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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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종범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 경쟁을 벌였고,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4년에는 KBO MVP를 수상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군 복무 이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여 활동했으며, 이후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여 2000안타를 달성하는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은퇴 후에는 코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야구계에 기여하고 있으며, 그의 등번호 7번은 KIA 타이거즈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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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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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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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름 | 이종범 |
한자 이름 | 李鍾範 |
로마자 표기 | I Jongbeom |
출생일 | 1970년 8월 15일 |
출생지 | 광주광역시 |
포지션 | 유격수, 외야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선수 경력 | |
KBO 리그 | 해태 타이거즈 (1993년~1997년) KIA 타이거즈 (2001년~2012년) |
NPB | 주니치 드래건스 (1998년~2001년) |
지도자 경력 | |
수상 내역 | |
KBO 리그 | KBO MVP (1994년) KBO 골든 글러브 (1993년~1994년, 1996년~1997년, 2002년~2003년) KBO 올스타 (1993년~1997년, 2002년~2009년) KBO 타격왕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1993년, 1996년~1997년, 2009년) 한국시리즈 MVP (1993년, 1997년) |
국제 대회 | 올-WBC 팀 (2006년) |
KBO 리그 기록 | |
타율 | 0.297 |
안타 | 1,797 |
홈런 | 194 |
타점 | 730 |
도루 | 510 |
NPB 기록 | |
타율 | 0.261 |
안타 | 286 |
홈런 | 27 |
타점 | 99 |
2. 프로 선수 경력
이종범은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신인 유격수로서 KBO 무대에 등장하여 득점, 73개의 도루, 올스타팀 선정, 골든글러브 수상,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화려하게 데뷔했다.[2]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29타수 9안타, 타율 0.313, 3도루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4년에는 타율 0.393(1982년 백인천의 0.412에 이어 KBO 역대 2위), 최다 안타 및 득점 1위, 리그 신기록인 84도루를 기록하며 KBO MVP와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3]
1995년에는 군 복무로 인해 절반 시즌만 출전했다.[4] 1996년에는 득점 1위를 기록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7년에는 30홈런-73도루를 기록하며 "30-70 시즌"을 달성, 득점 1위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끌었다.[5]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활약하며 NPB 4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61, 27홈런, 99타점, 53도루를 기록했다. 1998년에는 사구로 팔꿈치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3] NPB에서는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01년 KBO 복귀 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골든글러브를 두 번 더 수상하고, 2003년 2루타 1위, 2004년 득점 1위를 기록했다. 2004 시즌 후에는 자발적으로 연봉을 삭감했다.[3]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6개의 2루타, 타율 0.400을 기록하며 켄 그리피 주니어, 이치로 스즈키와 함께 외야수 부문 올 WBC 팀에 선정되었다.
KBO 통산 510도루(역대 2위 전준호)[7], 유격수 4회, 외야수 2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프로 선수 생활 동안 올스타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2012년 4월, 개막 전에 은퇴를 발표했으며, 당시 KBO 최고령 현역 선수였다.[6]
2. 1. 해태 타이거즈 (1993-1997)
1993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건국대학교에 앞서 동국대학교 진학을 고려했으나, 최종적으로 건국대학교로 결정했다.[27] 1992년 건국대학교 야구부 재학 중 아마추어 야구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10] 입단 첫 해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공수주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여 김정수 이후 신인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신인왕은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의 1루수 양준혁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1993년, 신인 유격수로서 득점, 73도루, 올스타팀 선정, 골든글러브 수상, 그리고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 29타수 9안타, 타율 0.313, 3도루를 기록했다.
1994년에는 타율 0.393(1982년 백인천의 0.412에 이어 KBO 역대 2위), 196안타(역대 최다), 84도루(역대 최다)를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3] 그 결과 KBO MVP와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5년에는 군 복무로 인해 절반의 시즌만 출전했다.[4]
1996년에는 득점 1위를 기록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이종범은 다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7년에는 30홈런-64도루를 기록하며 KBO 리그 최초로 3할-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5] 득점 1위를 기록하고 또 다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해태 타이거즈는 다시 KBO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1년차부터 주전 선수로 출장했다. 에는 수위 타자를 차지했고, , 에는 KBO 도루상을 획득하는 등 주전 선수로서 활약했다. 시즌 MVP(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에는 KBO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 (타율 0.324, 30홈런, 64도루)을 달성했다.
- > 수정: 마지막 문단은 제거한다. (내용 중복 및 템플릿 오류)
2. 2. 주니치 드래건스 (1998-2001)
1998년, 이적료 4.5억엔, 계약금 5000만엔, 연봉 8000만엔(추정)으로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11] 배트 컨트롤 능력과 3차례의 도루왕 경력을 인정받아 '한국의 이치로'라고 불렸다. 이적 첫 해 개막전에 선발 출장했다. 준족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1번 타자였지만, 유격수 수비에 문제점이 많아 이 해 67경기에서 12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 범위가 넓고 타구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호시노 감독의 마음에 들었다. 또한, 도루도 개막 초반에는 빠른 발을 과시했지만, 일본 투수의 기술(퀵 투구 등)에 막혀, 해태 타이거즈 시절처럼 활약하지 못했다. 1998년 6월 23일, 한신 타이거스의 가와지리 테츠로에게 오른쪽 팔꿈치에 사구를 맞아 골절로 장기 이탈했다.[28] 시즌 중에 복귀했지만, 사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이전과 같은 과감함은 사라졌다. 재활 중 수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준족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했다.1999년 리그 우승에도 주전 선수로 출전했지만, 외국인 선수 쿼터를 고려하면 성적은 좋지 않았다. 같은 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5차전, 로드니 페드라자에게 삼진).
2000년은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지만, 새 외국인 선수 데이브 닐슨의 부진으로 1군에 승격했다.
2001년에는 강력한 외야진에 끼어들지 못하고, 선수 기용에 불만을 품고 시즌 도중 퇴단했다.[29] 주니치 시절에는 투수 가도쿠라 겐과 동료였다.
2. 3. KIA 타이거즈 (2001-2011)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한 이종범은 2001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KBO 리그에 복귀했고, 복귀 후에는 일본 시절처럼 외야수로 출장했다. 2003년에는 20-20 클럽에 가입했다. 그 해 20홈런, 50도루를 기록했고, 50도루는 2003년 시즌 도루 부문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당시 최고령 20-20 클럽 가입이었다. 2004년에는 7년 만에 4번째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WBC 국가대표로 뽑혀 주장을 맡았고, 대회 후 베스트 9에 뽑히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2006년 시즌 중에는 부진했고, 2군으로 강등됐다. 그 해 시즌 2할대 타율, 1홈런, 21타점, 10도루 등 입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2007년에는 시즌 초반에는 2번 타자였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타율도 1할대로 떨어져 9번으로 강등되었다. 5월 17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무려 1년 만에 홈런을 쳤다. 하지만 컨디션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 이 시즌을 84경기, 타율 .174, 1홈런, 18타점, 3도루로, 전년의 성적을 더욱 밑돌아 은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2008년에 60% 삭감된 연봉 2억 원에 재계약했다. 그 해 5월 한 달 동안 타율 0.389, 28안타, 15타점으로 월간 MVP에 선정됐고, 1루수로 출장해 투수 외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6월 3일에 역대 8번째 15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
2008년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2009년 시즌에 부활했다.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최소 경기(1439경기) 통산 500도루, 네 자릿수 득점을 달성했다.[30][31] 그 전에 그가 통산 499도루를 기록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 광주에서 기록을 세우겠다.”라고 밝히며 기록 달성을 미뤘다.[32] 복귀 후 2009년에 팀의 10번째 우승이자 그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타이거즈 팀의 운영 주체가 바뀐 이래 첫 KS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우승 확정 후 외야수 이용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 장면은 현재도 회자되고 있다. 2010년 7월 9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쳐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1년부터는 한국 프로 야구계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건국대학교 1학년 때인 1989년 6월에 처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33] 그 해 8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1989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하여 4위를 기록했고, 9월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1989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일본에 이어 중화 타이베이와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11월에는 중화민국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IBA) 회장배에 참가하여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0년 8월에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990년 야구 월드컵에 참가,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34] 대표팀은 3위에 올랐고, 이 공로로 1991년에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35] 같은 해 10월 199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야구 종목 시범 경기에서 2위를 기록했고, 11월에는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에서 3위를 기록했다.
1991년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6경기 전승으로 우승했다.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1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했으나 메달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고, 9월 1990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프로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가 허용된 후, 2002년 부산에서 열린 2002년 아시안 게임에 대표팀 주장으로 참가, 타율 0.353, 4득점, 2도루를 기록하며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6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주장으로 참가,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8회 초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기록하는 등 활약하며 대표팀의 3위 달성에 기여했고,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4. 선수 은퇴 후 경력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 이글스 코치를 역임했다.
2016년에는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날아라 병아리'라는 가명으로 출연했다.
4. 1. 코치
2012년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2013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주루코치를 맡았다.[12] 2014년 김응용 감독이 퇴임하면서 한화 이글스를 떠났다.[13]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과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외야 및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19년 LG 트윈스의 2군 총괄 및 타격 코치를 맡았고, 2020년에는 친정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12] 연수는 2020년 9월 18일에 종료되어 귀국했다.[13]
2021년 LG 트윈스 1군 작전 코치로 복귀,[14] 2022년에는 2군 감독, 2023년에는 1군 주루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15] 2023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서 퇴단했다.
2025년 kt 위즈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다.[16]
4. 2. 해설위원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KBS 객원 해설을 맡았고, 2014년 11월 6일에 MBC 스포츠플러스와 계약하며 정식 해설위원이 되었다.[1]5. 개인사
가족으로는 아버지 이계준[36], 어머니 김해 김씨 김귀남[37], 아내 동래 정씨[38] 정연희[39], 아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외야수)가 있다. 딸의 남편, 즉 사위는 메이저 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투수인 고우석이다.[18] 외조카는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내야수인 윤형준이다.
원래 왼손잡이지만 우투우타이다.[40] 어릴 적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하게 되었다.[17] 아들 이정후는 이와 반대로 오른손잡이지만, 이종범의 조언으로 좌타를 선택했다.
199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선동열,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해 앨범을 냈다.[41] 당시 해태 구단 사정이 어려워 우승 보너스 지급을 위한 이벤트였으나, 김응용 감독 몰래 제작해 의도와 달리 비판을 받았다.[41] 음반은 20장 팔렸고, 그 중 10장은 김응용 감독이 구매했다.[41]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시절과 일본 생활을 제외하면 광주에서 생활했으나, 2012년 은퇴 후 딸의 교육 문제로 서울로 이주했다.
2002년 KBO 올스타전에서 가수 장나라의 시구 공을 쳐서 논란이 되었다.[42]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아들 이정후와 함께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와 선수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부자(父子)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정후는 2021년과 2022년 KBO 타율왕, 2022년 KBO MVP를 수상하며 KBO 사상 첫 부자 타율왕 및 MVP 기록을 세웠다.
6. 수상 및 기록
이종범은 KBO와 NPB에서 다양한 수상 및 기록을 남겼다. KBO에서는 1994년 MVP, 한국시리즈 MVP 2회(1993년, 1997년), 골든 글러브 6회(1993년, 1994년, 1996년, 1997년, 2002년, 2003년), KBO 올스타전 MVP 1회(2003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3]
KBO 통산 510도루(역대 2위)[7], 유격수 4회 및 외야수 2회 골든글러브 수상, KBO 올스타전 모두 출전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6. 1. 수상
수상 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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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주요 기록
기록 | 날짜 | 소속 | 구장 | 상대팀 | 상대 투수 | 경기수 | 달성 당시 나이 | 기타 | 각주 |
---|---|---|---|---|---|---|---|---|---|
24연속 도루 성공 | 1994. 6. 1 | 해태 | 광주 | 롯데 | 종전: 이호성(23도루) | [43] | |||
최고령 20-20클럽 33세 28일 | 2003. 9. 12 | KIA | 부산 | 롯데 | 손민한 | 5회 2사 0-0 상황 1점 홈런 종전: 이순철 (해태, 31세 4개월 28일) | |||
300도루 | 1997. 8. 24 | 해태 | 광주 | 현대 | 27세 9일 | 역대 3번째 |
- 단일 경기 최다 도루(6개, 1993)
-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96개, 1994)
- 100경기 이상 시즌 최고 타율 (0.393, 1994)
- 단일 시즌 최다 도루 (84개, 1994)
- 단일 시즌 최다 2루타(43개, 2003)
- 프로야구 최초 3할-30홈런-30도루 (1997)
-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전 기록 (41세 1개월 27일, 2011)
- 역대 유일 유격수 OPS 1.0 돌파 2차례 달성 (1994, 1997)
- 1,000득점 (역대 4번째) (2009)
- 최소경기 200 도루, 300도루, 400도루, 500 도루 (1,439경기, 역대 2번째, 참조- 전준호(1,705경기)) (2009)
- 역대 1회 1번 타자 (선두타자) 홈런 1위 (44개)
- * 역대 1회초 1번 타자 홈런 1위 (20개, 참조- 2위 유지현 (8개)) (2009.9.11.솔로 홈런('''상대 투수:류현진''')
- * 역대 1회말 1번 타자 홈런 1위 (24개, 참조- 2위 이영우 (10개))
- 투수를 제외한 전체 야수 포지션을 정규게임에서 소화[44]
; NPB(일본 프로 야구)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8년 4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1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1998년 4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1회초에 네이선 민치를 상대로 우중간 2루타
- 첫 타점: 1998년 4월 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3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8회초에 고바야시 미키히데를 상대로 우전 결승 적시타
- 첫 도루: 1998년 4월 7일, 한신 타이거스 1차전 (나고야 돔), 1회말 2루 도루 (투수: 타케우치 마사야, 포수: 야마다 카츠히코)
- 첫 홈런: 1998년 4월 8일, 한신 타이거스 2차전 (나고야 돔), 7회말에 야마오카 히로유키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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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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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Tigers outfielder invigorated after last season’s slump, pay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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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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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service looms over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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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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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s outfielder Lee Jung-hoo takes lessons learned from legendary father to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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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ong-beom, oldest active baseball player, announces retir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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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outfielder seeks to become all-time leader in stolen 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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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速守護神」がイ・ジョンフの妹と結婚 イ・ジョンボム(元中日)の義理の息子に(室井昌也) - エキスパート
https://news.yahoo.c[...]
2022-10-10
[19]
문서
이종범의 중일드래곤즈 시절 등번호 변경
[20]
서적
아지온・라ヴァーズ
大村書店
1996-12
[21]
뉴스인용
<프로야구> 이종범, 되살아난 해결사 본능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06-03
[22]
뉴스인용
[KS]'베테랑' 이종범의 활약이 값진 이유
https://news.naver.c[...]
OSEN
2009-10-17
[23]
뉴스인용
이종범, 일본 야구에 한풀이
http://sports.news.n[...]
OSEN
2006-03-16
[24]
뉴스
<프로야구> 이종범 '아들이 좌타자 한 풀어줘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10-17
[25]
뉴스인용
피는 못속여. 이종범-이정후 KBO리그 최초 부자 1차지명
http://sports.news.n[...]
[26]
뉴스인용
'넥센 지명' 이정후, "아버지보다 뛰어난 선수 되겠다"
http://sports.news.n[...]
OSEN
2016-06-27
[27]
뉴스인용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차동철, SF볼의 마술사 “야구인생도 SF”
https://sports.news.[...]
스포츠동아
2012-08-23
[28]
뉴스인용
[인물 포커스] 3년여만에 국내 복귀 이종범 선수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1-07-26
[29]
뉴스인용
마침내 온다, 바람의 아들
http://www.hani.co.k[...]
한겨레21
2001-06-13
[30]
뉴스인용
'아버지의 이름으로'이뤄낸 이종범의 500도루
http://spn.edaily.co[...]
이데일리
2009-06-05
[31]
뉴스인용
개인통산 500도루-1천득점 기록한 KIA 이종범
https://news.naver.c[...]
뉴시스
2009-06-05
[32]
뉴스인용
이종범‘역사를 훔치고 달렸다’
http://sports.khan.c[...]
스포츠칸
2009-06-05
[33]
뉴스인용
야구대표 20명 확정 韓-美 선수권 대륙간컵 참가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9-06-06
[34]
뉴스인용
李종범 사이클히트등 20안타 한국,멕시코꺾고 8강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90-08-10
[35]
뉴스인용
훈·포장 받은 체육유공자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91-11-16
[36]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23-12-17
[37]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23-12-17
[38]
웹인용
다음 한문을 해석해 주세요.
https://kin.naver.co[...]
2023-12-17
[39]
웹인용
‘남편’ 이종범 내조에 ‘아들’ 이정후 뒷바라지까지 “엄마는 아들 MVP가 더 뿌듯하네요”
https://www.chosun.c[...]
조선일보
2023-12-17
[40]
뉴스
(이종범) 10아시아
http://10.asiae.co.k[...]
10아시아
2012-04-13
[41]
뉴스
'특급 쌕쌕이' 이종범, 과자-앨범 제작 에피소드 공개!
http://artsnews.medi[...]
아츠뉴스
2009-11-28
[42]
웹인용
20년 전 '장나라 시구 사건' 해명한 이종범…네티즌 비판만 불렀다
https://m.mt.co.kr/r[...]
머니투데이
2024-11-08
[43]
뉴스
홈런 경쟁 - 이종범은 24연속 도루 신기록 겹경사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94-06-02
[44]
문서
당시 포수로 출전해 발이 빠른 김재걸을 잡아내기도 했다.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이종범에 김태균까지…마침내 모인 '최강야구' 브레이커스
'최강야구', 22일 첫 방송 확정…심수창 컴백
'최강야구' 레전드 김태균 등판…새 팀명은 '브레이커스'
'영원한 슈퍼소닉' 이대형, '최강야구'서 600도루 도전
송성문, 히어로즈와 6년 120억원 비FA 다년 계약
'최강야구' 첫 팀 훈련…김태균·윤석민 등 '호화 라인업' 시동 | JTBC 뉴스
'최강야구' 장성호 수석코치 합류…이종범 감독과 재회 | JTBC 뉴스
야구보다 예능?…이종범의 선택이 남긴 질문들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최강야구2025', 전설들 뭉쳤다…김태균·윤석민·이대형 등 합류 | JTBC 뉴스
'최강야구2025' 선수단 명단 확정…9월 첫 방송 | JTBC 뉴스
예능바람 난 이종범, 리그 버린 해명도 뭇매
예능으로 떠난 이종범 "변명의 여지 없어…선택에 책임질 것"
‘야구 예능’ 합류 이종범 “후배들 부탁 거절할 수 없었다”
'최강야구' 감독직 수락 이종범 "욕 먹을 수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
'최강야구' 이종범 새 감독 “출연 거절했다 후배들 요청에 결심” | JTBC 뉴스
이종범, 예능 프로그램 출연 위해 '시즌 중 퇴단' 논란
이종범 KT 코치, 시즌 중 팀 떠나 ‘최강야구’ 합류 예정
이종범 kt 코치, 시즌 중 퇴단…예능 프로그램 합류 예정
나란히 21도루…누가 ‘대도왕’이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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