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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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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진만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야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 유격수로서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 '국민 유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약하며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005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여 2006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SK 와이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쳐 2022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같은 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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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22년 10월 26일, 제16대 감독 취임식
포지션유격수 / 감독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70
투타우투우타
생년월일# 실제 날짜로 변경 필요
출생지인천광역시
선수 경력
프로 입단1996년
데뷔팀현대 유니콘스
최종팀SK 와이번스 (2015)
현대 유니콘스(1996–2004)
삼성 라이온즈(2005–2010)
SK 와이번스(2011–2015)
코치 경력
SK 와이번스(2016)
삼성 라이온즈(2017–2021)
감독 경력
삼성 라이온즈(2022–현재)
타격 성적
리그KBO 리그
타율.261
홈런153
타점781
수상
KBO 골든 글러브5회 (2000, 2001, 2004, 2006, 2007)
한국시리즈 MVP2006년
국가대표 경력
올림픽2000 시드니 (동메달)
2008 베이징 (금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한국어 정보
한글 이름박진만
한자 이름朴鎭萬
로마자 표기Bak Jin-man
기타 정보
선수 시절 계약금2억 8,000만원
감독 시절 계약금3억원
연봉 (2023)2억 5,000만원
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

2. 선수 시절

박진만은 KBO 리그유격수로,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김재박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주전 유격수로 성장했고, 뛰어난 수비로 팀의 4번 우승 (1998년 한국시리즈, 2000년 한국시리즈, 2003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에 기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혜택을 받았다.

2004년 시즌 후 FA로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여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를 차지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다.

2010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로 이적, 2014년 주장을 맡았으나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15년 은퇴했다.

2. 1.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6-2004)

1996년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2.8억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1996년 입단 첫 해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는데, 주로 하위 타선으로 출장해 2할대 타율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듬해 1997년에 풀 타임으로 출장해서 1할대 타율을 기록해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었고, 1998년에도 빈약한 타격을 보였다. 그러나 꾸준히 출장하며 타격은 자연히 향상해 1999년에 2할대 중반을 기록했고, 이듬해 2000년에 2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00년에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됐으며, 그의 아버지와 담당 의사는 불구속 기소됐고, 그는 재검 처분을 받았다.[3] 그러나 곧바로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동메달을 획득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이듬해 2001년에는 유격수로서 3할 타율, 22홈런을 쳐 데뷔 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002년 시즌에는 타격이 크게 부진했으나 2003년2004년에 2할 8푼대 타율을 꾸준히 기록했다. 그는 이 팀에서 우승을 4번 경험했다.

현역 시절 명유격수였던 김재박 감독에게 수비 센스를 인정받아, 고졸 1년차부터 레귤러 자리를 획득했다. 이후, 내야 수비의 핵심으로 2004년까지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5-2010)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FA 자격을 얻어 4년간 39억에 FA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현대 유니콘스는 보상 선수로 부상과 병역 비리 등으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투수 이정호를 지명했고, 심정수에 대해서는 보상 선수를 받지 않고 보상금만 지급받았다.[4] 2005년에는 시즌 전부터 부상이 겹쳐 시즌 중반에 복귀하여 2할대 중반 타율을 기록했고, 김재걸이 그를 대신해 유격수를 맡았다. 2006년에는 부상에서 완치되어 풀 타임 출장하며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고 MVP에 선정됐다. 2009년 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됐으나 잦은 부상으로 76경기 출전에 그쳐 시즌 후 강봉규에게 주장을 넘겼다. 2010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46경기 출전에 그쳤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김상수에게 넘기고 2루수나 3루수로 출장했다. 시즌 후 팀과 결별하기로 결심하고 방출을 요청해 2010년 11월 11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됐다.[5]

2. 3. SK 와이번스 시절 (2011-2015)

2011년 당시 주전 유격수였던 나주환의 공익근무요원 입소로 인한 전력 공백이 생긴 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시도했고, 때마침 그의 고향이 인천이라는 점이 맞물려 계약했다. 2011년 4월 28일서재응에게 140km대의 직구 사구를 맞고 부상을 입었고 재활 후 종종 1루수로 출전했다.

2014년부터 팀의 전 주장이었던 정근우가 FA를 통해 이적하자 선수단 내에서 투표를 실시했고, 최종 후보인 조인성을 두 표차로 앞서 팀의 주장을 맡았다.[6] 2014년 4월 1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우측 무릎 십자인대 파열으로 약 6개월 동안 재활했다.

201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FA 신청을 하지 않고[7] 25% 삭감된 1.5억에 재계약했다.[8] 2015년 9월 10일 한화전에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 타격 때 1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그 이후 재활에 매진했으나 2,000경기 출장까지 단 7경기를 남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2012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57경기 출장에 그쳤고 성적도 악화되었다. 2013년에는 2년 만에 100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출전 기회가 급감하여 2015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박진만은 2000년 하계 올림픽, 2002년 아시안 게임, 2006년 WBC,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1]

3. 1. 주요 국제 대회 경력

박진만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1]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9회 1사 만루 위기 상황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1]

4. 지도자 경력

2022년 8월 1일, 허삼영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11] 감독 대행 당시 다양한 선발 라인업을 선보였고, 강한울을 각성시켰다.[12] 2022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13]

4. 1. 코치 경력

2016년 SK 와이번스의 수비 보조 코치로 선임되어 당시 수비 코치였던 후쿠하라 미네오를 보좌했다. 하지만 시즌 후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9] 2016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에서 사임했고, 강봉규, 정현욱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합류했다. 2021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임명됐다.[10] 2022년 8월 1일 당시 감독이었던 허삼영이 팀 최다 연패인 13연패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자, 감독 대행으로 선임됐다.[11] 2군 감독은 최태원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감독 대행을 맡을 당시에는 선발 라인업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고,[12] 내야수 강한울을 2022년 후반기에 각성시켰다.

4. 2. 감독 경력

2016년 SK 와이번스의 수비 보조 코치로 선임되어 당시 수비 코치였던 후쿠하라 미네오를 보좌했다. 하지만 시즌 후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9] 2016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에서 사임했고, 강봉규, 정현욱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합류했다. 2021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임명됐다.[10]

2022년 8월 1일 당시 감독이었던 허삼영이 팀 최다 연패인 13연패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자, 감독 대행으로 선임됐다.[11] 2군 감독은 최태원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감독 대행을 맡을 당시에는 선발 라인업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고,[12] 내야수 강한울을 2022년 후반기에 각성시켰다.

2022 시즌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13]

5. 플레이 스타일

유격수 수비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야구계에서 으뜸으로 꼽혔다. 제1회 WBC에서 미국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수비는 메이저 리그와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뷔 초에는 타율 2할 안팎으로 수비만 돋보이는 인상을 주었지만, 경험을 쌓으면서 타격에도 힘을 실어 2000년대 중반 전성기에는 승부 근성과 펀치력도 갖추게 되었다.

6. 별명

2006년 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 대회에서 큰 활약을 펼치며 '국민 유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찐만두'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찐만두를 '찐만두(만두)'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했다. 그의 이름인 '진만'이 찐만두를 연상시켜 신인 시절 팀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다만, 박진만 본인이 이 별명을 싫어하여 삼성 이적 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7. 수상 내역

수상횟수연도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5회2000년, 2001년, 2004년, 2006년, 2007년
한국시리즈 MVP1회2006년


8. 출신 학교

9. 가족 관계

관계이름
아버지박치민
어머니이경삼
배우자고영미 (2003년 ~ 현재)
자녀2남 1녀 중 장남


10. 등번호

11. 에피소드

심정수와 함께 2003년~2004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과 2005년~2006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총 4시즌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 기록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시즌 연속 우승한 KIA 타이거즈(당시 해태) 이후 처음 달성한 기록이다.

참조

[1] 뉴스 박진만, 자유계약 풀렸다…삼성 보류명단서 제외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2010-11-11
[2] 웹사이트 https://www.samsungl[...]
[3] 뉴스 프로야구선수 박진만 돈주고 병역면제 받아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0-06-27
[4] 뉴스 역대 FA 최고 몸값 '헤라클래스' 심정수 https://news.naver.c[...] 매일신문
[5] 뉴스 박진만, 자유계약 풀렸다…삼성 보류명단서 제외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2010-11-11
[6] 뉴스 박진만, SK 2014시즌 이끌 새 주장 http://starin.edaily[...] 이데일리 2014-01-04
[7] 뉴스 박진만, FA 미신청 이유는? 현역 연장 의지 http://sports.news.n[...] MK스포츠 2014-11-19
[8] 뉴스 SK 박진만, '5천 삭감' 1억5천에 연봉 재계약 http://sports.news.n[...] 이데일리 2014-12-11
[9] 뉴스 SK, 박진만 코치도 떠난다 http://sports.news.n[...] OSEN
[10] 뉴스 박진만 삼성 작전코치, 2군 감독으로…김용달 코치와는 작별 https://sports.news.[...] 연합뉴스
[11] 뉴스 삼성 허삼영 감독 자진 사퇴…박진만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 소화 https://n.news.naver[...] 연합뉴스
[12] 뉴스 '신인들의 깜짝 선발' 박진만표 파격 기용, 하지만 '무조건'은 없다 https://sports.news.[...] 엑스포츠뉴스
[13] 뉴스 삼성 박진만 대행, 정식 감독으로 승격…3년 최대 12억원에 도장 https://sports.news.[...] 뉴스1
[14] 문서 데뷔 후부터 은퇴할 때까지 7번을 고수했다. 그가 등번호 7번을 달게 된 것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1996년]] 데뷔 당시 뛰어난 기량 덕분에 [[김재박]]의 후계자라고 불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감독의 등번호를 물려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5년]] FA 계약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에도 등번호 7번을 달았고, [[201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뒤에는 등번호 7번의 주인이었던 [[김재현 (1975년)|김재현]]이 은퇴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7번을 물려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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