스어 조각이 발견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4][11] 그러나 아담스는 책 후반부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 일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12]

바룩서 텍스트에 대한 초기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초기의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나타난다.[4] 리옹의 이레네오스는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에서 바룩 4:36-5:9를 인용하며, 이는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 예시이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는 이 구절들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짧은 인용문이 나타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 구절들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했다. '바룩서'를 언급하는 경우에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4]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바룩 3:38 (불가타 성경에서는 3:37)을 인용하여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시야에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니, 바룩 3:38에 따르면, '그 후에 그분은 땅에 나타나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아니면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같은 바룩 구절을 사용했다. 이 구절은 원래 신성한 지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지만, 대명사의 성별을 바꿔 읽으면서 기독교 담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예언으로 널리 재해석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바룩 3:16-19를 인용하면서 "신성한 성경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의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언급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는 예레미야를 언급하며 바룩 3:36-38을 인용했는데, "바룩은 예레미야의 비서였으며, 교부들은 그를 주로 예레미야라는 이름으로 인용한다"라고 말했다.

바룩 3:38(37)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Dei verbum)에서 언급된다. 바룩 6장은 가톨릭교회 교리서[50]에서 우상 숭배에 반대하는 설명의 일부로 인용된다. 디아스포라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로의 타락을 한탄했고, 그들의 회개는 바룩서에 담겨 있다.

《바룩서: 영지주의자 유스티누스》는 영국 시인 제프리 힐이 쓴 270편의 시 시퀀스로, 2019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사후 출판되었다.[51]

6. 1. 전례적 사용

가톨릭교회에서 바룩 3:9–38은 전통적인 미사에서의 성경 봉독 전례서에서 성주간 동안의 성 토요일 전례에 사용된다. 유사한 구절은 개정된 부활 성야 전례 중에 나타난다.[38]

바룩 1:14 – 2:5; 3:1–8은 개정된 로마 가톨릭 성무일도[39] 안에서 연중 시기 제29주 금요일 독서 기도의 전례 독서이다. 이 주제는 ''회개하는 백성의 의 기도와 고백''이다.

바룩 3:9–15, 24–4:4는 같은 주의 토요일의 전례 독서이다. 이 주제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룩 5:1-9는 3년 주기 전례 주기에서 대림 제2주일의 해 C에 봉독된다.[42] 바룩서는 잉글랜드 교회의 39개 신조 제6조에 언급되어 있다.[43] 성무일도 성탄 전야에는 바룩 4:21–29이, 크리스마스에는 바룩 4:30–5:9가 낭독된다. 이 두 구절은 성공회 전통에서 메시아 예언으로 여겨진다.[44]

미국 1928년 공도문에서 성무일도 본문은 여러 차례 바룩서를 첫 번째 독서로 포함하고 있다. 미국 공도문 (1979)에서는 바룩 5:1–9가 대림절 II (C년)의 구약 독서로, 성무일도 (2년)에서는 대림절 IV에 바룩 4:21–29, 12월 24일에는 바룩 4:36–5:9가 지정되어 있다.[46]

동방 정교회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는 바룩서(예레미야서의 연장으로 간주되며, 전례에서 "예레미야"로 공표됨)의 일부가 성탄 전야 저녁기도 성찬 예식 중 8개의 ''파로이미아'' (구약성서 독서) 중 하나로 봉독된다.

6. 2. 신학적, 문화적 영향

바룩서는 랍비 문헌에서 언급되지 않으며, 본문의 인용도 없다.[4][9] 예레미야의 편지의 그리스어 조각이 사해 문서에서 발굴되었지만, 바룩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10] 일반적으로 바룩서는 신약 성경에서 언급, 인용 또는 암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4][11] 그러나 아담스는 책 후반부의 주제와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의 일부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12]

바룩서 텍스트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물에 인용된 것이다. 가장 초기의 인용은 177년 아테나고라스의 ''Legatio pro Christianis: 9''에 있다.[4] 교부 문헌에서 바룩서를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 것은 리옹의 이레네오스의 ''이단 반박: 5.35.1''(약 180년)이며, 바룩 4:36에서 5:9까지를 인용한다.[12] 아테나고라스와 이레네오스 모두 이러한 구절을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한다. 짧은 인용문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파이다고고스에도 나타난다.[13] 4세기부터 그리스 교부들은 이러한 구절을 '바룩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라틴 교부들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용하는 이전 관행을 유지하며, '바룩서'를 언급하는 경우에는 2 바룩과 같은 종말론적 작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4]

교회 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바룩 3:38(불가타 성경에서는 3:37)을 인용하여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시야에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니, 바룩 3:38에 따르면, '그 후에 그분은 땅에 나타나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아니면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같은 바룩 구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은 원래 신성한 지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지만, 대명사의 성별을 바꿔 읽으면서 기독교 담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예언으로 널리 재해석되었다.

교부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바룩 3:16-19를 인용하면서 "신성한 성경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의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언급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는 예레미야를 언급하며 바룩 3:36-38을 인용했는데, "바룩은 예레미야의 비서였으며, 교부들은 그를 주로 예레미야라는 이름으로 인용한다"라고 말했다.

바룩 3:38(37)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Dei verbum)에서 언급된다. 바룩 6장은 가톨릭교회 교리서[50]에서 우상 숭배에 반대하는 설명의 일부로 인용된다. 디아스포라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로의 타락을 한탄했고, 그들의 회개는 바룩서에 담겨 있다.

《바룩서: 영지주의자 유스티누스》는 영국 시인 제프리 힐이 쓴 270편의 시 시퀀스로, 2019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사후 출판되었다.[51]

참조

[1] 성경 Jeremiah 36:9–10 http://www.biblegate[...]
[1] 성경 Baruch 1:1–5 http://www.biblegate[...]
[2] 서적 A New Catholic Commentary on Holy Scripture Thomas Nelson
[3] 웹사이트 Baruch https://www.biblesoc[...] Bible Society 2019-07-22
[4] 서적 The Oxford Bible Commentary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7-01-25
[5] 문서 "Baruch" by P. P. Saydon, revised by T. Hanlon, in ''A New Catholic Commentary on Holy Scripture'', ed. [[Reginald C. Fuller]], Thomas Nelson, Inc. Publishers, 1953, 1975, §504j. The same source states that "[t]here is also evidence that Baruch was read in Jewish synagogues on certain festivals during the early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Thackeray, 107-11)", i.e. Henry St. John Thackeray, ''The Septuagint and Jewish Worship'', 1923.
[6] 서적 Apocrypha-KJV-Reader's Hendrickson Publishers 2009
[7] 문서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 sub-heading at Baruch 4:5
[8] 문서 Quotations are from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9]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0]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1]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2]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3] 문서 Paedagogus, Book II, Ch. 3
[14] 간행물 Le livre de Baruch dans les manuscrits de la Bible latine. Disparition et réintégration 2005
[15]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6]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7]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8]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19] 성경 Job 31:31
[20] 성경 Job 11:11
[20] 성경 Psalms 26:4
[21] 성경 Genesis 34:30
[21] 성경 Deuteronomy 4:27
[22]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23] 서적 The Book of Baruch also Called I Baruch (Greek and Hebrew) Scholars Press
[24]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25] 서적 Baruch and the Epistle of Jeremiah Brill
[26] 서적 CHURCH FATHERS: Letter 39 (Athanasius) http://www.newadvent[...] newadvent 2016-10-14
[27] 서적 Catechetical Lecture 4 Chapter 35 http://www.newadvent[...] newadvent 2016-10-12
[28] 서적 The Panarion of Epiphanius of Salamis 8:6:1-3 http://www.masseiana[...] E.J. Brill 2016-10-11
[29] 서적 Synod of Laodicea Canon 60 http://www.newadvent[...] newadvent 2016-10-12
[30] 서적 Eccumenical Council of Florence and Council of Basel Session 11—4 February 1442 https://www.ewtn.com[...] ewtn 2016-10-20
[31] 웹사이트 Session IV Celebrated on the eighth day of April, 1546 under Pope Paul III http://www.ewtn.com/[...] EWTN
[32] 서적 A general survey of the history of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Page 570 Wipf & Stock 2005
[33] 웹사이트 Decretum Gelasianum http://www.tertullia[...]
[34] 문서 The Canons of the 217 Blessed Fathers who assembled at Carthag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35] 웹사이트 Council of Carthage (A.D. 419) Canon 24 http://www.newadvent[...]
[36] 서적 On Christian Doctrine Book II Chapter 8:2 http://www.newadvent[...] newadvent 2016-10-12
[37] 서적 The Septuagint Translation of Jeremiah and Baruch: A Discussion of an Early Revision of Jeremiah 29–52 and Baruch 1:1–3:8 Scholars Press 1976
[38] 웹사이트 http://www.easterbro[...]
[39] 간행물 Laudis canticum https://www.vatican.[...] Paul VI 1970-11-01
[40] 웹사이트 Adam and Christ – Peter Chrysologus https://www.crossroa[...] Crossroads Initiative 2019-07-25
[41] 성경 1 Corinthians 15:49
[42] 웹사이트 A Future with Hope: Advent Reflections on Baruch 5:1-9 https://www.patheos.[...] Holbert, J. 2024-12-08
[43] 웹사이트 The Thirty-Nine Articles http://anglicansonli[...] Anglicans Online 2007-04-15
[44] 웹사이트 Lectionary for Anglican Church at http://www.bcponline[...] Bcponline.org 2014-08-25
[45] 웹사이트 Psalms and Lessons for the Christian Year, Book of Common Prayer, 1928 pg. xxii–xxxviii http://justus.anglic[...]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USA 1952
[46] 서적 Prayer Book and Hymnal, Containing The Book of Common Prayer and The Hymnal 1982, According to the use of The Episcopal Church The Church Hymnal Corporation New York 1986
[47] 웹사이트 http://www.catholic-[...]
[48] 웹사이트 http://www.catholic-[...]
[49] 웹사이트 Dogmatic Constitution on Divine Revelation – Dei verbum https://www.vatican.[...] Vatican.va 2014-08-25
[50] 웹사이트 §2112 https://www.vatican.[...] Vatican.va 2014-08-25
[51] 웹사이트 The Book of Baruch by the Gnostic Justin https://global.oup.c[...] global.oup.com 2023-02-23
[52] 성경 《공동번역 성서》바룩 1:1
[53] 성경 《공동번역 성서》예레미야 36: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