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구인회 (문학 단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구인회는 1933년 결성된 순수문학 지향의 문학 단체로, 이종명과 김유영의 발기로 시작되어 이태준, 이효석, 김기림, 정지용 등 9명의 문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경향문학에 반대하며 순수문학을 옹호했고, 이효석, 이태준, 박태원 등 세련된 문장과 새로운 감각을 지닌 작가들을 배출하며 한국 현대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1936년 이상에 의해 잡지 《시와 소설》을 발행했으나, 이상의 사망과 회원들의 친일 행위 등으로 인해 1937년 해산되었다. 구인회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과 경쟁하며 모더니즘과 순수 문학을 강조했으며, 림버스 컴퍼니 등 대중문화에도 등장한다.

2. 창립 과정

현순영의 연구에 따르면, 구인회의 창립 과정을 다룬 자료는 조용만의 회고담이 유일하다. 이 회고담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신빙성 문제가 있지만, 다른 자료가 없으므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내용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회고담 전체를 의심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다른 문헌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조용만의 회고담을 통해 창립 과정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다.[5]

1933년 8월, 이종명, 김유영이 발기인이 되어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등 9명이 '구인회'를 결성했다. 이후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구인회에 합류했다.

2. 1. 초기 회원

시문학파가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1933년 8월, 이종명(아호는 김유영)의 발기로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아호는 아능) 등 9명의 문인이 모여 문학 친목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했다.[6]

이후 김유영, 이종명,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아호는 몽보, 구보), 이상(아호는 김해경), 박팔양(아호는 김려수)이 구인회에 새로 가입했다.[6]

3. 회원 구성 변화

시문학파가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중, 1933년 8월 순수문학 지향의 문학운동 단체인 구인회(九人會)가 발족되었다. 구인회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등 9명의 문인이 모여 만든 문학 친목단체였다.[6]

이들은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회원 구성은 다음과 같이 변화하였다.


  • 초기에 발기인이었던 김유영, 이종명과 평양에 있던 이효석이 탈퇴했다.
  • 박태원, 이상, 박팔양 등 작가·시인들이 새로 가입했다.
  • 1935년을 전후하여 조용만, 유치진이 탈퇴했다.
  • 김유정, 김환태가 새로 가입했다.[6]


구인회는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3-4년 동안 소극적이나마 순수문학 지향의 단체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35년에는 동인지 성격의 《시와 소설》을 간행하고, 3-4회의 문예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인 간 작품 경향의 불일치와 분열로 인해 결국 해체되었다.[6]

3. 1. 회원 목록

구인회 회원 목록
이름아호주요 작품비고
이종명발기인, 탈퇴
김유영발기인, 탈퇴
이효석가산탈퇴
이무영〈제1장 제1과〉, 〈흙의 노예〉
유치진동랑탈퇴
조용만아능탈퇴
이태준상허〈불우선생〉, 〈복덕방〉, 〈영월영감〉, 〈달밤〉, 〈밤길〉, 〈까마귀〉, 〈돌다리〉, 〈패강령〉
김기림편석촌
정지용
박태원몽보, 구보소설가 구보씨의 일기〉, 〈천변풍경〉
이상
박팔양김려수
김유정김나이
김환태

[6]

4. 활동 및 문학적 성향

시문학파가 《시문학》, 《문예월간》 등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1933년 8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인들의 모임인 구인회(九人會)가 발족되었다.[6] 구인회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시작되었으며,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등 9명의 문인이 참여하여 문학 친목단체로 출발하였다.[6] 이들은 은연중에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6]

이후 김유영, 이종명,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 등이 새로 가입하였다. 1935년경에는 조용만, 유치진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합류하여 3~4년 동안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활동을 이어갔다.[6]

구인회는 순수문학 단체로서, 당시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문인들로 구성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대부분 새로운 감각과 기교를 지닌 예술파, 기교파 작가, 시인들이었다. 1935년에 동인지 성격의 《시와 소설》을 간행하고, 3~4회의 문예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인 간 작품 경향의 불일치와 분열로 인해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6]

구인회는 대체로 비공식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적 견해를 공유하고 서로를 안다는 이유로 연관되어 있었다. 구인회는 원래 반제국주의적 정서로 결성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회원들이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고, 다른 회원들은 반일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일본 제국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은 집단의 배신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4. 1. 순수문학 옹호

시문학파가 《시문학》, 《문예월간》 등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1933년 8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인들의 모임인 구인회(九人會)가 발족되었다.[6] 구인회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시작되었으며,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등 9명의 문인이 참여하여 문학 친목단체로 출발하였다.[6] 이들은 은연중에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6]

이후 김유영, 이종명,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 등이 새로 가입하였다. 1935년경에는 조용만, 유치진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합류하여 3~4년 동안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활동을 이어갔다.[6]

구인회는 순수문학 단체로서, 당시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문인들로 구성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대부분 새로운 감각과 기교를 지닌 예술파, 기교파 작가, 시인들이었다. 대표 작가인 이효석, 이태준 등은 세련된 문장으로 우수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6]

1935년에 동인지 성격의 《시와 소설》을 간행하고, 3~4회의 문예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인 간 작품 경향의 불일치와 분열로 인해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6]

구인회 소속 이태준은 프로 문학이 퇴조한 후 문단의 인기 작가로 등장하여 〈불우선생〉, 〈복덕방〉, 〈영월영감〉, 〈달밤〉, 〈밤길〉, 〈까마귀〉, 〈돌다리〉, 〈패강령〉 등 한국적인 애수와 정취가 담긴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작가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효석과 이태준은 순수문학 지향의 대표적 작가이며, 박태원도 예술파적인 경향의 작가로, 초기작 〈옆집색시〉, 〈5월의 훈풍〉 등과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기〉, 장편 〈천변풍경〉은 세태소설로 당시의 대표적인 평판작이었다.[6]

구인회는 대체로 비공식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적 견해를 공유하고 서로를 안다는 이유로 연관되어 있었다. 구인회는 원래 반제국주의적 정서로 결성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회원들이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고, 다른 회원들은 반일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일본 제국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은 집단의 배신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4. 2. 주요 작가 및 작품

시문학파가 《시문학》, 《문예월간》 등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펼치던 1933년 8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운동 단체인 구인회(九人會)가 발족되었다.[6] 구인회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등 9명의 문인이 모여 문학 친목단체를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6] 이들은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이후 김유영, 이종명과 평양에 있던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 등이 새로 가입했다.[6] 1935년경에는 조용만, 유치진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보충되어 3-4년 동안 순수문학 지향의 단체적인 활동을 이어갔다.[6]

구인회의 주요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작가주요 작품 및 활동
이태준프로문학 퇴조 후 문단의 인기 작가로, 〈불우선생〉, 〈복덕방〉, 〈영월영감〉, 〈달밤〉, 〈밤길〉, 〈까마귀〉, 〈돌다리〉, 〈패강령〉 등 한국적인 애수와 정취가 담긴 단편소설을 발표.[6]
이효석초기에는 동반작가로서 경향적인 작품을 썼으나, 이후 서정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 단편소설로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업적을 남김.[6]
박태원예술파적인 경향의 작가로, 초기작 〈옆집색시〉, 〈5월의 훈풍〉 등과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기〉, 장편 〈천변풍경〉은 세태소설로 당시 대표적인 평판작.[6]
이무영초기에는 경향적인 작가로 출발하여 농촌을 소재로 한 〈농부〉(1934), 〈황보노인〉(1935), 〈흙을 그리는 마음〉(1935) 등 농촌소설을 썼고, 후기작인 〈제1장 제1과〉, 〈흙의 노예〉 등은 그의 대표작.[6]
정지용감각적인 순수시를 씀.[6]
김기림모더니즘 시와 주지적인 이론을 발표.[6]
이상신심리주의적인 작품을 씀.[6]
김환태예술지상적인 평론을 씀.[6]
김유정인생파적인 소설을 씀.[6]



이들은 1935년에 동인지 성격의 《시와 소설》을 간행하고, 3-4회의 문예 강연회를 열었으나, 동인 간 작품 경향의 불일치와 분열로 인해 문학적으로 큰 공적을 남기지 못한 채 해체되었다.[6] 구인회는 1936년 이상이 편집한 잡지인 『시와 소설』을 발행했으나, 이 잡지는 3월에 단 한 권만 발행되었고, 이상이 11월에 일본으로 떠나면서 두 번째 호는 취소되었다. 이상은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한국으로 옮겨져 미아리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사건 이후, 구인회는 대부분 해체되었고, 1937년까지 완전히 해산되었다.

5.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과의 관계

구인회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KAPF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사실주의에 중점을 둔 단체였다.[1] 반면 구인회는 모더니즘을 추구하여 두 단체는 서로 다른 경향을 보였다. 두 단체가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로를 비평하는 여러 작품들이 남아있다.[1]

1990년대 이후에는 구인회가 전적으로 모더니즘만을 추구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구인회는 초기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였지만, KAPF와는 달리 뚜렷한 강령이나 이념을 내세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인회가 KAPF의 친사회주의적 강령과는 다르게 문학과 예술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5. 1.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시문학파가 《시문학》, 《문예월간》 등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활발히 펼치던 1933년 8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운동 단체인 구인회(九人會)가 발족되었다.[6] 구인회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시작되었으며,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등 9명의 문인이 모여 문학 친목단체를 만들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6] 이들은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김유영, 이종명,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새로 가입했다.[6] 1935년경에는 조용만, 유치진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합류하여 3~4년 동안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단체 활동을 이어갔다.[6]

구인회는 1935년에 동인지 성격의 《시와 소설》을 간행하고, 3~4회의 문예 강연회를 개최했으나, 동인 간의 작품 경향 불일치와 분열로 인해 문학적으로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6] 그러나 순수문학 단체로서, 그리고 당시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문인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구인회 회원 대부분은 새로운 감각과 기교를 지닌 예술파, 기교파 작가, 시인들이었으며, 이효석, 이태준 등은 세련된 문장으로 우수한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했다.[6] 이효석은 초기 동반작가로서의 경향적인 작품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단편소설로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6]

이태준은 프로문학 퇴조 후 문단의 인기 작가로 떠올라 〈불우선생〉, 〈복덕방〉, 〈영월영감〉, 〈달밤〉, 〈밤길〉, 〈까마귀〉, 〈돌다리〉, 〈패강령〉 등 한국적인 애수와 정취가 담긴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각광받았다.[6] 이효석이태준은 순수문학 지향의 대표적 작가이며, 박태원 역시 예술파적인 경향의 작가로 초기작 〈옆집색시〉, 〈5월의 훈풍〉,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기〉, 장편 〈천변풍경〉 등 세태소설로 당시 대표적인 평판을 받았다.[6] 이무영은 초기 경향적인 작가로 출발하여 농촌을 소재로 한 〈농부〉(1934), 〈황보노인〉(1935), 〈흙을 그리는 마음〉(1935) 등 농촌소설을 썼고, 후기작인 〈제1장 제1과〉, 〈흙의 노예〉 등은 그의 대표작이다.[6] 정지용의 감각적인 순수시, 김기림의 모더니즘 시와 주지적인 이론, 이상의 신심리주의적인 작품, 김환태의 예술지상주의적인 평론, 김유정의 인생파적인 소설 등은 모두 구인회의 순문학적인 입장을 대변했다.[6]

구인회는 비슷한 목적을 가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과 경쟁했는데, KAPF는 사실주의에 중점을 둔 사회주의 지향 단체였다.[1] 두 단체가 엄격한 적대 관계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서로에 대한 비평이 담긴 작품들이 존재한다.[1]

1990년대 이후 구인회가 전적으로 모더니즘을 추구했다는 시각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는데, KAPF와 달리 구인회는 초기 반제국주의적 성향 외에는 일관된 강령이나 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인회는 KAPF의 명확한 친사회주의적 강령과는 대조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5. 2. 반제국주의적 성향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은 사실주의에 중점을 둔 사회주의 지향 단체로, 구인회의 모더니즘과는 다른 경향을 보였다. 두 단체가 엄격하게 적대적인 관계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서로를 비평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1]

1990년대 이후 구인회가 전적으로 모더니즘을 추구했다는 시각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KAPF와 달리 구인회는 초기 반제국주의적 성향 외에 일관된 강령이나 주의를 옹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인회는 KAPF의 친사회주의적 강령과는 대조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구인회는 원래 반제국주의적 정서로 결성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안응과 같은 일부 회원들이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자, 일본 제국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은 집단의 배신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6. 해체

구인회는 대체로 비공식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적 견해를 공유하고 서로 안다는 이유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응과 같은 일부 회원들이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고, 상어와 같은 다른 회원들은 분명히 반일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변화했다. 구인회는 원래 반제국주의적 정서로 결성되었으며, 결국 일본 제국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은 집단의 배신자로 여겨지게 되었다.[1]

1936년 이상이 편집한 잡지 《시와 소설》이 구인회에서 발행되었다. 이 잡지는 3월에 단 한 권만 발행되었고, 그 이후 두 번째 호가 계획되었지만, 이상이 11월에 일본으로 떠나면서 취소되었다. 이상은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한국으로 옮겨져 미아리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사건 이후, 구인회는 대부분 해체되었고, 1937년까지 완전히 해산되었다.[1]

7.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림버스 컴퍼니에서 구인회가 언급되며, 허구화된 이상이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단체 전체는 게임의 네 번째 챕터("Canto IV")에서 허구화된 형태로 주로 묘사되며, 김동랑과 김동백(김유정(소설가)를 모티브로 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박태원(구보), 김기림(게임 내에서 "림"으로만 알려짐), 이효석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존재한다.

참조

[1] 저널 The Writing Community of Guinhoe: Time of the Eternal Recurrence https://oak.go.kr/re[...] 2024-06-19
[2] 서적 Guinhoe From the Inside Out: Knowns and Unknowns of Guinhoe Somyong Chulpan 2017-00-00
[3] 웹사이트 Yi Sang https://library.ltik[...] 2024-06-19
[4] 뉴스 문단풍문 동아일보 2012-02-20
[5] 저널 회고담을 통한 구인회 창립 과정 연구
[6] 백과사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전기 문학/근대 문예사조와 본격 문학기 s:글로벌_세계_대백과사전/언어I·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