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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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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팔양은 경기도 화성 출신의 시인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정지용과 함께 요람 동인으로 활동했다.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도시적인 시와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다룬 작품을 발표하며 모더니즘과 계급적 경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조선일보, 중외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광복 당시 만주에서 만선일보 기자로 있었으며, 이후 월북하여 로동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시기에는 종군 작가로 활동했으며, 1960년대 중반 이후 숙청설이 돌았으나, 북한에서는 복권되어 주체문학의 기틀을 세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작가 해금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보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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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박팔양
출생일1905년 8월 2일
출생지경기도 화성
사망일1988년 10월 4일
직업작가, 언론인
작품 활동
장르

2. 생애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구인회카프에 모두 참가했다.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도시적인 시와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는 저항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광복 후 북한에 머물며 로동신문의 전신인 《정로》 초대 편집국장, 김일성종합대학 강좌장 등을 지냈다. 한국 전쟁에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며, 장편 서사시를 발표했다. '반당종파분자'로 숙청 대상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83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1. 초기 생애와 문단 활동 (1905~1945)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경성부로 이주하여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정지용과 함께 요람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신의 주(神의 酒)〉(1923)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3]

구인회카프에 모두 참가하여, 탐미주의와 참여적 경향 양면을 보였다.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도시적 시와 함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는 저항적 작품도 발표했다. 시집으로 《여수시초(麗水詩抄)》(1940), 《박팔양 시집》(1947)이 있다.[3]

2. 2. 광복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 (1945~1960년대)

1945년 광복 당시 만선일보 기자로 만주에 머물던 박팔양은 귀국하던 중 북한에 그대로 머물러 월북 작가가 되었다. 로동신문의 전신인 《정로》 초대 편집국장과 《로동신문》 부주필, 김일성종합대학 강좌장 등을 지냈다.[3]

한국 전쟁 시기에는 종군 작가로 참전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황해의 노래》(1958), 《눈보라 만리》(1961), 《민족의 영예》, 《이름없는 한 풀잎의 노래》(유고작) 등 장편 서사시를 발표했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공화국영웅 조옥희를 다룬 작품 《황해의 노래》는 창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3]

2. 3. 숙청설과 사망 (1960년대 이후)

월북 후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1956)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 성공하였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공식적인 활동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숙청설이 나돌았다. 휴전 이후 곧바로 제거된 조선문학건설본부 계열의 임화, 김남천 등과 달리 아직 남아있던 카프 구주류 출신 작가들이 한설야를 중심으로 대거 숙청되었다는 설이었다. 특히 박팔양은 일제강점기 동안 관제 언론사인 만선일보의 기자를 지내 친일파로 규정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4]

숙청설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의 북조선에서는 복권된 상태로, 혁명성과 계급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주체문학의 기틀을 세웠음을 인정 받아서 초기작인 〈진달래〉(1930) 등의 작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2000년 송환된 양자 박문재와 함께 대를 이은 애국자로 지칭된다.[4]

1966년에 '반당종파분자'로 숙청 대상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그 이후의 행적 등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83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사후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재평가가 시작되어, 시선집 《태양을 등진 거리》[5]가 발간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분야에 선정되었으나 보류되었다.

3. 1. 북한에서의 평가

월북 후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1956)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 성공하였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공식적인 활동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숙청설이 나돌았다. 휴전 이후 곧바로 제거된 조선문학건설본부 계열의 임화, 김남천 등과 달리 아직 남아있던 카프 구주류 출신 작가들이 한설야를 중심으로 대거 숙청되었다는 설이었다. 특히 박팔양은 일제강점기 동안 관제 언론사인 만선일보의 기자를 지내 친일파로 규정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4]

숙청설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의 북조선에서는 복권된 상태로, 혁명성과 계급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주체문학의 기틀을 세웠음을 인정받아서 초기작인 〈진달래〉(1930) 등의 작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2000년 송환된 양자 박문재와 함께 대를 이은 애국자로 지칭된다.[4]

3. 2. 대한민국에서의 평가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에서도 박팔양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시선집 《태양을 등진 거리》[5]가 발간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분야에 선정되었으나, 이후 보류되었다.

사후 한국에서는 숙청설 등이 소문으로 돌았으나[3], 그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조

[1] 웹사이트 북한지역정보넷 http://www.cybernk.n[...] 2023-08-26
[2] 웹사이트 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 http://www.nks.ac.kr[...] 2023-08-26
[3] 웹사이트 박팔양(朴八陽) https://encykorea.ak[...] 2023-08-24
[4] 뉴스 세기를 이어 애국과 신념의 길로 이끌어주시여 로동신문 2006-01-26
[5] 서적 태양을 등진 거리 미래사 199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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