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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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언창은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로, 신라 말 사벌주 지역에서 후사벌을 건국하고 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사벌대군에 봉해져 사벌주에 부임하여 군사력을 강화했으나, 신라의 쇠퇴와 주변 세력의 등장으로 고립되었다. 919년에는 후사벌왕을 칭하며 자립하였으나, 후백제와의 항쟁 끝에 929년 멸망했다. 그의 아들 박욱은 고려 개국 공신이 되었고, 그의 후손은 상주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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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창 | |
---|---|
기본 정보 | |
이름 | 박언창 |
원래 이름 | 朴彦昌 |
다른 이름 | 사벌대군 |
로마자 표기 | Bak Eon-chang |
별명 | 미상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미상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전 사벌왕릉 |
종교 | 미상 |
가문 | 상주 |
왕조 | 신라 |
가족 관계 | |
부왕 | 경명왕 |
모후 | 장사택(長沙宅) - 각각 대존(大尊)의 딸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박욱 |
통치 정보 | |
재위 | 919년~929년 |
연호 | 미상 |
전임자 | 경명왕 |
후임자 | 박욱 |
묘호 | 미상 |
시호 | 미상 |
기타 | |
목록 | 후사벌의 제1대 국왕 |
2. 건국 배경
신라 말기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는 가운데, 경명왕은 자신의 다섯 번째 왕자인 박언창을 사벌대군(沙伐大君)으로 봉하고 사벌주에 부임시켰다. 박언창은 사벌주를 태봉, 후백제로부터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904년 사벌주의 30여 성이 후고구려에 함락되는 등 신라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고령군에서는 가야 유민들이 고령가야를 세우는 등 지방 세력의 반란이 발생했고, 918년에는 아자개가 고려에 귀부하며 사벌주 지역의 정세가 변화하였다.
박언창은 경명왕 때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져 사벌주를 다스렸다. 그의 임무는 사벌주를 초적 및 태봉, 후백제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의 사벌면에 본영을 설치하고 병풍산성(屛風山城), 이부곡산성(吏部谷山城), 자산산성(子山山城: 일명 자양산성) 등을 축조, 제반 군비를 강화하여 쳐들어오는 적과 대항했다. 후사벌은 지속적으로 침략해 오는 후백제와 힘겹게 항쟁했다.
3. 후사벌 건국과 통치
3. 1. 박언창의 자립
919년, 박언창은 신라 본국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스스로 '''후사벌왕'''이라 칭하고 후사벌을 건국하였다. 그는 사벌면 일대에 왕성(王城)을 건설하고, 둔진산(屯陣山)을 군사 주둔지로 삼는 등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3. 2. 후백제와의 항쟁
경명왕 때 그의 5번째 왕자인 박언창이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져 사벌주에 부임했다. 박언창의 임무는 사벌주를 초적 및 태봉, 후백제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의 사벌면에 본영을 설치하고 병풍산성(屛風山城), 이부곡산성(吏部谷山城), 자산산성(子山山城: 일명 자양산성) 등을 축조, 제반 군비를 강화하여 쳐들어오는 적과 대항했다. 919년 박언창은 연락이 두절된 본국에서 자립해 '''후사벌왕'''(後沙伐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후사벌>이라 정한 후 사벌면 일대에 왕성(王城)을 만드는 등 수도로 정비하고 둔진산(屯陣山)을 군사 주둔지로 하여 수비에 만전을 기했다. 후사벌은 지속적으로 침략해 오는 후백제와 힘겹게 항쟁했다. 929년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군이 대거 침공하자 후사벌은 격렬히 항쟁했지만 결국 패망했고, 이때 박언창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4. 멸망
929년(경순왕 원년), 후백제의 대규모 침공으로 후사벌은 멸망하였다. 박언창은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언창은 패사 후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에 매장되었다.
5. 멸망 이후
후사벌 멸망 후 박언창의 아들 박욱은 고려 개국 공신이 되었고, 그 후손인 견(甄)을 중시조로 상주 박씨가 시작되었다.
6. 가계
아버지는 경명왕이고 어머니는 장사택(長沙宅)이다. 부인은 미상이며, 아들은 박욱이다.
6. 1. 경명왕의 아들들
경명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장사택(長沙宅)이다.이름 | 시조 |
---|---|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 | 밀양 박씨 |
고양대군 박언성(朴彦成) | 고령 박씨 |
속함대군 박언신(朴彦信) | 함양 박씨 |
죽성대군 박언립(朴彦立) | |
죽산 박씨 (조카 박기오) | |
완산대군 박언화(朴彦華) | 무안 박씨 |
강남대군 박언지(朴彦志) | 순천 박씨 |
월성대군 박언의(朴彦義) | |
박욱 | (아들) |
- 부인 : 미상
7. 평가 및 의의
경명왕은 그의 다섯 번째 왕자인 박언창을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하고 사벌주를 다스리게 했다. 박언창은 후백제 등으로부터 사벌주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나, 신라 본국과의 연락이 끊기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919년 박언창은 스스로 '''후사벌왕'''(後沙伐王)이라 칭하고 후사벌을 세웠으나, 929년 후백제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그 자신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후사벌 멸망 후, 박언창의 아들 박욱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상주 박씨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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