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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리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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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버리사자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 서식했던 사자의 아종으로, 옅은 황갈색에서 짙은 황갈색의 다양한 털색과 수컷의 긴 갈기가 특징이다. 19세기 사냥꾼의 기록에 따르면 가장 큰 사자였으나, 20세기 초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멸종되었다. 유전적 연구를 통해 바버리사자는 중앙 및 서아프리카 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으며, 현재는 사육 개체를 통해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현대 문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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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리사자 - [생물]에 관한 문서
개요
1893년 알제리의 바바리사자
1893년 알제리의 바바리사자
분류
표범속 P. leo
아종바바리사자 P. l. leo
학명
학명Panthera leo leo (Linnaeus, 1758)
한국어 이름바바리사자
영어 이름Barbary Lion
Atlas Lion
Nubian Lion
멸종 여부
멸종 여부멸종
참고 문헌

2. 특징

바버리사자의 동물 표본은 털 색깔이 옅은 황갈색에서 짙은 황갈색까지 다양하다. 수컷은 특히 길고 짙은 갈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는 갈기가 어깨를 넘어 배 아래까지 이어지기도 했다.[1][2][3] 19세기 기록에는 바버리사자가 매우 큰 사자로 묘사되었으나, 측정 기록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4]

갈기의 크기와 색상은 과거 아종 구분의 기준으로 여겨졌으나,[5] 현재는 나이, 환경 요인(주변 온도, 영양 상태, 테스토스테론 수치 등)에 따른 변화가 커[7][4] 결정적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6] 특히 아틀라스 산맥의 추운 기후가 바버리사자의 긴 갈기 발달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4]

유전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박물관 표본에서 발견된 독특한 단일배형이 혈통 식별의 분자 마커로 활용될 수 있다.[22] 여러 계통지리학 및 게놈 연구 결과, 바버리사자는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의 사자들과 유전적으로 가깝고, 아시아 사자와 같은 주요 미토콘드리아 DNA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2][24][26] 이는 사자가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후기 플라이스토세 이후 여러 차례 확산하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갔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24] 형태학적으로는 뚜렷한 특징을 가졌지만, 유전적 고유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23]

2. 1. 형태

1897년 브롱크스 동물원의 바버리사자


바버리사자 동물 표본의 털 색깔은 옅은 황갈색부터 짙은 황갈색까지 다양하다. 수컷 사자의 가죽은 다양한 색상과 길이의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1]

박제된 수컷 표본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는 2.35m에서 2.8m이며, 암컷은 약 2.5m이다. 두개골 크기는 30.85cm에서 37.23cm였다. 일부 수컷의 갈기는 어깨 위로 뻗어 배 아래 팔꿈치까지 닿기도 했다. 갈기 털의 길이는 8cm에서 22cm였다.[1][2][3]

19세기 사냥꾼들은 바버리사자가 가장 큰 사자이며, 야생 수컷의 몸무게가 270kg에서 300kg에 달한다고 기록했다.[4] 그러나 현장에서 측정된 이 기록들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동물원에서 사육된 바버리사자는 훨씬 작았는데, 이는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인해 잠재적인 최대 크기와 무게에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4]

오랫동안 사자 갈기의 색상과 크기는 아종 지위를 부여할 만큼 뚜렷한 형태학적 특징으로 여겨졌다.[5] 하지만 갈기 발달은 나이에 따라 다르고 지역별 개체 간 차이도 크기 때문에, 아종을 식별하는 충분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6] 갈기의 크기만으로는 바버리사자의 조상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대신,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 결과는 박물관 표본에서 발견된 독특한 단일배형을 통해 바버리사자의 유전적 차이를 뒷받침한다. 이 단일배형은 바버리사자 후손으로 여겨지는 개체들에서 발견되며, 사육된 바버리사자를 식별하는 신뢰할 수 있는 분자 마커로 간주된다.[22]

바버리사자가 특히 긴 털의 갈기를 발달시킨 것은, 다른 아프리카 지역보다 아틀라스 산맥의 겨울철 낮은 기온 때문일 수 있다.[4]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사자에 대한 장기 연구에 따르면, 주변 온도, 영양 상태, 그리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사자 갈기의 색상과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7]

2. 2. 유전적 특징

사자 갈기의 색상과 크기는 오랫동안 아종 지위를 부여할 만큼 뚜렷한 형태학적 특성으로 여겨졌으나,[5] 갈기 발달은 나이와 지역 개체 간 차이가 있어 아종 식별에 충분한 특성은 아니다.[6] 갈기 크기만으로는 바버리사자의 조상을 증명하기 어렵다. 대신,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 결과는 박물관 표본에서 발견된 독특한 단일배형을 통해 바버리사자의 유전적 차이를 뒷받침한다. 이 단일배형의 존재는 사육된 바버리사자를 식별하는 신뢰할 수 있는 분자 마커로 간주된다.[22]

2006년에 발표된 계통지리학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단 누비아 지역에서 채취된 국립 자연사 박물관 (프랑스) 소장 표본의 미토콘드리아 DNA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에티오피아, 콩고 민주 공화국 북부 지역의 사자 표본들과 유전적으로 가깝게 묶였다.[22]

역사적으로 바버리사자는 형태학적으로 구별되었지만, 유전적 고유성은 오랫동안 명확하지 않았다.[23] 2008년,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채취한 357개의 야생 및 사육 사자 표본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연구 결과, 모로코에서 온 4마리의 사육 사자는 특별한 고유 유전적 특징을 보이지 않았으며, 미토콘드리아 DNA 단일배형을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의 사자 표본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아시아 사자 표본을 포함하는 주요 미토콘드리아 DNA 그룹에 속했다. 이 결과는 사자가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생하여 약 118,000년 전 첫 번째 확산 과정에서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후 아프리카 내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서아시아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은 아마도 후기 플라이스토세 이후 여러 차례의 이주 과정에서 서로 교배하며 단일 개체군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24] 한편, 수단에서 채취된 야생 출생 역사적 사자 표본의 전체 게놈 데이터 분석 결과, 미토콘드리아 DNA 계통 발생에서는 ''P. l. leo''와 함께 묶였지만, ''P. l. melanochaita''와 높은 유전적 친화성을 보였다.[25]

2016년에 발표된 포괄적인 유전자 연구는 북아프리카에서 멸종된 바버리사자와 중앙 및 서아프리카 사자 사이의 밀접한 유전적 관계를 재확인했으며, 바버리사자가 아시아 사자와 같은 하위 분기군에 속한다는 점을 추가로 보여주었다.[26]

3. 분류

바버리사자의 학명은 1758년 칼 린네가 알제리 콘스탄틴의 표본을 바탕으로 ''Felis leo''로 처음 기술한 것에서 시작된다.[9] 이후 북아프리카 지역의 표본을 바탕으로 ''Felis leo barbaricus''[10], ''Felis leo nubicus''[11] 등 여러 아종이 제안되었다. 1930년에는 레지날드 인네스 포코크에 의해 사자가 Panthera 속으로 분류되었다.[12]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사자 아종 분류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으며,[13][14] 여러 연구를 통해 분류 체계가 변화해왔다. 과거 바버리사자는 별도의 사자 아종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19][17] 2017년 IUCN 고양이 전문가 그룹의 고양이 분류 작업반은 유전학적 분석 등을 토대로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사자 개체군을 포함하여 ''Panthera leo leo'' 아종으로 통합하였다.[20] 바버리사자는 북아프리카사자,[29] 아틀라스사자,[43] 이집트사자[21] 등으로도 불린다.

3. 1. 학명

''Felis leo''는 1758년 칼 린네가 알제리 콘스탄틴의 표본을 참고하여 제안한 학명이다.[9] 린네의 명명 이후, 19세기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여러 사자 동물 표본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아종 학명들이 제안되었다.

  • 1826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요한 네포무크 마이어는 바르바리 해안에서 온 사자 가죽을 ''Felis leo barbaricus''로 묘사했다.[10]
  • 1843년 앙리 마리 뒤크로테 드 블레인빌은 누비아 출신의 수사자를 ''Felis leo nubicus''로 명명했다. 이 사자는 앙투안 클로가 카이로에서 파리로 보낸 개체로, 1841년 메나제리 뒤 자르댕 데 플랑트에서 죽었다.[11]


1930년, 레지날드 인네스 포코크는 아시아사자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사자를 Panthera 속으로 재분류했다.[12]

20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쳐, 사자의 분류와 제안된 아종들의 타당성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다.

  • 1939년, 글로버 모릴 앨런은 ''F. l. barbaricus''와 ''nubicus''를 ''F. l. leo''의 동의어로 간주했다.[13]
  • 1951년, 존 엘러먼과 테렌스 모리슨-스코트는 구북구의 사자를 아프리카사자 ''Panthera leo leo''와 아시아사자 ''P. l. persica'' 단 두 아종으로만 인정했다.[14]
  • 일부 학자들은 ''P. l. nubicus''를 유효한 아종으로 보았으며, 이를 ''P. l. massaica''와 동일한 아종으로 간주하기도 했다.[2][15][16]
  • 2005년에는 ''P. l. barbarica'', ''nubica'', ''somaliensis''가 ''P. l. leo''에 포함되었다.[17]
  • 2016년, IUCN 적색 목록 평가자들은 아프리카의 모든 사자 개체군에 대해 ''P. l. leo''라는 학명을 사용했다.[30][18]


과거 바버리사자는 별개의 사자 아종으로 여겨졌으나,[19][17] 2017년 고양이 전문가 그룹의 고양이 분류 작업반은 유전학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사자 개체군을 모두 ''P. l. leo'' 아종으로 통합했다.[20]

바버리사자는 북아프리카사자,[29] 아틀라스사자,[43] 그리고 이집트사자[21] 등으로도 불렸다.

3. 2. 분류학적 논쟁

지도에는 ''P. l. leo''와 ''P. l. melanochaita''의 분포가 나와 있다.


''Felis leo''는 1758년 칼 린네가 알제리 콘스탄틴의 표본을 바탕으로 제안한 학명이다.[9] 린네의 설명 이후, 19세기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여러 사자 동물 표본을 근거로 새로운 아종들이 제안되었다.

  • 1826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요한 네포무크 마이어는 바르바리 해안에서 온 사자 가죽을 보고 ''Felis leo barbaricus''라는 이름을 붙였다.[10]
  • 1843년 앙리 마리 뒤크로테 드 블레인빌은 누비아 출신의 수사자를 ''Felis leo nubicus''로 묘사했다. 이 사자는 앙투안 클로가 카이로에서 파리로 보냈으며, 1841년 메나제리 뒤 자르댕 데 플랑트에서 죽었다.[11]


1930년, 레지날드 인네스 포코크는 아시아사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사자를 Panthera 속으로 분류했다.[12]

20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쳐, 사자의 분류와 제안된 아종들의 타당성을 두고 동물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 1939년, 글로버 모릴 앨런은 ''F. l. barbaricus''와 ''nubicus''를 모두 ''F. l. leo''의 동의어로 보았다.[13]
  • 1951년, 존 엘러먼과 테렌스 모리슨-스코트는 구북구 지역에서 아프리카사자(''Panthera leo leo'')와 아시아사자(''P. l. persica'') 단 두 개의 사자 아종만을 인정했다.[14]
  • 일부 학자들은 ''P. l. nubicus''를 유효한 아종으로 보고, 이를 동아프리카사자(''P. l. massaica'')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2][15][16]
  • 2005년에는 ''P. l. barbarica'', ''nubica'', ''somaliensis''가 모두 ''P. l. leo''에 포함되었다.[17]
  • 2016년, IUCN 적색 목록 평가자들은 아프리카의 모든 사자 개체군을 ''P. l. leo''로 통칭했다.[30][18]


과거 바버리사자는 별개의 사자 아종으로 여겨졌다.[19][17] 2017년, 고양이 전문가 그룹의 고양이 분류 작업반은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사자 개체군을 모두 ''P. l. leo''로 통합하여 분류했다.[20]

바버리사자는 북아프리카사자,[29] 아틀라스사자,[43] 이집트사자[21] 등으로도 불렸다.

4. 분포 및 서식지

바버리사자는 역사적으로 북아프리카마그레브 지역, 즉 모로코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의 산과 사막에 서식했다.[29] 특히 아틀라스 산맥을 포함한 산악 지대와 지중해 숲, 삼림지, 관목 지대를 주요 서식지로 삼았다.[31] 모로코 에사우이라 인근 비즈무네 동굴에서는 약 10만년에서 11만년 전의 바버리사자 화석이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서식했음을 보여준다.[27][28]

과거 기록에 따르면, 북아프리카의 사자 개체군은 중동을 거쳐 인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개체군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사자들과도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을 통해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원전 2천년 무렵부터 나일 강 유역 문명의 발달과 사막화 진행으로 인해 북아프리카의 사자 개체군은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40]

19세기 이후 화기의 광범위한 보급과 오스만 제국프랑스 식민 정부의 사자 근절 정책, 유럽인들의 무분별한 사냥, 현상금 지급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29] 일부 지역에서는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는 사자의 역할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대대적인 사냥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야생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으며, 현재는 지역 멸종 상태이다.[30] 마지막 야생 바버리사자는 1942년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에서 사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31]

4. 1. 역사적 분포

얀 얀스니우스(1588-1664)가 그린 지도의 세부 묘사로, 17세기에 바르바리아로 알려졌으며 현재 알제리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안"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바버리사자는 모로코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산과 사막, 특히 지중해 숲, 삼림지, 관목 지대에 서식했다.[29][31] 모로코 에사우이라 인근 비즈무네 동굴에서는 10만년에서 11만년 전 사이의 바버리사자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27][28] 역사 기록을 보면, 한때 북아프리카에서 중동, 인도까지 하나의 거대한 사자 개체군이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개체군과는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지역을 통해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동부(리비아, 이집트)는 고대부터 인간의 영향과 사막화 진행으로 인해 사자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수 있다(Harper 1945년; Nowell과 잭슨 1996년).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는 멤피스 근처에서 사자를 사냥했다는 기록이 있으며,[36] 기원전 2천년 초 나일 강과 시나이 반도 주변의 문명 발달과 사막화는 북아프리카 사자 개체군을 고립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40] 이집트 내에서는 시나이 반도, 나일 강 유역, 동부 사막과 서부 사막(이집트), 와디 엘 나트룬 지역, 지중해 해안 등지에 분포했던 것으로 보인다.[35]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알제리의 콩스탕틴)의 사자가 유형 표본으로 이용되었고, 린네는 1758년 이 종에 Felis leolat라는 학명을 처음 부여했다. 17세기 모로코에서는 사자가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1667년 스페인 여행가 마르몰은 "그 국가 모로코에는 두려워할 만큼 많은 사자가 있다"고 기록했으며(Guggisberg 1963년), 다른 여행자들은 모로코 페스에서 16~17세기에 돌담 위에서 사냥꾼들이 사자를 쏘아 잡는 사냥 방식에 대해 기술했다.

하지만 18세기 초부터 사자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존스턴 1899년). 1830년대에는 이미 지중해 연안과 인간 거주지 근처에서는 사자가 거의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32] 19세기 중반 이후 화기의 광범위한 보급과 오스만 제국프랑스 식민 정부의 사자 근절 정책으로 인해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했다.[29] 특히 알제리에서는 사냥에 대한 현상금이 지급되었고, 유명한 프랑스 사냥꾼 줄르 제라르는 사자를 조직적으로 박멸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라르는 콩스탕틴 지방에서 사자로 인해 매년 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주민들이 비용(매년 )을 부담하면 사자를 없애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1848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3년부터 1883년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에서는 총 202마리의 사자가 사냥되었는데, 콩스탕틴 지방에서 173마리, 알제 지방에서 29마리가 죽었고 오랑 지방에서는 기록이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사자 사냥에는 총 400GBP의 포상금이 지급되었으며, 이는 표범 1,214마리(720GBP), 하이에나 1,882마리(400GBP), 재칼 27,000마리(1600GBP) 사냥 포상금과 비교된다. 유럽에서 북아프리카로의 쉬운 접근성 또한 사자 사냥을 부추겨 멸종을 가속화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 1864년 Ormsby는 "런던에서 월요일에 식사하고 급행열차와 빠른 기선을 이용하면, 금요일 저녁에는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사냥할 수 있다"고 기술할 정도였다.

결국 바버리사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서식지 대부분에서 사라졌다. 각 지역별 마지막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리비아: 18세기 초까지 해안가에 생존.[33]
  • 튀니지: 1890년까지 멸종.[33] 마지막 기록은 1891년 Babouch 근처에서 사살. 1890년까지 크루미르와 수크 아라스 주 지역에서 사라짐.[34]
  • 알제리: 1893년 바트나 주에서 마지막 공식 기록(방타 근처).[34] 1956년 베니 오르틸란 구역에서 마지막 목격 기록.[31] 1960년대 초까지 생존 가능성 제기.[31]
  • 모로코: 1942년 아틀라스 산맥의 티지-엔티치카 고개 북쪽에서 마지막 사살 기록.[31] 1960년대 중반까지 생존 가능성 제기.[31]


결과적으로 바버리사자는 화기 확산과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현상금 정책 등으로 인해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져 지역 멸종 상태가 되었다.[29][30]

4. 2. 서식 환경



바버리사자는 역사적으로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산과 사막에 걸쳐 서식했으며, 그 범위는 모로코에서 이집트까지 이르렀다.[29] 주요 서식 환경은 지중해 숲, 삼림지, 관목 지대였으며, 특히 산악 지대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31] 모로코 에사우이라 인근 비즈무네 동굴에서는 10만 년에서 11만 년 전 사이의 바바리사자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27][28]

구체적인 서식 기록에 따르면, 바버리사자는 모로코 서부의 안티 아틀라스 산맥에서 가장 서쪽 기록이 확인되었고, 아틀라스 산맥과 리프 산맥에서도 서식했다. 알제리에서는 크수르 산맥과 아무르 산맥을 포함하여 서쪽의 우아르세니스 산맥부터 북쪽의 셸리프 강 평원, 동쪽의 타자 국립공원에 이르는 숲이 우거진 언덕과 산악 지역에서 목격되었다. 콘스탄틴 주의 숲과 구릉지대에서 남쪽으로 튀니지의 오레스 산맥까지 분포했다.[31][29] 특히 알제리의 첼리아 산과 인근 산맥의 삼나무 숲은 1884년경까지 중요한 서식지였다.[29]

이집트에서는 시나이 반도, 나일 강 유역, 동부 사막과 서부 사막, 와디 엘 나트룬 지역, 그리고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식했던 기록이 있다.[35] 기원전 14세기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멤피스 근처 언덕에서 사자를 사냥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36]

시간이 흐르면서 서식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기원전 2천년 경 나일강 유역과 시나이 반도에서 문명이 발달하고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북아프리카의 사자 개체군이 고립되기 시작했다.[40] 근대에 들어 화기의 보급과 사냥에 대한 현상금 지급 등 인간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서식지 파괴와 개체수 감소가 가속화되었다.[29] 1830년대에는 이미 지중해 연안과 주요 인간 정착지 근처에서는 사자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32], 리비아 해안에서는 18세기 초까지, 튀니지에서는 1890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3] 19세기 말에는 튀니지의 본 지역(1890년), 크루미르와 수크 아라스 주 지역(1891년), 알제리의 바트나 주(1893년) 등에서 사라졌다.[34] 20세기 중반까지 모로코알제리의 외딴 산악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31], 결국 지역 멸종되었다.[30] 마지막 야생 바바리사자는 1942년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의 티지-엔티치카 고개 근처에서 사살된 것으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31] 알제리에서의 마지막 목격 기록은 1956년 베니 오르틸란 구역에서 보고되었다.[31]

5. 생태

20세기 초 바버리사자가 희귀해졌을 때는 수사자와 암사자, 그리고 한두 마리의 새끼로 이루어진 작은 가족 단위나 쌍으로 목격되었다.[29] 1839년부터 1942년 사이의 야생 사자 목격 기록 역시 주로 단독 개체, 쌍, 가족 단위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록을 분석해 보면, 특히 동부 마그레브 지역에서 인간에 의한 박해가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자들이 무리 생활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무리의 크기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사는 사자 무리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바버리사자의 개체 밀도는 다른 습한 서식지에 비해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31]

아틀라스 산맥에서 바바리 사슴(*Cervus elaphus barbarus*)과 가젤이 점차 희귀해지자, 바버리사자는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 무리를 사냥하기도 했다.[37] 또한 멧돼지 (*Sus scrofa*)도 사냥 대상이었다.[38]

이 지역에는 바버리사자와 공존(sympatry)하는 다른 포식자로 아프리카 표범 (*P. pardus pardus*)과 아틀라스 불곰 (*Ursus arctos crowtheri*)이 있었다.[19][39]

6. 멸종

북아프리카에 널리 서식했던 바버리사자는 오랜 기간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점차 서식지를 잃어갔다. 특히 19세기 이후 화기 보급, 오스만 제국프랑스 식민 정부의 사자 근절 정책, 유럽인들의 사냥 관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 결과, 튀니지에서는 1891년에 마지막 사자가 사살된 것으로 기록되었고, 알제리에서는 1893년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지만 1943년까지 생존했다는 설도 있다. 모로코에서는 1922년 마지막 야생 개체가 사살되어 절멸했다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1942년 아틀라스 산맥에서 마지막 사살 기록이 확인되었다. 최근 연구에서는 1960년대까지 일부 소규모 개체군이 생존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60] 자세한 멸종 원인과 과정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6. 1. 멸종 원인

바버리사자는 역사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는 카이사르가 400마리, 폼페이우스가 600마리의 바버리사자를 개선 행렬이나 검투 경기를 위해 로마로 데려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위용이 널리 알려졌다.

로마 제국 쇠퇴 이후에도 인간 활동 영역이 계속 확장되면서 바버리사자의 서식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동부 지역(현대 리비아, 이집트)은 기후의 건조화와 더불어 인간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일찍부터 사자 개체수가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8세기 초에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대부분 지역에서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멸종 속도는 더욱 빨라졌는데, 이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우선 소화기의 광범위한 보급은 사자 사냥을 이전보다 훨씬 용이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오스만 제국모로코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자 근절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이후 프랑스식민 통치 하에서도 이어져, 사냥꾼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며 사자 사냥을 부추겼다. 유명한 프랑스 사냥꾼 줄르 제라르는 알제리 콩스탕틴 지방에서 사자로 인한 연간 피해액(약 )을 언급하며, 조직적인 박멸 사냥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계획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1873년부터 1883년까지 콩스탕틴 지방에서만 173마리의 사자가 사냥된 기록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유럽과의 지리적 근접성 및 교통 발달은 유럽인들의 사냥 관광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1864년 Ormsby는 "런던에서 월요일에 식사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사냥할 수 있다"고 기록할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바버리사자 사냥은 쉬운 '스포츠'가 되었다. 일부 현지 부족(울레드 멜울, 울레드 세시 등) 또한 사자 사냥을 전문으로 하며 세금 면제 혜택을 받고 사자 가죽으로 수입을 올렸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바버리사자는 급격히 사라져갔다. 튀니지에서는 1891년 Babouch 부근에서 마지막 사자가 사살되었고, 알제리에서는 1893년 방타 근처에서 마지막 공식 기록이 남았으나, 1943년에 마지막 개체가 사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모로코에서는 20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나, 1922년에 마지막 야생 개체가 사살되어 멸종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1942년 마라케시와 와르자자트 사이 아틀라스 산맥의 Tizi-n-Tichka 통행 북쪽에서 마지막 사살 기록이 있으며, 일부 조사에서는 알제리모로코에 소규모 개체군이 1960년대까지 생존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60]

6. 2. 멸종 과정

역사적으로 북아프리카마그레브 지역 산과 사막, 지중해 숲, 삼림지, 관목 지대에 걸쳐 서식했던 바바리사자는[29][31] 모로코에서 이집트까지 분포했다.[29] 에사우이라 인근 비즈무네 동굴에서는 10만년에서 11만년 전 사이의 바바리사자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27][28]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나이 반도, 나일 강 유역, 사막 지대 등 넓은 지역에 사자가 서식했으며, 기원전 14세기 투트모세 4세가 멤피스 근처에서 사자를 사냥했다는 기록도 있다.[35][36] 그러나 기원전 2천년기 초부터 나일강 유역과 시나이 반도에서 문명이 발달하고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북아프리카의 사자 개체군은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40] 지중해 연안에서는 오랜 기간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사자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고대 로마에서는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같은 권력자들이 개선 행렬이나 검투 경기를 위해 수백 마리의 바바리사자를 로마로 데려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구경거리였다.

로마 제국 쇠퇴 이후에도 인간 활동 영역이 계속 확장되면서 바바리사자의 서식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17세기 모로코에서는 여전히 사자가 많다는 기록이 있지만(Guggisberg 1963년), 18세기 초에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대부분 지역에서 사자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존스턴 1899년). 1830년대에는 이미 지중해 연안과 주요 정착지 근처에서는 사자가 거의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32] 리비아 해안 지역에서는 18세기 초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3]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바리사자의 멸종은 가속화되었다. 화기의 광범위한 보급과 함께, 당시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치하던 오스만 제국 정부(이집트에서 알제리까지)와 이후 들어선 프랑스 식민 정부는 사자 근절 정책을 펼쳤다. 사자를 사냥하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시행되었고,[29] 일부 부족(울레드 멜울, 울레드 세시)은 사자 사냥을 전문으로 하며 세금 감면 혜택과 후한 가죽 값을 받기도 했다. 또한 유럽과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유럽인들의 사냥 관광이 성행한 것도 멸종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1864년 Ormsby는 "런던에서 월요일에 식사하고 급행열차와 빠른 기선을 이용하면 금요일 저녁에는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사냥할 수 있다"고 기술할 정도였다.

알제리에서는 유명한 프랑스 사냥꾼 줄르 제라르가 사자의 조직적인 박멸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1848년 콩스탕틴 지역 주민들이 사자로 인해 연간 20만 프랑의 손실을 입고 있으니, 연간 2만 프랑의 비용을 대면 자신이 사자를 모두 없애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령 알제리에서는 1873년부터 1883년까지 총 202마리의 사자가 사냥된 기록이 있으며, 이는 표범(1,214마리 사냥에 720파운드), 하이에나(1,882마리 사냥에 400파운드), 재칼(27,000마리 사냥에 1,600파운드) 사냥 포상금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였다.

이러한 무분별한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바바리사자는 급격히 감소했다. 튀니지에서는 1890년까지 멸종했으며,[33] 마지막으로 기록된 사자는 1891년 Babouch 부근에서 사살되었다. 알제리에서도 19세기 말까지 대부분 지역에서 멸종했다. 1884년경까지 첼리아 산맥의 삼나무 숲이 사자의 피난처였으나,[29] 1890년까지 본 지역에서, 1891년까지 크루미르와 수크 아라스 주에서, 1893년까지 바트나 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34] 알제리 북서쪽 모퉁이와 콩스탕틴 남쪽 방타 근처에서는 1893년에 마지막 사자가 사살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모로코에서는 20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나 결국 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마지막 야생 개체가 1922년에 사살되어 멸종했다는 것이 오랫동안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보다 최근의 연구와 기록에 따르면, 야생에서의 마지막 공식적인 사살 기록은 1942년 아틀라스 산맥의 티지-엔티치카 고개 북쪽에서 이루어졌다.[31] 이후에도 외딴 산악 지역에서 소규모 잔존 개체군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알제리에서는 1956년 베니 오르틸란 구역에서 마지막으로 사자가 목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31] 일부 연구에서는 알제리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모로코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바바리사자가 생존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31][60]

결론적으로 바바리사자는 화기의 확산, 오락 및 현상금을 노린 무분별한 사냥, 동물원 전시를 위한 포획, 그리고 인간 활동 증가에 따른 서식지 파괴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야생에서 멸종되었다.[29] 오늘날 바바리사자는 과거 서식했던 북아프리카 지역 전체에서 지역 멸종 상태이다.[30]

7. 보전

바버리사자는 야생에서는 멸종했지만, 그 혈통을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주로 동물원에 남아있는 개체들, 특히 역사적으로 모로코 왕실 컬렉션 등에서 관리되어 온 사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DNA 분석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바버리사자의 혈통을 확인하고, 순수 혈통에 가까운 개체를 번식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43][23] 그러나 사육 환경에서의 근친 교배나 다른 아종과의 혼혈 가능성 때문에 순수한 바버리사자 혈통을 보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5]

7. 1. 사육 개체

중세 시대 런던 탑의 동물원에서 사육된 사자가 바버리사자였음이 1936년과 1937년에 발굴된 두개골의 DNA 검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 두개골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각각 1280–1385년과 1420–1480년경의 것으로 밝혀졌다.[40]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호텔이나 서커스 동물원에서도 사자를 사육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1835년 런던 탑의 사자들은 아서 웰즐리의 지시로 런던 동물원으로 옮겨졌다.[41]

모로코에서는 과거 무함마드 5세 국왕이 사설 동물원에서 왕실에 헌상된 바버리사자의 혈통을 강하게 이어받은 사자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베르베르인을 포함한 귀족들이 왕실에 사자를 선물로 바쳤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1953년 왕가가 망명하면서 라바트에 있던 21마리의 사자들이 지역 동물원으로 흩어졌는데, 3마리는 카사블랑카 동물원으로, 나머지는 메크네스로 옮겨졌다. 메크네스의 사자는 1955년에 다시 궁으로 돌아왔지만, 카사블랑카의 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에는 라바트 인근 테마라에 새로운 사자 사육 시설이 건설되었다.[4] 이 왕실 컬렉션의 사자들은 바버리사자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42]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 결과, 독일 노이비트 동물원에 보관된 사자는 이 컬렉션에서 유래했으며 바버리사자의 후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43] 그러나 같은 컬렉션에서 채취한 다른 다섯 표본은 모계 혈통이 바버리사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5], 순수 혈통 보존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바버리사자 혈통 개체 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32마리가 모로코 왕실 컬렉션에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63], 2012년 수도 라바트에 라바트 동물원이 개원하면서 이 사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번식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원 개원 직후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기도 했다.[63] 여러 연구자와 동물원들은 모로코 왕실 컬렉션에서 유래한 사자들의 혈통 기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3] 바버리사자는 과거 동물원에 가장 흔하게 도입된 아종 중 하나였기 때문에, 현재 유럽 및 미국 동물원에서 아종 구분 없이 사육되는 사자들 중 상당수가 바버리사자의 유전자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5]

라바트 동물원의 바바리사자. 2020년 촬영.


알프레드 에드워드 피스가 1893년에 촬영한 모로코의 바바리사자.


21세기 초, 에티오피아아디스아바바 동물원에는 16마리의 성체 사자가 사육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앞다리까지 뻗은 짙은 갈색 갈기를 가져 바버리사자나 케이프사자와 유사한 외형을 지녔다. 이들의 조상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위해 에티오피아 남서부에서 포획된 개체들이다.[44]

영국의 포트 림프 야생 동물 공원에서 유래한 세 마리의 바버리사자가 2005년부터 벨파스트 동물원에서 사육되었으며, 2023년에는 새로운 바버리사자 사육 시설이 개장했다.[45] 프랑스의 동물원에서는 약 50마리의 혼혈종이 사육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2] 1996년 재발견설과 2007년 생존 개체 확인 보고[61] 등도 있었으나, 이는 순혈 바버리사자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는 바버리사자로 추정되는 개체들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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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복원 노력



바버리사자는 1996년에 재발견되었고, 2007년에는 1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61]. 그러나 이 개체는 순수한 혈통의 바버리사자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에도 혼혈종의 사육 및 번식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동물원에서는 약 50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있다[62].

한편, 원산지인 모로코에서는 과거 무함마드 5세 국왕의 사설 동물원에서 왕실에 헌상되었던 바버리사자의 혈통을 비교적 순수하게 이어받은 사자들이 계속 사육되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확인된 바버리사자 혈통 개체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32마리 규모의 개체군이었다. 2012년 수도 라바트에 라바트 동물원이 개원하면서 이 사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번식 노력이 시작되었다. 동물원 개원 직후에는 새끼 사자 3마리가 태어나는 성과도 있었다[63].

8. 문화

바버리사자는 역사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고대 이집트누비아 문화권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며 예술과 종교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다루어졌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검투사 경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인 "아틀라스 사자"로 불리는 등 상징적인 동물로 여겨지며, 라이온 킹과 같은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8. 1. 고대 문화

모로코의 사자 사냥 그림, 외젠 들라크루아, 1855년,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사자는 초기 이집트 미술과 이집트 문학에 자주 등장했다.[46]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해당하는 히에라콘폴리스와 콥토스에서는 사자 조각상과 작은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47] 초기 이집트 여신 메히트는 사자 머리로 묘사되었으며,[48]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자 머리를 한 여신 세크메트가 국가의 수호신으로 숭배받았다.[49] 세크메트는 파괴적인 힘을 상징했지만, 동시에 기근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사자 머리 형상의 부적들은 크레타섬, 에우보이아섬, 로도스섬, 파로스섬, 키오스섬 등 에게해 섬들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이는 세크메트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기원전 9세기에서 6세기 사이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50] 기원전 31세기경 호르-아하의 무덤에서는 주로 어린 사자 7마리의 유해가 움 엘-카아브 묘지에서 발굴되기도 했다.[51] 2001년에는 사카라에 있는 투탕카멘에게 헌정된 묘지에서 마이아의 무덤 내 미라화된 사자 골격이 발견되었다.[52] 이 사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영양실조의 흔적이 있고 수년간 사육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53]

바버리사자는 누비아 문화에서도 중요한 상징이었으며, 예술과 건축물에 자주 묘사되었다. 쿠시 왕국의 종교에서는 아문, 아메세미, 아페데마크, 아렌스누피스, 하토르, 바스테트, 데둔, 메히트, 멘히트, 세비우메케르와 같은 신들이 사자 수호자로 그려졌다.[54]

로마령 북아프리카에서는 사자들이 검투사 경기의 일종인 베나티오(venatio)라는 구경거리를 위해 숙련된 사냥꾼들에게 정기적으로 포획되었다.[38][55]

8. 2. 현대 문화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틀라스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이 팀의 서포터들은 종종 사자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거나 사자 의상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인다.[56]

바버리사자는 여러 문학 및 영상 작품에도 등장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는 야생 바버리사자가 아직 존재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 시리즈에서 북아프리카산 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때때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단편 「마자린의 보석」에서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실비어스 백작이 알제리에서의 사자 사냥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복면을 쓴 하숙인」에서는 한때 유명했던 서커스 맹수 조련사가 길들였던 "사하라 킹"이라는 이름의 훌륭한 북아프리카산 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셜록 홈즈의 사건부』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소설 『타잔의 귀환』(1910년경 배경)에서는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원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엘라드리아"라는 사자가 등장하기도 한다.[64]

1994년에 제작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 역시 바버리사자를 소재로 다루었다. 주인공인 심바가 바버리사자에 해당하며, 악역 캐릭터인 스카 역시 바버리사자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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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문 Geographical variation and phylogenetics of modern lions based on craniometr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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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문 Evidence for African origins of founders of the Asiatic Lion Species Survival Plan https://zenodo.org/r[...]
[7] 논문 Sexual selection, temperature, and the lion's 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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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논문 Examining the Extinction of the Barbary Lion and Its Implications for Felid Con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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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뉴스 希少なバーバリライオンの子ども、順調に生育 http://www.afpbb.com[...]
[63] 뉴스 アトラスライオンを絶滅から救え、ラバト動物園の挑戦 https://www.afpbb.co[...]
[64] 문서 バーバリライオンと明記されてないが舞台の場所と「黒いライオン」という表現から、これを指していると分か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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