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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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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세영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한국의 시인이다. 경성부에서 태어나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한 후 상하이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카프 문학 운동에 참여했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했다. 1950년대에 지은 유행가 〈림진강〉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반영하며 남한에서 금지되었다가 1990년대 이후 다시 불리게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산제비》, 서사시집 《밀림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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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박세영
박세영
본관반남 박(潘南 朴氏)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묘소애국열사릉
인물 정보
출생일1902년 7월 7일
출생지한성부
사망일1989년 2월 28일
사망지평양직할시
직업시인, 정치인
정치 활동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주요 활동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작사
한국어 이름 정보
한글박세영
한자朴世永
로마자 표기Bak Seyeong
조선어 낱말박세영

2. 생애

박세영은 한국의 시인으로, 경성부 한지면 두모리(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태어났다.[6] 그의 고향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송영과 함께 배재고보에 입학하여 문학을 시작하였고, 3.1운동 당시에는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등사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문학 운동에 참가하여 송영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동시를 다수 창작하였다. 1937년 시집 《산제비》를 펴낸 이후 해방 때까지는 절필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월북하여 조선문학작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을 역임했고, 1947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했다. 한국 전쟁 기간에는 종군작가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가 1950년대에 지은 <림진강>은 대한민국에 두고 온 가족과 벗들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남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북한의 풍요로운 모습을 대비시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했다. 이 노래는 남한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후 김연자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부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도 불렸으며, 2005년에는 조총련을 주제로 한 일본 영화 <박치기!>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2. 1. 유년 시절과 초기 문학 활동

박세영은 1902년 경성부 한지면 두모리(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6]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고향이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나중에 서울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고양군 출신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배재고보 재학 시절 송영과 함께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교원 강매, 이중화의 영향을 받았다. 3.1운동 당시에는 송영과 함께 등사신문을 발간해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배재고보 졸업 후 상하이로 건너가 유학하며, 염군사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황포강반>을 발표했다.[2] 그는 상하이에서 이호, 이적효 등이 한국에서 결성한 사회주의 문화 단체인 염군사(焰群社)의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문화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다.

2. 2. 카프 활동과 연희전문

송영과 함께 배재고보에 입학하여 문학을 시작하였다. 귀국 후 1925년 연희전문학교에 편입하였으나 곧 중퇴하였다.[2]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입하여 일제강점기 문학 운동에 참가했으며, 송영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동시를 다수 창작하였다. 1928년에는 고향 고양군에서 교원으로 일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동시, 동극을 발표하였다. 1937년 시집 《산제비》를 출간하였으나, 이후 해방까지 절필하였다.[6]

2. 3. 월북과 북한에서의 활동

1946년, 박세영은 미군정에 대한 실망으로 월북하였다.[6]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정치에 참여하여, 19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6] 조선문학작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을 역임했고, 194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했다.[6] 한국전쟁 기간에는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군무자들의 문예 활동과 창작을 지도하였다.[6] 1954년 5월에는 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 1956년 10월에는 작가동맹 상무위원으로 승진했다. 1961년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6] 1947년 6월에 "애국가"의 가사를 완성했다.[3]

2. 4. 한국전쟁 이후의 활동

1954년 5월, 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다.[6] 1955년에는 몽골 방문 경험을 토대로 <몽고방문시초>를 썼다. 1956년 10월, 작가동맹 상무위원으로 승진했다.[6]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6] 1962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서사시집 <<밀림의 역사>>를 썼는데, 북한에서 이 작품은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북한의 2대 걸작 서사시로 평가받았다.[6]

3. <림진강>과 관련된 논란

그가 지은 〈림진강〉은 1950년대에 지은 유행가로, 대한민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벗들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노래이다. 가사 내용 중에 남한의 궁핍한 경제상을 북한의 풍족한 협동벌의 모습과 대조시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담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6] 이 노래는 대한민국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가 1990년대에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재일교포 가수 김연자서울에서 진행된 텔레비전 음악회에서〈림진강〉을 노래하여 남한에서도 림진강을 다시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양희은, 김용우, 적우 등이 리메이크하여 불렀으며, 북조선에서는 재일교포 출신의 성악가 조청미가 불렀다. 이 노래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 널리 불렸는데, 2005년 조총련을 주제로 한 일본 영화 박치기의 주제가로 남한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임진강〉은 1957년에 제작되었으며, 대일 모략 방송 및 조선학교에서의 교육에서도 가르쳐졌다. 1960년대 교토의 조선학교에 축구 시합을 신청하러 갔던 당시 중학생이었던 마츠야마 타케시가 우연히 듣고 감동했다.

이후 대학생이 된 그가 관여한 더 포크 크루세더즈에서 편곡(가사 일부, 3절 신설)하여, "조선 민요 '임진강'"으로 발표되어 반전 포크송적 지위를 얻었고(그들은 이 노래를 정말 조선 민요라고 생각했다), 토시바 음악공업이 레코드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박세영이 애국가의 작사자이며, 조선총련이 정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곡임을 명기할 것"을 토시바에 요구했다.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명칭은 그 업계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또한 대한민국 거래 관계에의 영향을 우려한[5] 토시바는 레코드 발매를 중지했다.

이후 조선총련의 의향에 따라 "임진강"이 더 포슈리크에 의해 발표되었지만, 방송 자숙 노래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매스 미디어에서는 방송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5년에 솔리드 레코드에서 발매된 더 포크 크루세더즈의 CD 『하렌치+1』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고, 2002년에는 아겐트 컨시피오에서 맥시 싱글 『더 포크 크루세더즈/임진강』이 발매되었다. 후자는 단카이 세대로부터 비교적 높은 지지를 얻었다.

영화 박치기!는 마츠야마 타케시와 "임진강"의 만남을 "원점"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4. 주요 작품

시집으로 《산제비》(1937)가 있다.[6] 서사시로는 《밀림의 역사》(1962)가 있는데, 이 작품은 북한에서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북한의 2대 걸작 서사시로 평가받았다.[6] 가사로는 애국가(1947),[3][6] 림진강(1957)이 있다.[6] 림진강은 대한민국에 두고 온 가족과 벗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인데, 남한의 궁핍한 경제상을 북한의 풍족한 협동벌의 모습과 대조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담으려 했다.[6] 기타 작품으로는 <평양은 마음의 고향>, <몽고방문시초>(1955), 포천보의 새벽(1962), <심장에 불이 타오를 때>(1963),[4] 빛나는 조국[1] 등이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Writer remembered with national anthem http://www.pyongyang[...] The Pyongyang Times 2021-03-18
[2] 웹사이트 박세영 http://encykorea.aks[...]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3] 뉴스 北, 월북시인 박세영 생애 재조명 http://www.tongilnew[...] 2013-05-28
[4] 서적 Korean Affairs Report No. 304: North Korea, Biographical Dictionary (Part II) https://apps.dtic.mi[...]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 2013-05-28
[5] 간행물 イムジン河の数奇な運命 日本で愛される『北朝鮮の名曲』 AERA 2002-08-12
[6] 웹사이트 http://uriminzokk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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